이름: 거지태공망
2011/11/18(금)
한국고전 베스트 30  
       에센스 한국고전 베스트 30 (상)
   지은이: 한국 소설문학 연구회
   출판사: 문학과 현실사
 
 
   조웅전  
 때는 중국 송나라 문제가 즉위한 지 이십 삼 년이 되는 해였다. 어진 황제를 모신 백성들
은 농사짓기에 바빴고 거리에는 평화로운 노랫가락이 흘렀다. 이후 추구월 병인일에 문제께
서는 갑자기 충렬묘에 납시었다. 충렬묘란  만고에 다시 없는 충신이었다. 좌승상  조정인이
잠들어 있는 묘였다. 조정인이 이부상서-조선시대의 이조 판서에 해당되는 벼슬-로 있을 때
남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에 조정은 문제를 모시고 뇌성관까지 피했다가 사방으로 다니
며 의병을 모집하여 석 달 만에 반란을 진압시켰다. 이 공로로 조정인은 좌승상으로 벼슬이
올랐고 정평왕이란 칭호까지 내렸다. 그러나 좌승상 조정인이 굳이 사양하므로 문제는 하는
수 없이 금자광록대부와 조상만을 제수하고 그의 부인 왕씨는 공렬부인에 봉하였던 것이다.
그후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자 간신들이 은밀히 날뛰기 시작하고 어진 신하들이 점점 숨어  
살게 되었다. 특히 우승상 이두병이  앞장에서 모함하고 참소하니 좌승상  조정인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해 버렸다. 문제는 충신이 허무하게 죽자 크게 애통하여 친히 제문을 지어 조상
하시고 충렬묘를 지어 거의 날마다 거동하시었다. 그러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우승상
이두병은 황제의 이런 거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권세만을 위하여 노력할 뿐
이었다. 이두병은 자기의 지위를 반석같이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병권을 잡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아들인 이 관으로 하여금 병부시랑이란 요직에 앉도록 했다. 이 날
도 문제는 충렬묘로 거동하시어 늘 하는 대로 좌승상 조정인의 공적을 극구 칭찬했다. 이에
병부시랑 이 관이 엎드려 아뢰기를, "폐하께옵서는  항상 좌승상 조정인의 공로를 찬양하옵
시니 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어찌 많은 신하 중에서 조정인  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이까? 폐하가 이처럼 옥안에 슬픔이 가득하시니 이 후로는 충렬묘에 납시는 것을
거두소서." "무엇이? 어허 무엄하도다." 황제께서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즉시  이 관을 끌어
내라고 엄명하셨다. 그리곤 환궁하신 다음에  조종인의 아내 공렬 부인  왕씨를 정렬부인에
봉하시고 많은 금은을 하사하시면서, "듣자 하니 조승상에게 아들이 있다 하니 조정으로 불
러서 짐의 마음을 덜게 하라." 하고 하교하시었다.
 한편 왕씨 부인은 애를 가진 지 일곱 달에 남편을 여의고 유복자를 낳으니 이름을 웅이라
했다. 왕씨 부인은 삼년상을 지내고도 소복을 벗지 않고 아들 웅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었다.
이 날 황제께서 또 다시 충렬묘에 거동하신다는 말에 더욱 슬퍼하고 있는데 황제가 특별히
보낸 신하가 와서 정렬부인의 칭호와 많은 금은을 전하니 부인은 황공하여 급히 절하며 받
았다. 또한 아들 웅을 대궐로  들여보내라는 조서를 보고 더욱 황송하여  깨끗한 옷을 입혀
보냈다. 이때 조웅의 나이 불과 일곱 살이었지만 얼굴은 관옥 같고 행동거지는 어른보다 더
의젓했다. 환관을 따라 옥좌 아래에서 몸을 굽혀 절하니 황제께서 보시고 크게 칭찬하였다.
"충신의 아들은 과연 다르도다. 짐이 오늘 네 거동을 보니 충효에 벗어나지 않으니 어찌 아
름답지 않으리오. 또한 나이가 일곱 살이라 하니 태자와 동갑이로다. 어찌 더욱  사랑스럽지
않으랴." 이어 태자를 불러오게 하시어 분부하셨다.  "조웅은 충신 조정인의 유복자로다. 또
한 너와 동갑으로 충효를 겸하였으니 훗날에 국사를 의논하라. 짐은 늙어 여든 살이 가까우
니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도다." 하시니, 태자도 즐거워하였다. 조웅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성은 망극하나이다. 그러나 소신은 나이가 어리옵고 또한 나라에 법도가 있으니 어찌 벼슬
길에 오르지도 않은 아이가 대궐 안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 이렇듯  어린
아이에게 국사를 의논하시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오리까? 업드려 비옵건대 소신은  물러가서
공부를 마친 후에 다시 용안을 뵈옵게 하소서." 그 어조가 지극히 간절하니 비록 어린 아이
의 말이지만 황제는 사리에 맞다 하여 하교하셨다. "네 나이  십 삼 세가 되거든 벼슬을 내
릴 것이니 가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라." 조웅이 황공하여 큰 절을 올리고 물러 나오니 태
자도 못내 서운해 하였다. 황제께서는 조정의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웅에 대해 입에 침이 마
르도록 칭찬하신 후 물으셨다. " 이 관은 지금 어디 있느냐?"
우승상 최 식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폐하께서 내치라 하시었으므로 지금 옥에 갇히었나
이다." 하니, 황제께서는 관대한 분부하셨다. "이 관의 말이 경솔하나 이번만은 용서하라."
 원래 이두병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는데 모두  일품의 벼슬에 올라 있으므로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두려워했다. 이 날 황제께서 조웅을 크게 칭찬하심을  보고 이두병의 아들들은 모
여 의논했다. "조웅이 벼슬길에 오르면 필시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다.  조심해야
하겠다." 마침내 그들은 조웅을 몰래 죽일 흉계를 꾸몄다. 이것도 모르고 조웅은  집으로 돌
아와 모친을 뵈오니 정렬부인은 엄숙히 물었다. "그래 폐하를 뵈었느냐?" 조웅은 공손히 아
뢰었다. "들어가 뵈었나이다." " 그렇다면 황제께서 하문하신 말씀이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대답했느냐?" 조웅은 황제께서 열 세 살이  되면 벼슬을 주시겠다고 하시던 말씀과  태자도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낱낱이 고하니 부인이 크게  기뻐하였다. "폐하의 은혜가 하늘처럼
높고 바다같이 깊으니 너는 명심해서 충성을 다하여라."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모
자는 성은에 거듭 감사하고, 더 한층  몸과 마음을 닦기에 열중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병인년 섣달이 되었다. 이날 황제께서는 온 조정의  신하들로부터 조회를 받고 말하
였다. "아, 짐의 나이가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게  늙었구나. 하늘은 짐의 죽음을 재촉하는데
태자의 나이가 어려 국사를 보기에 아직  이르니 어찌할꼬?"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아직도 이렇듯 정정 하시온데  어찌 동궁의 어리심을 근심하
나이까." 이부 상서 정출이 앞으로 나와 간사를 떨었다. "폐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옵소서. 승
상 이두병이 아직 건재하오니 국사는 아무런 근심이 없나이다." 모든 신하들이 또한 이두병
의 권세를 두려워해 맞장구를 쳤다. "승상 이두병은 한나라의 소무 같은 신하이오니 폐하께
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황제는 신하들이 이처럼 장담하자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대궐 안으로 난데없이 흰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와 돌아다니다가 궁녀 하나를 물고
후원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황제와 모든 신하들은 크게 놀라고 장안의 백성
또한 앞으로 닥칠 길흉을 알지 못해 소동을 피웠다. 황제가  크게 걱정하시니 신하 중의 하
나가 나와 아뢰었다. "며칠 동안 북풍이 크게 불고  눈이 산을 덮었으므로 굶주린 호랑이가
내려온 것이니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황제는 이 말에 약간 마음을 놓았으나 웬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때 한림학사 왕열은 사촌누이 되는  왕부인께 이 변고를
편지로 알렸다. 왕부인은 조웅에게 옛날의  역사를 가르치다가 이 편지를 받고  뜯어보았다.
편지에는 대궐 안으로 흰 호랑이가 들어와 난동을 부린 사실을 자세히 알림과 동시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풀어 달라고 했다. 왕부인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라 오랫동안 생각하다
가 답서를 써서 보낸 다음에 아들에게 일렀다. "국가에  이런 흉한 재앙이 일어났으니 네가
앞으로 벼슬한다 해도 간신들에게 당하겠구나." 조웅이 엄숙한  태도로 아뢰었다. "어머님은
염려마옵소서. 사람의 영욕은 임의로 되는  것이 아니옵고 오직 하늘이 정하는  것이옵니다.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해도 소자는 백옥같이 죄가 없사오니 그 누가  저를 모함하겠습니까?"
왕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얘야,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산에 불이
나면 옥이나 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태우는 법이다. 어찌 간신들이  너를 가만히 두겠느
냐?" 조웅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일을 당하여 오래 조심하면 가슴만 아플 뿐 백
가지 일이 불리하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옵소서. 설마 하늘이 죄없는
저희들에게 재앙을 내리겠습니까?" 아들의 활달한 말에 왕부인은 근심하지 않고  묵묵히 집
안 일을 돌보았다. 한편 왕부인의 편지를 받은 한림박사 왕 열은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 벼
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때는 정묘년 정월 보름이었다. 신하들의 하례가 끝난  다
음 황제께서는 갑자기 이르시었다. "전에 짐이 조웅을 보니 충효를 범전하였도다. 해서 태자
를 위해 대궐로 데려오고자 하니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이두병이 즉시 앞으로 나와  반대
의 뜻을 표했다. "폐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벼슬 없는 아이를 조정에 두는 것은 법도에 없
나이다." 폐하께서는 불쾌한 안색을 지으셨다. "충효한 인재를 거두는데 어찌 법도를 따지는
가?"이두병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조웅을 깎아  내렸다. "인재를 얻고자 하시면 장안에서만
도 조웅보다 십 배나 더한 충효스런 인재가 수백이요, 조웅과  같은 아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사옵니다." 황제께서는 불쾌한 나머지  옥좌를 박차고 들어가셨다. 그러자  이두병이
뭇신하들을 돌아보고 엄포를 놓았다. "만약  조웅에 대해 좋게 아뢰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못할 것이오." 이렇게 되니 겁내지 않는 신하가 그 누구이겠는가. 이 때 왕부인과 조웅은 우
연히 이두병이 말한 것을 듣고 앞으로의 일이 크게 잘못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드디어 불행
이 닥쳤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황제께서는 뭇백성들이 축원한  보람도 없이 정묘년 삼월
삼일에 승하하시었다.  이에 온 조종의 신하들과 천하의 백성들이  슬피우니 천지에 사무쳤
다. 왕부인과 조웅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 컸다. 문제가 돌아가시니 세상은 온통 이두병의 마
음대로였다. 조정의 뜻 있는 신하들은 하나 둘 사직하고 떠나니 간신들만 우글우글했다.  백
성들은 나라가 망할 조짐이라고 속으로 한탄할 뿐 그 누구도 감히 나서서 이두병의 죄악을
꾸짖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가 왔다가 생각한 이두병은 시월 십삼 일에 드디어 만조 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 태자의 나이 겨우  여덟 살이니 황제의 자리에 앉는
것은 불가하다. 나라에는 하루도 주인이 없으면 곧 시드는 법이니 그대들은 어찌하겠는가?"
온통 이두병의 패로 이루어진 신하들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저마다 떠들어 댔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나라가 지금  위태로운데 어찌 여덟
살밖에 안 되는 태자가 즉위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승상께서 옥쇄를 받으시고 즉위하십시
오." 그러자 이두병은 짐짓 세 번 사양하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장안이 온통 놀라 버렸
다. 그러나 이두병의 군사들이 곳곳에 서서 위세를 떨쳐 감히 항거하는 자가 없었다. 이두병
은 자칭 순제라 일컫고 국법을 제 마음대로 개정하고 동궁을 폐하여 외각관에 감금하니 충
성스런 신하들은 남몰래 피눈물을 흘렸다. 이 때 왕부인은  이두병이 드디어 나라를 찬탈했
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슬프구나! 나라가 망했는데 옹의 나
이 겨우 팔 세이니 어찌할 것인가?" 조웅이  급히 들어와 모친을 애써 위로했다. "어머님께
서는 불효자를 근심하지 마옵시고 몸을 보호하소서. 이두병은 아버님을 해친 원수이자 대역
적이옵니다. 소자가 비록 나이 어리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어찌  역적의 손에 죽겠습니까?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조웅의 눈에서도 분노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한편 이두병은 맏아들 이 관을 동궁으로 삼고 연호를 건무 원년이라 했다.  그
리고 외각관에 감금한 송태자는 태사부 계량도로 귀양보냈다. 왕부인과 조웅은 태자가 귀양
간다는 소식에 매우 슬퍼하며 또한  분노했다. 그들은 태자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역적들의
눈에 띄면 죽을 것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하루는 조웅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모친 모르게 장안 큰 거리로 돌아다니었다. 그러
다가 한 곳에 이르니 어린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뜻이 묘했다.  "나라가 망했으니 아비
없는 난세로다. 문제가 순제 되고 태평 세월이 어지러운 세상으로 변했구나 그러나 남의 것
빼앗아 사는 자가 그 며칠이나 갈 것인가. 충신의 피눈물이 흐르니 역적은 망하는도다. 사해
에 숨어 놀다가 시절이 좋아지면 다시 만나리." 조웅이  듣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어느덧 대궐 경화문에 이르렀다.  인적은 고요하고 달빛은 교교히  흐르는데 저절로
돌아가신 황제의 따뜻한 정이 생각났다. 조웅은 당장이라도 대궐  안으로 들어가 역적 이두
병을 죽이고 싶었지만 수많은 군사들이 곳곳에 지키고 있으니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분노가 너무 치밀어 품속에서 붓을 꺼내 이두병의 죄상을 욕하
는 글을 써서 몰래 경화문에 붙였다. 이  때 왕부인은 잠을 자다가 한 기이한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승상이 생시의 모습으로 나타나 엄히 이르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어서 일어나시
오. 날이 밝으면 큰 변이 생길 것이니 어서 웅을 데리고 도망하시오." 부인이 놀라  급히 물
었다. "천지에 역적이 깔리었거늘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대답이 없어 놀라 깨
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황급히 아들을 부르니  간 곳이 없었다. 왕부인은 다급한 마음에  문
밖을 나와 살피니 조웅이 총총히 걸어오는 것이었다. "얘야, 이렇듯 깊은 밤에  어디를 갔었
느냐?" 모친이 묻자 조웅은 사실대로 말했다. "소자는 이두병의 죄악이 너무 크므로 경화문
에 가서 역적을 욕하는 글을 써서 붙였사옵니다." 모친이 크게 놀라 엄히  꾸짖었다. "네 어
찌 이렇듯 경망스러우냐? 그렇지 않아도 역적이 우리 모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그
글을 보면 만사를 젖혀놓고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다행히 너의 아버님께서 꿈에 나타
나 알리셨으니 어서 도망가자." 두 사람은 즉시 간단한  행장을 차린 다음 충렬묘로 달려갔
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단 위의 초상화에  땀이 나서 얼굴에 물기가 축축했다. 모자는  크게
울지도 못하고 엎드려 흐느끼니 그 형상이 가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초상화를 떼어 간수하고 모자는 수십 리를 걸어 어느 강가에 도착했다. 날씨는 험악하여 물
결은 거친데 사공 없는 나룻배만이 덩그렇게 매어져 있었다. 모자가 황급히 배에 올라 노를
저었으나 매여있는 배가 어찌 움직이겠는가.  일이 이렇게 되니 왕부인과  조웅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이두병의 군사들이 몰려와 꼼짝없이 잡힐 것만  같아 발을 동동 굴
렀다. 이때 갑자기 상류 쪽에서  한 조각배가 등불을 밝히고 이쪽으로  쏜살같이 오는 것이
보였다. 왕부인은 크게 기뻐하여  목청껏 외쳤다. "사공께서는  제발 우리들을 살려  주십시
오." 그러자 조각배가 모자 곁에 이르더니  늙은 사공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두  분은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모자가 반겨 배에 오르자 사공은 있는 힘을 다해 배를  저었다. 왕부인은
마음이 약간 진정되자 사공에게 물었다. "사공께선 어인 일로  이 밤중에 배를 몰고 내려왔
습니까?" 늙은 사공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듯 깊은  밤중에 누가 배를 몰겠습니까? 다만
꿈에 한 귀인이 나타나셔서 급히 이리로  와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시기에 달려왔을  뿐입니
다." 사공의 얘기를 듣자 모자는 하늘의  도우심에 깊이 감사드렸다. 이윽고 날이  희미하게
밝을 무렵 조각배는 낯선 강가에 닿았다. 왕부인은 사공에게 깊이 감사를 드리고 아들의 손
목을 잡고 정처 없이 걸어갔다. 한편, 이두병의 대궐에서는 큰 야단이 났다. 날이 밝자 경화
문을 지키던 포졸이 당황한 기색으로  들어와 아뢰는 것이었다. "날이  밝았기에 보니 문에
이런 글이 붙어있기에 가져왔나이다."
'송화실이 약해지니 역적이 조정에 가득 찼도다. 불행히 황제께서 돌아가시니 소인들이  득
세하여 태자를 모반하고 역적 이두병에 붙었도다. 만고 역적 이두병은 듣거라. 너는  성은을
입어 벼슬이 일품에 이르렀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역적이 되었느냐? 네 죄악을 생각하면 천
하 만민이 살을 씹고 뼈를 갈아도 부족하리라. 내 어느 때건 너를 잡아 만백성 앞에서 목을
베어 역적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줄 것이다. 전조 충신 조종인의 유복자 조웅'
이두병은 이 글을 읽자 크게 노하여 하늘이 얕다고 호령했다. "즉시 조웅 모자를 결박하여
잡아들여라." 그러자 때는 이미 늦어 조웅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텅텅 빈  집이었다. 이에
더욱 화가 난 이두병은 군사를 풀어 조웅의 행방을 찾는 한편 충렬묘로 사람을 보내 조종인
의 초상화를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충렬묘의 초상화까지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보고가 아
닌가. 이두병은 너무 분한 나머지 아무 죄없는 대궐 문지기의  목을 베어 성문에 높이 달아
놓았다. 이에 조웅이 살던 집과 충렬묘를 불살라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이두병이
화가 풀리지 않아 호통을 치자 뭇 신하들이 좋은 말로 아뢰었다. "조웅의 나이 겨우 여덟이
고 그 어미는 늙은 여인이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천하에 명을 내려 잡으라
고 하면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이두병은 천하에 영을 내리기를 만
약 조웅 모자를 잡아오는 자가 있으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의 벼슬을 주겠다고 했다.
 이런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웅 모자는 정처 없이 걷다가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한 깨끗한 고을에 이르렀다. 마을에 들어서 보니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유순하고 깨
끗했다. 이에 한 사람을 붙잡고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쾌히 한 집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 집에 들어가니 나이 많은 할머니가 어린 처녀를 데리고  살거늘 매우 조용했다. 주인 되
는 노파가 물었다. "부인은 어디  사시며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왕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희 모자는 변을 당해 이처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이곳은 무엇이라  부르는 고을입니까?" "이곳은  계량섬 백자촌이라는 마을입니
다." 주인 노파는 대답하고 나서 모자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니 왕부인은 감사해 마지않
았다. 노파는 사양하며 자기 신세도 조웅  모자와 비슷하니 이곳에 함께 살자고 했다.  이에
조웅 모자는 그 집에서 머물렀으나  마음은 항상 고향과 빼앗긴 나라에  가 있었다. 이윽고
한 해가 속절없이 가니 부인의 나이는 마흔 살이요, 조웅은 아홉 살이 되었다. 하루는  주인
노파가 왕부인에게 오더니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부인은 아직 마흔  살밖에 안 되었으니
개가토록 하십시오. 내 사촌 남동생이 있는데 젊어서 상처하고 지금 마땅한 곳을 정하지 못
해 널리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남동생에게는 재산도 많으니  부인이 개가하면 큰복을 누
리리다." 왕부인이 놀라 얼굴빛을 바꾸고 쌀쌀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길
거리의 여자로 취급하다니... 나는 남은 생애를 아들을 위해 바칠 것이니 아예 그런 말은 하
지 마십시오." 그러자 주인 노파는 사죄하며 얼른 물러났다. 하지만 몰래 사촌  남동생에 좋
은 혼처가 생겼다고 연락했다. 사촌 동생되는 자는 크게  기뻐하여 어떻게 하든지 왕부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호시탐탐 노렸다. 왕부인은 이런 기색을 깨닫고  더 이상 이곳에 있으
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해서 조웅과 함께 노파가 잠든 사이에 집을 나서 다시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들을 지나 수십 리를 걸으니 어느덧 발도 붓고 가지고 온 식량도 떨어져 굶주
림이 심하였다. 모자는 별 수 없어 길가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이때 그들 곁에 마침 말을 탄
길손이 지나거늘 조웅이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길을 가다가 피곤에 지
쳐 있으니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길손은 말에서 내려 대답했다. "가진 것이라
곤 마른 음식이 조금 있으니 어서 요기를 하라." 조웅이  인사를 하고 마른 음식을 받아 모
친과 함께 요기하니 겨우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시 며칠을 걸어 한 곳에 이르니 해상현 옥
구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근거리기를, "새 황제가 천하에 이르기를 조
웅 모자를 잡아 바치면 천금상과 만호부에 봉한다 하니 우리가 그들을 잡으면 크게 복을 누
리리라." 하고, 오가는 행인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조웅  모자는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
늘하여 급히 마을에서 도망쳤다. 너무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발도 아픈 줄을 몰랐다. 이윽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모자는 신세를  생각하니 눈물이 비오듯 흘러
서로 붙들고 울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도 역적의 손에 잡혀 죽겠구나." 때는 꽃피는 춘삼월
이어서 나무마다 새 잎이 돋았는데 모자의 신세는 더욱  처량하기만 했다. 바위를 의지하여
밤을 지내는데 부엉이는 울고 늑대는 사방에서  울부짖어 사람의 마음을 더욱 고달프게  했
다. 왕부인은 아들을 끌어안고 연신 눈물만 흘리니 달빛조차 함께 슬퍼하는 듯했다. 밤을 지
새며 굶주림을 참자니 몸이 더욱 무거워져 왕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누워 버렸다. 이에 조웅
이 꽃을 꺾어다가 모친에게 드리니, "이게 어찌  요기가 되겠는가?" 하고 탄식하고 있는 어
디선가 갑자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살피니 오륙  명의 여승들이 산골짜기를 타
고 내려오고 있었다. 왕부인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승님께서는 어느 절에 있으며  어느
절로 가나이까?" 여승 중의 하나가 의아스런 어조로 반문했다. "부인은 뉘신데 이렇듯 깊은
산중에 와 있습니까?" 왕부인은 애처로운 얼굴로 사실대로 대답했다. "저의 모자는 길을 잃
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승
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끌어 음식을 내주었다.  조웅 모자는 절하며 치하했다. "죽을  사람을
구해 주시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승들은 사양하며 길을 가리켜
주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인가가 있으니 그리로 가십시오." 모자는 그들
과 헤어지자 허겁지겁 요기를 했다.
 이윽고 기운을 차리자 조웅은  다시 길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왕부인이 울며 말했다.
"얘야,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마을도 가면 반드시 관리들에게 잡힐 것이다.  역적에게 끌려
가 죽느니 차라리 이 산중에서  굶어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조웅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모친을 위로했다.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으니 하늘이 죽이면 죽을  것이오, 살리면
살 것이옵니다. 어찌 사람이 두려워 이 산중에서 굶어 죽거나  짐승의 밥이 되겠습니까? 조
금도 염려하지 마시고 마을로 내려가십시오."  왕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얘
야, 우리 모자가 이렇게 가면 반드시 행적이 드러나 잡힐 것이다. 이 어미의 생각으로  우리
가 행색을 달리하면 좋을 것이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는 삭발하여 여승이 되고 너는 상
좌 - 중의 수업을 닦는 남자아이 - 가 되면 누가  알겠느냐?" "어머님, 목숨을 건지는 것도
중하지만 어찌 머리카락을 없애겠습니까?" "얘야, 머리를  깎는다고 해도 중이 아니니 상관
있느냐? 너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조웅은 모친의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결심했다. "
그렇다면 소자도 머리를 깎겠습니다." "얘야, 너같이 어린아이가 삭발하면 도리어 의심할 것
이다. 이 어미만 깎을테니 너는 더 이상 말하지 말아라." 왕부인은 엄히 이르고 행장에서 가
위를 꺼내 머리를 깎으라 하니 조웅이 차마 가위질을 할 수가 없어 눈물만 흘렸다. 이를 본
모친이 크게 꾸짖었다. "이 어미가 여지껏  산 것은 오로지 너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는 이
어미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울고만 있으니 어떻게 원수를 갚고 나라를 되찾겠느냐?" 이
에 조웅은 억지로 울음을 그치고 가위를 들어 모친의 머리를 깎으니 간담이 찢어지는 듯 아
팠다. "얘야, 울지 말아라. 내  마음도 아프구나." 왕부인이 위로하니 조웅은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어머님, 소자는 오늘을  잊지 않고 반드시 역적을  없애겠습니다." 머리를 다 깎자
왕부인은 행장에서 옷을 꺼내어 장삼을 지어 입고 머리에 여승이 쓰는 고깔을 쓰니 완연히
모습이 달라졌다. 그리곤 조웅을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오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집집마
다 들러 밥을 빌어먹고 가다가 하루는 한곳에 장이 섰으므로 깎은 머리카락을 팔았다. 머리
값으로 겨우 돈 닷 냥을 받아 이날 밤은 객점에서 잤다. 그런데  밤이 깊은 후에 갑자기 마
을이 떠들썩했다. 조웅 모자가 놀라 나와보니 도적들이 흉기를 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왕부인은 놀라 담을 뛰어 넘어 도망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조웅이 없었다. 부인은 간담
이 떨어지는 듯하여 마을을 돌아보니 불길이 온통 마을을 휩쓸고 도적들이 여기저기서 날뛰
는 것이었다. 이어 도적이 한사코 뒤를 쫓으니 왕부인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꾸만 도망
쳤다. 얼마쯤 도망치다가 보니 한 채의 낡은 묘가 있기에 비석 뒤에 숨었다. 한편 조웅은 북
새통에 모친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이때  도적이 달려들어 봇짐을 빼앗
으려 하니 붙들고 애걸했다. "봇짐 속에는 돈 몇 푼이  있으니 그것만 가지고 가고 짐은 남
겨 주십시오." 그러자 한 늙은 도적이 불쌍히 여겨 짐  속에서 석 냥의 돈과 초상화만 꺼내
고 봇짐을 내주었다. 조웅은 이를 보고 애절히 부르짖었다. "나를 죽이고 그  초상화를 가져
가시오!" 도적이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초상화냐?" "나는 보다시피
상좌인데 우리 대사께서는 늘 불상을 모시고 다닙니다. 오늘도  대사를 모시고 객점에 들어
갔다가 혼란 중에 서로 헤어졌으니 만약 이 불상마저 가져가면 나는 절에 돌아갈 수가 없습
니다. 그러니 가져가도 소용없는 불상은 이리 주십시오." 조웅이 거듭 애원하니 늙은 도적이
여러 도적들에게 권하여 돌려주었다. 조웅은 초상화를 받자 물었다. "어디로 가면 저의 대사
님을 만나겠습니까?" "그 여승 말이냐? 저쪽 길로  갔으니 그리로 가 보아라." 조웅은 크게
기뻐하여 도적이 가르킨 길로 달려가면서 모친을 불렀다. 이 때 왕부인은 비석 뒤에서 잠깐
졸고 있는데 꿈에 남편이 나타나 빨리 일어나라고 해서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러자 묘 밖
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불렀다.  "웅이냐?" 조웅이
듣고 급히 들려와 외쳤다. "어머님, 소자 웅이옵니다."  모자는 다시 만난 기쁨에 서로 붙들
고 울고 웃고 했다.
 이윽고 날이 새자 비석의 글자가 뚜렷하게 보이거늘 조웅  모자는 무심코 이를 읽었다.거
기에는 금빛 글자로, <만고충신 병부시랑 겸 진부어사 조종인의 불망비라> 씌어 있었고 밑
에는 작은 글자로, <황제께서 밝히 살피사 위왕은  죄주시니 모두가 조승상의 공이로다. 흩
어진 백성들이 다시 모여 성덕을 찬양하니 이 은덕 무엇으로 갚을꼬> 라고 씌어 있었다. 조
웅 모자가 이 비문을 보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니 산천 초목이 함께 흐느끼는 듯 빛을  잃
었다. 조웅이 겨우 눈물을 삼키고 모친께 여쭈었다. "아버님 비석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나이
까?" 모친이 천연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아, 이 비석을 보니  이곳이 위나라 땅이구나. 네
부친이 병부시랑을 지낼 때에 위왕 두침이 포악한 왕으로  천하 만인이 미워했었다. 백성들
이 이에 참을 수가 없어 고향을 등지고 사방으로 떠나니 황제께서는 네 부친을 보내어 위왕
을 벌주시고 다시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드셨단다. 이곳 백성들이  이 은공을 잊지 못하고 네
부친의 비를 세웠구나." 이에 붓을 꺼내어 비문을 베낀 다음 하직했다. 그러나 이 천지에 어
디로 간단 말인가. 더구나 푼돈마저  도적에게 빼앗겼으니 앞길이 아득하기만 했다.  조웅이
모친에게 아뢰었다. "다시 마을로 다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니 절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부인도 이를 옳게 여겨 길가는 사람에게 절이 있는 곳을 물었다. "여기서 서
쪽으로 쭉 가시오." 길손이 가리켜 준 대로 모자는 험한 산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먹
을 것이 없어서 허기에 지쳐 산골짜기에 앉아 쉬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 한 늙은 중이 철장
을 짚고 다가오더니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매우  시장한 것 같아 보이니 우선
이것으로 요기나 하십시오." 조웅 모자는 염치 불구하고 음식을 받아 요기하고 감사를 드렸
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을 뻔했는데 인자하신 대사님을  만나 살았으니 은혜를
잊을 수 없나이다." 그러자 늙은 중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요기하신 것을 은혜라 하신다면
빈승은 부인에게서 천금을 얻었으니 그 은혜는  어찌하오리까?" 부인이 놀라 물었다. "저는
본래 가난한 여승으로 사방에 다니며 빌어먹는 신세인데 어찌 천금의 재물을 대사님께 주었
다고 말씀하나이까?" 늙은 중이 엄숙한 얼굴로  도리어 반문했다. "부인께서는 조충공의 부
인이 아니시옵니까? 이렇게 변장 하신들  빈승이 모르시겠습니까?" 조웅 모자는 크게  놀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우리의 본색이 탄로되었으니 어찌할 것인가.' 왕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걸했다. "대사님, 우리 모자를 잡아 관청에 바치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의 벼슬을 받겠지만
부귀는 뜬구름 같은 것이니 부디 저희들을 놓아주소서." 늙은 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부인
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빈승은 부인을 잡아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빈승은 지난달 승상의 화상
을 그렸던 중 월경이옵니다. 그때 승상의 화상을 그려 부인께 바쳤더니 천금의 상을 주셨기
에 가지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인께서는 빈승을 몰라보십니까?" 이 말을 듣고 왕
부인은 늙은 중을 자세히 살피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지만 너무 오래되
어 기억이 없습니다. 대사께서는 저희들을  농락하지 마시고 본심을 얘기하옵소서."  그러자
늙은 중은 엄숙히 말했다. "부인께서는 우선 초상화를 내주소서." 왕부인은  더욱 놀라 완강
히 부인했다.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무슨 초상화가 있겠습니까, 대사께서는 사람을 놀리지
마십시오." "부인께서는 어찌 이렇게 의심하십니까? 그때  빈승이 부인을 뵈올 적에 임신하
신 지 여러 달 되었기에 앞으로 닥칠 일을 초상화 뒤에 써 넣었으니 어서 꺼내어  살펴보십
시오." 늙은 중의 간곡한 말에  왕부인은 이상하게 생각되어 마침내  초상화를 꺼내어 뒤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 살펴보았다. 과연 거기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충신의 부인은 어인
일로 머리를 깎으셨는가? 도둑에게 망한 나라 바닷가에 거북을 만났도다. 주인은 누구인고?
굴원 - 초나라의 충신으로 물에 빠져 죽음  - 의 넋이로다. 뱃속에 있는 아이  충신 열사로
다. 아들로 상좌를 삼고 모습을 고치려 해도 어찌 옛일을 잊겠는가. 위나라 강서 출신  월경
> 라고 씌어 있었다. 왕부인은 놀랍기도 하고 기쁨에 겨워 울며 말했다. "우리 모자는 나라
를 도둑질한 역적을 피하다가 천행으로 이곳에서 대사님을 뵈었으니 이 기쁨을 어찌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월경대사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부인께서 고생하신 것을 빈승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존귀하고 비천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니 너무 근심
하지 마십시오. 빈승은 이렇게 만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이다." 라고 말하고는, 조웅 모자
를 데리고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맑은 냇물이 구불
구불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돌다리를 건너 절간에 이르니 많은 중들이 나
와 반가이 맞이했다. 조웅 모자는 고생 끝에 이렇게 신선이  사는 듯한 선경에 이르니 마음
이 절로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왕부인은 경내에 이르자 거듭 감사를 드렸다. "속세에서 때가
묻은 저희 모자가 극락을 어지럽힌 듯하니 마음이 불안하옵니다." 그러나 모든 중들이 이구
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시니  더욱 영광이옵니다." "저희들은
가난하여 그저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는 암자에 살고 있었는데 월경대사께서 서울에 가셨다
가 부인께서 천금을 주신 것을 가지고 오셔서 절을  지었나이다. 저희들이야말로 부인의 은
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작은 것을 시주하고 이렇듯 큰 인자
를 받으니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별당에 이르니 왕부인이 앞으로 거처
할 곳이었다. 월경대사는 조웅을 데리고 글을 가르치는 한편  신통한 술법도 아낌없이 전해
주었다. 조웅은 본래 영특하고 민첩한지라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열 가지를 깨우쳤다.  이에
왕부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들의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조웅의 나이 어느덧 열 다섯 살이  되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생
김새가 뛰어나고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였다. 하루는 조웅이 모친을 뵙고  아뢰었다. "소자의
나이 열 다섯 살이 되었나이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한  곳에서 보낼 것이 아니라 천하를
두루 다니며 세상 구경도 하고 서울의 일도 알고  싶사오니 허락하여 주소서." 왕부인은 듣
고 크게 놀라 거듭 말했다. "만리 타향에 와서 오직  너만을 믿고 살아왔는데 어찌 이 어미
를 두고 떠나려고 하느냐? 네가 떠나겠다면 이 어미도 같이  가겠다." 조웅은 더 이상 여쭙
지 못하고 스승인 월경대사에게 의논을 드렸다. "제가 모친께 세상에 나아가 역적의 소식도
듣고 그 간의 형편을 알고자 했더니 꾸중만 들었습니다.  부디 스승께서는 어머님의 마음을
돌리시어 제 뜻을 펴게 해주십시오." 월경대사도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이라 쾌히 응낙했다. 그리하여 며칠 뒤에 왕부인을 찾아가 조웅의 뜻을 아뢰니 부인은 벌써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사님의 말씀은 옳습니다만 옹의 나이  아직 이십도 안되었는데 어찌
홀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월경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는 어찌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빈승이 웅의 길흉을 짐작하지 못하면 절대로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왕부인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만약 대사님의  예측이 빗나가면 어찌하겠습니까?"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빈승이 웅의 일생을 짐작하는 것쯤은 감히 장담하겠습니다."  이에 부인
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조웅은 크게 기뻐하여 이튿날 아침 모친과 스승, 그리고 여러 중들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
고 산을 내려왔다. 몇 년만에  세상에 나오니 조웅은 기분이 날아갈  듯하여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리하여 천하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를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하루는 강호라는 곳
에 이르니 무척 큰 고을이어서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고  상점이 즐비했다. 한참 구경하다가
한 곳에 이르니 머리가 눈같이 흰 노인이 다 떨어진 옷에 검은 띠를 두르고 앉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았다. 특히 조웅의 눈에 띈 것은 백발노인의 앞에 놓인 장검이었다. 이
장검은 보기에는 웅장하여 저절로 욕심이 생겼으나  수중에 돈이 없으니 멀리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칼을 사려고 해도  백발노인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자 백발 노인은 장검을 들고 가버렸다. 조웅은 객점으로 돌아와 잠
을 청했으나 백발노인의 칼이 머리를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조웅은 아침
식사도 잊은 채 백발노인이 앉았던 곳으로 달려갔다. 백발노인은 벌써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칼 이외에도 벽에 글귀를 써 붙였는데 살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화산도사의
한쪽 소매가 무거우니 행색이 칼 파는 노인 같다. 사람마다 칼 값을 물으니 노인이  이르되,
내 기다리는 자 있도다. 앞으로 만 사람이 와도 팔기를  원치 않노라. 아, 조웅의 소식을 누
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기다리는 사람은 어이해서 오지 않는고.> 조웅은 글을 다 읽자 크게
놀라 백발노인에게 절했다. 백발노인은 한참 살피더니 조웅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대 이름
이 조웅인가?" 조웅은 공손히 대답했다.  "제가 바로 조웅이옵니다. 어르신네께서는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시는지요?" 백발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야 자연히 알고 있지. 하
늘이 보검을 주시었으므로 임자를 찾아내고 온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에 큰 별
이 강호에 비쳤기에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 어제 그 별이  더욱 비치므로 자네가 나타날 줄
알고 글을 써서 알렸다." 하면서 보검을 주었다. 조웅은 보검을 공손히 받아  살펴보니 길이
가 석 자요, 그 가운데는 금빛 글자로 <조웅검>이라고 뚜렷이 씌어져 있었다.  조웅은 머리
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귀한 보검을 주시니 이 은혜를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보검은 그대의 것이다. 나는 다만 전해 주었을 뿐이니 어찌  은혜라 할 수 있겠는가?" 백발
노인은 말하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대의 앞길은 창창하니 부디 큰 공을 세우라."
조웅이 무척 섭섭해 하니 백발노인은 다시 말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칠백 리를 가면 관산
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 산중에 천명도사라는 분이 계시다. 네 정성이 지극하면 만날 수가
있으니 어서 여기를 떠나거라."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조웅은 백발노인이 가르쳐 준대로 남쪽으로 떠나 며칠만에 관산에 도착했다. 산중으로 들
어가니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밑에 아담한 초가집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맑은 연못이
있어 연꽃이 만발하고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조웅이  들어가 사람을 찾으니 흰
수염을 가슴까지 드리운 신선 차림의  천명도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맞이했다. 조웅이
엎드려 절하고 뵈오니 천명도사가 크게 기뻐하며 이르기를, "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하
늘의 뜻을 따라 내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니 힘써 배우라." 하거늘,  조웅이 제자의
예를 베풀고 그날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먼저 육도삼략을  익힌 다음 천문 지리를
담은 천문도를 배우니 조웅은 눈앞이 트이는 듯하여 침식을  잊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루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쯤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벼락치는 소리가 산
중의 고요를 깨뜨렸다. 조웅이 놀라 천명도사에게 까닭을  물었다. "스승님, 이게 무슨 변입
니까?" 천명도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산중에는 한 마리의 천마가 있는데 어찌나
날쌔고 용맹한지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구나. 너는 나가서  이 천마를 얻도록 하여
라." 조웅이 크게 기뻐하여 나가보니 과연 한 마리의 천마로 전신의 털이  불꽃처럼 붉었다.
그리고 절벽 사이를 비호처럼 뛰어다니는데 바람 소리가 윙윙  날 지경이었다. 조웅이 이를
보고 크게 외쳤다. "네 어찌 임자를 모르고 날뛰느냐?" 그러자 적토마는 조웅을 뒤돌아보더
니 반가운 듯이 달려와 울어댔다. 조웅은 말의 목을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조웅을 뒤따라
나와 지켜보고 있는 천명도사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저를 위해 미리 말까지 마련해 주
셨군요?" "하하하... 이 천마는 네가 앞으로  행동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늘이 낸
물건은 임자가 있는 법이니 너는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느니라." 천명도사는 가볍게 웃어넘
기며 더욱 힘을 다해 신통한 술법을 가르치니 조웅의 무술은 날로 눈부시게 뛰어났다. 그러
던 어느 날 조웅이 스승에게 나아가 여쭈었다. "어머님을  객지에 두옵고 오랫동안 뵙지 못
했으니 잠깐 찾아 뵈옵고 오겠습니다." 천명도사는 허락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말했다. 조웅
이 하직하고 적토마에 올라 한 번 채찍질하고 바람같이 달려갔다. 어느 새 칠백 리 밖의 강
호에 이르러 한 객점에 들어가  쉬었다. 이 객점은 위나라 장진사의  집인데 진사는 일찍이
죽고 그 부인이 홀로 딸 하나만을 데리고 사는 집이었다.  그 진사의 딸이 인물도 아름답고
학문에도 뛰어나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해서 그 모친은 딸에 어울리는 훌륭한 신랑을 얻
고자 객점을 차리고 오가는 길손을 청하여 은근히 인물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이날 조웅이
들어가니 부인이 계집종에게 어떤 손님이냐 물었다. "마님, 어린 나그네이옵니다." 계집종은
간단히 대답했다. 부인은 크게 실망하여 딸의 나이가 벌써  열 여섯인데 신랑감이 나타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안타까와했다. 조웅은 저녁을 먹고 뜰에  나가 밝은 달을 감상하
고 있었다. 이때 안채로부터 꾀꼬리같이 아름답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초산의 나무
를 베어 객실을 지은 뜻은 인걸을 보려한 것인데, 영웅은 아니 오고 거지들만 오는구나.  오
동나무 베어 거문고를 만든 뜻은 원앙새를 보려 한 것인데 까마귀만 지저귀는구나.  아이야,
술잔에 술 부어라. 술로써 근심이나 풀자꾸나.> 조웅은  자기도 모르게 노랫소리에 취해 정
신이 황홀해졌다. 이에 행장을 풀어 퉁소를 꺼내어 화답하니 그 소리가 그지없이 맑았다. 부
인과 딸이 내당에서 이 퉁소  소리를 듣고 매우 놀랐다. 이어  우렁찬 노랫소리가 들려오니
그 가사는 이러했다. <십 년을 공부하여 천문도를 배운  뜻은 달나라의 항아 - 달 속에 있
다는 선녀 -를 보렸더니, 은하수에 오작교가 없어 오르기 어렵구나. 푸른 대나무를 베어 퉁
소를 만든 뜻은 그리운 님을 보려 한 것인데, 그 누가 이  뜻을 알리오. 아서라, 아는 이 없
으니 나그네의 근심이나 위로할까 하노라.> 부인과 딸이 듣고 마음이 황홀하여 중문으로 나
와 살며시 엿보니 나그네의 얼굴이 비범하고 풍채가 훌륭한 것이 눈이 번쩍 뜨였다.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딸을 보고 말했다. "공자 같은 성인이 나시매 기린이 나고, 아름다운 딸이 나
매 영웅이 나는도다." 하니, 장낭자가 부끄러워 별당에  들어가 숨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
르게 깜빡 졸았는데 꿈속에 부친이 나와 엄숙히 이르기를,  "너의 평생 좋은 짝을 데려왔으
니 오늘밤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도록  하라. 집없는 나그네이니 한 번  가면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시며 빨리 나가라고 성화같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장낭자가 일어날 때 갑자기 하
늘에서 일곱 개의 별을 입에 물은 황룡이 내려와 치마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크
게 놀라 깨어보니 일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기이한  꿈이었다. 이때 조웅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져 중문을 열고 별당까지  이르렀다. 장낭자가 이를 보고 놀라  이불 속에 몸을
숨기니 조웅은 부드럽게 말했다. "낭자께선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길가던  나그네인데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왔소이다." 장낭자가 황망히  대단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인데 어찌 예절을 돌보지 않고 아녀자의 방에 들어오십니까? 어서 나가십시오."
그러나 조웅은 물러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낭자께서는 너무 꾸짖
지 마십시오. 나도 양반의 후예이니 어찌 예절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지금의 처지가 부모의
승낙을 받을 수가 없으니 나중에 아뢰기로 하고 백년  가약을 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장
낭자는 부끄러움에 고개만 푹 떨구었다. 이에 조웅이 낭자의 손을 이끌고 백년 가약을 맺으
니 어찌 천생 배필이 아니겠는가. 은근한 정으로 밤을 지냈는데  날이 샐 무렵에 닭이 울자
조웅이 떠나가려고 했다. 장낭자가 하루만 더 머물러 모친을 뵙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붙잡
았으나, 조웅은 자기도 역시 모친을 천 리 밖에 두고 떠난  지 삼 년이나 되기 때문에 하루
도 지체할 수 없는 형편임을 알려 주었다. 장낭자는 할 수 없이, "그렇다면 무슨 신물이라도
남겨 주소서." 하니, 조웅이 옳게 여기며 행장에서 부채를 꺼내 시 한 구절을 지어주면서 이
다음에 만나는 신표로 삼도록 했다. 장낭자가 받아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시귀였다. <퉁
소로 미인의 거문고에 화답하고, 쓸쓸한 방안으로 나를 모르게 들어갔도다. 오늘밤 어린  신
랑은 누구인가? 소년 영웅 조웅이 분명 하도다. 새벽바람에 눈물로 하직하니, 길이 아득하여
언제 온다 약속을 못하겠구나.> 조웅이 하직하고 말을 재촉하니 장낭자는 문에 기대어 눈물
만 흘렸다. 이 때 장낭자의 어머니 위부인이 한 꿈을  꾸었는데 황룡이 난데없이 나타나 딸
을 업고 구름 속으로 올라가므로 발을 구르며 딸을 부르다가 깨어보니 참으로 기이한 꿈이
었다. 창문을 여니 날이 밝았으므로 별당으로 나가보니 딸은 아직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얘
야, 날이 밝았는데 아직도  누워 있느냐?" 모친이  말하자 장낭자는 어색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위부인이 딸의 모습을  살피다가 근심스럽게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정신이 없는 듯하구나. 어디가 아프냐?" "아니옵니다.  밤에 달빛을 구경하
다가 늦게 잤으므로 조금 피로할 따름이옵니다." 이 때  계집종이 와서 바깥채에 머무른 손
님이 벌써 떠나갔음을 알렸다. 위부인은 크게 놀라 급히 종들을 풀어 나그네의 종적을 찾았
으나 천리마를 타고 날 듯이 간 조웅이 눈에 띌 리가 없었다. "여러 해를 벼른 끝에 훌륭한
신랑감을 만났다가 곧 잃었으니 이런 변이 있나!" 위부인이 발을  구르며 애석해 하자 장낭
자가 곁에서 위로했다. "어머니는 너무 근심  마옵소서. 세상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후일을 기다려 봄이 좋을 듯합니다."  한편 -. 왕부인은 아들을 보낸 다음  밤낮으로
근심하며 세월을 보내는데 하루는 월경대사가 와서 위로했다. "부인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
오. 웅이는 어진 스승을 만나고 또 훌륭한 보물을 많이 얻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왕부인은 의아하여 급히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떻게 아십니까?" "빈승이 어젯밤에 꿈을 꾸
었습니다. 꿈에 웅이 나타나 말하기를 좋은 스승과 기이한 보검, 그리고 하루에 능히 천  리
를 달릴 수 있는 천마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웅이가  이리로 오고 있으니 만나 보시면
모든 것을 아실 것입니다."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언제 당도할 것인가를 물었다.  월경 대사
는 잠시 손을 짚어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밖에 있으니 조금  후면 도착할 것입니다."
하고 부인을 모셔 절 문밖에 나가 기다렸다. 과연 잠시 후에 불꽃같이 붉은 털을 가진 천리
마 위에 한 소년이 타고 나는 듯이 달려오는데 그것이  바로 조웅이었다. 조웅이 말에서 내
려 모친게 엎드려 절하니 부인은 아들을 붙들고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안으로 들어가 조웅
이 그 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니 모친과 스승은 하늘이 도와주셨다고 크게 기뻐하였다. 다시
모친과 만나 조웅은 그 동안 못다한 효도를 하느라고 세월  가는 줄 몰랐다. 하루는 부인이
아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제 네가 이렇게 컸다만 머나먼  타향에 친척도 없으니 너의 짝을
누가 정해줄 것이냐? 내가 생전에 네 짝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구나." 하며 눈물을 하
염없이 흘렸다. 이에 조웅이 모친을 위로했다. "어머님께서는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천지 만
물이 모두 짝이 있는데 사람이  설마 짝이 없겠습니까?" 하고는, 문득  땅에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어머님, 이 불효 자식을 꾸짖어 주십시오." 왕부인이 크게 놀라 물었다. "도대체 그
게 무슨 말이냐? 네가 대체  무슨 죄를 졌다는 것이냐?"  "어머님께 불효한 일이 있나이다.
소자가 스승님을 떠나오다가 강호에서 장낭자와 백년 가약을  맺었나이다." 하고는 일의 전
후를 소상히 아뢰었다. 왕부인이 듣고 크게 기꺼워하였다. "네 말을 들으니 참으로 천생배필
이구나. 그것 역시 하늘이 지시한 것이로다." 월경대사도  듣고 같이 기뻐했다. 조웅이 며칠
후에 모친께 아뢰었다. "스승님과 기한을  정하고 왔사오니 이제 어머님  곁을 떠나야 할까
합니다." 모친이 섭섭한 마음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네 말이  당연하다. 그러나 네 소식이
궁금하면 어디 가서 알아보면 될지 모르겠구나." 월경대사가 옆에서 대신 말했다. "부인께서
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소서. 웅의 거처는 빈승이 아나이다." 부인이 월경대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어서 떠나라고 도리어 재촉했다. 조웅이 하직하고 여러 날 만에 관산에
이르니 천명도사께서 웃으며 맞이했다. "네가 기약한 날짜를 잊지 않았으니  기특하도다. 어
머님께서는 편안하시더냐?" 조웅은 엎드려 아뢰었다. "어머님은 편안하시옵니다. 스승님께서
도 그 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천명도사는 빙그레  웃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거동
을 보아하니 분명 배필을 정한 듯하구나." 조웅이 땅에 엎드려 사죄했다. "스승님께 큰 죄를
지었나이다." "하하하... 하늘이 정한 것이니 너는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 천명도사는 조
웅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는 그  동안 쉬었던 공부를 다시 계속했다.  조웅의 뛰어난 재질은
육도 삼략과 천문 지리, 그리고 신기한 술법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스승은 매우 흐뭇
해 했다. 하루는 천명도사가 밝은 달빛에 조웅을 데리고 천문을 살피다가 갑자기 놀란 음성
으로 말했다. "웅아, 네 앞길에 큰 근심이 생겼구나." 조웅이  놀라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소서." "너의 처가집에 죽음의 변이 닥쳤으니  빨리 가 보아라." 천
명도사는 엄숙히 말하고는 환약 세 알을 내주었다. 조웅은 약을 받아 가지고 적토마를 몰아
나는 듯이 강호로 달려갔다. 이 때에 장낭자는 조웅을 보내고  소식이 없자 마침내 병이 들
어 눕고 말았다. 이에 어머니 위부인이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하였으나 치료되기는커녕 병만
더 위중해졌다. 그러던 차에 조웅이 장진사 댁에 도착하니  슬피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
고 있었다. 조웅이 계집종을 불러 물으니 울면서 대답하기를, "저의 아가씨의 병이 위중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조웅이 급히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 주인께
아뢰어라. 내게 약이 있으니 병세를 자세히 알려주면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계집종이
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여쭈니 위부인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때
라 부리나케 병세를 적어 보냈다. 그러자 조웅이 잠시 생각하더니 환약을 꺼내 주며 말했다.
"이 환약을 환자에게 먹이고 따뜻한 음식을 먹이도록  하라." 과연 시키는대로 환약을 먹이
니 장낭자는 언제 병이 들었냐는 듯이 일어났다. 위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밖으로 나와 조웅
의 손을 잡고 사례했다. "공자는 나의 딸을 살려냈으니 우리 집의 은인입니다. 부디 우리 딸
을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웅이  듣고 겸사했다. "떠돌아다니는 몸에게  이렇듯 중한
말씀을 하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분부가 있어야 하니 돌아가서 소식
을 알리겠습니다." 하고는, 작별을 고하자 위부인은 부디 소식을 빨리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
하는 것이었다. 조웅이 관산으로 돌아와 스승께 절하며 감사드렸다. 하루는 천명도사가 조웅
을 데리고 큰 바위에 올라가 천기를 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웅이야, 저것이 보이느냐?
별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천하가 시끄럽게 되었구나.  지금 서쪽 오랑캐가 크게
세력을 떨쳐 대륙을 취하려고 하니 너는 먼저 위나라를  돕고 그 다음에 대송을 회복하라."
조웅이 엎드려 아뢰었다. "어리석은 제자가 어찌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 말
아. 네 재주면 능히 나라를 구할  수 있도다." 스승이 엄숙히 말하니 조웅이는  즉시 행장을
차리고 하직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 제자는 다녀오겠습니다." 천명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이별은 꽤 오래 걸릴 것이다.  부디 몸을 자중하라." 조웅은 스승과 작별하고
나서 즉시 모친에게로 말을 몰았다. 인사를 드리고 나서 장낭자의 병을 고쳐준 일을 여쭈니
모친이 크게 기꺼워하셨다. 조웅이 몸을 바로  하고 모친께 아뢰었다. "지금 서쪽  오랑캐가
세력을 떨쳐 위국을 침범하려고 하니  소자가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나가 막을까 합니다."
왕부인이 크게 놀라 극구 만류했다. "네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싸움터에 나가겠다는 거냐?
부질없는 생각은 먹지 말아라."  "스승님의 명령인데 소자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조웅이 꿋꿋이 말하니 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허락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이 어
미도 막을 수가 없구나. 위왕은 네  부친과 전부터 친교가 있는 분으로 이름은  신광이시다.
먼저 위왕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서 이 어미를 다시 보도록 하여라." 조웅이 모친에
게 작별을 하고도 천리마를 몰아 전쟁터로 향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가도 인가가 하나도 없
어 하는 수 없이 컴컴한 산길로 들어왔다. 얼마쯤 가다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므로 발길
을 재촉하니 초가집 두 채가 나타났다.  문을 두드리니 한 늙은이가 나와 맞이했다.  조웅이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쉬기를 청하자 노인은 쾌히 응낙했다.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병서를
읽고 있는데 자정이 되어서 문득 선녀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살며시 들어와 절을 했다. "너
는 어떤 여자이길래 깊은 밤중에 남자의 거처를 찾아오느냐?" 그러자 절세 미녀가 맑은  음
성으로 대답했다. "저는 이 마을에 사는 여인으로 공자의  행차가 쓸쓸한 것을 보고 위로해
드리고자 왔나이다." 조웅이 듣고 틀림없이 귀신이라 여기고 축귀문 -  귀신을 쫓는 주문 -
을 외우니 여인이 울면서 방을 나갔다. 이에 조웅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병서에 열중했다.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며 돌멩이가 사방으로 나는 것이 천지가 뒤집히는 듯했다. 게다
가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고 하므로 조웅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키가 구  척에다가 몸에 갑옷을 걸치고 장검을 찬 한
장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사람이면 한 번 보고  까무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형상이었
으나 조웅은 도리거 두 눈을 부릅뜨고 보검을 빼어  책상을 두드리며 호통쳤다. "너는 어떤
귀신이길래 감히 대장부를 능멸하는가!" 그러자 그 장수가 땅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
리는 것이 아닌가. 조웅이 이상하여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물었다. "깊은 밤중에  이렇게 나
타난 것은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한데 무슨  곡절이오?" 장수가 눈물을 거두고 대답했다. "저
는 관서땅에서 약간 이름을 날린 장수인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어
찌 원한이 없겠습니까? 그러다가 오늘 뜻밖에 훌륭한 영웅을 만났으니 제 원수를 갚을 때가
온 듯하여 감히 시험해 보았습니다. 조금 전의 그 여인은 제가 평생  사랑하던 아내입니다."
하며, 문을 열고 부르자 그 미인이 갑옷과 큰 칼을 들고 들어와 절을 했다. 조웅이  급히 답
례하자 그 장수가 말을 이었다. "제 아내가 영웅께 드리는 갑옷과 칼은 부디 성공하시어 저
의 원한을 풀어주십사 하는 뜻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승리하시고  돌아오는 길에 갑옷과 칼
을 무덤 앞에 묻어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와 미인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노인을 불러 물으니 한 무덤을 가르쳐 주었다. 마을 뒤로 가보니 두 개의 무덤이 있
는데 한 무덤 앞에는 <관서장군 활달의 묘>라는 비석이 서  있고, 그 보다 작은 무덤 앞에
는 <관서 장군 월랑의 묘>라고  씌인 비석이 서 있었다. 조웅이  절하고 황금 갑옷과 칼을
가지고 위국으로 떠나니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친 듯했다.
 며칠 후에 위나라에 당도해서 싸움터로  가서 보니 넓은 벌판에 양쪽이  진을 쳤다. 서쪽
오랑캐 서번국 군사는 산을 등지고 진을 쳤고, 위나라 군사들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고 있
었다. 이때 서번은 세력이 강해  용맹한 장수가 구름처럼 많고 군사가  강해 위나라가 맞서
싸우기를 한 달이 되어도 매번 지기만 했다. 이 날도  서로 맞붙어 싸우는데 서번국의 장수
가 칼을 번뜩일 때마다 위국 장수는 맥없이 죽거나  도망치기에 바빴다. 번장이 의기양양하
여 크게 외쳤다. "위국 장수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그러자 위국 병사는 얼굴색이 변
해 벌벌 떨었다. 위왕이 더 버틸 수가 없어 항복하는 글을 써서 후군장에게 주어 보냈다. 후
군장이 번왕에게 나가 항서를 바치니 번왕은 도리어 크게 화를 냈다. "너의 왕이 앉아서 항
서만 보내니 어찌 이토록 무례하냐?  우선 네 머리를 베어 본보기로  삼으리라." 호통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군장의 머리가 벌써 말 아래로 굴렀다. 이어  번국 중에서 가장 용맹한 장
수가 머리를 칼로 꿰어들고 달려드는 위국 병사는 사시나무 떨듯했다. "마지막이로다!" 위왕
은 이를 보자 비통히 부르짖으며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다. 이때  조웅이 이 모양을 보고 크
게 분노하여 갑옷을 입고 보검을 빼어든 채 천리마를 타고 나는 듯이 달려가며 우레같이 호
통쳤다. "번장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양진의 군사들이 어리둥절하여 보고 있는 사이
조웅은 번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또 웬놈이냐?" 번장은 우습다는 듯이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조웅은 머리를 낮추어 쉽게 적의 칼을 피하더니  보검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러자
부로가 일 합도 겨루지 못하고 번장의 목이 땅위로 굴렀다. 조웅은 적장의 목을 칼 끝에 꿰
어들고 나는 듯이 위진으로 돌아왔다. 위왕은 이것이 혹시 꿈이나 아닐까 해서 조웅이 말에
서 내려 엎드리는 것도 보지 못했다. 조웅은 엎드린 채 죄를 빌었다. "제가 외인으로 당돌하
게 나섰으니 죄를 내리소서." 위왕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치하했다.
"과인이 어리석은 탓으로 장군을 미리 맞아들이지 못했구려.  과인의 목숨이 오늘로 긑나게
된 것을 장군이 살려 주었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소. 그런데  장군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오?" 조웅은 위왕이 부친과 친함을 아는지라 자기의 내력과 지난 일을 숨김없이 아뢰었
다. 그러자 위왕이 크게 놀라며 조웅의  손을 붙들고 말하였다. "장군의 부친은 곧  내 어릴
적의 벗이다. 이제 그대를 보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이어 대성의 소식을 물었다. 조
웅은 이두병이 송나라를 멸하고 자칭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과 자신과 어머니가 역적의 손길
을 벗어나려고 망명하여 다니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위왕이 듣고 송나라 서울을 향해 절
하고 슬피 우시니 그 충성이  본래 크고 아름다웠다. 조웅이 같이  눈물을 흘리다가 도리어
위로했다. "대왕께서는 고정하십시오. 아직 오랑캐를 무찌르지 못하였으니 우선 이들을 없앤
후에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한편, 장수를 잃은 번왕은 크게 놀라 주위의 신하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  장수는 누구인
가? 그 싸우는 모습을 보니 실로 범상한 인물이 아니구나."  그러자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호기 있게 외쳤다. "그 장수의 머리는 저의 칼 끝에 달렸으니 대왕께서는 염려 마
옵소서." 하고는 곧 장창을 비껴들고 진 앞으로 나와 우레같이 외쳤다. 그러나 몇 합 지나지
않아 조웅의 보검이 한 번  번쩍하더니 번장의 머리가 말 아래로  떨어졌다. 조웅은 기세를
틈타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번왕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만일 항거하면 머리를  베어 본보
기로 삼으리라." 번진의 장졸들은 조웅의 무서운 기세에 눌러 멀찍이 물러났다. 조웅이 그대
로 쳐들어가려 하자 위왕이 염려하며 북을 쳐서 불렀다. 또 한 명의 장수를 잃자 번왕은 사
색이 되었다. 그러자 좌장군 이황이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안심하소서. 내일은
소장이 나가 적장을 사로잡겠나이다." 이황이 용맹을 뽑내니 번왕은 겨우 마음을 놓았다. 한
편 위왕은 조웅으로 대원수를 삼고 대장기를 고쳐 금빛 글자로 <대국충신 위국  대원수>라
크게 쓰게 했다. 이튿날 원수가 대장기를 진 앞에 세우고 천리마에 올라 외쳤다. "번왕은 빨
리 나와 항복하라." 그러자 적진에서 한  장수가 크게 대답하고 달려 나왔다. 이  때 갑자기
진지에 안개가 자욱하여 사물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 틈을 노려 원수 뒤에서 또 한 적장
이 달려 들었다. 드디어 세 장수가 얽혀 싸우니 수십 합을 겨루어도 승부를 낼 수가 없었다.
"받아랏!" 이 순간, 대원수 조웅의 칼이 번쩍하더니 한  장수의 목이 떨어졌다. 양편 군사가
놀라 바라보니 바로 번장 이황의 머리였다. 위진에서 이를 보자 기세가 올라 함성이 떠나갈
듯했다. 이어 원수의 맑은 호통소리가 울리며 또 하나의 머리가 떨어지는데 역시 번장의 것
이었다. 원수가 크게 위세를 떨쳐 보검을 높이 들고 번진으로 짓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니 삽
시간에 송장이 산같이 쌓이고 서로 밟혀 죽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번진의 장졸들
은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번왕 또한 옷을 벗어 팽개치고 도망쳐 버렸다. 원수가
남은 장수들을 묶어 위진으로 돌아오니 위왕이 몸소 진문까지 나아가 원수를 맞이하여 무수
히 치하했다. 원수가 땅에 엎드려 사양했다. "모든  것이 다 대왕의 넓으신 덕이옵니다." 이
어 군사들에게 명해 적의 군량과 무기를 거두어 오도록 했다. 그리고 번장 열 넷을 묶어 들
여 준절히 꾸짖었다. "오늘 너희들을 모두 죽일 것이지만  특별히 살려 보내니 너희 왕에게
가서 헛된 생각을 먹지 말라고 하라." 하고는 모두  놓아 보내니 패장들은 무한히 감사하며
돌아갔다. 위왕은 크게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어 승전을 축하하고  이번 싸움에 죽은 혼령을
위로했다. 잔치가 끝난 후 원수는 위왕을 모시고 돌아오는데 위엄과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때 도망쳤던 번왕은 가까스로 군대를 수습하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위군이 번양
땅에 와서 잠시 쉬니 몰래 따라온 번왕은 군사를 매복하여 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천문 지리에 능통한 원수를 어찌  속아 넘기랴. 원수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다가 습격해
오는 번왕과 그 장졸들을 깡그리 잡으니 위왕이 더욱 신임했다. 원수가 사로잡힌 번왕을 잡
아다가 죽이려 하자 번왕은 땅에 엎드려 애걸했다. "이두병이 대국을 빼앗아 천자가 되었으
니 천하가 모두 미워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두병을 없애고  대송을 회복하고자 은근히 노리
다가 잘못하여 대왕께 죄를 졌습니다. 대왕과 원수께서 저를 살려 주시면 군사를 일으켜 대
송을 회복하는데 힘쓰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위왕이 이를 듣고 그럴 듯하여 항서
를 받고 엄히 명령했다. "오늘 너를 죽일 것이지마는 특별히 놓아 보낸다.  돌아가서도 위국
을 배반하지 말라." 이에 번왕은 무수히 절하고 물러갔다. 위왕이 환궁하니 서울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며 반겼다. 환궁한지 사흘 만에 큰 잔치를 베풀고 상벌을 고르게 하니 모
두들 위랑과 원수의 덕을 칭송했다. 하루는 위왕이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원수에게
말했다. "과인의 나이가 늙어 정신이  차츰 흐려지니 이제 위국의  옥새를 원수에 전하고자
하니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원수가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소신은 여기에 있
을 처지가 못되옵니다. 대송이 역적에게 넘어갔으니 신이 어찌 밤잠을 편히 잘 수가 있겠습
니까?" 이에 간곡하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제가 재주가 없으나  하늘이 도우시고 대왕의
높은 덕으로 다행히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객지에  두고 떠났으니 마음이 불
안합니다. 이제 송태자의 귀양지로 가서 태자를 모시고 어머니를 뵈오러 떠나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위왕이 크게 놀라 함께 떠나겠다고 고집하였다. 이에 원수와 신하들이 일제히 간
했다. "어찌 한시라도 나라를 비우시겠다고  하십니까?" 위왕은 할 수 없이  탄식을 토했다.
"아, 내가 원수와 함께 갈 수 없는 형편이로다. 생전에 태자를 뵈오면 저승에 가서도 문제께
군신의 예로 뵈올 낯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찌 신하라 하겠는가. 태자께서는 지금 어떻
게 지내시는지..." 말 끝을  맺지 못하고 비오듯이  눈물을 흘리지 여러 신하들이  위로했다.
"진정하시옵소서. 언젠가는 대국을 회복할 날이 올 것이옵니다." 왕이 가까스로 슬픔을 거두
고 원수에게 거듭 부탁을 하였다. "태자를 구하거든 이리  모시고 와 대송을 회복할 의논을
하는 것이 좋으리다. 원수는 부디 내 뜻을 저 버리지 말고 불충의 죄를 면하게  하라." 그런
다음 날랜 군사 일천 명과 용맹한 장수 수십 명을  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원수는 위왕과
헤어져 바로 송태자의 귀양지를 향해 행군했다.
 한편, 장진사 댁에서는 조웅의 소식이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며 지냈다. 이때에  강호자사
- 지금의 도지사 - 가 아내를 잃고 다시  혼인을 하려고 사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장낭자의
용모와 덕행이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유모를 보냈다.  유모가 와서 위부인께 말했
다. "소문을 듣자하니 귀댁이 낭자가  용모와 행실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하여 왔으니 만나
보게 해 주십시오." 위부인이 듣고 거듭 사양했으나 강호자사의 유모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위부인이 딸을 불러  만나게 하니 유모가 그 아름다움에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유모의 보고를 들은 강호자사는 욕심이 크게  일어 장낭자를 기어코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
다. 위부인과 장낭자가 거듭 사절해도 강호자사의 위압적인 권력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마침
내 강호자사는 혼례날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여 준비하라고 통지했다. 위부인과 장낭자는 서
로 붙들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지방을 다스리는 자사의 명
을 거역했다가는 그대로 목숨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강제로 혼례식을 올리게
되는 날 저녁, 장낭자는 욕을 보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자기 방에서 슬
피 울고 있었다. 이때에 문득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를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
랐다. <앞날에 변이 생길테니 그때 가서 뜯어보아라.> 장낭자는 생각이 떠오르자 급히 유서
를 꺼내 보았다. 그 글에 적혀 있기를, <강호자사가 힘으로  너를 핍박할 테니 그때는 서강
으로 가거라. 거기 가면 배가 있을 것이로다. 그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면 반드시 너를 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장낭자는 부친이  이렇듯 앞날을 미리 내다보시는 힘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었다. 한시가 급하니  어찌 더 이상 우물쭈물하겠는
가. 장낭자는 급히 행장을 꾸며 강호자사의 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집을 간신히 빠
져 나왔다. 서강에 이르니 과연 배 한 척이 있기에 많은 돈을 주고 사서 남쪽으로 흘러갔다.
수백 리를 가서 물가에 닿자 배를 내려 산 속으로 들어가니 흰 구름이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냇물이 졸졸 흘러 마치 선경 같았다. 차츰 들어가니 목탁 소리가 은근히 들려왔다. 이에  절
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가니 깨끗한 법당이 나타났다. 중들이 낯선 처녀가 홀로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여시주는 뉘시온데 이렇듯  깊은 산중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장낭자는 애처롭게 대답했다. "저는 위국 강호땅에 살았는데 집안에 변이 일어나 의지할 곳
없이 떠돌다가 이곳까지 왔나이다." 이곳은 바로 조웅의 모친 왕부인이 계신 절이었다. 이에
중들이 장낭자를 왕부인과 월경대사가 계신 곳으로 데려갔다. 왕부인이 보니 세상에서 보기
힘든 미인이라 평범한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은근히 물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험한 고생
을 겪는구나. 위국땅에 산다고 하니 이번 싸움의  승패를 아는가?" 장낭자가 절하며 아뢰었
다. "오다가 듣자오니 서번 오랑캐가 크게 패하여 돌아갔다 하옵니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조웅이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라 믿고 근심을 덜었다. 이어  장낭자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
가 물었다. "강호에 살았다면 혹시 장진사 댁의  딸을 아는가?" 장낭자가 크게 의아하여 도
리어 물었다. "어떻게 장처녀를 아십니까?" 그러자 왕부인은 아들 조웅이 그간에 겪었던 일
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장낭자가 듣고 눈물을 흘리며 행장을 끌러 부채를 내놓았다. "소녀가
공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즉시 이별하게 되었는데 그때  공자께서 주고 가신 신물이옵니다."
왕부인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장낭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가 정말 장처녀라면 나의
며느리이니라." 하면서, 부채를 들어 유심히 살피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부
채를 내 아들 웅의 부채가 틀림없구나. 그 아이가 전에  산을 내려가서 장진사 댁의 사위가
되었다고 하면서 네 말을 여러번 했느니라. 내 생전에 너를 보지 못하고 죽을까 염려했더니
하늘이 도우사 오늘 이렇게 만났구나." 장낭자도 그대서야 모든  일을 알고 즉시 일어나 두
번 절하며 아뢰었다. "객지에 모친을  모셨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이곳에  계실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왕부인은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나는  팔자가 기박하여 이곳에
와서 머물고 있지만 너는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느냐?" 이에 장낭자는 조웅을 처음  만
나던 일과 도중에 병을 고쳐준 일을 여쭈고 도 도망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하니 부인과  여
러 중들이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이날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로서  예를 차려 왕부인을 섬
기기를 지성으로 하니 칭송이 자자했다.
 한편 조원수는 태자의 귀양지로 향하면서 각 고을로 미리 연락을 하니 놀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들르는 곳마다 자사와 현령들이 줄지어  서서 마중했다. 관서 땅에 이르자 즉시  황
장군의 무덤을 깨끗이 소제하고 제물을 마련하여 친히 제사를 지내니 깃발과 창칼이 줄지어
섰다. 제사가 끝나자 갑옷과 칼을 무덤에 묻으려 하니 돌로  만든 함이 무덤 속에서 솟구쳤
다. 원수가 친히 갑옷과 칼을 묻고  승전고를 울리라 명령하자 북과 피리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자 원수기 아래에 난데없이 신장 하나가 나타나 허리를 굽혀  술 서너 잔을 마셨다. 그
리곤 원수를 향해 절을 하더니 홀연히 없어졌다. 이튿날  떠나가면서 원수는 마을 백성들을
불러 단단히 일렀다. "황장군의 무덤을 착실히 가꾸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라." 누구의 명
령인데 거역하겠는가. 고을 백성들은 명을 받들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했다. 다시 길을 떠나
여러 날 만에 스승이 계신 관산에  이르렀다. 군사들을 산 밑에 쉬게 하고  원수 혼자서 산
중에서 들어가니 주위 풍경은 여전하되 초가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히 여겨 두루 살펴
보니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것이  빈 지가 오래였다. 원수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우럴 크게 탄식하는데 벽에 전에 보지 못하던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화산도사
는 어느 때 돌아올 것인가. 아침에 금강호요, 저녁에  관산이라. 그림자처럼 가는 곳을 모르
니 다시 만날 날이 그 어느 때일꼬.> 조웅은 글귀를 다 보자 스승의 인자한 모습이 더욱 생
각나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윽고  관산에서 내려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강호로 떠나면서
장진사 댁에 숙소를 정하리라고 사람을 먼저 보냈다. 이때에  강호자사는 원수의 통지를 받
고 매우 놀래어 장진사 댁의 일을 숨기기로 흉계를 꾸몄다. 강호자사의 밀명을 받은 하인이
달려와 원수에게 아뢰었다. "장진사 댁에 살인이 있어 아가씨는 도망하였고 부인은 옥에 갇
혔으니 그곳에 머무르기가 불편하실 것이옵니다.  부디 객사에서 쉬시옵소서." 원수는  크게
놀라 객사에게 자리잡는 즉시 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불러들이라 분부했다. 이에 강호의
온 고을이 술렁이게 되었다. 죄인을 모두 불러들이니 거의 백여 명인데 원수가 하나하나 심
문하자 모두들 원통하다는 사람뿐이었다. 그 중에서 왕부인이 쇠약한  몸으로 큰 칼을 쓰고
앉았는데 그 처참한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원수가  가까이 불러 죄목을 물으니 말을
못하고 품속에서 원통한 사연을 적은 글을 꺼내어 올렸다. 원수가  이를 받아 보고 그만 소
스라치게 놀랐다. 급히 분부하여 칼을 풀어 위부인을 댁으로  모시라 하고 나머지 죄인들도
모두 석방하도록 했다. 그러자 백여 명의 억울한 죄인들은 허리를 굽혀 사례하고 춤추며 나
갔다. "강호자사를 묶어 들여라." 원수가 추상같이 호령하니 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가서 강
호자사를 꽁꽁 묶어 대령했다. 이에 원수가 낱낱이 죄목을 들어 꾸짖었다. "네가  국록을 받
는 신하로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죄를 지었으니 살려둘 수 없다." 하고 호령하고 병
사를 시켜 목을 베게 했다. 이를 본  고을 백성들은 십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  기뻐했다.
원수가 진사 댁에 들어가니 집이 몹시 거칠어지고 쓸쓸하여 절로 눈물이 났다. 위부인이 나
와 감격한 어조로 사의를 표했다. "원수는 누구이시옵니까?  옥석을 가려 주시고 미천한 목
숨을 살려주시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원수가  절하며 아뢰었다. "부인께서는
오랫동안 옥중에서 고생하시어 저를 몰라 보시는군요. 저는 저번에  부인 댁에 들른 조웅이
옵니다." 위부인이 그제서야 원수가 조웅임을 알아보고 손을 잡고 통곡했다.  원수가 부인을
위로하며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위부인은 약간 진정되어  그간의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딸아이는 혼례식 전날 밤에 집을  나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했다. 원수가 듣고 부인을 좋은 말로 위로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설마 죽
기야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만나볼 날이  있을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선 저와
함께 모친이 계신 강선암으로 가십시오." 이튿날 원수는 위부인의 식구를 모두 거느리고 강
선암으로 떠나는데 미리 통지하기를 <동국충신 위국대원수 겸 각도안찰어사 조웅>이라  했
다. 왕부인이 장낭자와 월경대사와 함께 이 통지를 받자 크게  기뻐하여 절 밖으로 나가 기
다렸다. 이윽고 한 소년이 황금  갑옷에 보검을 차고 적토마를 타고  들어오는데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뒤에는 수많은  장군들이 질서정연하게 따르고 있었다. 원수가  말에서
내려 모친께 절하며 뵈오니 왕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재회의 기쁨이 약간 진정되
자 왕부인이 입을 열었다. "너를  난리 속에 보내고 소식이 없으니  이 어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아라." 원수가 땅에  엎드려 서번을
무찔러 항복받고 위국을 구한 것과 대원수가 되어 오는 길에 강호에 들러 악덕 관리 강호자
사의 목을 베었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왕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웅이야, 너는 걱정하
지 말아라. 장낭자가 이리로 도망하였기에 나와 함께 있었느니라. 또한 오늘 사부인을  모셔
왔으니 이런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느냐." 하고는,  장낭자더러 나오라고 일렀다. 이윽고 장낭
자가 나와 모친을 만나니 서로 붙들고 울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원수는 두 부인과 장
낭자를 별당으로 모시고 밤이 늦도록 얘기를 나누면서 즐기었다. 이튿날 원수는 강선암에게
남은 모친과 위부인, 그리고 장낭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송태자의 귀양지로 떠났다.  며칠
후에 원수 일행은 태산부 계량도로 가는 도중에 서번국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자 여러 장수
들이 원수께 아뢰었다. "서번국은 우리 위국과는 원수지간이니 근심이 되옵니다." 원수가 듣
고 크게 꾸짖었다. "장수된 자가 어찌 그리 겁이 많은가? 두렵거든  따라오지 말라." 그러자
모든 장수들이 크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원수가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위로하였다. "그
대들은 너무 근심말라. 번국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번왕이 나를 유인하리라." 이 때 번왕은
원수가 온다는 말을 듣자 모든 장수들을 불러 의논했다.  "조웅이 온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
을꼬?"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조웅은  욕심이 많고 색을 좋아한다 하니 대접을
잘하고 예쁜 궁녀를 보내어 만호후에 봉한다고 유인하소서." 번왕이 옳게 여겨 조웅이 오기
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원수가 번국에 이르니 번왕이 사신을  보내어 천금보화를 바치며 반
겼다. 원수는 이 선물을 모두 번국의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니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번국
성내에 들어가자 진을 치고 군사들에게 휴식하기를 명했다. 이때  번왕이 친히 와서 원수를
뵙고 지난 일을 사죄하니 원수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지난 일은 각기 나라를 위함이니 어
찌 탓하겠습니까? 다시 만나뵈니 반갑습니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원수를 유혹했다. "원
수는 본래 위국 사람이 아님을 잘 압니다.  지금 우리 번국이 작아도 길이 천 리요,  군사가
백만이며 또한 땅이 기름지고 백성들이 부지런합니다. 원수를 남양후에 봉하려 하니 노여워
마시고 머물러 부귀영화를 누리십시오."  원수가 듣고 괘씸하였으나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부드럽게 대꾸했다. "저는 지금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대왕의 분부를 들을 수가 없습니
다. 널리 양해하십시오." 이에 한 신하가 나와 예쁜 궁녀를 보내 조원수를  유혹하라고 여쭈
었다. 번왕이 이 계책을 받아들여 인물과 노래가 뛰어난 월대라는 궁녀를 원수에게 보내 유
혹하게 했다. 그러나 원수가 어떤 인물인데 한낱 오랑캐 궁녀에게 빠질 것인가. 월대가 와서
온갖 교태로 유혹하자 요망하다 하여 한칼에 목을 베었다. 번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
라 모든 궁녀들을 모아놓고 조원수를 유혹할 자신이 있는  미녀를 구했다. 그러나 뭇궁녀들
이 다 도망하는 가운데 한 궁녀만이 거문고를 안고  자청하여 나섰다. "제가 원수의 마음을
돌이켜 보겠나이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원수의 진영으로 보냈다. 궁녀가 원수 앞에 나서
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는데 슬프기가  그지없었다. 궁녀가 문득 거문고를  놓고 눈물을
흘리며 원수께 아뢰기를, "저는 번국 사람이 아니고 위국  서강땅에 사는 두우성의 딸 금년
이라 하옵니다. 일직이 아비를 잃고 늙은 어미를 모시고 살다가  저번 난리 때 번국으로 잡
혀 왔나이다. 그러다가 하늘이 도우사 원수를 만났으니 바라옵건대  저를 데리고 가셔서 어
미의 소식을 알게 해주소서." 하고 통곡하며  애걸하니 원수가 심히 불쌍히 여겨  허락했다.
이튿날 원수는 번왕에게 금년을 데리고 가니  양해해 달라고 통지하고 군대를 이끌고  떠났
다. 번왕이 듣고 이를 갈며 분해했다. "수많은 재물고 궁녀까지 잃었으니 이  분함을 어찌풀
꼬." 여러 신하들이 위로하기를 조웅이 다시 이리 올 때에 사로잡아 분을 풀라고 했다.
 한편 원수는 길을 재촉하여 태산부 근처에 이르러 진영을 치고 쉬었다. 이미 고을 사람을
불러 계량도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이  울면서 말했다. "원수께 아뢰나이다. 지
금 태산부의 자사가 송태자를 죽이려고 독약을 가지고 갔사옵니다.  또한 같이 머물러 있는
예전 충신들을 모두 죽인다고 하나이다." 원수가 크게 놀라 계량도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칠
십 리라고 하므로 군사들에게 진영을 치고 엄히 지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혼자서 적토마
에 올라 계량도로 달려갔다. 때마침 밤이 깊었는데 태자가 머무는 곳으로 가니 사방에 창칼
이 번뜩이고 군사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나는 새라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수가
안의 형편을 몰래 살피니 늙은 충신들이 가득히 앉은 가운데 한 미인이 거문고를 뜯으며 노
래를 부르고 있었다. <옥도끼 금도끼 날을 갈아  월궁의 계수나무를 베는구나. 흔들리는 곳
은 어디뇨? 계량도로다. 모시도다, 모시도다, 우리 황태자 모시도다. 눈 속의 매화가지에  봄
바람이 불어 꽃이 피었네.모였도다. 모였도다, 송나라 충신들이 모였도다. 묻노라 이 밤이 몇
시더냐? 쓸쓸한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리니 늙은 충신 부여잡고 눈물로 하직하니 돌아올 수
없는 것이로고. 바라노니 푸른 산의  매화나무 앞 무덤 아래 묻어  주소서.> 노래가 끝나자
모든 신하들이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며 황태자에게 절하며 물러갔다.  이에 원수가 몸을 솟
구쳐 바람같이 들어가 엎드려 네 번 절하고 울며  아뢰었다. "태자께옵서는 귀하신 몸이 안
녕하시옵는지요? 소신은 선황제의 충신 조정인의 아들  조웅이옵니다." 황태자는 크게 놀라
하문하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대가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그러다가 진짜 조웅
임을 알아보시고 눈물을 흘리며 반기셨다. 원수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진정하소서. 소신이
왔으니 이제 안심하시오." 태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걱정하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죽을
곳에 왔는가? 나는 운이 없어 내일이면 죽을 몸인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는커녕 슬프기만
하도다." 원수가 위로하며 미녀를 돌아보고 물었다. "이  여인은 누구이옵니까?" "이 고을의
별장이 보내온 계집종으로 나와 함께 슬픔을 함께 하는구나."  태자의 대답에 원수가 또 물
었다. "이 고을의 별장이란 누구이옵니까?" "백성추라고 하는데 충신이로다. 내가 이곳에 귀
양온 후 별장이 잘 대접해  주어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구나." 태자는 이어 태산부자사가
내일이면 독약을 먹이고 함께 있는 충신들을 모두 잡아갈 것이라고 하며 통곡을 그치지 않
았다. 원수가 태자와 함께 울다가 은밀히  여쭈었다. "소신이 지금 백 리 밖에  군사를 숨겨
놓고 들어왔으니 안심하소서. 소신이 이제 나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태자님을 모실 것이
니 부디 몸을 보증하소서." 하고는, 바로 하직하고  나왔다. 단숨에 진영까지 달려온 원수는
즉시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분부했다. "그대들은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 명령을 내리고 군
사를 몰아 계량도로 가니 어느새 날이 어슴푸레해졌다. 원수가  다급하여 칼을 뽑아들고 몸
을 날려 태자의 처소로 달려갔다. 이 때 벌써 자사의  부하가 약그릇을 들고 나오는데 충신
들은 모두 묶여 있었다. 원수는 이를 보자 분함을 참지  못해 약그릇을 쳐서 깨뜨리고 칼을
들어 자사의 부하를 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군사를 재촉하여  모든 충신들을 다
풀어 놓게 하고 태자 앞에 엎드려 절하니 태자가 원수의 손을 잡고 기뻐하였다. "이것이 꿈
이 아니길 비는도다." "태자께선 안심하소서." 원수가 위로하고 있을 대 증군장 원충이 군사
들을 이끌고 풍우같이 들어왔다. 삽시간에  고을을 에워싸고 자사와 그의  부하들을 깡그리
잡아 원수 앞에 끌어오니 모두들 기뻐했다. 원수는 자사 이하 악독한 관리들을 추상같이 꾸
짖고 목을 베었다. 이때 태자와 충신들은 기쁨을 이깆 못하여 무수히 치하했다.  "장군의 공
은 하늘 같도다. 만고에 이런 충신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원수가 사양하고 잔치를 베푸니 백
여 명 충신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면서 즐겼다. 또한 고을 안의 백성들도 모두 춤추며 노래
하고 즐기는데 그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사흘 동안의 잔치가 끝나자 원수가 태자께 아
뢰었다. "태산부의 자사와 이웃 고을의  현령들을 모두 없앴으니 따라온  신하 중에서 각기
임명하여 지키게 하십시오." 태자가 옳게 여긴  신하를 뽑아 각기 임명하였다. 원수는  일이
끝나자 태자와 여러 충신들을 모시고 길을 떠났다. 위국으로 가려면 부득이 번국을 또 지나
야 했다. 이때 번왕은 조웅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잡고자 기다리던 참에 염탐꾼이  알리기를,
"조웅이 송태자를 모시고 이리로 오나이다."  하므로, 즉시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했
다. "먼저는 재물과 궁녀만 잃었으니 어찌할꼬?"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조웅이
송태자와 함께 온다 하니 먼저 태자를 유인하여 대궐 안에  가두는 것이 조을 것입니다. 그
런 다음 조웅에게 우리 번나라와 힘을 합해 대국을 회복하자고 달래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거든 위나라로 가는 길에 마을과 객점을 없애고 다만 만나관과 숙소관만 남기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성을 따로 쌓아 군사를 숨겨 두어 습격하면  사흘 안에 조웅은 잡힐 것입니
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 계교대로 하라고 했다. 이 때 원수는 여러 날만에  번국에 이
르니 번왕이 십리 밖까지 나와  반기므로 웃으며 말했다. "대왕이  옛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오고 갈 때마다 이렇게 융숭히 대접하니 죄송하나이다." 번왕 또한  웃으며 응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라에 오신 손님을 어찌 박대하겠습니까? 우리 번나라가 비록 가난해
도 군사가 강하니 원수를 도와 능히 대국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께서는 깊이 생
각하시어 우리와 합작하도록 하십시오." 원수가 좋은 말로 이를 거절했다.  "대왕의 뜻은 고
맙지만 대국의 남은 충신들이 구름같이 많으니 태자님을 도와 능히 대국을 회복시킬 수 있
습니다. 대왕의 고마우신 뜻은 마음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이에 번왕은 멋적은 표정으로 돌
아가고 말았다. 원수는 군사들에게 편히 쉬라고 말하고 자신도 막사로 나와 쉬었다. 이 때에
번왕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흉계를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처음 계획한 대로 태자의
숙소를 군사로 둘러싸고 몰래 잡도록 했다. 태자가 잠을 자다가 주위가 시끄러워 눈을 떠보
니 번왕 이하 장수들이 겹겹이 둘러싸 있지를 않은가. 번왕이 반 협박조로 태자에게 말하기
를, "내게 딸 하나가 있는데 인물이 뛰어나니 이제 태자께 드리려고 합니다.  거절하시지 마
시고 받아 주옵소서." 태자가 듣고 크게 꾸짖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국왕이라 하면서 딸
아이를 길거리에서 술파는 계집처럼 여기니 한심하도다." 이  때 조원수는 잠자리가 뒤숭숭
하여 일어나 태자 숙소로 갔다. 가서 보니 번왕이 태자를 능멸하고 있지 않은가. 원수는  크
게 분노하여 칼을 빼들고 쳐들어가 지키는 번국의 군사를 마구 죽이니 번왕이 이에 놀라 도
망치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도 도망가지 못하고 원수에게 사로잡혔다. "벌써 죽일  놈을 이
제까지 살려두었더니 안되겠구나!" 원수가 당장에 칼을 내리치려  하니 번왕이 땅에 엎드려
애원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하소서. 다시는 나쁜  마음을 먹지 않겠나이다." 그 비는 모습
이 너무 처량하여 태자께서는 한 번만 용서하라고 원수에게 권했다. 이에 원수가 번왕의 상
투를 잘라 벌하고 밖으로 내쳤다. 그런 다음 군사들을 재촉하여 떠나갔다. 번국의  신하들은
왕이 상투가 잘려진 채 꼴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이를 갈며 복수를 맹세했다. 번왕과 신하
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함곡에다가 군사를 매복하여  조웅을 죽이기로 했다. 이윽
고 원수가 태자를 모시고 함곡에 도착하니 사방이 온통 절벽인데 오직 좁은 오솔길만이 양
의 창자처럼 꼬불꼬불 이어진 것이 천하 제일의 탁한 길이었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
어가려고 하니 원수는 마음이 급하여  군사를 재촉해 험곡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 때
문득 동쪽 작은 길에서 누추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힘겹게 오더니 부채
를 들어 원수를 만류했다. "위나라로 가는 조원수를 혹시 보지 못했습니까?" 원수가 속으로
크게 놀라 급히 물었다. "제가 바로 조웅인데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나는 천하를 두루 구경하다가 오봉롱에  들어가서 천명도사를 만나 사
나흘 묵었습니다. 떠날 때에 편지를 주며 그대에게 전하라 하였으니 받으십시오." 원수는 스
승이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듣자  깊이 감사드리고 받았다. 편지를 전한  노인은 두말 않고
오던 길로 돌아갔는데 그 발길이 무척 빨리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원수가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절한 다음 편지를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함곡에 들어가지 말고 대포만  한
방 쏘아라.> 원수가 보고 크게 놀라 즉시 좌장군 이홍창을 불러 군사들을 함곡으로  들어가
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원수께 아뢰오.  선봉은 이미 함곡으로 들어갔나이다." 이홍창
이 대답하니 원수는 대경하여 엄히 명령을 내렸다. "좌장군은  급히 들어가 선봉을 뒤로 물
리라. 그곳에 진을 치는 척하고 한둘씩 빠져 나오면 무사하리라." 위홍창이 명령을  받고 급
히 들어가 선봉을 무사히 물러나게 했다. 원수는 진을 치고 장졸들에게 명령했다. "그대들은
움직이지 말고 깃발과 무기는 모두 숨기라." 그리고 중군장 오원충을  불러 분부했다. "그대
는 선봉 군대를 거느리고 함곡 성문 좌우에 숨어 있다가 대포 소리가 울리면 들이치라." 하
고 다시 유연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는 자정에 몰래 함곡성  안에 들어가 대포 한 방만 쏘
고 급히 나오라. 이날 밤 자정에 유연이 명령대로 성에 들어가 대포 한 방을 쏘고 물러나오
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고함 소리가 울리면서 매복한 번국 군사가 쫓아 나왔다. 그러자
미리 매복하고 있던 중군장 오원충이 달려들어 낱낱이 사로잡았다.  원수 앞에 모두 끌어오
니 거의 천여명이 되었다. 원수는 크게 꾸짖기를, "너희들 모두를 죽일 것이로되  특별히 살
려 보내니 번왕에게 가서 말하라. 다시 한 번 이런 짓을 하면 내 달려가서 목을  끊겠다고!"
하고 모두 놓아 보냈다. 그런 다음 명령을 내려 산성을  불사르고 함곡을 지나 위나라 계양
에 당도했다.
 그러나 계양 태수가 마중나와 위왕의 편지를 바쳤다. 원수가 부모의 편지를 받은 듯 기뻐
하며 뜯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위왕은 원수께 몇  마디 알리노라. 무사히 태자님을 구했
는지 근심이 되어 자리에 누으니 그리움이 병이 되었노라. 또한 원수의 근심을 덜기 위하여
모친을 편안히 모시었으니 빨리 돌아와 재회의 기쁨을 맛보기를 바라노라.> 원수는 크게 기
뻐하여 사람을 시켜 위왕에게 먼저 통지케 했다. 원수가 길을 재촉하니 자사와 태수들이 줄
지어 마중하는데 끊이지를 않았다. 드디어 위국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니 위왕이 모든 신하
를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가 태자에 엎드려 네 번  절하고 울면서 아뢰었다. "소왕이 이제
야 태자님을 뵈오니 죄가 너무나도 크옵니다." 태자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내가
살아옴은 모두 위왕의 덕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위왕이 태자와 원수를 모시고 궁궐
로 들어오니 온 백성이 춤을 추며 반겼다. 원수가 시간을  내어 모친과 장모를 뵈오니 다시
만남을 크게 즐거워했다. 이날 밤은 모든 사람들이 나와 태자를 위로하는 잔치를 베푸니 노
랫소리가 백 리 밖에까지 들렸다. 이어 수고한 장졸들에게 일일이 상을 내리고 벼슬을 높였
다. 이 때 연락병이 와서 알리기를 서번왕이 등창에 걸려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였다 하
므로 위왕과 원수가 불행히 여겼다. 원수가  가족과 같이 머물고 있는 사이 경사가  겹쳤다.
즉, 위왕의 두 딸 중에 장녀는 태자에게 시집을 가고, 차녀는 원수의 첫째 부인 장씨가 극구
추천하여 원고의 둘째 부인이 된 것이다. 또한 번국에서 데려온 금년의 모친을 찾아 모녀가
다시 만나는 기쁨을 나누게 했다. 원수는 한가한 틈을 타서 스승이신 월경대사가 계신 강선
암으로 오랜만에 스승을 뵈오러 찾아갔다. 그러나 강선암은 텅텅 비었고 스승 또한 간 곳을
몰라 쓸쓸히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오는 도중에 큰 칼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급히 달
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원수가 수상이 여기어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계량도에 귀양
간 송태자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하여 보낸 사신이 넉 달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으므로 황
제께서 알아보라고 하시기에 가는 길이오." 하기에, 원수가 크게 노하여 벽력같이 호통쳤다.
"나는 전조의 충신 조승상의 아들 조웅이다. 역적 이두병을  따르는 무리를 어찌 살려 두겠
는가!" 호통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칼이 번뜩하더니 사신의 목이 땅 위로 굴렀다. 원수가 위
나라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대송에 속한  번양 땅 학산이란 곳에 충
신들이 군사를 모아 역적 이두병을 칠 준비를 하는데 지휘자는 바로 전 한림학사 왕열이라
는 것이었다. 왕열이라면 바로 원수의 모친 왕부인의 사촌이 아닌가. 이에 원수가 때가 왔음
을 깨닫고 태자와 위왕 앞에 나아가 엎드려 아뢰었다. "황태자께 삼가 아뢰나이다.  역적 이
두병이 대송을 빼앗은지 이미 이십 년이 지났사옵니다. 이제  각처에서 충신 열사들이 역적
을 토벌하러 일어서려고 하니 소신은 앞장 서서 나라를 되찾고 역적을 멸하겠사오니 허락해
주시옵소서." 태자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허락했다. "과연 충신의 후예로다. 어서 역적
을 쳐서 나라를 되찾으라." 태자는 그 즉시 조웅을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했다. 위왕도 기쁨
을 이기지 못하여 정병 삼만  명을 내주며 격려했다. 원수가 학산으로  나아가 대송의 충신
열사 오천 명과 합세하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원수가 머리에 은빛 투구를 쓰고
몸에는 금빛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활을 차고 천리마에 타니 오른 손에는 보검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장창이 춤추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수의 행군하는 법은 천병과 같구나!"
 이윽고 원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번양땅에 이르니 태수로 있는 태원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길을 막았다. 원수가 보고 우레처럼 호통쳤다. "너는 누구인데 앞길을 막느냐?  나는 대송의
충신 조웅으로 지금 역적 이두병을 치러 가는 중이다." 그러자 태원이 크게 놀라 칼을 버리
고 말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려  빌었다. "소장이 원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천병에 항거하려
했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진중에 두시오면 힘을 다해 돕겠나이다." 원
수가 그 비겁함에 더욱 노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이두병을 도와 갖은 나쁜 짓을 하고
서도 살기를 바라느냐? 정말 음흉한 놈이로다!" 호통과 함께  칼을 내리치니 태원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무기와 군량을 거두어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따
르는 자가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행군을 재촉하여 한 곳에  이르니 천여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어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알아본즉 이두병의 친위대였다. 원수가 크게 성을 내어 적
토마를 몰아 짓쳐들어가서 칼을 휘두르니 가을 낙엽처럼 적의  머리들이 땅에 떨어졌다. 살
아남은 병사 대여섯이 겨우 도망쳐서 이두병에게 가서  아뢰었다. "조웅이 번양태수를 베고
지금 황성으로 쳐들어오는 중입니다. 어서 군사를 내어 막으소서." 황제의 지위를 빼앗고 그
동안 거드름을 피우던 이두병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두병이 놀라 어찌
할 줄을 몰라할 때 다시 급한 전갈이 왔다. 조웅의 군사 팔십 만이 광음을 함락하고 서주를
침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두병이 더욱 가무러치도록 놀라 급히 신하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하니 좌장군 장덕이 앞으로 썩 나섰다. "신의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을 폐하께 바치겠나
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여 대원수의 벼슬을 내리고 많은 군사를 주어 적을 치라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이끌고 제양산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었다. 이  때에 골짜기 안에서
한 장수가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원수 앞으로 와서 엎드려 아뢰었다. "소장은 전조의 충신
강걸의 아들 강백으로 역시 이두병 때문에 부친을 잃고 여지껏 숨어 있었나이다. 그동안 무
예를 연마하고 군사 수백을 길러 떼를 기다리다가 하늘이 도와 원수를 만났으니 진중에 거
두어 주옵소서." 원수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강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그대가 바로 강백
인가? 그대 부인은 계량도에서  태자를 모시고 있다가 지금  위나라에 편히 있으니 안심하
라." 강백이 뛸 듯이 기뻐하며 원수에게 무수히 절했다. 이에 강백으로 선봉장을  삼아 서주
로 쳐들어가니 서주자사 위길대가 삼천의 군사로 길을 막았다.  원수가 선봉장 강백을 불러
명했다 ."그대의 재주를 오늘 시험할 것이니 나가 싸우라." 강백이 명을 받고  즉시 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위길대에 달려들었다.  위길대도지지 않고 칼을 들어  상대하는데 불과
삼 합만에 강백의 창 끝에 목이 뚫려 죽었다. 그러자  위길대의 아들 위영이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데 매우 용맹스러웠다. 그러나 강백의 창술은 신출 귀몰하
아ㅕ 십 합을 겨루다가 한 소리 크게  호통치며 창을 내지르니 왕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
다. 이를 본 원수가 크게 기뻐하여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다. "강백의 용맹은 그 옛날 조자룡
에 못지 않도다." 적진의 군사들은 자사의 부자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당할 수 없음을 깨
닫고는 산산히 흩어져서 도망쳐 버렸다. 이에 원수가 군대를 몰아 황성 가까이 있는 관산에
도착하니 적군이 벌써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원수가 적진을 살피자  문득 한 장수가
뛰어나와 크게 호령했다.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원수가 이를  보고 크게
성이 나 강백을 내보내어 싸우게 했다. 강백이 명을 받고  나는 듯이 달려나가 불과 오합도
되지 않아 적의 머리를 창 끝에 꿰어 돌아왔다. 그러나 이두병으로부터 대원수의 벼슬을 받
은 장덕이 앞으로 나와 호통을 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너는 도망쳤던  죄인으로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구나. 내 오늘 너를 잡아 죄를 물으리라." 원수가 크게 노하여 마주 호통
쳤다. "역적 장덕이 무슨 낯으로 나서느냐? 너같이 더러운 놈이 여지껏 살아 있었다니 우습
구나!" 호통과 함께 내달아 칼을 풍자처럼 휘둘렀다. 장덕도  용기를 뽐내어 대항했다. 그러
나 장덕이 어찌 원수의 무예와 용맹을 당해내겠는가. 삼십 합을 겨우 지탱하다가 팔을 돌려
도망쳤다. 원수가 뒤를 쫓으며 꾸짖었다. "대적은 도망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이 순간,
도망치는 장덕 앞에 난데없이 황소만한 백호가 나타나 입을 벌려 물려고 했다. 장덕이 크게
놀라 멈칫하는 사이에 뒤쫓아온 원수의 칼이 번뜩하더니 목이  떨어졌다. 이 소식은 지체없
이 이두병에게 전해졌다. 믿었던 장수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이두병은  간담이 서늘하여
신하들을 돌아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반적  조웅의 군세가 저토록  강하니 어찌할
꼬?" 그러자 사마장군 추천이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장덕은  적을 얕보았다가 패했나이다.
소신이 재주는 없으나 조웅을 잡아 오겠나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며 주천으로 선봉장
을 삼고 좌승상 최식에게 대원수의  직책을 내리고 군사 팔십만 명을  거느리게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몰아 위세 당당하게 들어가니 감히 맞서 싸우는 적군이 없었다. 드디어 관
동땅에 이르자 적의 대원수 최식이 팔십만 명의 대병을 거느리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
다. 조원수는 형세를 살핀 다음 초목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이때 적진에서 갑자기 대포소리
가 울리면서 적군에서 한 장수가 나와 소리쳤다. "반적 조웅은 발리 항변하라.  항복하면 목
숨만은 살려주리라." 선봉장 강백이 듣고 크게 성이 나 즉시 말을 몰아 나가려고 하니 원수
가 말했다. "그대는 잠시 분노를  참으라. 내게 좋은 계책이 있느니라."  하고는, 군사들에게
명해 적의 도전에 절대로 응하지 말라고 했다. 이 때 적의 대원수 최식은 원수의 진세를 유
심히 살피더니 장수들을 모아 분부했다. "조웅이 초목에 의지하여 진을 쳤으니 어찌 병법을
안다 하겠는가? 그대들은 화약을 준비해 가지고 오늘밤 자정에 적지에 나아가 불을 놓아 적
을 몰살시켜라. 조웅을 잡는 것은 이제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도다." 같은  시각에 조원
수는 강백을 불러 은밀히 명을  내렸다. "적장은 우리가 숲에 의지하여  진을 친 것을 보고
반드시 오늘 밤 불을 놓으러 올 것이다. 모든 군사를 은밀히 옮기되 소리를 내지 말라 " 과
연 이날 밤 자정에 최식의  군사가 쳐들어와 사방에 불을 놓았다.  그러자 불빛이 하늘까지
치솟으며 숲을 모두 태웠다. 최식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제 적은 흔적도 없이 죽었
을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깐, 갑자기 대포소리가 벼락치듯이 울리며  조원수가 칼춤
을 추면서 군사들의 목을 무 베듯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방에서 조원수의 군사가 벌떼
처럼 쏟아져 나와 닥치는대로 베고 찌르니 최식의 군대를 거의 반수나 죽고 부상했다. 놀란
최식은 진문을 굳게 닫고 쥐죽은듯이 엎드려 있었다. 이에 원수가  진문 앞으로 와 크게 호
통치기를 "역적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하니, 뭇군졸들이 겁을 먹고 쥐구멍만 찾았다. 이에
최식이 주천을 보고 말했다. "조웅을  당해낼 장수가 없으니 항복하여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구려." 주천 또한 싸울 용기를 잃고 있던  터라 찬성했다. "그렇습니다. 빨리 항복하여 살
길을 찾는 것만이 현명한 길입니다." 최식과 주천은 즉시 항서를 써 가지고 진문을 활짝 열
고 나가 원수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애걸했다.  "소인들이 무지하여 원수의 뜻을 어겼으니
죄는 죽어도 마땅하나 원수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목숨만은  살려 주옵소서." 원수가 듣
고 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 "너희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간신이요, 이두병은  만고의 역
적이니 어찌 살려 두겠느냐?" 호통과 함께 들어 최식과 주천의 목을 베어 적진 속으로 던지
니 적의 군사들이 모두 놀라 도망해 버렸다.
 한편, 이두병은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발
군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조웅이 대원수 최식과 주천을  죽이고 팔십
만 대병은 하나도 없이 사라졌나이다."  이두병은 너무 놀라운 소식에  넋을 잃고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가는 군사마다 모조리 패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한참  근심하고 있는 중에
문득 밖에서 키가 구 척에 가깝고 눈이 왕방울 같은 장수 셋이 들어와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닌가. 이두병이 크게 의아하여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묻자 가운데 엎드린 장수가 공손
히 아뢰었다. "신들은 동해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던 중  태산부자사로 간 아비가 반적 조
웅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나이다. 해서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벼르던 중 조웅이 나
라를 위태롭게 한다기에 달려 왔나이다.  신들 삼형제의 이름은 일대,  이대, 삼대인데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 따위는 두렵지 않사오니 반적을 치는 데 앞장서게 해주소서." 이두병
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군사 오십만을 내주고 일대를 대원수에 봉하고, 이대를 부원수,
삼대를 선봉장을 삼아 간곡히 부탁했다. "그대들은  힘을 다해 조웅을 잡아라. 반적을  잡아
없애면 그 공은 길이 잊지 않겠노라." 이에 일대 등 삼형제는 용기 백배하여 군사를 이끌고
곡강에 이르러 백사장에 진을 쳤다. 거기서 며칠 머물러 계책을 의논한 후, 앞으로 진군하여
서창에 도착하니 조원수가 벌써 와서 동창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이에 일대는 서창에 진을
치고 이대는 회음에, 삼대는 강진에 진을 쳤다.  이 때 원수의 진에 한 도사가 와서  뵙기를
청하므로 원수가 이상히 여기어 윗자리에 모시고 예의를 다해  대접했다. 그러자 도사는 소
매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어 내주며 이르기를, "원수는 과연 하늘이 낸 영웅이로다.  지금 적
진을 지휘하는 삼 형제는 내가 가르친 제자들인데 죄악에 빠졌도다. 원수는 이 편지에 적힌
대로 행하라. 나는 세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므로 떠나노라." 하더니, 문득 종적이 보
이지 않았다. 원수가 크게 의아하여  편지를 펼쳐 보니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일대의
진중에는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대의 진중에는 백마의 피를 칼에  칠하고 귀신을 쫓는 주문
을 외우라. 삼대의 진중에서는 결코  삼대 왼쪽에 가까이 하지 말라.>  원수가 보고 마음속
깊이 기억해 두고 도사에게 감사했다.  이튿날 원수는 갑옷을 갖추고 말에  올라 일대의 진
앞으로 나가 크게 외쳤다. "반적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그러나  일대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적장이 문을 열고 나오지 않으니 특히 조심하라." 이튿날이 되자 일대가 진문을 열고 나오
더니 우레같이 호통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네가 감히 천하를 시끄럽게 하니  오늘 너를
죽여 공을 세우겠다." 원수가 진 앞으로 나가 바라보니 일대는  키가 구 척에 쇠로 만든 갑
옷을 입고 수영은 두 자고, 눈이 왕방울 같았다.  원수는 즉시 강백을 불러 일렀다. "그대는
나가 싸우되 적장이 거짓 패하여  도망치거든 절대로 뒤쫓지 말라."  강백이 나가 싸우는데
과연 일대는 삼십여 합 겨루다가  거짓 패한 척하고 달아났다. 강백은  원수의 명대로 뒤를
추격하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원수가 친히 나서서 크게 호령했다. "반적 일대는
어서 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감히 나에게 반항 하다니 목숨이 몇 개냐?" 일대가 크게 성내
어 나와 싸우니 흡사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는 것  같았다. 오십여 합을 겨루다가 일대가
또 거짓 패한 척 도망치니 원수가 조롱을 퍼부었다. "너는 도망치는 공부만 배웠나 보구나."
하고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내일 그대가
적장과 싸우되 날이 저물거든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들어가라."  이튿날 일대가 나와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원수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다가 저녁 무렵에야 강백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다. 강백이 일대와 싸우기를 오십여 합에 이르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이
에 강백은 원수가 지시한 계책대로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달려드니 적의 군사들이 진
문을 열어 왼쪽으로 안내했다. 크게 놀란 일대가 강백을  뒤따라 달려드니 일대의 군사들이
적장인 줄 잘못 알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말을 때렸다. 그러자 일대의  말이 놀라서 함정에
덜어졌다. 군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창살로 마구 찌르니 일대는 비명을 질렀다. "이놈들아,
너희대장도 모르느냐?" 군사들이 크게 놀라 불을  밝히고 자세히 보니 과연 대장인  일대였
다. 이 때 조원수가 군사를 이끌고 풍우같이 덮치니 적의 군사는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원
수와 강백이 함정 안을 들여다 보니 일대는 온몸이 창칼에  찔러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원
수가 보고 탄식했다. "제 꾀에 제가  죽으니 참으로 미련한 놈이로다." 이에  적진의 무기와
군량을 거두고 백마를 잡아 칼에 칠하고 이대의 진으로 나아갔다. 이대는 형이 죽었다는 소
식을 듣자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 진문을 열어 나와 호통쳤다. "반적 조웅아, 너를  죽여 맏
형의 원수를 갚겠다." 하고,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이에  원수가 맞아 싸울 대 백마의 피를
바른 칼로 치니 이대의 칼이  허공에서 날아 오다가 중도에서 막히곤  했다. 그러나 이대의
용맹은 일대보다 십 배나 강하여 백여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도
사가 가르쳐 준 대로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우며 평생의 힘을 다하여 이대의 칼을 쳤다. 그
러자 이대가 깜짝 놀라며 칼을 떨어뜨렸다.  이 순간, 원수의 칼이 번쩍하더니 이대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대장이 죽자 이대의 군사들은 개미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원수는
이대의 목을 창 끝에서 꿰어들고 승전고를 울리며 삼대의 진에 이르렀다. "서창에서 일대의
목을 베고 회음에서 이대의 머리를 베어 왔다. 삼대야,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원수가 호
통치니 삼대가 크게 분노하여 창을 들고 달려 나오며  외쳤다. "너를 죽여 돌아가신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원수가 맞이하여 싸우는데 도사가 일러준 대로 삼대의 오른편만 쳤다. 용과
범이 싸우듯 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아 원수는  약간 초조해졌다. 이를 보고 선봉
장 강백이 우레같이 호통치며 달려나와 역시 삼대의 오른 편을 노리고 창을 찔렀다. 삼대가
제 아무리 재주가 용한들 두  장수를 당해 내겠는가. 강백의 창이  번뜩하더니 삼대의 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삼대가 크게 놀라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이를 본 원수가
번개처럼 내달아 삼대의 창든 손을 차니  삼대는 혼비백산하여 창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
다. 원수도 함께 하늘로 치솟아 칼을 날려 삼대의 목을 쳤다. 그러자 한바탕 거센 바람이 일
어나며 삼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진 앞에 푸른  안개가 자욱이 일어나며 두 줄기
무지개가 공중으로 뻗치는데 삼대의 왼팔  밑에 있던 날개가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삼대의
부하들은 대장이 죽자 역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원수는  승전고를 높이 울리며 위풍
당당하게 황성으로 쳐들어가니 감시 맞설 자가 없었다. 이두병은  믿었던 삼형제가 모두 죽
었다는 소식을 듣자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신하들을 돌아보고 누가 나가서 조
웅의 군사와 싸우겠냐고 물어도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날 밤에 승상 황덕이 조정의
뭇신하들을 모아놓고 은밀히 논하기를, "나라의 멸망이 눈앞에 닥쳤으니 살 길이 없다. 그대
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모든 신하들이 두려운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에게 계책이 있
을리 있겠습니까? 승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황덕이 칼을 놓고 계책을 말했다. "모든 죄는
지금 황제로 있는 이두병에게 있다. 우리가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아들 오형제를 묶어 조
웅에게 바치면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니 어떠한가?"  모든 신하들이 듣고 찬성했다. "그 게책
만이 우리들이 살 길입니다." 이에 황덕은 힘센 군사  육십여 명을 거느리고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묶어 수fp에 싣고 조원수의  집으로 찾았다. 이 때 황성의 백성
들은 조원수가 온다고 하는 말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가 이두병이 사로잡혀 간다는 말에 모
두 나와 구경하는데 그 광경이 구름 떼와 같았다. 이윽고  원수가 팔십만 대병을 몰고 황성
으로 들어오니 황성의 남녀노소 모두가 뛰어나와 길에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장하고 장하
구나! 하늘이 조원수를 내서 대송을 회복했구나." 원수도 감개무량하여 힘껏 백성들을 위로
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이때 황덕  이하 뭇 신하들이 이두병과 이관  이하 오형제를 수레에
싣고 와 원수 앞에 엎드려 간곡하게 여쭈었다. "소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황제를 배신한 죄
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두병의 강압에 못이겨  참여한 것이옵고 날마다 송태
자님을 생각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천행으로 원수께서 오신다고 하였기에 이렇게 이두병  부
자를 잡아 바치옵니다. 원수께서는 부디  소신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원수가  이두병을
보니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즉시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끌어내어 엎드리게 했다.
"두병아, 낯을 들어 나를 보아라. 네 죄를 생각하니  죽어도 분이 풀리지 않겠다. 태자를 귀
양보내고 독약까지 내리었으니 그 죄가 어떠하며  또 나를 잡으려고 군사를 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으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수가 크게 꾸짖으니  백성과 군사들이 달려들어
마구 치고 때린다. 이두병은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며 외치기를, "이미 붙잡힌 신세이니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러나 대송의 옥새를 가로치고 태자를 귀양보내 독약을 내린 것은 모두
가 저들 소인배들이 의견을 낸 것이오. 또한 이 지경이  되자 저희들은 죄를 면하고자 꾀를
내어 나를 붙잡아 원수에게 바쳤으니 죄는 모두 저들에게  있지 나는 결백합니다. 원수께서
는 밝히 살피십시오." 그 말이 너무 간사하므로 원수가 크게 꾸짖었다. "이 간악한 놈아! 너
를 잠깐이나마 살려두는 것은 태자님을 기다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라." 이어 군사들에게 명
하여 이두병과 이관의 형제를 수레에 싣고 대궐로 들어가니 백성들이 춤추며 맞이했다.
 역적을 모두 토벌하자 원수는 충신들에게  황성을 지키도록 하고 위나라로  떠났다. 며칠
만에 태자 앞에 엎드려 절하며 승리한 사연을 여쭈니 태자와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수고를
치하했다. 이어 가족들을 만나 다시 만난 것을 즐긴 다음  이튿날 태자 앞에 나아가 아뢰었
다. "황성이 오래 비었으니  어서 환궁하시옵소서." 태자가  크게 기뻐하여 허락했다. "즉시
떠날 차비를 차려라." 그러자 위왕이 백리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태
자가 환궁하시는데 강백이 군사를 거느리고 앞에 서고 원수가 태자비와 가족들을 모시고 팔
십만 명의 대병을 지휘하여 가니 그 위엄은 하늘까지 덮는 듯했다. 여러 날 만에 황성에 도
착하니 백성들이 모두 나와 반겼다. 태자가 환궁하여 즉시 성대한 즉위식을 가졌다. 그런 다
음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잡아들여 추상같이 꾸짖고 사지를 찢어 죽였다. 백성들은 역
적의 시체에 침을 뱉으면서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모든 일이  끝나자 모두 잔치를 열어 싸
움에 나갔던 장수들을 일일이 표창하였다 .조원수를 번왕에 봉하고 부인 장씨를 왕비로,  원
수의 모친은 정절부인, 장모인 위인은 정부인, 원수의 외숙부 왕열은 우승상, 강백의 부친은
좌승상에 임명하였다. 또한 이번 싸움에 특히 공이 큰 강백에게는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하
고 나머지 장수들에게도 공을 따라 벼슬을 내리고 군졸들에게도 많은 상금을 내리니 모두들
성은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두병을 도운 전조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여 크게 꾸짖기를,
"너희는 간사한 무리로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무리를 내 어찌 살려  두겠느
냐?" 하시고 능지처참해 버렸다. 이윽고 번왕이 된 조웅이 번국으로 떠나는 날이 되니 황제
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짐이 그대의 충성을 생각할 때 번국으로 보낼
수는 없다. 이 천하가 어찌 짐  혼자의 천하인가." 번왕이 섬돌 아래 엎드려  공손히 아뢰었
다. "황제께서 귀하신 몸으로 만 리 밖에 귀양살이하신  것은 오로지 저희 신하의 잘못이옵
니다. 이제 역적으로 무찌르고 다시 나라를 세웠으니, 다시는 간신들이 날뛰지 못하게  미리
방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소왕도 어서 임지로 가서 오랑캐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
하겠나이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시며 당부했다. "짐이 그대를 만 리 밖으로 보내고 어찌 잠
시라도 잊겠는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짐을 보러  오도록 하라." 번왕이 엎드려 가족들을
이끌고 번국으로 떠났다. 새 황제가 즉위한 후로는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태평세월
을 마음껏 즐겼다. 대송 제일 충신 조웅은 번왕이 되어  임지에 귀임하는 즉시 백성들을 따
뜻이 보살피어 만민이 태평가를 부르며 찬양했다. 매년 한 번씩  황성으로 올라 그 간에 있
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즐기니 보는 사람마다 번왕 조웅의 충성을 기리었다.





   토끼전
 천하에는 네 개의 큰 바다가 있으니 동해와 서해, 남해 그리고 북해다. 이 네 바다는 용왕
이 다스리고 있는데 동해는 광연왕, 서해는 광덕왕, 남해는 광리왕, 그리고 북해는 광택왕이
라 불렀다. 남해 광리왕은 어느 해 봄에 영덕전을 새로이 짓고 다른 세 곳의 용왕을 청해서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게 탈이었다. 잔치가 끝난 후 광리왕은 먹은 것이 체했는
지 자리에 눕고 말았다. 놀란 신하들이 바닷속에서 나는 온갖 약을 병구완을 했으나 효헙이
없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용왕이 하루는 모든 신하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불쌍하구나. 짐이 죽은 다음에는 북망산의 깊은 곳에 묻혀 흰 뼈가 티끌로 변할 테니 세상
의 영화와 부귀가 다 헛일이로다 .그 옛날 전국 시대의 육국을 통일했던 진시황도 삼신산에
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사람을 보냈으나 소식이 없어 죽었고, 그 권세가 온 천하에 떨쳐졌던
한나라 무제는 백량대를 높이 쌓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슬을 받으려고 구리 쟁반을 만들었
지만 헛되이 죽었도다. 하물며 나 같은 미미한 왕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뇨. 그러나 대대로 내
려오던 왕가의 가업을 놓아두고 죽을 일이 슬프도다. 마지막으로  이름 높은 의원이나 널리
청하여 자세히 진맥하고 약을 써보는 것이 좋겠도다." 이어 뭇신하들을  둘러보고 분부했다.
"짐의 병세가 이렇게 위중하니 경들은 충성을 다하여 훌륭한 의사를 널리 구하여 군신이 함
께 즐기도록 하라."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신이 듣자  하니 월나라의 범
상국과 당나라의 장사군, 그리고 초나라의  육처사가 천하에 이름 높은 현인이라  하옵니다.
이 세 현인을 청해다 대왕의 병을 물어보시면 좋은  도리가 있을 듯하옵니다." 모두들 바라
보니 대대로 충성심이 많은 수천 년 묵은 잉어였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어 곧 사신을 시
켜 예물을 갖추어 세 사람을 청하여 오게 했다. 며칠 뒤에 세 사람이 용궁에 도착했다. 용왕
이 수정궁으로 세 사람을  접견하실 때 기운이 없어  용상에 기댄 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여러 선생이 짐을 위하여 천리를 멀다 아니하시고 이처럼 누추한 곳에 와주시니 정말로 감
사하오." 세 사람이 절하며 아뢰었다. "저희들은 어지러운 인간 세상의 천한 몸으로 높은 벼
슬과 영화를 마다하고 자연 경치를  사랑하여 무정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다가 이처럼 뜻밖에 용왕님의 부르심을 받자옵고 용안을 뵈오니 황공하기 그지없사옵니
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어 극진히  대접하며 용건을 말씀하셨다. "짐이  운수가 불길하여
뜻밖에 병을 얻은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어 병이 골수에 스며들었오. 온갖 약을 써도 전혀
효험이 없으니 살길이 아득하오. 청컨대  선생들께서 큰 덕을 베푸시어 다  죽게 된 목숨을
살려만 주시면 그 은혜는 기필코 갚으리라." 세 사람이 용왕의 말을 듣고 서로 얼굴을 돌아
보며 뜻을 통하더니 장사군이 입을 열었다. "대체로 술이란  마음을 미치게 하는 나쁜 음식
이옵고, 색은 사람의 목숨을 줄이는 근본이옵니다. 이제 대왕께서 술과 여자를 너무  가까이
하시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옛말에도 이르기를 <사
람은 젊어서 주색에 빠져 마침내 중한 병에  들면 편작-춘추전국시대의 명의-과 화타-삼국
시대의 명의-도 다시 살아나기 어려우며, 금강초와 불사약이 산처럼  쌓였다해도 특효가 없
으며, 인삼과 녹용을 매일 먹을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라고 했사옵니다. 그러니 재
물이 백만금이 있다 해도 고칠  수가 없으며, 힘이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막아낼 길이 없는
것이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운수가  불행하고 대왕의 목숨이 다한  것이므로 병환은
다시 회복되시기가 어렵겠나이다." 용왕이 이를  듣고 비오듯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이 왔다는 말씀이구려?  슬프도다. 짐이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쓸쓸히
무덤 속에서 들어가면 언제 어느 때에 다시 올 수 있단 말인가. 춘삼월에 꽃피고,  사월이면
녹음 짙은 숲속, 팔구월에 노란 국화와 밝은 단풍, 동지섣달 눈 속의 매화도 다시는 못 보겠
구나. 삼천 궁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황천객이 된다니 이 이상 슬픈 일이
또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 선생께서는 신통한 재주를 다해 비록 효험이 없더라
도 약이름이나 가르쳐 주오. 그러면 비록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오." 그러자  범상국이 빙
그레 웃으며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용왕이 귀가  번쩍 뜨여 급
히 물었다. "아, 그렇다면  살아날 수가 있단 말씀이오?"  "그렇사옵니다. 물론 지금의 대왕
병환은 매우 위중한 상태이옵니다. 본래 병이란 증세에 따라 약 쓰는 방법이 다르옵니다. 한
기가 침범한 병세는 시호탕이 좋고,  음기가 허한 데에는 보음익기전이 약이옵고,  열병에는
승마갈근탕이 좋고, 원기부족증에는 육미지황탕, 체증에는 양위탕, 다리의  통증에는 우슬탕,
안질에는 청간명목탕 그리고 풍증에는 방풍통성산이 좋습니다." 청산 유수처럼 설명하는 데
에는 용왕도 황홀해졌다. "선생은 과연 박학다식하오이다. 그래,  짐의 병에는 어떤 약이 좋
소?" "제가 열거한 이러한 약들은 대왕의 병환에는  하나도 알맞지 않습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끼의 생간이옵니다."  "토끼의 생간?" "그러하옵니다. 토끼
의 간을 얻어 김이 무럭무럭 날 대 잡수시오면 효험을 보실 것입니다." 용왕은 의아하여 물
었다. "토끼의 간이 어찌하여 짐의 병에 좋다는 말이오?" 이번에는 육처사간이 절하며 아뢰
었다. "토끼라 하는 것은 천지가 생긴 다음에 음양 조화로 된 짐승이옵니다. 이 짐승은 월궁
에 들어가서 계수나무 그늘 속에서  장생약을 찧을 적에 음양을 먹어  눈이 무척 밝습니다.
병은 오행의 상극으로도 고치고 상생으로도  고치는 법인데 산은 양이오, 물은  음이옵니다.
그리고 간이라 하는 것은 목기로 된 것이오니 만일 대왕께서 토끼의 생간을 잡수신다면 음
양이 서로 화합하나이다. 그러므로 병이 쾌차 하실테니 토끼의 간을 구하소서." 용왕이 듣고
기뻐하자 세 사람은 작별을 고했다. "푸른 산에 사는 친구들과 무릉도원-신선이 사는 곳-으
로 꽃놀이를 가기로 언약이 있어 저희들은 이만 하직할까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옥체를 부디 보증하옵소서." 이에 용왕이 좋은 선물을 하사하고 헤어짐을 섭섭해했다.
 세 사람을 떠나보내고 용왕은 즉시 조정의 온 신하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신하들이 줄지
어 들어와 동편에 문관이 서고 서편에는 무관이 서는데 좌승상 거북, 우승상 이어, 이부상서
노어, 효부상서 방어, 예부상서 문어, 병부상서 수어, 형부상서 준어, 공부상서  밀어, 한림학
사 깔다구, 간의 대부 모치, 백의재상 궐어, 금자광록 금치, 은청광록 은어는 문관이요, 대원
수 고래 대사마 곤어, 용양장군 이무기, 호위장군 사어, 표기장군 벌덕게, 유경장군 새우, 합
장군 조개, 언참군 메기, 주부 자라는 무관이다. 그  밖에 청주자사 청어, 서주자사 서대, 연
주자사 연어, 주천태수 승어, 청백리 자손 뱅어, 탐관오리  자손 오적어, 허리 긴 뱀장어, 수
염 긴 대하, 구멍없는 전복, 배부른 올챙이 등이  주르르 들어와서 엎드렸다. 용왕이 뭇신하
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짐의 병이 위중하여 아무런 영약이 소용없었으나 오직 토끼의
생간이 신효하다 하니 그 누가 세상에 나가서 토끼를 사로잡아 오겠는고?" 그러자 공부상서
민어가 부복하고 아뢰었다. "대왕마마, 대원수 고래에게 전병 사마천을 내주어  잡아오게 하
소서." 대원수 고래가 이를 듣고 앞으로 나와 노한 어조로 외쳤다. "우리  용궁과 토끼가 사
는 육지는 서로 다른데 수중에 있는 군사가 어떻게 육전을 한단 말이오? 자신 있으면 공부
상서 그대가 군사를 이끌고 가 보시오." 공부상서 민어는 대꾸할 말이 없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한림학사 깔다구가 나와 아뢰었다.  "토끼라 하는 것은 미물  중의 미물이라 대왕의
위덕으로 그까짓 것 구하는데 염려하실 것이 뭐 있습니까? 토끼 몇 마리 바치라고 산군에게
편지를 내면 즉시 잡아 올릴 것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그럴 듯하여 하문하셨다. "편지를 쓴
다면 누가 산군에게 갖다 줄 것인가?" 간의대부 모치가 즉시 아뢰었다. "표기장군 벌덕게가
의갑이 굳사옵고 열 발이 있어  자유롭습니다. 또한 제 고향이 육지오니  편지를 갖다 주라
하옵소서." 그러자 벌덕게가 분이 잔뜩  나서 입에 거품을 부글부글  머금으며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수륙이 다른데 산군이 어찌 대왕마마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문관들이란 그저 입
으로만 떠들기를 좋아하고 궂은 일은  우리 무관에게만 시키려고 하니  억울하옵니다. 자신
있으면 한림학사 자신이 편지를 가지고 가라 하십시오."  용왕이 들어보니 불쌍한 무관들이
문관들에게 평생 눌리다가 이런 때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기에 손을 들어 말렸다. "경들은
더 이상 떠들지 말라." 용왕이 명령하니 벌덕게와 깔다구가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이에 용
왕은 눈길을 백의재상 궐어에게 돌리고 입을 열었다. "토끼의 간을 구하기가 시급한데 문무
가 불화하여 쓸데없이 떠들기만 하는구료. 어느  신하를 보내면 좋을지 선생이 말해  보오."
궐어가 어찌하여 백의재상이 되었는가. 본래 벼슬하기가 번거롭다 하여 한가이 물러가서 좋
은 경치와 벗삼고 문장을 닦기에 힘썼다. 해서 용궁의  군신들이 강호선생이라 존칭하여 나
라에 일이 있으면 예관을 보내  청해다가 의견을 들었다. 그러므로 벼슬  없이 나라의 일을
보아 백의재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용왕이  묻자 백의재상 궐어는 궐하에 엎드려  아뢰었다.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밖에 없다고 옛말에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충성스런 신하
를 지목하여 보내옵소서." 그러자 용왕은 그 말이 옳다 하여 말씀하셨다. "합장군 조개는 전
신에 갑주를 입었으니 보내면 어떠한고?" 궐어가 부당하다고 아뢰었다 "합장군 조개는 진정
대장부라 보내면 좋을 것이오나 두루미하고 원수지간이라 아니 되옵니다. 만약 서로 다투다
가 낚시군에게 잡히면 큰일이 아니옵니까?" 용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한 신하를 지목하
셨다. "언참군 메기가 긴 수염이 점잖으니 보내면 어떨꼬?" 이부상서 노어가 적격이 아니라
고 아뢰었다. "요사이 종피 가루를 돌 밑에다 풀어놓았으니  메기는 민물 근처에 가면 죽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대대로 충성으로 이름이 높은 도미를 보내면 어떠한가?" 우승상 잉
어가 즉각 반대했다. "서울은 쑥갓이 한창이고 시골은 풋  고사리가 날 때이니 보내면 소위
탕, 찜감으로 변할 것이옵니다." 용왕은 답답하여  다시 한 신하를 지목했다."올챙이가 저토
록 배부른 것을 보니 속에 경륜이 가득 찼으리라. 올챙이를 보내면 어떠할꼬?" 좌승상 거북
이 느릿한 어조로 아뢰었다. "올챙이는 보내면 한두 달 안에 못 돌아올 것이니 개구리가 되
면 뱀에게 죽을 것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탄식했다. "용궁의 이 많은 신하들 중에서 충성스
러운 신하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정말 통탄스럽도다."
 이 때 갑자기 한 대장이 앞으로 나와서 크게 외치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뭍에
나아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겠으니 보내 주옵소서." 모두들 눈을 돌려 바라보니 머리는 두루
주머니 같고 꼬리는 여덟 갈래로 갈라진 수천 년 묵은  예부상서 문어였다. 용왕이 크게 기
뻐하여 칭찬하셨다. "그대의 용맹은 짐이 잘  아는도다. 그대는 충성을 다하여 빨리  세상에
나아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라. 성공하면 그 공을 잊지 않으리라." 하고는 즉시  문성 장군에
봉하려고 하셨다. 이 때 갑자기 한 신하가 뛰어나오며 큰 소리로 문어를 꾸짖었다. "문어야,
네가 아무리 키가 크고 위풍이 좀 있다 해도 말주변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니 무슨 공을  세
우겠다는 것이냐? 또한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좋아라 하고 잡아다가 요리조리 오려내어
국화 송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혼인  잔치와 환갑 잔치에 쓸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선비들과
기생들이 즐기는 술상이나 아이들의 군것질에 쓰일 것이 네 고기니 무섭고 두렵지 않느냐?
내가 세상에 나가면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었다가 일곱 번 다시 잡던 제갈량같이 귀신도 모
르는 계교로 토끼를 사로잡아 오기를 손바닥 뒤엎듯이 할  것이다." 모두들 크게 놀라 바라
보니 수천 년 묵은 자라로 벼슬은  주부였다. 문어는 자라의 이 같은 말을  듣자 크게 노한
나머지 두 눈을 부릅뜨고 다리를 쭉 벌리며 검붉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벽력같이 꾸
짖었다. "요망한 자라야, 네 듣거라. 기저귀에 싸인 애가  감히 어른을 몰라보니 바로 범 무
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다. 네 죄를 논하자면 태산이 오히려 가볍고 바다가 얕을 것이
다. 네 모양을 볼 것 같으면 참으로 이상야릇하니 어물전의 꼴뚜기도 웃을 판이구나. 사면이
그토록 넓적하니 나무 접시와 뭐가 다르냐?  저렇게 작은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느
냐?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두 손으로 움켜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 끓여내니 자라탕이 별
미로다. 세도 있는 집의 젊은이들이 즐겨 먹으니 네가 무슨 수로 살아오겠느냐?" 자라가 듣
고 또한 분노하여 마구 꾸짖었다. "너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오자서-춘추시대 오나라 충신-는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지니고서도 왕이 내려
준 칼로 자결했고, 초파왕-초나라의 항우-은  그 기운이 세상을 덮을만  했으나 해하성에서
패한 것을 모르느냐? 어리석은 네 용맹이 내 지혜를 당하지 못할 것이로다." "흥, 네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떠드느냐?" "문어야, 내 재주를 들어보아라. 넓고 넓은 바다에서 푸른 하늘에
구름이 뜬것처럼, 거센 바람에 낙엽이 지듯이 두둥실 떠올라서 네다리를 바트게 끼고 긴 목
을 움추리고 넙죽하게 엎드리면 둥글둥글한 것이  수박 같고 평평하고 넓적한 것이  솥뚜껑
같도다. 나무 베는 아이들과 고기 낚는 늙은이들이 보아도 무엇인지 모르니 오래 살기가 태
산 같고 평안하기가 반석과 같다. 남이 모르는 변화가 무궁하고 육지에 이르러서 토끼를 만
나면 잡을 꾀가 신통하다. 한신-한나라의 유명한 장군-이 광무군 싸움에서 이좌거-한나라의
이름난 선비-의 꾀를 얻어 초패왕을 꾀어낸 수단으로  토끼를 잡아올 수 있는 자는 나뿐이
다. 네가 어떻게 나의 지혜와 깊은 계교를 따를 것이냐?" 문어가 듣고 보니 옳은 말이라 대
꾸할 건덕지가 없었다. 별 수 없이 뒤통수를 툭툭 치고 흔들흔들 물러나니 낭패스럽기 짝이
없었다.
 용왕이 자라의 손을 잡고 술을 부어 주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대의 슬기와 말솜씨는 참
으로 놀랍도다. 부디 충성을 다하여 공을 세우고 빨리 돌아오라. 공만 세우면 부귀영화를 대
대로 누릴 것이로다." 자라가 황공하여 엎드려 절한 뒤 아뢰었다.  "소신은 용궁에만 있었고
토끼는 산 속에만 있으니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화공을 부
르시어 토끼의 모양을 그려 주옵소서." 용왕이 옳게 여겨  즉시 그림과 글씨를 관장하는 도
화서에 분부하여 화공들을 불러오게 했다. 이에 여러 화공들이  모이는데 인물을 잘 그리는
모연수-한나라 화가-, 산수도를 잘 그리는 오도자-당나라 화가-, 용을 잘 그리던 이장군-당
나라 화가-그밖에 여러 화가들이 토끼 화상을 그리려고 문방사우를 차려 놓았다. 이어 화공
들이 둘러앉아 토끼화상을 그리는데 각기 한 가지씩 맡아서  그리었다. 천하에 이름난 산의
경치를 보던 눈을 그리고, 두견새와 앵무새가 지저귈 때 소리 듣던 귀를 그리고, 난초, 지초
등 온갖 향기로운 풀과 꽃을 따먹던 입을 그리고, 동지섣달 찬바람에 바람막던 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겹겹이 싸인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펄펄 뛰던 발을 그렸다. 그려놓고 보니 두 눈
은 도리도리, 앞다리는 짤막, 뒷다리는 길쭉, 두 귀는 쫑긋한 것이 분명히 산토끼였다.  용왕
이 보고 크게 기뻐하여 뭇화공들에게 황금과 비단을 내리시고  그림을 자라에게 주었다. 자
라가 공손이 절하며 받자 용왕은 친히 술잔에 술을 가득히 부어 거듭 석 잔을 권한 다음 말
했다. "짐이 이제 그대를 먼 곳에 보내게 되니 군신 사이에 그리운 정을 이길  수가 없도다.
짐이 이 감회를 한 수의 글로 나타내 그대를 전송하려 하니 받아 보도록 하라." 이어 한 폭
의 비단에 붓으로 시를 써서 주었다. 자라가 받아보니, <오늘  그대가 먼길을 가는 것은 오
직 짐 때문이니, 흰 구름  흐르는 머나먼 길에 반드시 청산의  명약을 얻어오게나.> 자라가
두 손으로 비단을 받아 시를 읽더니 곧 한 수의 시를 지어 용왕께 올렸다. <귀하신 글이 갈
길을 재촉하니 눈물은 그릇에 다하고 새벽빛이 열리도다. 떠나가는  신하의 의로운 뜻은 영
약을 못 얻으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용왕이 자라가 바친  글을 보고 크게 칭찬하셨다. "그
대의 붉은 충성이 글 속에 나타나 있으니 토끼를 잡아오는 것은 이제 걱정할 것이 없도다."
이어 자라의 글을 여러 신하들에게 읽어보라고 좌승상 거북에게 내리셨다. 뭇신하들이 읽어
보고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라가 용왕께 하직하고 토끼 화상을  이리 접고 저리 접어 등에다  지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물에 가라앉기 알맞았다. 한참동안 생각한 끝에 오므렸던 목을 길게 늘이고 한
편에 접어 넣고 도로 움추리니 감쪽같았다. 주부가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소식을 듣고 집안
식구들, 친척들이 모두 다 모였다. 자라의 모친이 근엄한 어조로 훈계했다. "너의 부친이 욕
심 많아 낚싯밥을 물었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다음 오직  너 하나만 믿고 살았느니라. 네가
지금 벼슬하여 대왕을 섬기다가 대왕께서 병환이 나셔서 약을 구하러 간다 하니 부디 충성
을 다하여라. 지성으로 하다가 못 얻거든 거기서 죽으리다 결심해라. 대대로 충신 집에 불충
한 신하가 나오면 살아서  무엇하겠느냐?" 자라가 절하며 공손히  아뢰었다. 그러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물 밖의 세상은 위태로운 땅이니 부디 조심하셔서 큰 공을 세
워 가지고 오십시오.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부디 바라옵니다."  자라가 엄숙하게 대꾸했다.
"목숨이 길고 짧음과, 행운이 있고 없음은 모두 하늘에  달렸으니 뜻대로 되지는 못할 것이
오. 다녀올 동안에 늙으신 어머님과 어린  자식들을 잘 보호하고 살피시오." 이어  친척들이
차례로 하직했다 ."아저씨, 평안히 다녀오십시오." "형님, 부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조카,
잘 다녀오너라." 자라가 뭇친척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행장을 마련하여 넓은 바다
깊은 물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지향없이 흐르다가 뭍으
로 기어 올라갔다. 때는 춘삼월 한창 좋은 시절이었다. 산천의 초목과 뭇생물들이 저마다 즐
기는데 활짝 핀 두견화에서는 향기가 진동하고, 쌍쌍이 나는  봄나비는 즐거움을 못 이기어
날아들었다. 하늘하늘한 버들가지는 시냇가에 휘늘어지고, 금황색 꾀꼬리는 고운 소리로  노
래하고, 뻐꾸기는 서로 부르는데 참으로 신선 세계와 같았다. 소상강의 기러기는 간다고  인
사하고, 강남서 방금 온 제비는 왔다고 인사하느라 분주히 날아들었다. 나무 위의  비죽새는
즐겁게 웃고 함박꽃에는 뒤웅벌이 모여들었다. 방울새는 떨렁,  물레새는 짝걱, 접동새는 접
동, 뻐꾸기는 뻐꾹, 까마귀는 까욱, 비둘기는 꾹꾹 우니 그것 또한 좋은 경치였다. 모든 산봉
우리와 골짜기에는 꽃들이 활짝 피었고 시냇물은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푸른 대나무
아 소나무는 오랫동안 지녀온 절개를  나타내고 있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활짝  피었고,
이상야릇한 바위들은 사방에 겹겹이 싸였다.  절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와당탕 퉁탕
소리를 내며 흘러가니 진정 선경이었다. 자라가 한참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소?" 자라가 정신이 들어 바라보
니 자기 모습과 비슷한 짐승이었다. 해서 반가운 김에 꾸벅 인사를 하고 말하였다. "나는 용
궁에서 온 자라 이온데 댁은 뉘시오?" 그러자 그 짐승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내 신분
을 말하자면 장황하나 그대의 생김새가  나하고 비슷하니 설명을 하리라.  우리집 선조께서
남해의 용궁에서 벼슬하여 대대로 충신을 지내더니 조부님이 본래 성질이 강직하여  용왕께
직간 하시다가 소인의 참소를 만나 용궁 밖으로 내쫓겼소. 그 이후고향에 못 가시고 산에서
지내시니 사람들이 보고 불쌍하다 하여 남생 선생이라 불렀소. 할머니도 수중에서 기다리다
못해 육지살림 차리니 자식들을 낳아  도토리를 주워 먹고 살고  있다오." 자라가 들어본즉
바로 친척이 아니겠는가. 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참으로 세상일이란 알 수가  없구
료. 우리 선조가 육형제이신데 지금 수중에는 다섯 갈래 밖게 없구료. 얘기를 듣고 보니  형
씨가 바로 우리집 종손이구료." 남생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가
여지껏 헤어져 있다가 이제야 만났으니 정말 반갑기 이를 데 없소이다. 그런데 종씨는 어찌
하여 수궁에서 나와 이렇게 거닐고 있습니까?" 자라가 듣고 적당히 대답했다. "우리 수궁에
서 이번에 대궐을 다시 짓는데 지관이 없어 눈이 밝기로 이름난 토끼를 모셔다가 터를 잡으
려고 했소이다. 그런데 토끼의 생긴 형용을 몰라 이렇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남생이가 머
리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토끼를 만나려고  오셨구료. 토끼라면 저쪽 산골자기로 들
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자라가  듣고 크게 기뻐했다. "종씨, 고맙소이다.  왕명이 급하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이다.""살펴 가십시오." 자라는 남생이와 헤어져 푸른 시냇물을 따라 올
라가며 토끼를 찾았다. 산골짜기를 들어서니 온갖 짐승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발발 떠는 다
람쥐,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곰, 멧돼지, 너구리, 고슴도치, 호랑이, 원숭이, 코끼리, 여우,
담비 등이었다. 자라가 목을 늘여 이리저리 살피었더니 뒤쪽에서  한 짐승이 내려오는데 그
림과 비슷했다. 얼른 갑주 안에 감추었던 그림을 꺼내어 비교해 보니 틀림없는 토끼가 아닌
가. 자라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즉시 부르려다가 그 짐승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고자 거
동을 잠시 살펴보았다. 풀잎도 뒤적이며 사리순도 뜯어보고 높은 낭떠러지 사이를 이리저리
뒤며, 할금할금 강동강동 뛰노는데 영락없는 토끼였다.
 자라는 음성을 가다듬고 점잖게 물었다. "높은 산마루에  산수도 좋을시고. 저 양반, 혹시
토선생이 아니십니까? 나는 본래 물나라의 호걸인데 천하에서 좋은 벗을 만나고자 널리 찾
아다니다가 오늘에야 산중의 호걸을 만났소이다. 이 기쁜 마음 그지없어 토선생을 초청하니
선생은 꼭 허락해 주십시오." 토끼의 근본 성질이 무겁지  못하고 몸 또한 왜소하니 산중의
모든 짐승들이 멸시했다. 하다못해 쥐와 다람쥐까지도 토끼야, 토끼야 하고 아이 부르듯  하
는데 누가 와서 선생이라 부르니 토끼는 기분이 너무 황홀하여 깡충깡충 뛰면서 점잖게 대
꾸했다. "그 누가 날 찾는가? 산이 좋고 골짜기가 깊어 경치가 좋은 이 강산에서 나를 찾는
이가 그 누구인가? 수양산의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를 캐자고 나를  찾는가, 소부와 허유가
귀를 씻자고서 나를 찾는가, 부춘산의 엄자릉이 밭을 갈자고 나를 찾는가, 먼 산의 불탄  잔
디에서 개자추가 나를 찾는가, 한나라의 장자방이 퉁소를 불자고 나를 찾는가, 상산사호-상
산에 산다는 네 명의 신선-가 바둑을  두자고 나를 찾는가, 굴원이 물에  빠져 건져 달라고
나를 찾는가, 시 잘 짓는 이태백이 시  짓자고 나를 찾는가, 유령이 술 마시자고 나를  찾는
가? 석가여래 아미타불이 설법하자고 나를 찾는가, 적벽강의  소동파가 뱃놀이를 하자고 나
를 찾는가, 취용정에서 구양수가 잔치하자고 나를 찾는가, 그 뉘시오?" 두  귀를 쫑긋거리고
네 발을 발발 놀려 가만히 와서 보니  둥글하고 넙적하며 검고 편편한 것이 매우 이상하게
생기어 머뭇거리기만 했다. "토선생, 어서 이리 오시오." 자라가 자꾸 오라고 청했다. 토끼는
위험이 없다고 느끼어 가까이 가 서로 절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l자라가 먼저 말을 꺼냈
다. "토선생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여서 한 번  보기를 원하였는데 오늘에서야 호걸을 만나
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오이다." 그러자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
나서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구경했지만 그대같이 못생긴 짐승은 처음 보
는 바이오. 담구멍을 뚫다가 학지뼈가 빠졌는지  발은 어찌 그리 몽똥하며, 양반 보고  욕을
하다가 상투를 잡혔는지 목은 어찌 그리 기다랍니까? 사면으로 살펴보아야 나무 접시 모양
이구료. 그건 그렇고 댁은 도대체 뉘시오?" 자라가 듣고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토끼를 잘 꾀어 가려면 성질을 부려선 안되겠으므로 애써  분을 누르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나는 남해 용궁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는 자라이외다. 토선생이 나더러 못생겼다고 하였
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요, 등이 넓은  것은 물에 떠다녀도 가라앉지 않기 위함이요,  목이
긴 것은 먼 데를 살피기 위함이요, 몸이 둥근 것은 모든 처사를 둥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물 속의 영웅이요, 수중 생물의 어른이니 세상에서 문무를 겸한 이는 오직 나뿐인
가 생각되오." 토끼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두고 갖은
풍파를 다 겪었으나 그대와  같은 호걸은 처음 만나오."  자라가 목을 길게 늘이고  물었다.
"그대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오?" 토끼가 한 번 깡충  뛰고는 대답했
다. "내 나이를 알려면 육갑이 몇 번이나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오. 소년 시절에 달나라에 가
서 계수 나무 밑에서  양방아를 찧다가 유궁후예-옛날에 선경에서  불사약을 구한 사람-의
부인이 불로초를 얻으러 왔기에 내가 얻어준 적이 있지요.  이것만 보아도 삼천갑자를 살았
다는 동방삭이 내게는 제자 뻘이요, 팽조-오래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가  비록 오래 살았
다고는 하나 내게 비하면 입에서 젖비린내가 날 정도지요. 그러니 그대와 비교해서 내가 어
른이 아니겠소?" 이를 듣고 자라가 뒤질세라 자기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토선생, 그대는 스
스로 어른이라 칭하니 소가 다 웃겠소이다. 아무튼 내가 지내온  일을 대강 말할 것이니 들
어보시오. 다 듣고나면놀라 자빠질 것이오. 반고-한나라 때의 역사가-의 생일날에 잔치상을
내가 마련해 주었으며 천황씨가 임금 자리에 오를 때 술안주로 어물 갖추기를 내가 했으며
지황씨, 인황씨가 온 세상을 마련하여 다스릴 때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으며, 유소 씨
가 나무를 얽어 집을 지을 때와 수인 씨가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을 때도 모두  나와
함께 의논했다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복희씨가 만든 팔괘로  용마의 등에 하도수를 나
와 하마께 풀어 내었고, 또 공공씨가 싸우다가 하늘이  무너져서 여와씨가 오색돌로 하늘을
기울 때에 석수장이 노릇을 내가 하였지요. 또한 신농씨가 장기를 만들고 온갖 풀을 맛보아
서 의약을 마련할 때에 내가 역시 참견하였으며, 헌원씨가 배를 만들 때 목수 일을 내가 했
으며 축록들에서 치우가 싸울 때에 내가 돌기를 추천해서  잡게 하였으며, 금천씨의 봉조서
와 전옥씨에게 제신하던 술법을 내가 가르쳐  주었소. 그것 뿐이 아니오. 고신 씨가  스스로
제 이름을 자랑하던 말을 내가 옆에서 들었다오. 요임금의 강구노래는 지금까지 흥겹고,  순
임금의 남풍가는 어제인 듯 즐겁구려. 우임금이 구 년 홍수를  다스릴 때에 그 공덕을 내가
칭송하였으며, 탕임금이 상림들에서 비를 빌던 일과 주나라의  문왕, 무왕, 주공의 찬란하던
시절이 내 눈에 아직도 뚜렷하고,  서해 바다로 놀러갔다가 굴원이 벽라수에  빠져 죽을 때
미처 건져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된다오. 이런 일들로 헤아려 보면 나는 토선생보다
몇 천 갑절이나 웃어른이 아니겠소?"  토끼가 듣고 어이가 없어서 입만  딱 벌렸다. 그러자
자라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런 재담은 그만  두고 세상의 재미나 서로 이야
기 해 봅시다."
 토끼가 귀를 벌룸벌룸 하며 대꾸했다. "이 세상의 재미를  말하면 그대는 재미가 나서 오
줌을 줄줄 쌀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둥글넙적한 몸이 오줌 속에 빠져서 뱃놀이하느라고 헤
어나지 못할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자라가 속에서 치밀었지만 꾹  참고 점잖게 대꾸했다.
"헛된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대강 말해 보시오." 토끼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형
씨는 산경치가 어떤 줄 아시오?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데 산을 등지고 물
을 마주 대하니 앞에서 봄비가 연못에 가득  차 있고 뒤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오. 좋은 장소에 집터를 잡고 초당 한 칸을 지으니 반 칸은  청북이 차지하고 나머지 반 칸
은 밝은 달이 차지하는구려. 흙섬돌에  대나무 사립문이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학은
춤을 추고 봉황은 날아 오른다오. 뒷산에서 약을 캐고 앞내에서  고기를 낚으니 이 아니 즐
겁ㅈ를 않겠소? 청산에 밝은 달이 고요한데 깊은 산 속에 홀로 문을 닫고 산다오 .한가로운
구름이 그림자를 희롱하니 이 어찌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니겠소? 이 몸이 구름과 같아서 세
상의 시비가 없고 보니 내 자취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추위가 지나가고 더위가  돌아오면
철이 바뀌었음을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모른다오. 물 맑고
산 푸른 깊은 곳에 온갖 화초는 우거지고 봉황새와 꾀꼬리가 아름답게 지저귀니 이 봉우리
저 봉우리가 풍악으로 가득 차오. 석양에 취한 흥을 반쯤  띄고 강산의 풍경을 구경하며 곤
륜산 상상봉에 흰구름을 쓸어 밀치고 땅의 형세를 내려다보니 태산은 청룡이 되어 있고, 화
산은 백호로 변해 있더이다. 상산은 현무가 되고 형산은 주작이 되었구려. 소상강과  팽려택
으로 연못을 삼고 황하와 양자강으로 띠를 삼아 적벽강의 아름다운 경치는 글을 지어 노래
하고, 아미산의 달빛은 취중에 희롱하고, 삼신산의 불로초는  마음대로 뜯어 먹고, 동정호에
서 목욕하다가 산속으로 돌아오면 바윗돌이 곧 집이 되지요. 한가롭게 누워 있으면 수풀 사
이로 밝은 달이 나타나 은근한  친구와 같고,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은은한 거문고
소리라 할 만하지요. 돌베개를 높이 베고 취흥에 잠이 드니 어디선가 학의 울음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지요. 이윽고 일어나서 한산의 돌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이리저리 거니니 흰 구
름은 천리만리 피어 있고, 밝은 달은  앞내와 뒷내에 골고루 비치고 있다오. 산이  첩첩하고
물이 잔잔하니 이 아니 좋으리오. 도도한 이 내 몸은 산과 물  사이에 있으니 무한한 이 경
치를 어찌 정승 벼슬과 바꾸리오. 동편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부니 한가롭기 그지없고 앞에
있는 시냇물을 굽어보며 글을 지으니 이 아니 좋습니까? 오동밭의 밝은 달은 가슴에 비치고
버들가지의 맑은 바람은 얼굴에 불어오니 청풍 명월이 나의 친구가 아니겠소? 병 없는 이내
몸은 태평한 세상에 한가로운 백성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땅 위의 신선이외다. 강산의 풍
경을 마음대로 희롱한들 그 누가 시비하겠습니까? 배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피고 푸른 버들
이 드리운 곳에 동서남북의 미인들 와서 노니 그 풍경  한 번 근사하지요. 오월 단오날이면
녹음 방초 우거진 곳에 색동옷을 입은 미인들이 버들가지에 그네를 매고 짝을 지어 뛰는 모
습은 광한루가 분명하지요. 풍류를 즐기는 호걸로 태어난 이내 몸은  이 세상 재미를 나 혼
자 즐기고 있소이다."
 말을 다 듣고 난 자라가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습고 우습도다. 그
대의 말은 모두 거짓이니 그  누가 곧이 들으리오. 내가 그대의  신세를 생각하건대 최소한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두 귀를  기울여 잘 들으시오. 동지 섣달 추운  겨울내 흰 눈은
휘날리고 깎아지른 절벽은 빙판이 되어 산골짜기가 막혔으니 어디 가서 지낼 것인가? 이것
이 바로 첫 번째의 어려움이오. 북풍이 사납게 부는데 돌구멍  찬 자리에서 먹을 것은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이는 얼음같이 얼어 붙고 네 다리가 굳어져서 팔자타령 절로 나오
니 이것이 둘째 어려움이오, 봄바람이 따뜻한데 꽃송이와 풀잎이나  뜯어 먹자고 산 속으로
얼마큼 들어가니 뜻밖에 저 독수리란 놈이 날개를  접고 살같이 달려들 때 두 눈에서 불이
나고 작은 몸이 오그라져서 바위틈으로 기어들어 넋을 잃으니  불쌍하구나. 이것이 셋째 어
려움이요. 오뉴월 삼복 중에 산과  들에 불이 나고 시냇물이 끊어질  적에 살에서는 기름이
번지고 털에서는 누린내가 풍풍 풍겨 짧은 혀를 길게 빼고 급한 숨을 헐떡이며 샘가로 달려
갈 대 그 꼴이 오죽 합니까? 이것이 네 번째의 어려움이오. 단풍이 붉어지고 국화꽃이 만발
할 적에 과실이나 얻어먹자고 조용한 곳으로 찾아가니, 아뿔싸  매를 가진 사냥군이 봉우리
에 높이 앉아 있고 근력 좋은 몰이군과 냄새 잘 맡는 사냥개가 뒤를 쫓으니 발톱이  뭉그러
지고 진땀이 바짝 나서 천방지축  달아나는구나. 이것이 다섯째 어려움이오. 천행으로  멀리
도망하여 죽을 고비를 벗어나니까 총 잘 쏘는 포수가 총을 둘러메고 이 목과 저 목에  질러
앉아 탄환을 재어서 염통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니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간장을 말리
며 간신히 도망해 숨을 곳을  찾으니 여섯째 어려움이오. 모진 고생  끝에 간신히 숲속으로
달려드니, 얼숭덜숭한 큰 호랑이가 철사같이 모진 수염을 위엄있게 꼬고 버티고 있구나.  소
리는 우레와 같고 대가리는 산덩이 만하며 허리는 반달 같고 터럭은 불빛인데 칼 같은 꼬리
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주홍같은 입을 크게 벌리고 써레 같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번개같이
날랜 몸을 사방으로 이리저리 번득이며 좌우를 충돌하여 이 골짜기와 저 골짜기를 두루 다
니니 어찌 무섭지가 않으리오. 공연히  돌도 툭툭 밟아보고 나무도 뚝뚝  꺾어보고 하니 그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가 또한 씩씩하여 당당한 산군이로다. 제  용맹을 버럭 써서 횃불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톱날 같은 발톱을 내놓고 숨을 한 번 씩 하고 쉬면 나무가 왔다갔다 하는
구나. 소리를 한 번 우웡 하고 지르면 산악이 움직움직하니 천지가 캄캄하고 정신이 아득하
여 죽을 맛이로다. 이것이 일곱째의 어려움이요. 죽을 것을 겨우 면하고 목숨을 보존하여 넓
은 들판으로 달려드니 침이 말라 목구멍이 다 칼칼하도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변인고.  나
무를 베는 초동들과 소먹이는 아이들이 창과 몽둥이를 둘러메고 잡으려고 달려드니  이것이
바로 여덟째 어려움이오. 그대가 이렇듯 어려울 때에 무슨 경황에 경치를 구경하며 어느 틈
에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먹고 동정호에 가서 목욕할 것이오? 그 밖에 다른 고생도 부지
기수이지만 그대가 듣기에 좋지 않은 듯하여 이만하겠소."
 토끼가 듣고 샐쭉하여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소진-전국 시대의 웅변가-과 장의-전국시대
의 웅변가-말씀도 잘 하시고 소강절의 추수인지 알기도 잘 아오. 그러나 남의 흠을 너무 말
하지 마십시오. 듣는 이도 생각이 있소이다. 거룩하신 공자님도 진채에서 어려움을 당하셨고
천하제일의 장사였던 초패왕도 대택 속에 빠졌으니 화와 복은 하늘에 매여 있고 잘되고 못
됨은 운수에 달린 것이오. 그건  그렇고 그대의 고향인 용궁의 재미는  어떤지 한번 말씀해
보구려." 자라가 목청을 가다듬고 점잖게 입을 열었다. "우리 용궁의  얘기를 하면 토선생은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오. 오색 구름이 깊은 곳에 붉고  높은 궁궐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백
옥으로 층계를 만들고 호박으로 주춧돌을 하였으며 기둥은 산호요, 난간은 대모로다. 황금으
로 기와를 잇고 유리창과 수정렴에 야광주로 초롱을 달고 칠보를 방마다 깔았으니 그 빛깔
은 햇빛마저 가리고 서기가 공중에 서려 있소이다. 날마다  잔치가 베풀어지고 잔치마다 풍
류가 귾이지를 않으니 정말 선경이오. 연꽃 같은 미녀들이 쌍쌍이 춤을 추며 포도주와 벽동
주와 천일주를 앵무배에 가득히 부어 놓고 호박반 유리상에 금강초 옥찬치 불사약을 소복히
담아다가 일일이 권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황홀해지지요. 아미산의 달빛과 적벽가으
이 좋은 경치, 방장산 봉래산 영주산을 낱낱이 구경하고 뱃놀이를  한 끝에 돌아올 적에 채
석강, 소상강, 동정호, 팽려택을 뜻대로 오고가니 이 아니 좋은가. 이슬은 강에 빗겨 있고 물
빛은 하늘을 접하였구나. 지는 노을은 따오기와 함께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빛일 때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남으로 터져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지요. 모랫가에 기러기
는 내려 앉고 흰 갈매기는 잠드는구나. 어디선가 구슬픈 퉁소 소리는 어부사를 화답하니 깊
은 구렁에 잠긴 용은 춤을 추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는 슬피  운다오. 달이 밝고 별은 드
문드문한데 까마귀와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이 비파를 뜯어 울적함을 씻어주고 강 건너편에
서 장사하는 아가씨가 부르는 노랫가락은 간장을  녹여내는구나. 밤중에 은은한 쇠북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가. 바람결에 뚜렷한 방망이 소리는 강촌에서 울리는 거로구나. 초강에
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어기여차 노래하고 금못과 옥섬에서 연꽃을 따는 아가씨들은  상사곡
을 노래하니 정신이 다 황홀하구나. 아마도 신선 세계는 수궁 뿐인가 생각되오."
 토기가 저으기 의심이 일어나 흥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구
료. 나는 본래 팔자가 기박하여 산림처사로 산중에 매여 있으니  부질 없이 남의 호강을 부
러워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자라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나는 벗을 위하여  좋은 도리를
권하려고 한 것이니 그대는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마시오.  옛말에도 말하기를 위태한 곳에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말라고 했소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냥 살고 계시오? 이제 이렇게 나를 만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
니다. 만약에 그대가 이 티끌 세상을 하직하고 나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간다면 선경에서놀
면서 천도, 반도 복숭아와 불사약, 천일주, 홍감로를 날마다  취하도록 먹을 수 있을 것이외
다. 또한 깊은 대궐 높은 집에서 무산의 선녀가 벗이  되어 순임금의 오현금과 왕대욱의 옥
퉁소와 춘면곡, 양양가를 때때로 화답하며 악양루의  경치도 구경하고 등왕각에서 잔치하니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오? 그리고 황학루에서 글도 짓고 봉황대에서 술을 먹으니 태
평한 세상의 부귀공명은 꿈 속에서  부쳐 두고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십시오." 자라가 그럴
듯하게 꾀자 토끼는 수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의 말은 비록 듣기에는 좋
으나 매우 위태하오. 속담에 이르기를 팔자 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한다고 했소이다. 나처
럼 육지에 살던 몸이 무엇하러 물나라에 들어가겠소? 용궁의 고생이 육지의 고생보다 더하
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소? 첫째로 숨을 쉴 수가 없을 것이니 세상 만물 중에서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으며, 둘째로 네 발은  멀쩡해도 헤엄을 칠 줄 모르는데 넓
고 깊은 푸른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갈 것입니까? 팔자에 없는 남의 호강을 쓸데없이 욕심내
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대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갔다가는 반드시 일곱 구멍에 물이 들어
가 필경 죽을 것이오. 내 목숨을 속절없이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면  임자 없는 내 넋이 푸
른 바닷물 속에 외로운 넋이 되어서 굴원과 짝이 될 것이니 일가친척과 자손들이 어떻게 나
를 찾을 수 있겠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십에 팔구는  위태합니다 그려." 자라가 웃으며 그
럴 듯하게 대꾸했다. "토선생은 어찌 그리도 답답합니까?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릅니다 그려. 옛말에도 긴 강을 한 개의 갈대로 건너간다라고 했소이다. 여선문-송나라의
상량문을 잘 짓는 인물-은 광묘궁에 들어가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천하에  글 잘 짓는 이태
백은 고래를 타고 달을 건지러 들어갔고, 삼장법사는 수륙 삼천 리를 건너가서 대장경을 구
해왔고, 한나라 대 장건은 은하수에 올라가서 직녀의 지기석을 주워 오고, 서방세계의  아란
존자는 연잎에 거북을 타고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쳤으니 생물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데 공연히 죽을 것 같습니까?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렇듯 연약하니 될 말이오? 자고로
군자는 사람을 몹쓸 곳에 추천하지  않는 법이니 내가 어찌  그대를 나쁜 곳에 권하겠습니
까?" 토끼가 마음이 솔깃하여 물었다. "나는 본디  산중에 깊이 살아 벗을 사귀지 못하였고
또한 평안이 살 곳을 찾고자 한 생각이  없지 않으니 그대가 빨리 가르쳐 주면 어떻겠습니
까?" 자라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이놈이 드디어 내 계략에 말려드

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사뭇 점잖은 투로 말했다.  "내가 그대의 얼굴을 보니 털빛이 누
릇누릇, 해뜩해뜩하고 금빛을 띠었으나 염려할 필요가 없소이다. 목을 길게 타고났으니 고향
을 바라보고 타향살이할 기항이요, 하관이 뾰족하니 위로 구하면  거슬리게 되어 무슨 일을
해도 어렵지만 아래로 구하면 순리대로  되어 온갖 일이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두
귀가 희고 잘 생겼으니 남의 말을 잘 들어 부귀를 누릴 것이요, 이마가 탁 틔었으니 용문에
올라 이름을 빛낼 것이요, 목소리가 부드러우니 사는 동안 험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토선생
의 관상이 이처럼 좋으니 이 뒤에 영화와 부귀가 무궁하여 즐거움을 누리는데 끝이 없을 것
입니다. 당나라 명황의 양귀비와 한나라 무제의 승로반이요, 팔자로는 백자천손을 거느린 곽
자의요, 부자라는 석승이요, 풍악으로는 요임금의 대황곡과 순임금의 봉조곡, 장자방의 옥퉁
소가 저절로 따를 것입니다. 또한 사마상여의 거문고에 탁문군이 담을 넘어올 것입니다.  말
솜씨는 전국시대를 휩쓸던 소진과  장의도 따라오지 못하고, 가슴에  품은 경륜은 팔진도로
지휘하던 제갈량이 저리 물러갈 것이오. 이러한 생김새와 너그러운 마음씨가 세상에 으뜸이
요, 천하를 주름잡을 만한 영웅호걸입니다. 그대가 마침 팔딱팔딱 뛰는 버릇이 있으므로  이
땅에서만 묵혀 있어서는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즐거움을 결코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
어 그 전과같이 재앙만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 땅을 떠나야만 온갖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니
심사숙고하시오." 토끼가 듣고 나더니 기분이 좋아 코를 벌름벌름하면서 말했다. "내 얼굴도
뛰어나지만 그대의 관상보는 재주도 신통하구료.  내가 그대를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닙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한 것이 평생에 남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떠돌
이꾼을 좋은 곳에 추천하니 고맙기가 그지없소이다. 그건 그렇고 수궁에 들어가면 벼슬하기
는 쉬운지요?" 자라가 듣고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네가 드디어 내 꾀에  말려 들

구나.' 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토선생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군요. 역산에서 밭을 갈

순임금은 당요로부터 임금자리를 물려받았고,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
의 스승이 되었고, 신야에서 밭을 갈던 이윤은 탕임금의 재상이 되었고, 부암에서 담을 쌓던
부열은 은나라 고종의 어진 재상이 되었고, 소를 먹이던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의 정승이 되
었고, 빨래하는 여자에게서 밥을 빌어먹던  한신은 한나라의 명장이 되었으니, 이  세상이나
우리 수국이나 뽑히기는 일반이오. 어진 임금은 신하를 가려 쓰고, 밝은 신하는 임금을 가리
는 법이니 우리 용왕께서는 문무를 다 갖추시어 어진 선비를 널리 구하는 중이올시다. 그래
서 한 가지 능력과 한 가지  재주만 있는 자라도 모두 높은 벼슬에  올려 쓰십니다. 나같이
재주없는 인물도 벼슬이 외람되게 주부에 이르렀으니 더구나 토선생처럼 훌륭한 바탕과  뛰
어난 문필을 지닌 인물이야 가기만 하며 부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용궁에
는 역사책을 꾸미지 못해 태사관-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이  될 인물을 널리 구하고 있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근심한 지가 오래입니다. 보아하니 토선생의  글재주가 이 소임에 꼭
알맞을 듯합니다. 만약 그대가 중서군의 옛붓대를 잡아 동호의 의리를 밝혀 준다면 우리 수
국의 다행이겠고 그대의 높은 이름이 온 세상에 떨쳐질 것입니다. 내가 토선생과 함께 용궁
으로 들어가면 즉시 우리 용왕께 곧장 추천할 것입니다."
 토끼가 듣고 마음이 솔깃했지만 아직도 의심이 있어 주저했다. "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지
만 어젯밤의 내 꿈이 불길하니 마음에  저으기 꺼림칙합니다." 자라가 듣고 점잖게  말했다.
"내가 젊어서 조금 해몽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대의 꿈  얘기를 한 번 듣고 싶소이다." 토끼
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대꾸했다. "꿈에 칼을 빼어 배에 대고 몸에 피를 칠해 보이니 아마
도 좋지 못한 일을 당할까 염려됩니다."  자라가 잠시 생각하다가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너무 좋은 꿈을 가지고 공연히 걱정하십니다. 그려. 배에 칼을 대었으나 칼은  곧 금이므로
금띠를 띌 것이요, 몸에 피칠을 하였으니  붉은 관복을 입을 징조입니다.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칠 것이니 이 어찌 부귀할 꿈이 아니겠오? 공자가 주공을 본 것은 성인의 꿈이요, 장자가
나비로 된 꿈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꿈이요, 제갈공명이 초당에서 꾼 꿈은 먼저 깨달았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의 꿈은  수국으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 위에  오를 것을 의미하니
이 얼마나 좋은 꿈입니까?"
 토끼가 듣고 정신이 황홀해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높은 벼슬길에  오를 것만 같았다. 해서
기쁜 얼굴로 자라를 보며 말했다. "그대의 해몽 실력은 참으로 귀신같소이다. 소강절-송나라
의 학자-과 이순풍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그대보다 잘 풀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꿈
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 부귀는 손 안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나 넓고 깊은
바닷속을 어찌 들어가겠습니까?" 자라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토선생은 조금도 염려하
지 마십시오. 내 등에만 오르면 어떤 풍랑이라도 파선할 염려가 없고 무사히 용궁에 당도할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겠소?" 토끼가 제법 점잖은 체하며 사례했다. "그대가 벗을 위하여 이
렇게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하니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대의 등에
올라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 마음이 불안하구려." 자라가 웃으며 말했다. "토선생은 참으
로 고지식합니다. 그려.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항과 함께 수레를 함께 탔
고, 이문에서 문을 지키던 투영이는 신릉군의 웃자리에 앉았으며  부추산에서 밭을 갈던 엄
자릉은 한나라 광무제와 한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그러니 친구를 위한 자리에 높고 낮음
이나 귀하고 천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함께 들어가면 한평생  즐거
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것이니 무엇이 미안할 것이 있습니까?"
 토끼가 크게 기뻐하여 고개를 숙여 절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높은 은혜는 참으로 뼈
에 사무치도록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못당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중에서도 저 몹쓸 사람들이 총을 둘러메고 암상스럽게 보챌 때는 송편으로 멱을 따고 접시
물에 빠져 죽고 싶은 때가 그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맏아들 놈은 나무하는 아
이에게 죄없이 잡혀가서 구멍밥을 먹어가며 갇힌 지가 어느덧 칠판 년인데 놓여 나올 가망
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놈은 사냥개에게 물려가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었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속이 상해서 어찌하면 이 원수
같은 세상을 하직할까 생각하며 밤낮으로 궁리하던  차에 천만 뜻밖에도 그대 같은  군자를
만나 밝은 세상을 보게 되니 이것은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도우신 것으로 압니다. 성인이
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고 하더니 나와 같은 영웅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알 것입니까? 하늘
에서 내리신 영웅이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헛되이 산중에서 늙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수국의 백성들이 어진  벼슬아치를 만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토끼는 의기양양하여
자라와 함께 바다로 떠나려고 했다. 이때 바위 뒤에서 한 짐승이 달려나오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의 수작을 처음부터 대강 들었도다. 이 어리석은 토끼야, 내  말을 자
세히 들어보아라. 대개 부귀 공명이란 뜬구름과  같은 것이요, 또 차례가 있는 법인데  네가
이제 허무맹랑한 자라의 말을 듣고 죽을 땅에 가려고 하니 그 아니 불쌍하냐? 그리고 속담
에도 이르기를 고향을 떠나면 천해진다고 했으니 네가 만약 용궁으로 들어간들 무슨 부귀를
갑자기 얻을 것이냐? 너는 헛된 욕심을 내지 말고 나의 충고를 듣거라." 토끼가 이 말을 듣
고 두 귀를 쫑긋거리며 발을  멈추는 것이 머뭇거리는 빛이 완연했다.  자라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너구리였으므로 크게 노하여 속으로 욕을 했다.  '내가 지금 토끼를 온갖 꾀로 달

어서 거의 뜻을 이루었는데 저 원수 같은 너구리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방해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만약 어색한 빛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간사한 토끼 놈이 의심할 것이니 내가
먼저 너구리 놈의 말을 타박하여 토끼가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 해서 껄껄 웃으며 너구리

향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찌 그리  무식하오? 조주땅 선비인 여선문은 일
개 가난한 문사였으나 우리 수궁에 들어와서 영덕전의 사량문을 지었으므로 우리  용왕께서
야광주 열 개와 통천서각 한 상을 내리셨오. 이 소문이  천하에 알려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그대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구료. 더구나 태사관은  나라의 귀중한 벼슬이므로 내
가 토선생의 문장과 필법을 아끼어 함께 가자고 한 것인데 그대가 공연히 남을 의심하여 마
치 천한 벗을 죽을 땅으로 인도하는 것같이 말씀하니 이 무슨 논리입니까? 나는 남의 의심
을 받아가며 토선생과 함께 가지는 못하겠오." 준절히 꾸짖고는 토끼를 보고 정중히 말했다.
"내가 토선생과 지난날에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찌 그대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일을 권
하겠습니까? 그대는 나와 불과 하루의 사귐이 있을 뿐이니 어찌 옛친구의 충고를 저버릴 수
있겠소. 나는 본래 우리 용왕의  분부를 받들고 동해로 사신차 갔다가  오는 길이므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떠나렵니다. 토선생은 부디 편히 지내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
게 돌아서서 가려고 하니 너구리는 무안하여 한편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토끼의 마
음이 급해져 너구리를 향해 매섭게  꾸짖었다. "네가 무슨 일로  남의 앞길을 방해하느냐?"
하고는 급히 자라를 쫓아가며 크게 소리쳤다. "주부어른, 그대는 거기 잠깐 머물러  나의 말
을 들으시오." 자라는 속으로  크게 기뻤으나 일부러 두어  걸음 더 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토선생은 무슨 일로 나를 쫓아옵니까?" 토끼는 점잖게 한 마디 했다. "그대는 왜 이다지도
마음이 넓지 못합니까? 내가 아무리 어리석으나 어찌 무식한 자의 부질없는 말을 곧이 들으
려고 합니까. 내가 어찌 그대가 나를 생각해 주는 점을 모르겠습니까? 내가 잠깐 망설인 것
을 탓하지 말고 어서 떠납시다." 자라가 크게 기뻐하여  서둘러 토끼와 함께 해변으로 내려
갔다. 망망한 대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산에서만 살던 토끼 어찌 놀라지  않으랴. "아
니, 저게 모두 물이요?" "그렇지요." "수국의 사람은 모두 저 속에서 산단 말씀이요?" "물론
이지요." "콧구멍에 물이 들어갈 테니 숨을 쉴  수 있겠오?" "그렇기에 내 콧구멍은 조금만
뚫렸지요." "내 코는 구멍이 크니  어찌하란 말씀이요?" "쑥 잎을  뜯어 막으시오." "얼마나
깊으오?" "한 번 빠지면 한  달을 내려가도 발이 땅에  닿지 않으오."수작하며 토끼를 등에
업고 푸른 물결에 뛰어들어 남해 용궁으로 향했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
니 소상한 깊은 물은 눈앞에 고요하고 동정호 넓은 호숫물은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 하겠구
나. 토끼는 마음이 흐뭇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자라를 만나 세상의
티끌과 산중의 고생을 다 내던지고 수국으로 들어가사 부귀를 누릴 것이니 어찌 즐겁지 않
겠는가?' 해서 자기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서 한 곡조의 노래를 불렀다.
 <세상을 하직하고 길을 떠나니 물나라가 푸른 산보다 크구나. 자라 등에 높이 앉아  한없
이 가고 또 가니, 흰 구름이 오고  가며 웃는도다. 내가 장차 사기의 붓대를 잡으면  수국의
백성들이 모두 무릎을 꿇을 것이로다. 부귀와 영화에 맑고  한가함을 겸하였으니 평생의 편
안함을 기약하는도다.> 토끼는 노래를 마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자라가 듣고 속으로 코
웃음을 쳤다. '이 토끼란 놈이 정말 교만하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노래로  화답했다. <

조각 붉은 마음을 품고 바쁘게 청산을 오고가는구나. 이 몸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푸른 물
결을 박차고 갔다 오는구나.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세우니 대왕의 기쁜 안색을 뵈오리라.
우리 대왕의 병환이 쾌차하시고 나라의 평안함을 기뻐하리라.> 토끼가 듣고 마음 속에 의심
이 크게 일어 물었다. "그대의 노래 속에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구려. 무슨 까닭이요?"
자라는 속으로 움찔했으나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흥이 나서 그냥 부른 것인데 거기
에 무슨 뜻이 있겠오?" 토끼는 그래도 의심이 안 가셔져 다시 물었다.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세웠다고 한 것과 우리 대왕의 병환이 나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자라가  토끼의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네가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나를 의심해도  소용없을  것이
다.'
이에 대꾸하지 않고 바삐 헤엄쳐 눈깜짝할 사이에 남해  수궁에 이르러 토끼를 내려놓았다.
"그대는 부질없이 나를 의심하지 말고 빨리 숙소로 갑시다." 자라의 말에 토끼가 눈을 들어
살펴보니 천지가 넓고 해와 달이 밝은데 눈부신 대궐이 하늘에 솟아 있고 문과 창에는 서기
가 어려 있었다. 토끼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심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 자라를 따라 숙소
에 이르렀다. "토선생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바로 용궁에 들어가서 우리  대왕께
그대와 같이 온 것을 여쭈고 오리다." 자라가 말하고  바삐 나가므로 토끼는 마음속에 다시
의심이 일었다. '내가 이처럼 멀리 왔는데 술 한 잔도  대접하지 않고 바삐 궁중으로  들어

니 이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어  의심을  떨어냈다. '아마 나의 높은 이름

수국의 임금과 신하들에게 먼저 들어가서  아뢰려는 거로구나. 임금은 급히  통문관 대제학
벼슬을 주시어 며칠 안으로 여러 해 그냥 두었던 사기를 쓰라고 하기에 정신이 없어 사소한
접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 해서 할 일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이때 자라가 급히 궁
중으로 들어가니 모여있던 신하들이 모두 반기며 즉시 용왕께  아뢰었다. 용왕은 자라를 불
러들여 용상 아래 가까이 앉으라 하며 무사히 다녀온 것을 치하하는 한편 토끼의 소식을 물
었다. 자라가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이 왕명을 받자와 거친 풍랑을  헤치고 무
사히 동해가에 이르렀나이다. 하여 그곳 깊은 산으로 들어가 토끼 하나를 만나 백가지로 꾀
고 천 가지로 달래어 간신히 데리고 지금에야 돌아와 토끼를 여관에 머물러 있게 하고 급히
들어왔나이다. 그 동안 귀하신 몸의 병환은 어떠하신지 염려가 되옵니다." 이어 토끼를 꾀던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용왕이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기뻐하셨다. "그대의 충성심과 말재주
는 가히 남해 용궁에서 으뜸이라 할 만 하도다. 하늘이 도우셔서 그대 같은 신하를 내게 내
린 것이로다." 용왕은 즉시 온 조정의 신하들에게 분부하셨다. "짐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자
옵고 수국의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다스렸지만 덕이 부족하여  늘 두려운 생각이 들었도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치료할 방법이  아득하던 중에 별주부의 지극한 충성으로  인간
세상에 나아가 토끼를 얻어왔으니 이제 그 간을 시험하면 짐의 병이 깨끗이 나을 것이로다.
이는 온 나라의 큰 경사이므로 모든 신하들은 영덕전으로  모여라. 별주부는 특별히 벼슬을
높여 자헌대부-정이품의 문관벼슬,-약방제조-궁중의원의 우두머리-겸 충훈부당상을 제수하
노라." 자라가 듣고 황공하여 엎드려 절했다. "항공무지로소이다." 모든 신하들이 이 분부를
듣고 즐거워하며 일제히 영덕전으로 모였다. 이윽고 하례가 끝난 다음 용왕이 분부했다 ."어
서 토끼를 잡아 들여라." 그러자 금부도사 명태가 나졸들을 이끌고 여관으로 풍우같이 달려
갔다. 한편 토끼는 여관방에 앉아서  자라가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자라는 오지 않고 대신 금부도사가 이르러 어명을 전하며 나졸들을 시켜 꽁꽁 묶은 다음 바
람처럼 몰아다가 영덕전 아래에 꿇어앉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토끼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
고 용상을 우러러보니 용왕이 머리에 황금관을 쓰고 몸에 용포를 입고 손에 백옥홀을 쥐었
는데 뭇신하들이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것이 매우 엄숙하고  위세가 놀라웠다. 용왕이 선전
관 전어를 시켜 토끼에게 분부하셨다.  "짐은 수국의 왕이요, 너는 산중의  조그만 짐승이로
다. 짐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남해를 다스리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운지 오래인
데 오직 너의 간만이 약이 된다고 하는도다. 해서 특별히 별주부를 보내어 너를 데려왔으니
너는 죽음을 한탄하지 말라. 네가 죽은 뒤에는 네 몸을  비단으로 싸고 백옥과 호박으로 관
을 만들어 명당자리에 장사지내 줄  것이다. 만약에 짐의 병이 낫기만  하면 마땅이 사당을
세워 너의 공을 잊지 않을 것이로다. 네가 산중에 있다가  호랑이와 늑대의 밥이 되거나 사
냥군에게 잡히어 죽는 것보다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느냐? 짐이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
니니 너는 죽은 넋이라도 짐을 원망하지 말라." 이어 신하에게 명하여 빨리 토끼의 배를 갈
라 간을 꺼내 오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군사들이 한꺼번에 우- 몰려들었다. 토끼는 공연히
헛된 욕심을 내어 자라를 따라 왔다가 물 속에서 원통하게  죽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
기 스스로 취한 화인지라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세상에 턱없이 명예와 이익
을 탐내는 자는 능히 이것을 보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토끼는 용왕의 분부를 듣자 마
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머리를 깨뜨리는 듯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부질없이  부

와 영화를 탐내어 고향을 버리고 왔으니 어찌 뜻밖의 변이 없겠는가? 이제 날개 있다 해도
날아가지 못할 것이요, 땅을 좁히는 술법이  있다 해도 날아가지 못할 것이요, 땅을  좁히는
술법이 있다 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테니  꼼짝없이 원통한  귀신이 되는구나.' 토끼는  

각할수록 기가 막혀 속으로 자신을 호되게 꾸짖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죽을 곳에 빠진 뒤

살아난다 하였으니 어찌 죽기만을 생각하고 살아날 방도를 헤아리지 않겠는가.'
 토끼는 갑자기 한 꾀가 떠올라 짐짓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용왕이 보고 토끼가 죄 없이
죽는 것이 원통해서 우는 줄  알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하였다.
"너무 서러워하지 말라. 네가 우니 짐의 마음도 아프구나." 토끼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
다. "대왕께 아뢰오. 소인 토기는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대왕
은 수국의 어른이시고 소인 토끼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오니 만일에 소토의 간으로 대왕
의 병환이 나으신다면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또 소토가 죽은 뒤에 후하게 장사지내며
심지어 사당까지 세워 주신다고 하시니 이 은혜는 하늘같이 커 소토는 죽어도 여한이 없나
이다. 다만 소토가 비록 작은 짐승이오나 보통 짐승과 달라  본래 방성의 정기를 타소 세상
에 내려와 날마다 아침이면 옥 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밤낮으로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운
풀을 뜯어먹으므로 그 간이 참으로 신령스러운 약이 되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
를 알고 항상 소토를 만나면 간을 달라고 보채옵니다. 이에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몸
에서 꺼내어 푸른 산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어 높고 험한 산봉우리 깊은 곳에 감추어  두고
다니다가 뜻밖에 자라를 만나게 되었나이다. 만약에 대왕의 병환이  이렇게 중한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찌 가져오지 않았겠나이까?"  용왕이 들으시고 크게  성내어 꾸짖었다. "네가
참으로 간사한 놈이로다. 천지간의 온갖  짐승이 어찌 간을 넣었다 꺼냈다  할 수가 있겠느
냐? 네가 얕은꾀로 짐을 속여 살기를 꾀하나  짐이 어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속겠느냐?
네가 짐을 속인 죄는 더욱 크니 빨리 너의  간을 꺼내어 짐의 병을 고치는 한편 짐을  속인
죄를 다스릴 것이로다." 토끼가  듣고 정신이 아찔하고  가슴이 막히어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가 속절없이 죽는구나!' 그러나 애써 용기를 가다듬어  다시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소토

아뢰는 말을 자세히 들으시고 굽어살피옵소서. 만약 소토의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대왕의
병환도 고치지 못하고 소토만 부질없이 죽을 뿐이니 다시 그 누구에게 간을 구하시려고 하
시나이까? 그때에는 뉘우쳐도 소용없으니 대왕께서는 세 번 생각 하시옵소서."
 용왕이 토끼의 말을 듣고 또 그 기색이 태연함을 보고  약간 믿는 눈치였다. "네 말과 같
다면 간을 넣었다 꺼냈다 하는  표적이 있을 것이로다." 토끼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이제는 내게 살아날 길이 있구나.' 해서 엎드려 공손히 아뢰었다. "세상의 날짐승
과 들짐승 가운데 소토만이 홀로  아랫몸에 구멍이 셋 있나이다." "셋이라고?"  "그렇사옵니
다. 하나는 대변을 볼 때 쓰옵고, 또 하나는 소변하는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간이 출입하
는 곳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크게  꾸짖었다. "네 말이 어찌 그리  간사스러우냐? 날짐승과
들짐승을 막론하여 어찌 아랫몸에 구멍이 셋 있는  것이 있겠느냐?" 토끼가 다시 여쭈었다.
"소토의 구멍이 셋이 있는 내력을 아뢰겠나이다. 대개 하늘이 자시-밤  열 한 시에서 한 시
사이-에 열려 하늘이 되옵고, 땅이 축시-밤 한 시부터  세 시까지-에 열려 땅이 되옵고, 사
람이 인시-밤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에 생겨 사람이 되옵고, 만물이 묘시-아침 다섯 시부
터 일곱 시까지 -에 나와 짐승이 되었나이다. 여기서 묘라는 글자는 곧 토끼의 다른 이름이
니 날짐승과 들짐승의 근본을 살피자면  소토는 곧 짐승의 으뜸이라 할  수 있나이다. 산의
풀을 밟지 않는 저 기린도 소토의 아래이옵고 굶주리되 좁쌀을 먹지 않는 저 봉황새로 소토
만 못하옵기에 특별히 해와 달과 별의 세 빛을 따라 아랫 몸에 세 구멍이 있나이다. 대왕께
서 소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토의 아랫몸을 한번 조사해 보시옵소서." 용왕이 듣고
이상하게 생각되시어 나졸을 시켜 자세히  살피게 했다. 그러자 과연 토끼의  아랫 몸에 세
구멍이 있지를 않은가. 용왕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말을 간이 구멍으로  꺼낼 수
있다고 하니 도로 넣을 때는 그리로  넣는가?" 토끼가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내 꾀가 거의 맞아 들어가는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엄숙히 대답했다. "소토는 다른 짐승
과 같지 않은 점이 많사옵니다. 만약에 새끼를 배려면 보름달을 바라보아 배옵고 새끼를 낳
을 때는 입으로 낳사옵니다. 옛글을 보아도  능히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을 넣을  때에도
입으로 넣사옵니다." 용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간을 자유롭게 출입시킨다
하니 혹시 깜빡 잊고 간이 몸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서 꺼내어 짐의 병을 고치도록
하라." 토끼가 다시 아뢰었다. "소토가 비록 간을 능히 넣고 빼고 하오나 또한 정한 때가 있
사옵니다. 달마다 초하루부터 십오 일까지는 뱃속에 넣어 해와  달의 정기를 빨아들여 음양
의 기운을 받사옵니다. 그리고 십 육일부터 달 말까지는 몸에서 꺼내어 맑은 시냇물에 깨끗
이 씻어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바위틈에 아무도 알지 못하게 감추어 두기 때문에 세상 사람
들이 영약이라 하옵나이다. 오늘은 마침 오월 하순이니 만약  자라가 대왕의 병세가 이렇듯
중하심을 말하였다면 며칠 더 있다가 가져 왔을 터인데 아깝나이다." 그러자 자라가 엎드려
용왕께 아뢰었다. "토끼의 간이 출입한다는 말은 사기에도  없사옵고 이치에도 부당하니 먼
저 배를 가르게 하옵소서. 그래서 간이 없으면 신이 다시  땅으로 나가 다른 토끼를 잡아오
겠나이다." 토끼가 듣고 큰일이다  싶어 호되게 꾸짖었다. "자라야,  네 하는 수작이 갈수록
방정맞구나.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 모든 것을 얘기했다면 약이 많이 든 간을 여러 개 주었
을 것이다. 그런데 네 속이 응큼하여 벼슬하러 수궁으로 가자고 나를 꾀기만 했으니 이것이
첫 번 허물이로다. 그리고 대왕의 병세가 시급하니 어서 간을  가져와야 치료할 수 있을 텐
데 무조건 나만 죽이라고 하니 한심하구나. 네놈의 생긴 형용이 음침하고 고약하니 함께 안
락함을 맛볼 수가 없도다. 나를 죽여  간이 없으면 어떤 토끼가 다시  오겠느냐? 내가 수궁
벼슬하러 너를 따라갔다는 말이 온 산중에 퍼졌을 테니 만약에 내가 다시 안 나가고 너  혼
자 또 나가면 산중 벗들이 나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을  것이로다. 그렇게 되면 다른 토끼를
잡기는커녕 네 목숨조차도 보전키 어려울 것이다. 너 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대왕의 병환
은 어떻게 고치겠느냐? 너처럼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말을 하니 가엾구나. 정말
나라 망칠 역신이로다. 내 목숨 죽는 것은 조금도  한이 없다. 독수리, 사냥개에게 구차스럽
게 죽지 a라고 수정궁 용왕 앞에서 칼로 이 배를 가르면 그런  영화 어디 있겠느냐? 자, 어
서 내 배를 갈라라." 토끼가 배극 왈칵왈칵 내미니 자라는 대꾸할 말이 없어 눈만 꿈뻑꿈뻑
했다. 용왕이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배를 갈라 간이 없다면 토끼만 죽을 것이 아닌
가. 그렇게 되면 어디 가서 다시 토끼를 잡아온단 말인가? 차라리 잘 달래어 간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신하에게 명하여 토끼를  묶은 것을 끌러주고 용상 가까이 불러올

니 토끼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용왕은 옥으로 만든 잔에다 천일주를 가득 부어 토낑
게 주며 놀란 마음을 진정하라고 위로하였다 ."토선생은 짐이 실례한 것을 용서하라." "황공
무지로소이다." 토끼가 공손이 받들어 마신  다음 아뢰는데 갑자기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신이 듣자하니 토끼는 본래 간사한 짐승이라 하옵나이다. 또 옛말에도 군자는 이
치를 따져 속인다고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토끼의 말을 곧이 듣지 마시고 어서
간을 꺼내어 귀하신 몸을 고치시옵소서." 모두가 바라보니 바른 말 잘하기로 이름난 대사간
자가사리였다. 토끼가 듣고 가슴이 떨려 얼른 엎드려 죄를 청했다. "대왕께서 소토가 거짓말
을 아뢰었다고 믿으신다면 서슴치 마시고 소토의 배를  가르시옵소서." 용왕이 웃으며 말했
다. "토선생은 산중의 선비인데 어찌 거짓말로  짐을 속이겠는가. 대사간은 물러가 있으라."
이어 토끼를 위해 잔치를 베풀라 명하였다. 토끼가 대접을 받는데 금강초, 불로초는  옥으로
된 쟁반에 가득 담겨 있고, 향기롭고 맑은 술은 잔마다 가득히 차고 풍악이 꽝꽝  울리었다.
또 미녀 수십 명이 나와 춤추며 노래하니 토끼는 절로  흥이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간

내어주고도 죽지 않을 것 같으면 이곳에서  살고 싶구나.' 이때  용왕이 토끼의 기분  좋음

보고 은근히 위로했다. "짐은 수국에 있고 그대는 산중에  있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서로 만난 것은 좀체로  보기 힘든 기이한 인연이로구나. 그대가  짐을 위하여 간을
가져오면 짐이 어찌 그대의 두터운 은혜를 저버리겠는가. 후한 상을 내릴 뿐만 아니라 부귀
를 같이 누릴 것이니 그대는 깊이 생각하여 실행하라." 토끼가 엎드려 공손이 아뢰었다. "대
왕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소서. 소토가 분수에 넘치게 대왕의  너그러우신 덕을 입고 목숨
을 살렸으니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나이까? 하물며 소토는 간이 없을지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이를 아끼겠나이까?" 용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토선생의 뜻은 참으로 크
도다." 잔치가 끝나나 뒤에 용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토끼를  인도하여 딴 궁궐에 가서 쉬게
했다. 토끼가 신하를 따라 갔더니 너무나 화려한 것이 눈이 으리으리했다. 운모병풍과  진주
발이 사방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저녁밥을 올린 것을 살펴보니  맛있는 음식들이 여지껏 듣
도 보도 못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토끼는 자신의 처지가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여 속으로 궁
리했다. '내가 비록 한때의 속임수로 용왕을  속였으나 이곳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다가는 큰

날 것이다.' 해서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튿날 다시 용왕을  뵙고 여쭈었다.
"대왕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므로 소토는 빨리 산중으로 가서 간을 가져올까 하옵니다.
부디 소토의 작은 정성을  살피옵소서."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며 자라를 불러  분부하셨다.
"그대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토선생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나가 간을 구해 오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자라가 머리를 조아리며 분부를 받들었다.  용왕이 다시 토끼에게 말했다. "토
선생은 빨리 돌아오라." 하고는 진주 이백 개를 선물로 내리셨다. "이것은 비록 적은 것이지
만 우선 짐이 정으로 선사하노라." "황송하나이다."
 토끼가 공손히 받은 후에 용왕께 하직하고 용궁을 벗어났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모두
나와 전송하며 빨리 간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부탁하는데 대사간 자가사리만은 보이지가  않
았다. 이 때 토끼가 자라의 등에 다시 올라타고 넓고 푸른 바다를 건너 바닷가에  이르렀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서 내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속으로 외쳤다. '이는 참으로 그물을 벗

난 새요, 함정에서 벗어난 호랑이로다. 만약 나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고향 산천을 다시
볼 수 있겠는가.' 해서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  놀았다. 자라가 이를 보고 재촉했다. "우리

길이 바쁘니 어서 빨리 간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다." 토끼가 듣고 눈을  부릅뜨며 꾸짖었다.
"네 이놈 자라야, 네 죄를 논하자면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겠도다. 대체 오장육부에 붙은 간
을 어떻게 넣고 빼겠느냐? 이것은 내 기특한 꾀로 너의 왕과 신하들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너의 용왕의 병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그야말로 바람난 말과 소는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
다는 옛말과 같은 것이다. 또 네가 공연히 산중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나를 갖은 감언이설로
꾀러 내어 네 공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니 내가  용궁에 들어서 놀란 것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산중으로 잡아다가 우리  산중 짐승을 다 모아서 잔
치를 베풀어 너를 푹 삶아서  백소주 안주감으로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네놈이 왕께
충성하느라고 한 짓이고, 또 네가 나를 업고 푸른 바다를 왔다 갔다 한 수고를 생각하여 목
숨만은 살려 보내겠다. 그리 알고 돌아가되 좋은 약을  보내기로 왕에게 약속했으니 점잖은
내 체면에 어찌 거짓말을 하겠느냐? 나의 똥이 무척 좋아 열을 식힌다 하고 사람들이 주워
다가 병든 아이들에게 먹이나니 네 왕의 두 눈이 열에  들떠 있더라. 갖다가 복용하면 병이
곧 나으리라." 이어 철환똥을 많이 누어 칡잎에 단단히  싸서 자라등에 올려놓고 칡으로 감
아주니 자라가 짊어지고 무수히 감사하며 용궁으로 돌아갔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다가 살아
났으니 토끼가 오죽 좋겠는가. 깡충깡충 뛰어가면서 크게 소리치기를, "천하장사  항우는 병
사 팔천을 거느리고 한태조와 천하를 다투다가 오강을 도로  건너가지 못했고, 형가는 만고
협객으로 함 척 검 빼어들고 진시황을 찌르려다가 역수를  도로 건너지 못하였도다. 신통한
나의 재주 죽음에서 교묘한 언변으로 용왕을 속이고 이 물을 도로 건넜구나. 반갑도다, 반갑
도다. 우리 고향 반갑도다. 청산록수는 이전에 볼 때와 다름이 없고 푸른 산봉우리 흰구름은
내가 앉아 졸던 곳이로다. 저 과실나무 열매는 내가 주워 먹던 것이로다. 너구리 아저씨  평
안하오. 오소리 형님 잘 있는가. 부귀공명 생각일랑 부디 하지 말고 고향 떠날 생각 부디 하
지 마소. 벼슬하던 몸 괴롭고 타향에 가면 천대받네. 몸에 익은 푸른 산, 밝은 달, 낯익은 우
리 친구 주야로 만나서 즐겨 노세."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때에
자라는 용궁으로 들어가서 가지고 간 토끼의 똥을 바치니 용왕이 먹고서 병이 나아 만고충
신이 되었다. 토끼는 신선을 따라 월궁으로 올라가서 여태까지 약을 빻고 있구나. 자라와 토
끼가 본래 미물로서 장한 충성, 교묘한 꾀가 사람과 같은 고로 얘기로 길이 전해진다.  사람
이라 스스로 뽐내다가 자라나 토끼만도 못하면 그 아니 부끄러운가. 부디부디 조심하소.

   화사
 도
 도나라의 열왕은 성이 매요, 이름은 화며, 자는 선춘이라 하였으며 나부의 사람이었다. 그
의 선조에 상나라를 도운 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종의 재상이 되어 공으로 도 땅에 봉을  받
았더니 중세에 초나라의 대부 굴원이 쫓긴 바와 같이 되어 합려성에 피한 것으로 인연하여
자손이 대대로 여기에 살게 되었다. 몇 대가 지나고 고공사에 이르러서 무른의 도씨의 딸을
취하여 아들 셋을 낳았는데 왕은 그 큰 아들이었다. 도씨는 낳아서부터 아름다운 덕이 있어
서 그가 시집가는 날에 당하여는 반드시 그의 집을 빛나게 할 것이로다라고 시인이 칭송한
바 있다. 그는 일찍이 요지에 가 놀다가 왕모가 붉은 열매 하나를  주어 받아 먹은 꿈을 꾸
고 나서 임신하여 왕을 날 때에 이상한  향기가 풍겨 그것은 달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
다. 그러기에 때의 사람들은 그를 향해아라고 불렀다. 성장하여 그는 영자하고 상려하였으며
성질이 박질한데다가 풍채는 아결하였고 선조의 유훈을 이어받아 그 덕이 높아서 원근을 막
론하고 그의 풍문을 듣고 노인을 이끌며 어린 것을 데리고서 찾아와 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
다. 그러한 차에 등륙이 만물을 방자하게도 학살함에 천하가 워낭을 하여 마지않게 되자 고
죽군인 오균과 대부 진봉 등이 그를 추대하고 왕으로 세움에 합려성을 도읍으로 하여 국호
를 도라 하고 목덕이 왕이 되어 축월을 세수로 삼고 다섯을 상용의 수로 쓰고 색은 백을 숭
상하였다. 가평 원년 동 십 이 월에 사제를 지내고 붉은 매로 초목을 매질하고 가평이라 건
원했다. 그는 열 두 달을 1년으로  하고 일 월은 시에 달을 달리하고  날을 말한 것을 쫓은
것인바 다 이것을 본받았다. 2년에는 계씨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왕비는 월성 출신으로 정숙
하며 요조한 덕이 있고 여공에 근면하여 왕의 덕화를 돕는 바가 되었기에 때의 사람들은 그
를 주나라의 태사에 비유했다. 사신인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두는 바다. 집과 나라의  흥
망은 부부간에서 비롯되는 것이매, 시에 갈담의 읊음은 나라가  새로 일어날 징조였고 산의
뽕나무로 만든 활의 예언은 집안이 망한 징후였다. 도왕에 도씨의 모친이 있고 또한 계씨비
를 얻었으니 그 흥성은 마땅한 일이었도다. 3년에 오균을 배하여 재상을 삼았다. 균의  자는
차군이고 초나라 상주의 사람이었다. 그는 청허하며 과욕하고 곧은 절개를 지킴으로써 호를
원통처사라 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에 상강에서 오 땅으로  옮겨와 왕과 더불어 죽마지우가
되었었던 바 등륙이 그의 어진 소문을 듣고는 고죽군으로  봉하였다. 등륙의 난리가 일어나
자 오균은 도왕에게로 나아가 진언하기를 "등륙이 음탕 잔학하여 만민을 잔해함에  그 풍성
이 미치는 바에 떨지 않는 자가 없으며, 인민이 시들며 만물은 얼고 주리어 천하가 다 갈상
지탄을 하고 해내에 운예지망이 간절하오니, 비록 주옥의 궁실을  지닌 가멸함이 있다손 치
더라도 그의 멸망은 곧 목전에 있는 것이오니다. 이제 공은  밝은 덕이 있고 명성이 높으며
호걸을 영도하고 있는 터이오니, 이 기회에 합려에 의거하여 널리 영웅을 모으면 누구라 어
깨를 으슥거리며 와서 술두루미로 맞이하면 따르지 않으리까? 원컨대 신은 촌토를 얻어 공
훈과 이름을 죽백에 드리고자 하나이다." 라고 하니 공이 크게 기뻐하여 좌우에서 떠나지를
못하게 하고, "하루라도 차군이 없을 수가 없다."로  말하고 나서, 이에 이르러 배하여 재상
을 삼고는 다시 천호를 봉하여 주었다. 사신인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두는 바다. 옛날 제왕
의 홍성에는 반드시 보좌하는 어진 사람이 도왔으니, 상나라 탕왕 때의 유신의 들에 있어서
나, 제나라 환공 때의 관중에 있어서나, 한나라 고조 때의 소하에 있어서나, 소열 때의 제갈
에 있어서는 다 이것이었다. 군주는 어진 사람을 만난다면 마땅히 냇가에 배를 얻은 것같이
여기고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도 같이 생각하여 오로지 어진 사람을 써서 모진 자를 배제
하고, 일단 어진 자에게 일을 맡기면 그를 의심하지 말고  군주는 보필의 효험을 책할 따름
이며, 신하된 자가 충정의 절개를 다한다면 나라의 일은 이루어질 것이며, 왕업은 창설할 것
이다. 도왕이 오균의 말을 듣고는 왕을 도울 재능이 있음을 알고 그의 옆에 두어 영구한 계
획을 수립함에 참례시키었으매 그에게 일을 하고자 하는 뜻이 크게 있었음을 이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니 또한 아름답지 않으랴! 이에 비추어 본다면 후세의  인군은 어진 사람을 다
쓰지 못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이면서도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
과 무슨 다름이 있었으랴!
 4년에 진봉 백직 등이 등륙을  대파하여 그를 멸망시키고 대장군이  되었다. 진봉의 자는
무지라 하였다. 그는 그의 선조가  진나라에서 봉을 받았으므로 말미암아  이름을 진봉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는 건장하게 큰  키에다 푸른 수염은 창과 같이  뾰죽하여 날카롭고 동량
절충의 재능이 있었던 데다가 성품이 곧아 중심에 표변함이 없었다. 진봉 그는 백직과 마찬
가지로 장군직에 보임되어 언제나 충정의 마음을 다하고 있다가, 이 때를 당하여 등륙이 밤
을 이용해서 합례성으로 쳐들어오매 두 장군은  몸을 일으키어 무장하고 높이 거산을  펴고
석단 위에 서서 크게 소리를 내어 호령을 하니, 위풍이  진동하여 등륙은 흰수레를 타고 와
서 단하에 이르러 함벽하고 항복을 했다. 그는 다시 남아  있는 적의 패주자를 모조리 소탕
하고 즉일로 풍류를 불며 개선을 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진봉을 이양대장군에 배하고 백
직은 승상대장군을 삼았다. 백직은 자를 열지라 하고 위땅의 사람이었다. 성질이 곧고도  견
실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아 그는 매양 싸움에 이기고서도 공을 무지에게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가 대수의 풍토가 있다고 일컬었다. 두충, 동백,  산치, 노송,
종려, 소철 등에게 조서를 나려 작을 주었다. 등륙의 난리에 조정의 신하가 많이 포위를  당
하였는데, 그 때 두충 등도 또한  적중에 빠져 위협능 당함이 심급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안색을 변치 않고 굴하지 않으매 적이 감히 해를  가하지 못했었다. 왕은 그들의 지
조가 굳음을 가상히 여기고 이이ㅔ 조서를 나려 포상하고 각각 한 계급씩을 올려 주었다.
 5년 봄 2월에 동성의 사람들을  봉하여 준바 아우 예를 대유공으로  삼고, 악은 양주공을
삼았으며, 사촌 동생 영은 서호공을 삼고, 질인 방은 파공을 삼고 그 나머지는 다 후백에 봉
한 바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왕의 조서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오호라!
나는 외롭고도 약한 몸으로서 선조의 유열을 이어 옛나라를 새로이 일으키고 천하를 차지하
였으니 이것은 마치 넘어진 고목에 새싹이 돋아 나온 것과 같아 요행히도 과질이 끊임없이
면면함이로다. 이에 나는 봉례를 밝히어 분토를 하노니 각기 봉토가 그 포모를 심고 본손과
지손이 백세에 길이 경사를 많이 누릴지니라."
 6년 겨울 10월에 왕이 오 땅에 출유했을 때 경정산에 올라서 되놈에게 저를 불게 하며 진
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그것을 들음에 그 풍류 소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는 돌아가 물에
소쉐를 하고 다음날 새벽에 죽어 갔다. 왕비가 어려서부터  좀버러지병의 신병이 있어서 아
들을 낳지 못하였기에 오균은 왕의 아우 양주공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웠으니 이가 곧 동도
의 영왕이었다. 사신인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두는 바다. 오호라 열왕의 덕은 크고도  아름
다웠도다. 왕은 어진 신하를 얻어 천하를 바로잡고 어진 장수를 써서 변방을 다스리어 싸움
이 없이도 화 시켰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었으며, 동성을 봉하여 그 은혜를 길이하고 충절의
신하를 포장하여 그 풍성을 높이었으니, 옛날 은주의 치국이라  하더라도 이에 더함이 없었
도다. 그러나 왕은 질박하고도 간략하게 나라를 세우자마자 죽어서  간책에 실릴 가언과 선
행이 아주 적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당
 당나라 명왕은 성은 백이고 이름은  연이었으며 자는 부용에 은거하였었다.  그의 부친의
이르은 함담이라 했고, 처음엔 야야계에 살았다. 모친 하씨는 광채가 찬란한 창포의 꽃이 핀
것을 보고 그것을 입에 집어 넣어 삼키고서 아이를 잉태하여  왕을 낳았다. 왕의 얼굴은 아
름다워 마치 천인과도 같았고  탈속적인 의취가 있었으며, 정갈한  것을 생명으로 하면서도
더러운 것을 용납하는 아량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물을 좋아하여 항사아 물 가운데에 있었
다. 그러기에 그를 수중 군자 혹은 수진인이라고 불렀다. 하나라가 망하고 난 후 임금이  없
을 때 상주의 사람인 두약과 백지 등이  그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매 그는 수덕으로
왕이 되어 흰색을 숭상하고 7월을 세수로 삼고 전당을 도읍으로 정하여 나라 이름을 남당이
라 불렀다. 사신인 나는 다음과같이 말해 둔다. 도나라는 목덕으로 왕이 되어 흰색을 숭상했
고, 하나라는 토덕으로 왕이 되어 붉은 색을 숭상했으며, 당나라는 수덕으로 왕이 되어 흰색
을 숭상했던 바이다. 그것의 연유는 알 수가 없다.
 덕수 원년에 정전의 법을 열고 전폐를 쓰기 시작했다. 이  해 풍백이 그의 임금인 계주백
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금이라 하고 서북 땅을 겸병하니 녹림의 적이  또
한 이에 복종했다. 왕은 두약을 승상으로 삼았다. 그  조서에는, "그대는 맡은 바를 잘 보살
펴서 그대 선조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 것이며 동시에 오로지 이 당나라의 이름을 떨치게 할
지니라."고 하였다. 두약은 당의 어진 재상이었던  두여회의 후손이었다. 7월에 왕은 수정궁
으로부터 나와 추향전에 행어하여 여러  신하의 조회를 받았다. 이 때를  당하여 천하가 다
녹림적의 소굴이 되었거늘 다만 당만은 깊은  개울에 높은 성을 구축하였기에 병폐를  입지
않아 인민은 모두 편안하고 국가가 은부하여졌다. 그리하여 이에  수형의 돈이 많아 거만에
달하고 천택의 어별이 불가  승식이었으며, 아랫 사람들은 실  만들기에 힘쓰고 윗사람들은
조석으로 구슬 헤아림에 힘쓸 따름이었다.
 3년에 야야계의 관리 김량이 급한 보고를 올려  말하기를, "적이 있어 야야계를 침입하여
먼저 아압지를 쳤는데 그 적들은 다 사당주를 타고 목란의 삿대를 저으며 부용의 옷을 입고
서 채릉곡을 노래불렀으며, 그 모양과 거동, 그리고 복장이 우리 나라 사람과  흡사하였기로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가도 노랫 소리를 듣고서야 그것들이 적인  줄을 알았나이다. 그 노래
는, '옆 잎 비단 치마가 한  색인데 부용 붉은 볼이 두 갈래로  피었고나, 아무케나 못 속에
들어가야 보이지 않는 사람 노래 듣자 온 줄  알겠세라.'고 하였나이다. 이리하여 우리 편은
깜짝하는 사이에 많은 사람이 칼에 맞아 죽고 부상을 당한 것이옵니다." 라고 하자 왕은 크
게 놀래고 "우리 나라의 지세는 험악하여 천연의 참호인데 어떻게 날아 넘을 수가  있단 말
인가?" 라고 말하고는 곧 장수 백빈한테 조서를 나리니, 백빈은 관졸 수천을 거느리고 적을
맞아 쳤다. 이 때 군졸 중에 이라는  자가 있어 입으로 바람을 낼 수가 있었는  바 이에 큰
풍랑을 일으키어서 적의 배를 몰아붙이고 정신없이 흔들어 젖히니 적은 크게  두려워하고는
배를 끌고 달아났다. 애당초 국가가 국토를 방비하는 준비가 없어 마침내는 적의 환을 치르
게 되었더니, 이 때 백빈이  강의 요해의 곳곳에다 질려를 부설하고서  돌아오고 또 마료로
하여 복파장군을 삼아 도적을 방비하니, 이로부터는 남북의 사람들이 감히 강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 마료는 마원의  후예로서 옛 선조의 복파장군호를 이어받았다.  도인이
묘법경을 가지고 왕에게로 나가 말하되 "설경을 하면 사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연에 잉태
되어 극락세계에 화생하옵니다." 라 하니 왕은 크게 기뻐하고  즉시 수륙 도량의 시설을 하
니, 그것에 든 비용이 억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왕은 날마다 좌우의 모든
신하들과 같이 아침 저녁으로 설경만을 하고 나라의 일은 돌보지 않았다. 학사 문조가 청포
에 엎드려 충간하기를, "불은 과시 무엇이옵니까? 그는  그릇된 교리와 사특한 말로 세상을
혹되게 하며 인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옵니다. 제왕이ㅡ 도는  다만 유가의 경만을 지키어
야 할 따름이어늘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부체 있는 곳에 불법을 하고 패엽을 옳은 경으로 아
시옵나이까? 인생은 마치 나무의 꽃이 자리에 떨어지는 것은 귀한 것이 되나 똥간에 떨어지
는 것이라면 천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어서  이것은 즉 자연의 이치이거늘 인과설을  어찌
믿어 들을 것이 되오리까?" 라고 했으나 왕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문조는 백빈과 동본 이성의 친족으로  성질이 고결하고 문장이 능난하여  왕직을 도았다.
첩여인 반씨가 제빈보다도 더 왕의 사랑을 받은 바 어느 때에 왕이 연꽃을 못 위에  늘어놓
고 반씨로 하여 그 위를 걷게 하고서 하는 말이, "보보생연화"라 하고  육랑이라 불렀다. 그
러니 이 때에 어느 아첨 잘하는 자가 있어 말하되,  "사람들은 육랑을 연꽃 같다고 하나 신
은 연꽃이 육랑가 같다고 여기옵니다."라고 하매 왕은 대단히 좋아하였다. 사신인 나는 다음
과 같이 말해 둔다. 심하도다. 아첨하는 자의 말이여! 그 말은 실로  사탕의 풀을 씹는 것보
다도 달고 그 아첨은 예수한 것보다도 더한 것이니 아아 슬픈 일이로다.
 4년에 강리를 상주로 귀양을 보냈다. 강리라는 자는 초나라의 사람으로 자를 채채라고 하
였다. 성질이 고결하여 직간으로 왕의  뜻을 거슬리게 하자 공자 가란은  참소를 하여 그를
귀양 보내게 하니 그는 수고의 정을 이기지 못하고 이소를 지어 스스로를 원망하였다.
 5년에 왕은 방술사 두생의 말을 들어 백로를 마시고는 병이 나서 좌우의 신하를 불렀으나
좌우의 신하들도 다 이슬을 마시고 입을 놀리지를 못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라,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만 하하라 소리를 지르고 죽어갔다. 처음  왕이 동리처사인 황화에게 왕위
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그는 사양하고 받지를 않았다. 그 때  금인이 녹림의 군병을 몰고 당
을 에워싸기를 여러 달에 성 안의 인민이 다 굶주리어 말라 죽었던 바 두약 백빈 등도 또한
이 난리에 죽었고, 당나라는 겨우 5년 만에 망하고 말앗다.
 황화의 자는 금정이라 하고 위인이  속지 않아 태고풍이 있었다. 그는  신세에 도 나라의
임금을 섬긴 것으로 말미암아 율리에 살며 홀로 굳은 절개를 지키고 있어 비록 금인의 난폭
할지라도 침범할 수 없었기에 그는 만적 선생이라 불리었다. 사신인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둔다. 삼대의 홍체가 깜짝하는 사이에 있고, 사군의 존몰이 잠깐 사이었던 것으로서, 그것은
다만 동원의 편시와 남가 일몽일 뿐만이 아니라 봄바란이 부는 동산에서 쓸데없이 새가 슬
피욺을 듣고 해가 지는데 못가의 대에 올라서 다만 운연이  잠겨 있음을 보는 것과도 같아,
이것은 옛날 중국 은나라 고도의 유허를 노래부른 맥수가와 주 나라 사람이 지은 서리의 시
로는 그 탄식할 바를 비유한 것이 되지 못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며 애석한 일이 아니
랴! 그리고 또 하왕이 옥매를 찾아서 도를 계승케 하였으니 그 덕이 충성스러울 것이요, 당
이 삼각지전을 세운 것은 더욱이나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세상에 만초 모란 부용류가
있는바 이것들도 또한 하 당의 유손인가 한다. 이상의 것을  다 통틀어서 말할진대 즉 다음
과 같다고 할 것이다. "천지간에서 인간은 단지 한  가지뿐이로되 꽃에는 천백 종이 있은즉
사람은 진실로 꽃의 수와는 같이 못한 것이다. 하늘은  꽃으로써 춘하추동의 시절을 행하고
사람은 꽃을 가지고 시절을 분간하니 인간이 어찌 꽃이 신용을 지킴과 같으리오! 꽃은 끊임
없이 봄바람에 피고 가을이 되어 떨어져도 원망하지를 않으니 인간이 어찌 그와 같이 어질
것이랴? 그리고 또 혹은 뜰 위에 나기도 하고 분토의 가운데 나기도 하지만, 고하의 귀천을
다투지 않고 한가지로 꽃 피고 시드는 것이니 그 공심  역시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즉
꽃에는 지극한 어짊과 지극한 신과 지극한 공평에 또한 많고도 수하여 천성의 바른 것을 얻
음이 있는 바다. 무리가 많음에 어찌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있고, 어질고 신 있고 지극히 공
평하기가 이 같음에 어찌 임금을 위한다는  것이 있을까보냐? 그러나 무릇 사람은 한  가지
기능과 조금의 재주만 있어도 반드시 일세에 자랑을 하고 백대의 후세에 전하고자 하며 서
로 공명을 다투어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꽃은 그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
에 그 천성의 아름다움이 인간 중의  군자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러므로  송 나라의 염계
선생은 뜰 앞에 있는 풀을 매지 않고 하는 말이 '나의 의사도 한가지일지어다.'라고 한 것이
다. 이같이 군자가 이와 한가지가 되고자 원한 것인즉, 그것의 성품이 완전하고도 바른 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 문장에 오름을 구구하게  구하고 일에 공 이루기를 힘쓰는
자가 어떻게 그 성품이 완전하고 또한 바를 수가 있으랴!"

   주생전  지은이: 권필(1569~1612)
 이 작품은 선조 때의 문인인 권필이 지었다. 자를 여장, 호를 석주라 했다. 본관은 안동이
요, 습재 벽의 아들로 선조 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송강 정철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송강의 풍모를  사모하여, 송강이 강계에서 귀양살이하
고 있을 때, 동악 이안눌과같이  찾아가 뵈오니, 송강이 크게 반가워하며  "천상에서 내려온
두 신성을 보게 되었다."고 하며 두 사람의 이름을 물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신선  같은 풍
격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권필은 공명에 뜻이 없어 과거도  보지 않고 시주로 도락을 삼고  가난하게 살았다. 31세
되는 해 여러 문신들의 추천으로 동몽교관의 벼슬을 받았으나,  의관을 갖추고 예조에 나아
가 배알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결연히 사
퇴하고 말았다고 한다.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나 국왕이 의주로 피난할 조의가 분분할 때, 국왕을 잘 보필하지 못
한 이산해, 유성룡 등을 처단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정구가 대문장가로 알려진 명사 고천준을 맞아 대접하게 되어 문사를 고를 때, 한낱 야
인의 몸으로 권필이 뽑혀 안팎으로 문명을 떨쳤다고 한다.
 광해군의 비형으로 정국을 어지럽히고 있는 유희분을  풍자하는 궁류시를 지어 퍼뜨리자,
광해군이 크게 노하여 그 시를 지은 사람을 찾던 중, 광해군 4년(1612) 깁직재의 무옥에 연
루된 조수륜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 시를 발견하였다.
 광해군이 권필을 친히 국문 하여 처형하려고 하였으나, 백사  이항복 등의 구명으로 죽음
을 면하고 귀양갈 때, 동대문밖에 어떤 사람이 준 술에 취하여 죽으니, 그때의 나이 43세 였
다.
 권필은 40평생 기인, 불기인으로 처세하였으나, 그의 문장은  당대를 울렸고, 동악 이안눌
보다도 낫다고 평하였다. 그의 문집으로 '석주집'이 남아있다.
 
 주생전에 대하여
 이 작품은 작자가 선조 26년(1593) 봄에 송도에 갔을 때, 이 작품의 주인공 주생을 여관에
서 만났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필담으로  의사를 하는  가운데 그가 지어서 보여주는  '답

행'이란 사곡 중의 연애 사건을  추궁하자, 주생이 숨기지 못하고  자기의 실연담을 얘기해

는 것을 듣고 돌아와서 기록했다는 발문이 이 작품 끝에  있으나, 이것은 고전 작가들이 흔
히 쓰는 가탁에 불과하고, 우리는 이 작품을 작자의 창작으로 보아야 하겠고, 이 작품의  창
작연대는 선조26년으로 잡아야하겠다.
 이 작품은 중국 명대를 배경으로 하고, 남 주인공 주생과  두 여주인공 기생 배도와 귀족
의 딸인 선화와의 삼각연애를 주제로 한 애정소설이다.
 남자주인공 주생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으나 몰락하여 기생이  되어 있는 배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기생의 신분으로 운명에 얽매어 우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해 놓
았다.
 기생배도의 눈물겨운 사랑의 호소를 받은 주생이 배도를 사랑하다가, 귀족의 딸인 선화를
만나고 부터는 배도에 대한 사랑이 선화에게로 옮겨지게 되고,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배도는 고민 끝에 유언을 남겨놓고 병사함으로써 주생과 배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
고 있다.
 이렇게 하여 기생이란 신분에 대한  사랑의 염증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귀족의 딸
선화에게로 사랑을 옮긴 주생은  배도의 죽음과, 공부를 가르쳐주던  선화의 동생의 죽음을
당하여,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다시 유랑의 길을 더나 어머니의 친척인  장 노인을 찾아가
선화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장노인의 주선으로 선화와 정식으로 약혼하지만, 결혼식을  한달
앞두고서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에 출정하게 됨으로써 주생과 선화의 결혼은 기약할 수 없
게 된다.
 우리는 다른 고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남자의 배신으로 인한 한 여성의 죽음을 이  작품
에서 볼 수 있고, 천한 기생에 대한 사랑보다는 귀족의 딸을 택하는 남자의 이기적인  생각,
여성의 선천적인 애욕과 질투,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기생의 고민을 볼 수
있다.
 
 주생의 이름은 회이고, 자는 직경이며, 호는 매천이라 했다. 주생의 집안은 대대로 전당이
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부친이 촉주의 별가라는 벼슬살이를  하면서 촉에서 살게 되었
다.
 주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영민 했다. 시도 잘 지었다. 나이 열 여덟에 태학 생이  되었
고, 동배들의 추앙을 받는 바가 되었다. 주생 자신도 재주와 학문이 남에게 뒤지지 낳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태학에 다닌 지도 수년이 흘렀다. 계속 과거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을 했다. 이에 주생
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 세상의 인생이란 마치 티끌이  연약한 풀잎에 깃들어 있는 것과도
같은데, 어찌 명예에 얽매여 더러운 속세에서 허덕이며 아까운 청춘을 보낼까 보냐" 이때부
터 주생은 과거에 대한 뜻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장사에 뜻을 두었다.
 주생이 재산을 헤아려 보니 백천냥이나 되었다. 그중 반으로 배를 구입했다. 강호를  오가
며 남은 돈으로 잡화장사를 시작했다. 잇속이 있어 스스로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다.  이래
서 아침에는 오땅에 있었고 저녁이면 초땅에 있었다. 그는 장사에만 굳이 구애되지 않고 마
음내키는 대로 돌아 다녔다.
 어느 날이었다. 악양성밖에 배를 매어두고,  오래 전부터 친히 지내는  나생을 찾았다. 그
또한 뛰어난 선비였다. 나생은 주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술을 마시며 서로 즐겼다.
 주생은 취하는 줄도 모르고 대취하여 배로 돌아왔다. 날은 벌써 땅거미가 짙게 깔렸다. 둥
근 달이 떠올랐다. 주생은 배를 강가운데 띄워놓고 돛대에 기댄 채, 어느새 곤하게 잠이  들
어 버렸다. 배는 맞바람을 받아 쏜살같이 흘러갔다.
 주생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뿌연 안개 속에서 절간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달은
서쪽 하늘에 걸려 있었다. 강 양쪽 언덕에는 푸른 나무들만이 희미하게 보였고, 새벽빛은 아
직 어둑어둑했다. 나무 그늘 사이로 초롱 불빛이 붉은 난간의 푸른 주렴사이로 은은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딘 가고 물으니, 전당이라고 했다.
 아침이 밝았다. 주생은 고향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 태반은 벌써 세상을 떠나버린  뒤
였다. 주생은 시부를 읊조리며 배회했다.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기생 배도를 만났다. 주생과는 어릴 적 소꿉동무였다. 그녀는 재주나 미모에  있
어 전당에서는 제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배랑 이라 불렀다.
 배도는 주생을 집으로 모셨다. 서로 마주 대하니 몹시 기뻤다. 주생은 시 한 수를 지어 그
녀에게 주었다.
 배도는 시를 읽고 몹시 놀라 말했다.
 "낭군의 재주가 이다지도 훌륭하니 모든 사람에게 굽힐  데가 없구료. 어찌하여 부평초처
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시옵니까? 그래 장가는 드시었나요?"
 "아직도 장가를 못 갔소."
 배도가 웃으며 말했다.
 "제 소원이옵니다. 낭군님은 이제 배로 돌아가지 마시고 저희 집에 머물러 계시  와요. 그
러면 낭군님을 위해 좋은 배필을 마련해 드리겠사옵니다."
 배도는 주생에게 은근히 마음을 둔 터였다. 주생도 배도의  아름다운 자태에 은근히 도취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생은 웃으면서 사양했다.
 "내 어찌 감히 바랄 수가 있겠소."
 이렇듯 즐겁게 노는 동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배도는 어린 계집종을 불러 주생을 별실
로 모셔 편히 쉬게 했다. 침실 벽에는 절구 한 수가 걸려 있었다. 시의 내용이 생소한 것이
었다. 주생이 계집종에게, "이시는 누가 지은 것이냐?" 하고 물으니, "주인아씨가 지은 것이
옵니다."했다.
 주생은 벌써 배도의 곱디고운 자태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런데다  그녀의 시를 읽으니 한
층 더 정이 쏠렸고, 마음은 불같이 타올라 만 가지 생각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이 시의
대구를 지어 그녀의 뜻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아무리 고심했으나 좀체 시를 이룰 수가 없었
다.
 밤은 깊어만 갔다. 달빛은 뜰에  가득했고, 꽃 그림자는 운치를  도왔다. 주생은 이리저리
배회했다. 홀연 문 밖에서 얘기소리, 말 우는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주생은 매우
의심쩍었다.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배도의 방은 그리 멀리 않았다. 주생은  배도의 방을 살폈다. 사창에선 촛불이 환히  비쳐
나왔다. 주생은 몰래 다가가 안을 보았다. 배도는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채운 전을 퍼놓
고, '첩연화'란 사를 초하고 있었다. 단지  전첩만 지었을 뿐, 후첩은 아직  짓지  못하였다.

에 주생은 창문을 열면서 말했다.
 "주인 아가씨의 사를 이 나그네가 채워드려도 좋겠소?"
 배도는 짐짓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미친 손이 어지 하여 여기까지 오셨나요?"
 "내가 미친 것이 아니오. 주인 아가씨가 이 나그네를 미치게 할 따름이오."
 배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주생으로 하여금 그 사를 완성하게 했다.
 주생은 시를 다지었다. 그때서야 배도는 자리에서 일러 났다. 그녀는 약옥선 술잔에다  서
하주를 따라 군 했다. 주생은 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배도가 아무리 권해도 사양했다. 그녀
는 주생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처연히 말했다.
 "저의 조상은 호족이었지요. 조부께서는 천주의 시박사 벼슬을  지내시다가 죄를 지어 서
인으로 쫓겨났습니다. 그 후부터는 빈곤하여 다시는 제기할 수 없었어요. 더욱이 저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다른 사람 손에서 자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절개를 지켜 깨끗이 간직
하려 했지만, 이미 기생의 명부에 올라 부득이 사람들과 얼려 술 마시고 놀게 됐답니다.  저
는 늘 한가한 시간이면 꽃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달을 바라보며 넋을 잃
곤 했어요. 이제 낭군님을 뵈오니, 풍채가 의젓하시고 거동이 활달하며, 재주가 빼어나고 생
각이 깊사옵니다. 제 비록 몸은 천하오나, 침석에 모시고 건즐받들기를 원하옵니다. 다만 바
라는 것은, 낭군님이 후일에 입신출세 하셔서 속히 높은 신분이 되시어, 저를 기생의 명부에
서 빼주시와 선조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해 주시 온다면 하는 것뿐이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낭군님이 저를 버리셔 도중에 헤어지더라도 그 은혜를 잊지 낳겠사오며 조금도 원
망하지 않겠사옵니다."
 배도는 말을 마치고 비오듯 눈물을 흘렸다. 주생은 그녀의 하소연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씻어주며 말했다.
 "그것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그대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어찌 생각이 없을까?"
 배도는 눈물을 거두고 안색을 달리하여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여야불상이요, 사기이행이라 하지 않았어요. 낭군님은  이익과 곽소옥의
일을 못 보셨는가요? 낭군님이 저를 멀리하시고나 버리지 않으시겠다 하오면 맹세의 말씀을
해주시와요."
 배도는 노나라에서 나는 고운 명주 한 자락을 꺼내어  주생에게 주었다. 주생은 즉석에서
붓을 들었다.
 주생이 쓰기를 마치자, 그녀는 정성껏 봉해서 치마띠 속에다 간직했다.
 이 날밤, 그들은 '고당부'를 읊으며  맘껏 즐겼다. 그것은 김생과 취취며  위랑과  빙빙의

미에 견줄 바 아니었다.
 이튿날이었다. 주생은 지난밤에 들었던 사람의 말소리며 말울음 소리에 대해 물었다. 배도
가 대답했다.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붉은 대문을 한 집이 물가에 면해 있사옵니다. 그것은 죽은 노
승상 댁이옵니다. 승상은 이미 돌아가시고 노부인이 일남 일녀를  거느리고 홀로 살고 있습
니다. 아직 아들딸을 성사도 시키지 않고, 날마다 노래하며 춤추는 것으로 일을 삽고 있답니
다. 지난밤에도 사람과 말을 내어 저를 데리러왔었어요. 그러하오나, 낭군님이 와 계시어 병
을 핑계 대고 거절하였습니다."
 이날 해질 무렵 승상 부인은 배도를 데리러 사람을 보내  왔다. 그녀는 또다시 거절할 수
는 없었다. 주생은 떠나는 배도를 문 밖까지 나가 배웅하면서, "밤을 새우지 말고 곧 돌아오
도록 하오." 하고 신신 당부 했다. 배도는 말을 타고 가버렸다. 그 모습은 산듯한 난조 같고,
말은 나는 용과도 같이 꽃과 버들 숲을 스치면서 염염히 사라졌다.
 주생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곧 뒤따라 알려갔다.  용금문을 나섰다. 왼편으로
돌아섰다. 수홍교에 이르렀다. 웅장한 저택이  구름에 닿을 듯이 우뚝  서있었다. 주생은 곧
이 집이 물가에 면해 있는 붉은 대문 집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 집은 공중에 걸
려있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 음악 소리가 뚝 그치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낭랑하게  밖에까
지 들려왔다.
 주생은 다리 위에서 방황했다. 고풍시 한 수를 지어 기둥에 적어 두었다.
 주생이 방황하는 사이에 어느덧 석양의 놀이 짙어졌다. 어둠이 밀려왔다. 이때 여러  무리
의 여자들이 붉은 대문에서 말을 타고 나왔다. 금안과 옥륵의 광채가 휘황하게 비쳤다.
 주생은 배도가 이 무리 속에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는  길가의 빈집으로 숨어들어 지나는
십여 인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배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매우 의심쩍었다. 다리 위로 다
시 돌아왔을 때는 날은 이미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이에 주생은 곧장 붉은 대문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전혀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
각 밑으로 가 보았다. 역시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주생은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달은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누각의 북쪽으로  연못이 훤히 보였다. 수면 위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다. 꽃밭 사이로는 길이 굽이굽이 나 있었다. 그는 이 길을 따라 슬
금슬금 걸어갔다. 꽃밭이 끝나자 집이 있었다. 그는 계단을 따라 서쪽으로 수십 보 꺾어  들
었다. 멀리 포도가 아래 한 채의 집이 보였다. 규모는 작으나 아담했다. 사창은 절반이나 열
려 있었고, 촛불이 높이 타오르고 있었다. 촛불 그림자 밑으로 붉은 치마, 푸른 옷소매가 나
풀거리는데, 영락없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주생은 몸을 숨기며 다가갔다. 숨마저 죽이고 몰래 엿봤다. 금빛 병풍이며 비단 요가 눈을
부시게 했다. 승상 부인은 자색비단 옷을  입고 백옥 책상에 의지하여 앉아 있었다.  나이는
50줄이나 됐을까, 조용히 뒤돌아보는데 여유가 작작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 옆에는 열  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다. 머리채는 곱게 뒤로 닿아 내렸고, 얼굴은  어여
쁘기 그지없었다. 소녀의 맑은 눈이 살짝 옆을 흘기는 모습은  흐르는 맑은 물결 위에 가을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웃을 때면 애교가  넘쳤고, 그 입 모양은 정녕 봄꽃이 아침  이슬을
함빡 머금은 듯 했다. 이들 사이에 앉아있는 배도는 그들에 비한다면 봉황과 까마귀, 구슬과
조약돌 격이었다.
 주생의 넋은 구름밖에 나앉고 마음은 허공을 맴돌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미친 듯이 소리
치며 뛰어들고픈 심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갔다. 배도는 자리에서 돌아가려고 했다. 부인이 끝내 말려 했으나 그녀
는 간절히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부인이 말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이리도 서두는가. 정든 사람과 약속
이라도 있단 말인가?" 배도는 옷깃을 단정히 하고, "마님께서 하문하시니, 어찌 사실대로 말
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주생과  인연을 맺은 내력을 자세히 아뢰었다.  승상
부인이 미처 말할 사이도 없이, 소녀가 미소짓고 배도를 흘겨보며 말했다. "왜 좀더 진작 말
하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하룻밤 즐거운 모임을 놓칠뻔 했군."
 부인도 역시 크게 웃으며 돌아가도록 했다. 주생은 재빨리 그 집을 빠져나왔다. 한발 앞서
배도의 집에 다다랐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코까지 골면서 자는 체 했다.
 배도는 이내 뒤따라 왔다. 주생이 누워 자는 것을 보고는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낭군님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계시옵니까?"
 주생은 제멋대로 읊어댔다.
 배도는 몹시 불쾌해하며, "소위 선아 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지요?" 하고 힐문했다. 주생은
대답할 수 없어 다시 시로 써 응답했다.
 주생은 배도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대가 내 선아가  아닌가." 하니 , 배도는 웃으며 말했
다." "그렇다면 낭군님은 저의 선랑이시군요."
 이 뒤부터 서로 선아 선량으로 부르게 되었다. 주생이 배도에게 늦게 들어온 사연을 물으
니 배도가 대답했다.
 "연회가 파한 후 다른 기생들은 모두 돌아가게 하였으나, 유독 저만 남게  했나이다. 저를
따로 선화의 거소에다 불러 다시 조촐한 술자리를 벌여놓고 붙들었습니다."
 주생이 자세히 유도해 물으니, 배도가 대답했다.
 "선화의 자는 방경이고 나이는 열 다섯입니다. 용모가 빼어나 세속 사람 같지  않으며, 사
곡을 잘 지을 뿐만 아니라, 자수도 잘 놓아 저같은 것은 감히 댈 수도 없어요,  어제는 풍입
송의 사를 짓고 거기에 맞춰  금현을 뜯고자 했어요. 제가 음률을  안다고 머물게 하고서는
그 곡을 노래하게 했습니다."
 주생이 다시, "그럼 그 사는 어떤 것인가?" 물으니, 배도는 소리내어 죽 읊었다.
 배도가 한 구절 한 구절 읊을 때마다, 주생은 은근히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짐
짓 말했다.
 "이 사곡에는 규방의 춘회가 남김없이 발휘되었구료. 소야란  정도의 뛰어난 솜씨가 아니
면 그만한 경지에 이르기는 좀 힘들  것 같소, 그러나 나의 선아가 꽃을  다듬고 옥을 깎는
재주만은 못하오."
 주생은 선화를 본 후로 배도에  대한 정이 없어졌다. 응수할 때만은  억지로 웃음을 짓고
즐거운 체했으나, 마음엔 오직 선화생각 뿐이었다.
 하루는 승상 부인이 어린 아들 국영을 불러 말했다.
 "네 나이 벌써 열둘이 아니냐. 아직도 취학을 못하고 있으니, 후일 성년이 되면 어떻게 자
립하겠느냐. 내 들은 바로는 배도의 남편인 주생은 글을 잘하는 선비라고 한다. 네 가서  배
우기를 청하는 것이 좋겠구나."
 부인의 가법은 매우 엄했다. 국영은 이 말을 어길 수 없었다. 그날로 책을 챙겨  주생에게
갔다. 주생은 마음속으로 '이제는 됐구나'하고  은근히 기뻐했다. 그러나 거듭   사양하다가

지못한 체 하면서 허락했다.
 어느 날 주생은 배도가 출타한 틈을 타 국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 오가면서 글을 배우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네  집네 빈방이라도 있다면
내가 너의 집으로 옮겨갔으면 한다. 너는 왕래하는 불편을 덜 것이요, 나는 너를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을 텐데."
 국영은 넙죽 절을 하면서 "그러하옵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집으
로 돌아가 어머님께 말씀드려 그날로 주생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다. 베도는 외출했다 돌
아와 몹시 놀라며 말했다.
 "아마도 선랑께서는 딴 마음이 있으신가  보군요. 왜 저를 버리시고  다른 곳으로 가십니
까?"
 "내 듣건대 승상 댁에는 삼만 축의 장서가 있다하오.  무인은 선공의 유품이라 함부로 내
고 들이는 것을 싫어한다지 않소 그래서 제집에 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책들을 읽어
보려는 욕심으로 그러는 거요."
 배도는 "낭군님께서 학문에 정진하는 것은 저의 복입니다." 하고 말했다.
 주생은 승상 댁으로 옮겨갔다. 낮이면  국영이와같이 있고, 저녁이면 집안의 문이란  문은
빈틈없이 잠가버리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갖은 궁리를 다하는 동안, 어느덧 열흘이  지
났다. 문득 그는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선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봄이 다가도록 만나지도 못
했구나. 황하의 물 말기를 기다린다면 몇 해나 기다려야 할지. 차라리 어둔 밤에 선화  방으
로 뛰어드는 게 낫겠다. 일이 성공하면 귀한 몸이 될 것이요, 실패로 돌아가면 죽음을  당한
다 해도 좋다."
 이 날 저녁 따라 달이 없었다. 주생은 어려 겹의 담을 뛰어넘어 선화의 방 앞에 이르렀다.
복도에도 구부러진 큰 기둥이 있는데 염막이 겹겹이 드리워 있었다. 주생은 얼마 동안 동정
을 살폈다. 인적이 없었다. 선화 혼자만이 촛불을 발기혹  곡을 뜯고 있었다. 주생은 기둥사
이에 바짝 엎드려 그 뜯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뜯기를  다한 선화는 소자 첨의 하신랑사를
작은 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선화는 못 들은 척 했다. 곧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생은 방안으로 들었다. 함께 잠자리에  파고들었다. 선화는 나이가 어린 데다  약질이었
다. 정사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러나 엷은  구름과 가는 비처럼 버들과 어림 꽃처럼  교태로
왔다. 울다가는 부드럽게 속삭였고, 살며시 미소짓다가는 가볍게 찡그리기도 했다.
 주생은 별이 꽃을 찾아 날 듯, 나비가 꽃가루를 그리워하듯 매혹되었다. 정신은 한없이 무
르녹았다.
 어느덧 날은 밝아왔다. 난간 앞 꽃나무 가지에 앉은 부엉이 울음소리를 문득 들었다. 주생
은 깜짝 놀랐다. 방을 급히 나갔다. 집과 연못은 고요했고, 새벽안개는 몽롱했다. 선화는  주
생을 보내느라고 방문을 나섰다가 들어가며 말했다.
 "이제 간 후로는 다시는 오지  마셔요. 이 비밀이 새나가  누설된다면 사생이 걱정되옵니
다."
 주생은 기가 막혔다. 목이 메어 급히 달려들어 말했다.
 "이제 겨우 좋은 인연을 이루었는데 어찌 이렇게도 박대를 하는 거요?"
 선화는 방긋 미소 지으면서, "아까 말은 농담이에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옵고 저녁으로
만나도록 하시어요."하고 말했다. 주생은 연신 "응응"하면서 급히 달려나갔다.
 선화는 방으로 들어오자 '조하간효앵'시를 일절 지어 창밖에 걸었다.
 다음날 저녁이었다. 주생은 또 선화를 찾아갔다. 갑자기 담 밑 나무 사이에서 아련하게 신
발 끄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켰나 싶어 달아나려 했다. 신을 끌던 사람이 청
매를 던져 주생의 등을 맞쳤다. 그는 피할 곳이 없어 몹시 당황했다. 수풀 속에 납작 엎드렸
다. 그런데 신 끌던 사람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주랑, 놀라지 말아요. 앵앵이가 여기 있어요."
 그제서야 주생은 선화가 한짓인줄 알았다. 일어서서 선화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왜 이렇게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요?" 하니, 선화는 웃으며 말했다.
 "어찌 감히 낭군님을 놀라게 하겠어요. 낭군님 혼자 지레 겁을 먹었을 뿐이지요."
 주생은, "향을 훔치고 구슬을 도둑질하는데 어찌 겁이 나지 않겠소."  하고는 손잡고 방으
로 들어갔다. 주생은 창문의에 걸린 절구를 보았다. 마지막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름다운 선화가 무슨 근심이 있어 이런 시를 지었소?"
 선화는 조용히 대답했다.
 "여자의 몸은 수심과 함께 나서, 만나지 못했을 때는 서로 만나기를 원하고,  만나면 서로
헤어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러니 어찌 여자의 몸으로서 편안하게도 근심이 없겠습니까. 하
물며 낭군님은 절단지기를 어겼고 저는 행로지욕을  받았습니다. 불행이도 하루아침에 우리
정사의 자취가 발각된다면 친척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요, 동리  사람들은 천하게 여길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우리들이 손을 잡고 해로하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
늘의 일은 구름 속에 든 달과 같으며 숨은 꽃과도 같습니다. 설사 한때는 즐겁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 테니 어찌하겠습니까?"
 말을 마친 후, 눈물을 주룩 흘리며 원한 품은 태도를 보였다. 거의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
다. 주생은 눈물을 훔쳐주며 위로해 말했다.
 "대장부가 어찌 아녀자 하나를 얻을 수 없겠는가. 내  나중 중매의 절차를 밟아 예법대로
그대를 맞이할 것이니 너무 걱정을 마오."
 선화는 눈물을 거두며 치사했다.
 "낭군님의 말씀대로만 될 것 같으며, 저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록 집안을 화복 하게 할 수
는 없겠지만, 나물을 캐어 정성껏 제사를 받드는 일만은 다하겠습니다."
 선화는 향합을 열었다. 조그만 화장용 거울을 꺼내어 둘로 깨뜨렸다. 한쪽은 자기가  갖고
다른 한쪽은 주생에게 주며,
 "동방화촉의 밤을 기다렸다. 다시 하나로 합하와요." 했다.  또한 흰 깁 부채를 주면서 말
했다.
 "이두 물건은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제 마음의 간곡함을 나타내는 것이옵니다. 제 소원이
니 승란의 처로 생각하시어 가을밤의 원한을 끼치지 마시옵고,  가사 항아가 그림자를 잃을
지라도 꼭 밝은 달빛을 어여삐 여겨 아껴 주업소서."
 이후로 그들은 밤이면 만났고 새벽으론 헤어졌다. 하룻밤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주생은 오랫동안 배도를 만나지 않았음을 생각했다. 그녀가 이상히 여길까  두려
워 그녀의 집으로 가서 잤다. 밤사이  선화는 기다리다 못해 주생의 방에까지 갔다.  선화는
주생이 쓰던 단장 주머니를 풀어보았다. 그녀는 배도가 지은 시 두어 폭을 발견했다. 그녀는
화가 뿌듯이 치밀었고 질투심이 솟아났다.  그래서 책상 위에 있는 붓을  들어 까맣게 지워
버렸다. 그 밑에다 '안아미사'일 절을 지어 푸른 비단에  써서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는 나가
버렸다.
 이튿날 주생이 돌아왔다. 선화는 조금도  질투하거나 원망스런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또
주머니를 끌러 본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생  스스로 깨달아서 부끄러워하게 하고자
함이어서 일체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승상 부인이 술자리를 마련해 놓고 배도를 불렀다.  부인은 주생의 학행을 칭안했
다. 아들 글 가르치는데 수고를 한다고  치사했다. 그리고는 손수 술을 따라 배도로  하여금
주생에게 잔을 권하게 했다.
 주생은 이날 밤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배도는 혼자 앉았으니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사가 먹으로 지워진 것을 보았다. 마음은 자못 언짢았고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밑에 '안아미사'를 보니 선화가 한 짓이  분명했다. 그녀는 몹시 화가 치밀

다. 그녀는 이 사를 소매 속에 감춘 다음 주머니를 전처럼 싸매 두었다. 앉은 채 아침을 기
다렷다. 주생이 술에서 깨어나자 침착하게 물었다.
 "낭군님은 이곳에서 무작정 유할건가요? 도대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생은, "국영이가 공부를 아직 다 마치지 못한 탓이오." 하고 대답했다.
 "그래요? 처의 동생을 가르치는 것이니 불가분 마음을 다해야 겠지요?"
 주생은 얼굴을 붉히며, "그게 도대체  부슨 말이요?" 하고 물었다. 배도는  얼마동안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주생은 당황하여 어찌할줄을 몰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방바닥만 응시  했
다. 배도는 그 사를 꺼내어 주생의 면전에 던지며 말했다.
 "유장상종이요, 찬혈상규구료. 이 어찌 군자가 할 짓입니까? 난 지금 곧장  들어가 부인께
말씀 올리렵니다."
 배도는 몸을 일으켰다. 주생은 황망히  그녀를 붙잡아 앉히고 사실대로 고백했다.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히 빌었다.
 선화는 나와 백년 해로를 굳게 언약한 사인데, 어찌 죽을 곳으로 몰아 넣는단 말이오."
 배도는 마지못해 뜻을 돌리고는, "그렇다면 곧 저와 같이 돌아 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낭
군님니 저와의 언약을 어긴 바에야 제가 무어라고 맹세를 지킬 것이오리까." 하고 말했다.
 주생은 하는 수 없었다. 부인에게 딴 핑계를 대고 배도의 집으로 돌아갔다. 배도는 선호와
의 관계를 알고 난 다음 부터는 다시는 주생ㅇ르 선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마음속에 불평이
끓어올라서였다.
 주생은 오로지 선화만을 생각했다. 몸은 나날이 여위어 갔다. 끝내는 병ㅇ르 빙자해  자리
에 눕고 말았다. 스무 날이 지나갔다. 돌연 국연이 병으로 죽었다는 전갈이 왓다. 주생은 제
물을ㄹ 갖춰 영구 앞에 나아가 전을 올렸다.
 선화 역시 주생과 이별한후 상사의 병이 깊어 기거 동작도  남의 손을 빌어야 했다. 문득
주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병ㅇ르 무릅쓰고 억지로 일어났다. 담장소복을 하고 주렴안에
혼자 서 있었다.
 주생은 전을 끝냈다. 멀리 선화가 보였다. 눈을 찡긋해  정을 표시했다. 머리르 숙이고 서
성거리고 뒤돌아보니, 그녀는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앗다.
 세월은 흘러 몇달이 지났다. 배도마저 병들어 눕고 말았다.  숨을 거두기 전, 그녀는 주생
의 무릎을 베고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말했다.
 "저는 봉비하체로서 그늘에서만 살아오다가 아름다운 청춘이다가기도 전에 시들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제 저는 낭군님과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비단 옷이며 좋은 관현 악
기가 소용이 없고, 전날의 소원도 다 그만입니다. 다만  원하옵는 바는, 제가 죽은후에 낭군
님은 선화를 취하여 배필로 삼으시옵소서. 그리고 내 죽은  뒤 시신은 낭군님이 왕래하시는
길 가에 묻어 주신다면 죽더라도 산 거같이 여기고, 편안히 눈을 감겟습니다."
 배도는 말을 미차고 기절했다. 한참만에 다시 깨어나 주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랑, 주랑이여! 부디부디 몸조심하시어요. 몸조심 하..."
 이러기를 몇 번하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주생은 배도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 그는 그
녀의 유언대로 시체를 호산의 길 가에다 고이 묻어 주었다.
 주생은 제사를 마쳤다. 그는 두 계집종과 이별하며 말햇다.
 "너희들은 집을 잘 간수 하여라. 내 후일 성공해 돌아오면 반드시 너희들을 돌봐 주마."
 계집종들은 섧게 울며, "저희들은 주인 아씨를 어머니 같이 우러러 받들었고, 아씨도 저희
를 자식같이 사랑해 주시었어요. 이제 저희가 박복하여 아씨를 일찍 여의었으니, 오직  믿고
슬픔을 달랠 길은 서방님 뿐이온데, 이제 서방님 마저  가신다니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사오리까." 하고는 더욱 섧게 울었다. 주생느  새삼 계집종들을 달래 주고는 눈물을  뿌리며
배에 올랐다. 그러나 차마 노를 저을수가 없었다.
 이날 밤 주생은 무홍교밑에서 묵었다. 멀리 선화의 집을 바라보니 촛대의 불빛만이 숲 속
에서 깜박이고 있다. 그는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날  인연이
끊어졌음을 슬퍼했다. 그는 '장상사'일 절을 읊었다.
 주생은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가면 선화와 영영 이
별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머물자니 배도도 가고 국영도 또한 죽었으니, 의지 할데라곤 없
었다. 벌써 날이 훤히 밝아 왔다. 주생은 하는 수  없이 노를 저어서 물길을 떠났다. 선화의
집이며 배도의 묘는 점점 아득해졌고, 산굽이를 돌아 강이 굽어진 곳에 이르니 홀연 시야에
서 사라져 버렸다.
 주생의 외가인 장씨 노인을 호주의 갑부 였다. 그뿐만 아니라 화복하기로 이름이 나 있었
다. 주생은 그리로 찾아가 의지했다. 장 노인댁에서는 주생을 지극히 후하게 대접햇다. 주생
은 비록 몸은 편안하였으나, 선화를 생각한즌 정ㅇㅇ은 갈수록 더해만 갔다. 주생의  마음을
몰라주는 듯 세월은 흘렀다. 춘삼월 호시절을 맞았다. 이 해가 바로 만력 임진년 이엇다.
 장씨 노인은 주생이 나날이 여위어 가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겨 까닭을 물엇다. 그는 감히
감추지 못해 사실대로 아뢰엇다. 장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너의 마음에 맺힌 한이 잇었다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내 안사람과 노 승상은 동성
이어서 여러해동안 긴밀히 지냈다. 내 너를 위해 힘써 보겠으니 염려하지 마라."
 이런 다짐을 둔 다음 날이었다. 노인은 부인을 시켜 편지를 써, 늙은 하인을 전당으로  보
내 왕사지친을 의논했다.
 선화는 주생과 이별한후 닐ㅇ;먄 ㅇ날마다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여윌대로 여위어
만 갔다. 승상 부인도 선화가 주생을 사모하다 얻은 병인줄 알고 잇엇다. 그녀의 듯을  이루
어 주려 했으나, 이미 주생은 떠나 버려서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돌연 노 부인의 편
지를 받았다. 온 집안이 놀라며 기뻐했다. 섢솨도 누워있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머리도  빗고
세수도 하며 몸단장을 하는 등 전과 같았다. 이해 구월로 혼인날이 정해졌다.
 주생은 날마다 포구로 나가 늙은 종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흐레가 되던 날이었다.  그
늙은 종이 돌아 왔다. 정혼의 뜻을 전하고, 더욱이  선화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주생은 급히
편지를 뜯었다. 분향냄새가 그윽했다. 편지지에는 눈물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는 선화의 애
원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편지를 읽고 난 주생은 꿈꾸다 깨어난  것만 같고, 술에 취했다. 정신이  난 것만 같았다.
슬프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오는 구월을 손꼽아 보니 아직도 아득했다.
 주생은 혼일을 고쳐 잡으려고 장씨 노인을 찾았다. 다시 한번  늙은 종을 보내 달라고 청
한후, 선화에게 답을 썼다.
 주생이 편지를 써 놓았으나 전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이엇따.  조선이 왜적의ㅣ 침략을 당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앗다. 마침내 원병을ㄹ 중국에 까지 청해왔다. 사태는 매우  급
박했다. 황제는 조선이 지극히 중국을 섬기므로 불가불 구원을 해야했고, 또 조선이  무너지
면 압록강 서부 지방은 편안할 날이 없을 것임을ㄹ 간파했다. 장차 왕업의 존망계절이 달린
판국이어서 거절할 도리가 없엇따. 그레서 도독 이여송에게 군대를 통솔하여 적을ㄹ 무찌르
도록 어명을 내렸다.
 이때 행인사의 해인 설 번이 조선을 다녀와서 황제에게 아뢰었다.
 "북방 사람들은 오랑케를 잘 막아내며 남방의 사람들은 왜놈을 잘 방어하오니, 이 싸움은
남방의 군병이 아니면 어렵겠나이다."
 이래서 호절의 여러 고을에서 병정ㅇ르 급히 모집하게 되었다. 그때 유격 장군 이었던 어
떤 사람이 평소에 주생의 성명을 알고있어, 출전하는 날에 끌어내어 서기의 소임을  맡겼다.
주생은 굳이 사양했으나 어쩔수 없이 직책을ㄹ 맡았다. 그는 조선으로 나왔다. 안주의  백상
루에 올라 고풍칠언시를 지었다.
 이듬해 계사년 봄이엇다. 명군을 왜적을 대파하여 경상도로 몰아붙였다.
 주생은 밤낮으로 선화를 생각하여 마침내 병이 중해졌다. 그는 종군해남하할수 없어 송경
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나는 때마침 일이 있어 송경에 갔었다. 한 여관에서 주생을 만났다.
그러나 언어가 통하지 않앗다. 그래서 글롰서 의사를 통했다. 주생은 내가 글을 안다고 후하
게 대접해 주었다. 나는 주생에게 병든 내력을 불어보앗다. 그러나 그는 근심에 싸여 응답이
없었다.
 하루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나는 주생과 같이 불을 밝히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생을 답사행의 사 한수를 지어 보여주었다.
 나는 몇번이나 이사를 읊었다. 그리고 사  중의 정사를 탐눔했다. 주행을 더 이상  갑추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나만 알고  다르 사람에게는 일체 말하
지 말라느 당부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시사를 아름답게 보앗다. 그리고 이들의 기우를 한탄했고, 좋은 시일을 놓친데  대
하여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헤어진후, 나는 붓을잡아 이를 써나가지 않을수 없었다.
 



   박씨전  
 조선조 인조 임금 때에 서울 안국동에  이름난 선비가 있었으니 성은 이요, 이름은  득춘,
자는 문채라 했다. 대대로 나라에 충성한 집안으로 이득춘은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이조참
판, 홍문관-삼서의 하나로 경서에 관한 사무 담당-부제학-홍문관의 정삼품 벼슬-에 이르렀
다. 사람이 충성과 효도를 겸하고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워 이름을 온 나라에 떨쳤다. 그  부
인 강씨는 집금오-근위장관-강창문의 딸로 현숙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젊어서  결혼하여 부
부 사이가 다정했으나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자녀가 없음이 늘 근심이었다/ 해서 이름난 산을
찾아가 기도를 드렸으나 끝내 자식이 없었다. 이에 이공이 부인을 보고 탄식했다.  "우리 팔
자가 복이 없어 뒤를 이을 자식이 없으니 죽어서 무슨 면목으로 선조를 뵙겠소?" 부인이 황
송하여 사죄하기를, "제가 이씨 집안에 들어와  시부모의 사랑과 지아비의 극진한 보살핌을
입고도 이을 자식을 못 낳으니 모든 것이 저의 죄입니다. 부디 부인을 새로 얻어 저의 죄를
씻어 주소서." 이공이 듣고 부인을 위로했다. "이것은 모두 내가 복이 없는  것이니 어찌 부
인을 나무라겠소." 그리곤 부인과 의논하여 금강산 명월암으로  들어가 정성껏 칠일 기도를
드렸다. 하루는 이공이 책상에 의지하여  잠시 졸고 있는데 한 노인이  흰 수염을 나부끼며
들어오더니 말하기를, "그대의 정성이  지극함에 하늘이 감동하시어  아들을 주시니 귀하게
길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게 하라." 하며 소매 안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 주었다. 이 공이 받
고 감사의 뜻을 말하려고 했더니 노인은 간 곳이 없었다.  이어 구슬이 변하여 사내 아이가
되어 안방으로 아장아장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공이 놀라  문득 깨어보니 한바탕 꿈이었
다. 크게 이상하게 여긴 이공은 즉시  내실로 들어가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한 꿈을
꾸었는데 참으로 신기하오." 부인은 이공의 꿈  얘기를 다 듣자 웃으며 말했다.  "저도 방금
그러한 꿈을 꾸었으니 참으로 신기하옵니다." 이공이 크게 기뻐하여 부인의 손을 잡고 웃었
다. 과연 그 달부터 부인은 태기가 있더니 어느덧 날이 열 달이 찼다. 하루는 부인이 피곤하
여 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산기가 있어  아기를 낳았다. 이 순간, 하늘에서 성스러운  빛이
내리비치며 옥같은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다. "이 아이는 하늘의 별로, 세상에 내려와 그대
의 집안을 빛낼 것이오. 그리고 이 아이의 짝이 될 사람은 금강산에 있으니 부디 하늘의 정
하심을 어기지 마시오." 이공 부부가 크게 기뻐하며 아기를  보니 꿈에 보았던 아이와 똑같
았다. 때는 갑진년-1604년-사월 십칠 일  오전 여덟 시였다. 이공이  크게 기뻐하여 이름을
시백이라 하고, 자를 명선이라 짓고 보물처럼 사랑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시백의  나이
세 살이 되자 슬기와 재주가 벌써 보통 사람과 달랐다. 그 이듬해 삼월에 부인이 또 태기가
있어 딸을 낳으니 이름을 시화라 짓고 사랑스럽게 길렀다. 차츰 자라니 얼굴이 옥같이 예뻐
지고 재주가 뛰어나 소문이 자자했다. 다시 세월이 구름같이 흘러  시백의 나이 십 육 세가
되었고 시화는 십 삼 세가 되었다. 이 때에 인조 임금께서 이공의 충성스러움에 만족하시어
특별히 강원 감사-지금의 강원도 도지사-에 임명하셨다. 이공은 임금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
고 아들 시백을 데리고 부인과 딸 시화와 작별하고 임지로  떠났다. 강원 감영에 간 이공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면서 아들에게 열심히 글공부를 가르쳤다.
 이때 금강산 상상봉에 등지고 숨어사는 한 선비가 있었으니 성은 박이요, 이름은 현옥, 호
를 유점대사라 했다. 학문이 깊기로  유명한 선비로 그의 부인 최씨와  함께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높여 비취 선생이라고도 하고, 또는 유점
처사라고 했다. 일찍이 두 딸을 두었는데 장녀는 십 칠  세였으나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아
직 시집도 못 가고 아우만 일찍 시집갔다. 박처녀는 얼굴이 빌고 박색이라도 마음시가 착하
고 공부가 끝없이 높아 세상 만물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박처사는 이를 기특히 여겨 딸을
매우 사랑하며 늘 칭찬이었다. "이 아이는 재주가 이처럼  높으니 반드시 똑똑한 사람을 짝
지어 주리라." 이런 때에 마침 이공이 강원 감사로  내려왔다는 말을 듣자 박처사는 부인을
보고 말했다. "내가 감영에 가서 이공을  만나 청혼하겠소." 부인이 놀라 물었다. "이감사는
유명한 집안 출신인데 어찌 시골에 묻혀 사는 집안과 인연을 맺겠습니까?" 박처사는 웃으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부인은 염려하지 마시오. 두 아이는 하늘이 정해주신 연분이니 이 감사
도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오." 부인은 박처사의 신기한 재주를  알기 때문에 다시는 말이 없
었다.
 박처사는 즉시 나귀를 타고 감영에 이르러 군졸에게 말했다. "너의 감사께 손님이 왔다고
전하라." 군졸이 들어가 감사께 아뢰니 이감사는 즉시 들어오시도록 하라고  명했다. 박처사
가 조금 후에 소박한 옷차림으로 천천히 들어오니 이 감사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여기고
마당까지 내려가 맞이하였다. 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 절한 다음  박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금강산 산골에 묻혀 사는 박현옥이라는 천한 몸이옵니다. 이렇듯 외람되게 감
사 어른을 찾아온 것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감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박처사는
자세를 바로 하고 여쭈었다. "제가 하늘의 이치를 살펴본즉  아드님이 저의 딸과 천생 배필
이옵니다. 다만 부끄러운 것은 딸아이가  얼굴이 못생기고 바탕이 천하므로  감히 아드님과
짝이 될 수는 없으나 하늘이 정하신 것을 어길 수가 없어 감사께 아뢰는 바입니다." 감사가
듣고 나서 처사의 언동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고 기쁜  낯으로 대답했다. "선생의 높고 밝으
신 뜻과 따님의 뛰어난 바탕으로 어리석은 저의 자식을 배필로 삼고자 하시니 더 없는 영광
입니다. 말씀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박 처사는  크게 기뻐하여 엎드려 절했다. "감사께서
는 높으신 몸으로 천한 몸의 딸을 쾌히 허락하시니 감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는 즉
시 아들 시백을 불러들여 박 처사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했다. 처사가 답례하고 눈을 들어보
니 참으로 영웅의 기상을 갖추고 있어 언젠가는 반드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리라 생각했
다. "참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처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니 감사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아주 혼례식을 올릴 날을 정함이 어떻겠습니까?" 처사의 말
에 감사는 쾌히 응낙했다. 이에 처사가 좋은 날을 가리니  이듬해 팔월 이십 일이 좋으므로
그 날로 정했다. 이어 주인과 손님이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날이 저물었다. 그러자  처사가
몸을 일으켜 하직하고 가볍게 돌아가니 그 걸음이 바람처럼 빨랐다. 이 감사는 아들 시백과
함께 박 처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신기함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참으로 신선이로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덧 이듬해 봄철이 되었다. 상감께서는  감사가 백성들을 위해 정
치를 잘함을 여기시어 이조판서와 세자빈객-세자의 스승-의  높은 벼슬을 내리시고 역말편
으로 서울로 올라오시도록 했다. 이에  이공은 임금님의 높으신 성은에 감사하고  상경했다.
이윽고 박처사와 언약한 날이 거의 되어서 이공이 부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부인,  원주 감
영에 내가 얼마간 있었을 때에, 금강산 박 처사의 딸과  정혼하기로 약속한 것은 부인도 이
미 알 것이오. 이제 혼례일이 가가이  다가왔으니 애를 데리고 내려가서 성례하고  오겠소."
부인이 정색하며 말했다.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대한 일인데 서로 약속하여 정혼까
지 하시고 어찌 어길 수 있습니까?" 이공은 부인의 참된 마음씨에 대단히 기뻐하여 다음 날
상감께 나아가서 사연을 아뢰었다. 이공의 말을 듣고 난 후 상감께서는 쾌히 승낙을 하셨다.
"속히 내려가서 예식을 지내고 올라와서 안정을 찾은 다음 직책을 보살피도록 하오."하시며
게다가 상감께서 친히 금, 은, 옥 등 귀중한 보석까지 내려 주시었다.
 아들과 함께 금강산 유점사  어귀에 이르러 비취정에  살고 있는 박처사의  집을 물으니,
"여기에서 삼 사십 년을 살아왔지만 박처사란 이름은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하는 한결
같은 동네 사람들의 말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이 같은 말에 이공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혼
잣말로, "아들의 혼례일이 바로 내일인데 지금까지 박처사의 집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그
의 딸과 시백이와의 연분이 없는 것 같구나."하고 머뭇거리니까 갑자기 하늘에서 선명한 학
의 소리가 나더니 박처사가 나타나며 이공의 손을 꽉  잡고 웃으며 말하였다. "귀하신 분이
이렇게 천한 사람을 찾으려고 누추한  곳에 오시어 여러 날을 헤매시었으니,  이 모든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저의 집은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박 처사는 말을 끝맺고 바삐 시백의 손
을 이끌고, 이공과 함께 몇 리를 들어가자니 산길은 어지간히 험해서 발조차 붙이기가 어려
웠다. 그러나 박처사의 걸음은 어찌나 유연한지 평지를 걷는 것과 같았다. 얼마를 걷자니 빽
빽한 소나무의 숲과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로 만발한 곳에 너댓 간의 아담한 초가집이 한
채 보였다. 집 앞에 당도하자 대문 위에 피갈정이라는 금빛 글자로 현판을 달아 붙인 게 보
였다. 그들이 서당에 이르자 뜰 앞에선 백학이 짝지어 노닐고, 버드나무 위에서는 노란 꾀꼬
리가 지저귀니, 이공의 부자에겐 참으로 신선이 사는 고장인 듯 싶었다. 처사는 이공의 부자
를 인도하여 객실로 모셨다. 객실은 수많은 서적들로 장식되었으며  그 서적에서 풍기는 냄
새가 방에 가득 차 있었고 한쪽 벽에는 거문고가 세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숨어사는 선비의
거처다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처사가  이공의 부자에게 자리를 권하고 잠시  쉬게 한 다음
차를 내오게 했다. 차를 마시고 나자 곧 시녀가 저녁상을 차려 올렸다. 처사가 자시기를  권
하므로 이공이 밥상을 받고 보니 반찬은 청결하고도 소담스럽게 차려 놓아 먹음직스럽게 보
였다.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상을 물린 후에 처사와 같이  고금의 일을 논의하고 오랜 시간
을 이야기하였다. 밤은 깊어져 처사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이공의 부자도 편히 쉬었다. 이튿
날 이공의 부자와 함께 아침을 먹고 난 뒤에 처사가  정감 있게 웃으며 말하였다. "벌써 날
이 밝았으니 시백에게 예복을 입히고 혼례를 치를 준비를  하십시오." 처사의 말을 듣자 이
공의 얼굴은 기쁨에 가득 찼다. 곧 아들에게 예복을 입혀  안채로 들어가 예식을 올리게 되
었다. 시백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간 처사는 식장으로 시백을 인도하니, 신랑이  다가서서
상자 위에 기러기를 놓고 마루 위에 올라 신부와 서로 절을 한 다음 몸을 돌려 바깥채로 나
왔다. 이 모습을 본 이공은 기쁨에 겨워 아들의 손을 잡고 처사에게 사례하며 말하였다. "선
생과 같은 지대한 분이 미숙한 저의 자식에게 훌륭한 따님을 내주시니 저의 부자는 그야말
로 행복에 겹습니다." 이공의 말이 끝나길 기다려 처사도 사례하며  말하였다. "아드님의 총
명한 머리와 뛰어난 얼굴로서 딸의 몹쓸 얼굴을 대하게 되니 저는 몸둘 바를 찾지 못하겠습
니다. 하지만 하늘이 맺어 놓은 연분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
가 바라는 유일한 청이라면 상공께서는 은덕을  내리시어 딸의 미운 얼굴을 용서하시고  잘
보살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공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싶더니 웃으며
대답하였다. "허허, 말씀이 너무 겸양하시군요. 선생의 말씀같이 따님의 얼굴이 아름답지 못
하다 해도 여자의 보배로움은 소박하고 어진 것이 제일의 으뜸이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얼
굴이 고운 여자는 기박한 운명을 타고 나기 쉬우니  선생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처사는 상
공의 말을 고맙게 듣고 술을 내다 주객이 진종일 마시며 즐기었다.
 어둑어둑 날이 저물자 저녁을 마친 뒤, 이공이 아들에게  신방으로 들라고 이르니 시백은
분부를 받잡고 신방으로 들어갔다. 시백은 신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연  놀라지 않을 수 없
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방안의 물건이 여자의 바느질 그릇은  도대체 보이질 않고 손오병서
와 육도삼략과 같은 무술에 관한 서적만이 책장에 수북히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시백은 방
안의 스산한 풍경을 이상히 여겨 부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조금 있자니까 방문이 열리며
신부가 들어오는데 키는 거의 일곱 자는 되어 보이고, 퍼진 허리는 열 아름쯤 되며,  뭉뚱한
코와 내민 이마가 둥근 눈망울에 어울려 매우 흉스럽게  보였다. 손발이 부자유스러워서 다
리까지 절며, 얼굴빛은 먹칠을 해놓은 것 같고, 양쪽의 혹은 두 어깨에 늘어져 가슴께를  덮
었으니 신부의 모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흑살천신이라는 귀신이 아니라면, 확실히 염라대
왕이 사는 곳의 우두나찰이란 귀신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신부의  흉악한 얼굴을 대하고 나
니 시백은 넋이 달아나고, 거기다 역겨운 것은 신부의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연상 코를 지
르니 신랑의 비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만 정신없이 뛰어 나와 놀라움을 진정하지
못하자, 상공이 놀라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놀라서 단정치 못하게 뛰어 나오느냐?" 시백이
아직 진정되지 않음에 머뭇거리자니 상공이 급히 재촉하며 말하였다. "도대체 네가 무엇 때
문에 놀랜 기색으로 나왔는지 까닭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시백은 힘없이 부친의 가슴께를
쳐다보며 여쭈었다. "소자가 신방에 들어가 방안의 모습을 이상히 여길 때쯤 신부가 들어왔
는데, 그의 몰골은 마치 지옥에나 있을 법한 검둥이 귀신같아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시백은
잠시 숨을 돌린 후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서 계속 말을 이었다. "더더욱 소자의 마음이 상했
던 것은 신부의 몸에서 더러운  악취가 물씬 풍겨 비위가 거슬렸습니다.  더 이상 마주보기
어려워 이렇게 나왔습니다." 상공이 듣고  크게 놀라서 아들의 옳지  못한 태도를 꾸짖기에
이르렀다. "네가 아무리 어리석다지만 오늘이 바로 첫날밤인데  비록 신부의 겉모양이 아름
답지 못하다 해도 무엇이 그리 놀랄 일이란 말이냐! 여자의 도리는  오직 어질고 착한 것이
으뜸이어서 얼굴이 아름답지 못함은 그리 생각할  필요가 없거늘 하물며 네가 미를  얻고자
덕을 하찮게 보는 것은 옳지 못한 행실인 줄을 모르느냐?" 상공의 노한 얼굴을 보자 시백이
황송하여 땅에 무릎을 조아려 다시 여쭈었다. "본래 소자가  아우 하나 없어 외로왔고 단지
남매뿐이어서 좋은 아내를 만나서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자녀를 낳아 뒤를 이을 본분이 여
자의 행할 도리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거동은 말할 수 없이 이상하고 괴이하여 정
녕 마주볼 수가 없으니 이것은 필시 조물주가 시기하고 또한 하늘조차 미워하여 이런 괴물
로서 계집이라 일컬으시니, 아무리 하늘의 뜻을 어기는 행실이  되고 부모님께는 천하의 불
효가 된다 할지라도 다시는 볼 수 없사오니 저의 급박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여 주시
고 어서 바삐 상경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말이 끝나길  기다려 상공은 눈을 크게 부
릅뜨며 대단히 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꾸짖기 시작하였다. "자식된  도리로 아비의 말을
손톱만큼이나 가볍게 여기고 버릇없이 말하는구나. 여자의 정숙한 덕성을 돌아보지 않고 어
여쁜 얼굴만을 요구하니 어찌 아비된 입장에서 한심스럽지 아니하며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
는가? 이제라도 너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신방으로 들어가 신부의 착하고 어진 덕에 감격
하여 잘 지내고 부디 아비의 말에 순종해라." 상공은  차츰 말소리를 낮추며 아들에게 말했
으나 아들의 태도가 수그러지지 않는 것 같아 상공은  덧붙여 다짐을 주었다. "만약에 다시
한 번 거역할 때는 부자의 인연을 완전히 끊을 것임을 명심해라." 너무도 엄격한 부친의 분
부에 시백은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신방에 들어갔다.  신부를 마주보기가 싫어서 한쪽
구석에 옷도 벗지 않고 누웠다가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렸다. 닭이 울자 바깥채로 나와 부친
의 침소를 살피고 아침밥을 먹은 후에 또  날이 저물면 구실 삼아 신방에 들어갔다가 날이
밝으면 나왔다. 이렇게 삼 일을 간신히 보내고 날을 가려 상경하게 되었다. 처사와 이별하고
이공의 부자는 신부를 가마에 태워 출발하였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 서울 본집에 당도하여 아들을 데리고 대청에 들어가 부인과 절을 한
다음에 다시 의관을 가다듬어 부인과 함께 신부를 맞이했다.  신부가 단정하게 폐백을 마치
자 부인이 눈을 들어 신부를 보자니 세상에는 둘도 없을 박색이었다. 부인은 기분이 상하여
상공에게 말하였다. "어찌 저런 인물을 며느리로 삼아  살 수 있겠오?" 부인의 말에 상공의
기색이 완연히 달라지며, "부인, 신부의 외모가 아름답지는 못하나 재주가  신기하여 수많은
도법이 마음속에 가득 하다오. 덧붙여 정숙한 덕을 지녔으니 사실상 우리 집안에 빛을 끌어
들일 인물인데 어찌해서 부인은 얼굴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시비하시오?" 부인은 상공의 엄
한 말을 듣고 더는 말을 못했다. 조금 후에 상공이  아들과 신부에게 지시하여 사당에 올라
쌍으로 잔을 드려 조상에게 아뢰고 나서 바깥채로 나가 많은 손님을 접대하도록 했다. 날이
저물자 모든 손님들은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상공은 신부에게  제 방으로 돌아가서 편히
쉬도록 하라고 전했다. 이럭저럭 여러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시백은 한 번도 신부 방에  들
지 않았다. 이에 상공은 크게 성내어 아들에게 이르길, "옛날에 제갈 공명의  부인인 황씨는
퍽이나 인물이 박색이었다 한다. 하지만  공명의 사랑이 두터웠고 마침내는  벼슬길에 올라
유황숙을 도와서 일을 할 때에 황부인이 여덟 가지의 둔갑술과 바람을 일으키고 또한 비를
내리는 술법을 공명에게 가르쳐 주어서 삼국에 이름을 떨치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
가? 비록 얼굴은 아름답지 못할지언정 지아비에게 내조하는  정성은 지대했단 말이다. 부디
네가 옛일을 길이 받아들여 내 어질고 착한 며느리를 박절하게 대하지 말아라."라고 심각히
꾸짖었다. 이후 시백은 상공의 분부를 거역하지 못하고 박씨의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백
은 한편 구석에서 옷을 입은 채로 누워 있다가 날이 밝으면  나가 버릴 뿐, 박씨에게 한 마
디의 말도 붙이지 않았다. 박씨의 마음속은 말할 수 없이  아팠지만 결코 내색할 처지도 못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박씨가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망설이는 기색이 엿보이므로 상공이  인사를 받고 나서 며느리에게  물어 보았다. "무슨
할 얘기가 있느냐, 아가?" 박씨는 조심스럽게 엎드려서 상공에게  여쭈었다. "어리석고 못난
저의 바탕으로 이처럼 귀한 집안에 들어와서 시부모님을 모시되 잘못이 너무 많아 아버님께
아뢰옵기 송구스럽사오나 저의 본성이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번잡한 곳은 매우  괴롭사옵기
에 미천한 뜻을 아뢰옵니다. 뒤뜰에다 아담한 초당을 짓고  살기가 소원이오니 허락해 주시
기 바라나이다." 상공은 불쌍한 며느리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즉시 사
람을 시켜 뒤뜰에 십여 간이나 되게 초당을 짓도록 하고 아름다운 꽃들도 많이 심어 며느리
의 마음을 펴게 하니 박씨는 상공의 배려에 감격하였다.
 이럭저럭 일을 끝마치고 좋은 날을 잡아서  계집종 계화를 데리고 초당에 이르러서  동산
안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기이하게 생긴 아름다운 꽃들이 봄빛을 자랑하고 청학과 백학들
이 번거롭게 노닐다가 주인을 반기는 듯, 모두가 선한 정경이었다. 박씨가 몹시 기뻐하며 계
화에게 아버님께 가서 종이 한 장을 얻어오라고 하였다. 상공은 계화의 얘기를 이상히 여겨
즉시 글공부하는 아이에게 빛이 고운 종이 한 장을 가져오게 하고 친히 가지고 초당으로 들
어갔다. 박씨는 상공이 계화와 같이 오는 것을 보고  급히 뜰에 내려와 맞았다. "아가, 종이
한 장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박씨는 고개를  숙이고 차분히 여쭈었다. "이처럼 귀한 집
에 별호가 없어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공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허허, 과연
내 며느리로고. 그대의 문필에 대한 제간을  보고 싶으니 직접 내 앞에서  쓰도록 하라. 자!
어서." 박씨는 지시를 받고 계화에게 붓과 먹을 가져오라 하였다. 벼루에 먹을  갈아서 종이
에 내려쓰자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상공이  보니 필체는 신기하여 푸른 용이 나는 듯하니
그 현판에 피화정이라 씌어 있고 그 옆에 <신미년-1631년-첫 봄에 취희당을 쓰다>라고 되
어 있었다. 상공은 박씨의 필법을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칭찬하여 주며 흐뭇해서  말하였다.
"참으로 보기 드문 훌륭한 필체로다. 그대가 아버지의 재주를 온통 물려받은 듯 싶구나." 상
공이 대단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박씨는 송구스러워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칭찬에 황
송하여 절하고 그 종이를 한 번  뒤적이니 별안간 금으로 쓴 현판이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상공은 더욱 신기하게 여겨져 말하였다. "진실로 그대는 세상에서 드문 재주를 가졌구나. 시
백의 마음이 어리석어 대접이 몹시 심하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할까."
 이러한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난 후의 어느 날 박씨는 안채에 나아가서 시부모님께 절하
고 엎드려 상공에게 여쭈었다. "내일  새벽에 종에게 명하시어 종로에  있는 개주집에 가게
되면 묶어 놓은 수십 필의 말이 있사온즉, 그 중에서 비루먹은 말을 잡고 값을 물어보면 일
곱 냥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은 들은 체도 말고 돈 삼백 냥을 주고 사오라 하십시오."
"실로 그대의 말이 이상하구나. 일곱  냥이면 살 말을 구태여 삼백  냥이나 되는 많은 돈을
주고 사오라 하니 말이다." 박씨가 대답하여 아뢰었다. "황송 하옵지만, 후일에 보시면 자연
스럽게 아실 것입니다." 박씨의 대답에 상공은 믿고 있었지만 부인이 속으로 비웃으며 상공
의 믿음에 핀잔을 했다. 이튿날 상공은 바깥채로 나와 가장  충실한 종을 불러내어 돈 삼백
냥을 주고 지시하였다. 종은 상공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스레  생각하기도 했지만
분부를 받들고 종로에 있는 객주집에  가 보았더니 과연 그러했다. 말의  흥정꾼을 불러 그
중에서 비루먹은 말을 손으로 가리키며 조용히 말하였다. "저기  있는 말 값은 얼마나 합니
까?" 흥정꾼이 묘하게 생각하는 눈치더니  말했다. "건강한 말이 많은데  하필 연약한 말을
사려고 하십니까? 값은 일곱 냥입니다." "우리 영감님이  분부하시길 일곱 냥 하는 말을 삼
백 냥 주고 사오라 하시니 이 돈을 받으시고 그 말이나 제게 주시오." 말 흥정꾼이 크게 놀
라며 말하였다. "그 분 이상도 하시네. 일곱 냥하는 값싼 말을 어떻게 삼백 냥이나  받고 팔
수 있겠소? 절대 받을 수 없소." 상공의 종이 말하길, "이것은 우리 영감님의 분부인데 어찌
거역할 수 있겠소." 하며 삼백 냥을 억지로 주려  하니, 말 흥정꾼이 나직히 말했다. "말 값
은 일곱 냥 내어놓고 그 남은 것은 우리  두 사람이 나누어 갖고 집에 돌아가서 삼백  냥을
다 준 것처럼 하시오." 상공의 종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반씩 나누어 가지고 말을 끌고
돌아오니, 상공이 나와서 말을 이끌고 뒤뜰로 나가 박씨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박씨가  나
와서 보다가 상공에게 여쭈었다. "송구스럽지만 저 말을 도로 내다가  주라고 하십시오." 상
공은 박씨의 말이 이상해서  물어 보았다. "네  말대로 사왔는데 어째서  도로 주라고 하느
냐?" 박씨는 똑똑히 대답했다. "아버님께서는 모르고 계시겠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말 값
을 덜 주고 사왔으니 무엇에 쓸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해서 도로 내어다 주라고 하였사옵니
다." 상공이 놀라서 종에게 꾸짖었다. "너는  말 값을 얼마나 주고 사왔는지  솔직히 말하렸
다." 종이 여쭈길, "영감께서 지시하신 대로 사왔나이다." 하니 박씨가 몸을 돌이켜 종을 꾸
짖었다. "아무리 네가 어리석은 상놈이지만 상전을 속이길 예사롭게 하니 어찌 통탄하지 아
니할 일인가? 네가 말 값을 흥정꾼에게 주자 그 놈의 말이 '말 값 일곱 냥만 빼어놓고 다른
나머지는 우리가 똑같이 나누어 먹자' 하니 그 말에 너의 귀가 멀어 나누어 가지고  왔거늘,
너는 나를 속이지 못할 것이다. 상전을 속인 크나큰 죄는  뒤에 다스리겠지만 어서 가서 네
가 나누어 가진 돈을 말장수에게 주고 돌아오되, 만약 늦어지면 너의 목숨은 보존하기 힘들
게 될 것이니라." 종이 박씨의 말을 듣고 나자 두렵고  겁이 나서 땅에 엎드려 백배 사죄하
고 속히 객주집에 가서 거간꾼을 보고 꾸짖어 말하였다. "이 몹쓸 놈아, 너의 말에 솔직하여
곧이 듣고 말을 가지고 갔더니 하마터면 상전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을 뻔했다." 말 값을
모두 합쳐서 임자를 찾아가 사연을 말하고 삼백 냥을 억지로 주고 돌아와 박씨에게 말하였
다. "전부 주고 돌아왔습니다."  박씨가 이르기를, "물러가 있거라."  하고, 상공께 여쭈었다.
"말에게 하루 깨 한 되와 생동쌀 오 홉씩으로 죽을 쑤어서 삼 년만 먹이고 초당  앞뜰에 찬  
이슬을 맞힌 다음 버려 두고 나면 쓸 곳이 꼭  있습니다." 박씨의 진중한 말에 상공은 기꺼
이 허락했다.
 벌써 삼 년이 다 되어서 하루는 박씨가 안채로  나아가 시부모님께 절하였다. 그때까지도
부인은 며느리의 얼굴이 보기 흉해서 눈썹을 찡그렸지만 항상 웃는 낯의 상공은 손까지 잡
고 며느리에게 일렀다. "무슨  할 얘기가 있느냐, 아가?"  박씨는 담담하게 여쭈었다. "아무
달 아무 날에 명나라 황제가 돌아간 소식을 전하려고 사신이 올 것입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믿을 만한 종을 시키시어 내일 아침에 그 말을 끌고 나가서 남대문 옆에다 세워서 두면  공
문을 가지고 오는 칙사가 보고 '저 말 값은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묻거든 '말 값은 삼만 팔
천 냥이오.' 하면 그 사신이 그 값을 전부 주고 살 것입니다. 그 말 값을 받아오라고 하십시
오." 상공은 박씨의 말을 신기하게  여겨 그의 말을 허락하고 그  이튿날 심복 종 원삼이를
불러 단단히 분부를 내리었다. "네가  이 말을 끌고 남대문 옆에  서 있으면 필시 명나라의
칙사가 이러이러 물을 것이니까 '말 값이 삼만  팔천 냥이오.' 하면 곧바로 다 치를  것이다.
주는 대로 받아 오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원삼이가 분부를  받들고 곧 말을 끌고 남대문
옆에서 있자니 정말로 칙사가 들어오다가 그 말을 보고는 통역관을 시켜 주기에 그대로 말
했더니 다시 묻지 않고 말 값을 다 주므로 받아 가지고 곧 돌아와 상공께 아뢰었다. 상공은
종의 노고에 칭찬하고 후원에 들어가  박씨에게 말 값을 받아 온  것을 말하였다. "어찌 그
말 값이 그렇게도 비싼 것이냐?" "그 말은 천리를 달리는 날쌘 말이어서 조선에서는 알아보
는 사람도 없지요. 그러나 명나라는 지방이 넓고 오래지 않아 쓸데가 많으므로 칙사는 영특
한 사람이기에 알아보고 삼만여 금의 비싼 값에도 아랑 곳 없이 사 갔사오나 조선은 지방이
좁아서 쓸 곳이 없사옵니다." 탄복한 상공이 말하였다. "비록 너는  여자 몸이지만 총명하여
만일 남자로 태어났다면 이 나라의 큰 기둥이 되어 보탬이 많을 것이다."
 이 시절에는 나라가 태평하여 전 백성이 즐거웠고 또 상감이 성현을 모신 사당에 제사를
드리시고 과거를 베풀어서 인재를 등용시키시니 이시백이 과거를 치르고자 온갖 준비를  갖
추고 나가려 했다. 이날 밤 박씨가 꿈을 꾸었는데 뒤뜰 연못 가운데  꽃이 활짝 핀 곳에 벌
과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옥백으로 만든 벼룻돌을 담는 그릇이  갑자기 변하더니 푸른 용이
되어 놀다가 여의주를 얻어 물고 은색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꿈이었다. 매우 이상히 여겨져
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연못가에 나가 보니 거짓말처럼 벼룻물을 담는 그릇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꿈에서 본 것이었다. 박씨는 그것을 가져다 간수하고 계화를 일렀다. "소서헌에
가서 상공께 잠시 들어오십사고 여쭈도록 해라." 즉시 소서헌에 다다른 계화는 시백에게 박
씨의 말씀을 여쭈었다. 계화의 말을 듣고 시백은 언짢게 여기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도대체
무슨 큰 일이기에 여자가 대장부의 과거 공부를 지체하게 하느냐?" 계화가 돌아가서 그대로
전하니 박씨는 얼마 간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다시 계화를  보내어 일렀다. "무릇 여자의 도
리로써 앉아서 서방님을 오시라 함이 당돌합니다만 잠시 들어오시면 과거장에서 스실  도구
를 드릴 것이니까 한 번의 걸음을 하시기 빈다고  여쭈어라." 박씨의 명으로 계화가 마지못
해 박씨의 전갈을 상세히 아뢰었다. 계화의 말을 전부 듣고  난 시백은 대단히 노하여서 쩡
쩡 울리는 목소리로 꾸짖었다. "일개의  계집이 집안에 앉아 과거  공부하는 장부를 이토록
마음 산란하게 하니 어째서 큰 소리가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시백은 말을 마치자  더욱 분
함이 치밀어 올라 호령하고 계화에게 꾸짖어 말하였다. "시골에서 자란 너의 주인에게 일의
순서를 너무도 모른다고 분명히 전하고 여자가 되어서 어찌 장부를 마음대로 오라느니 가라
느니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내 오늘 네게 벌을 주는 것은 너의 주인을 대신하려 함이니 그
대로 전해라." 말을 마치고 매를 서른 대를 때리시니 계화가 울며 박씨에게 자기가 당한 얘
기를 서럽게 말하자 박씨도 눈물을 흘리며 일렀다. "분명히 내 죄를 너에게  내리셨구나. 이
제야 여자의 위치가 가엾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겠구나." 잠시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쉰 연
후에 물을 담는 그릇을 주며 전하였다. "이 벼룻물을 담은 그릇으로 먹을 갈아 글을 지으면
장원 급제하여 크게 출세해서 이름이 세상에  날 것이며 부모님께는 영원한 복을  드리므로
집안이 빛날 것이며 이제 나는 서방님에게 필요 없을 테니 내 생각은 마시고 지체 높은  귀
한 집안의 아름다운 여자를 데려와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여쭈어라." 계화는 박씨의
말을 새겨듣고 그대로 전하였다. 시백이 계화의 말을 듣고 나서 벼룻물을 담는 그릇을 보니
까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배였다. 자기가 너무나 지나친 말을  한 것 같아 속으로 뉘우치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계화에게 천천히 일렀다. "아가씨께 전하여라. 본디 나의 천성이 우
악스럽고 급해서 아가씨의 말씀을 언짢게 여기고 너에게 심히 책망하여 벌까지 주었으나 아
가씨의 성품이 워낙 온순하여 벼룻물 담는 그릇을 보내주어 과거 보는 일에까지 도움을 주
니 대단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한 행동을 분하게 여겨서  다른 집안의 여자에게
다시 혼인하라는 말씀은 조금 지나친 말인 줄 안다고  가서 여쭈어라." 명을 받들고 계화가
다시 돌아와 박씨에게 서방님의 말씀을 낱낱이 아뢰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박씨는 아무 대
답이 없었다.
 드디어 과거 날이 되어서 시백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글의 제목을  보고 곧바로 그
벼룻물을 담긴 물로 먹을 갈아 단숨에 써서  내놓으니 너무도 글이 잘 지어져서 고칠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시백은 맨 먼저 글을 내고 발표하기만을 초조히 기다렸다. 얼마 후  시험
관이 발표를 하는데 장원은 서울 출신 이시백이며, 그의  부친은 이조판서 이득춘이라고 크
게 소리쳐 알리었다. 시백이 너무 기뻐 당황할 대 시험장  위에서 새로 합격한 사람들을 부
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백이 많은 사람 속에서 나와 과거 보던 곳 아래에 이르자,  상감께서
는 장원을 보셨다. 시백의 됨됨이가 영특하고 월등한 호걸이므로  임금의 얼굴에는 기쁜 빛
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이공이 그의 아들을 두어 나라에 큰  기둥이 되게 키운 것을 칭송하
시면서 종이꽃과 남빛 옷을 내어  주셨다. 시백은 성은에 사례하고 비단  도포와 옥으로 된
띠에 뛰어난 얼굴로 풍악을 거느리고 대궐문을 나왔다. 기운으로  불그스레 취한 동작이 참
으로 이 나라의 인재 다왔다. 시백의  일행이 안국동 가까이 다다르자, 우선 사당에  엎드려
절하고 부모님들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또한 바깥채에서 치하하러 온 여러 손님들이
장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상공과 함께 나가보니 상공의 친구가 많이 모여 기뻐하고 치하
해 주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파연곡-잔치가 끝날 때  부르는 마지막 노래-을 불렀다. 그 후
시끌시끌하던 집안이 이젠 고요해졌다. 모든  손님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상공은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간 저녁상을 물리고 촛불을 켜서 낮을 이어서 계속 즐기는데 상
공의 얼굴에 서운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마도 상공은  손님을 보기가 부끄러워 방안에만
앉아 있을 박씨를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부인이 마음이 심히 상하여서 물어 보았다. "오
늘같이 하나뿐인 아들이 과거에 급제를 해서 경사스러운 일은 평생에 두 번 다시 맛보지 못
할 것인즉 어찌하여 상공의 얼굴 빛이 그러하십니까? 혹시 그토록 추악하게 생긴 며느리가
이 자리에 없음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온지요?" 상공이  침묵하여 대답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 보이자 부인이 재촉해서 물어보았다. "어서 말해 보십시오?" 갑자기 상공의
얼굴빛이 엄숙해지며 일렀다. "부인, 아무리 학식이  얕고 좁다한들, 겉모양만을 중요시하고
속에 담겨진 큰 재주를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며느리의 재주는 위대하기까지 하며  옛
제갈공명의 부인인 황씨보다 크게 뛰어날 것이오. 덕행 또한  충만하고 절개가 돋보이니 주
나라의 문왕의 아내인 태사에게도 견줄 정도이니 우리 집안에는 분에 넘치는 며느리인데 부
인의 그 속좁은 말은 우습지 아니하오?" 상공은 여전히 좋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이 때 서방님의 장원급제를 듣고서 계화는  박씨에게 기뻐 치하하고 또 탄식하여  말하였
다. "아가씨! 시집오신 후로, 서방님 모습은 단 한 번도 침실에 보이지 않았었지요. 우리  아
가씨가 어질고 착한 성품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박대하심을 당하시어 홀로 쓸쓸히  후원
에서 많은 날들을 지내시며 집안의 모든  일에 참석하지 못하시고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시
니, 저의 생각에도 아가씨를 생각할 때면 서러워짐을 느끼고 눈물까지 나옵니다." 박씨는 눈
물을 흘리며 여릿여릿 말하는 계화의  이야기를 듣고난 후 태연히  대답했다. "우리 인간의
팔자는 이미 하늘이 정하신 것이니 어찌 나의 기구한 팔자를 탓할 수 있겠느냐? 어차피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옛부터  얼굴빛이 붉은 여자와 팔자 사나
운 사람이 한 둘이 아닌고로 나 혼자만이 기구한 것이  아니느니라. 선한 이는 분수와 운명
을 받아들이고 하늘의 뜻을 기다림이 옳은 것이니, 아녀자된  도리로써 어찌 서방님의 은혜
로서 사랑하심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제 다시 이상한 말을  하지 말아라. 모르는 사람이
듣게 된다면 나의 몸가짐에 관해 천히 여길 것이 분명하다." 박씨의 넓은 마음과 어질로 정
숙한 말에 계화는 감격하였다. 이미 이 때는 박씨가 시집온 지 삼년이 되었다.
 하루는 안채에 나와 시부모님께 절하고 조용히 여쭈었다. "제가  시집온 지 벌써 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본가의 소식이 아득하니 부모님의 안부를 알고 싶어 다녀오려 하오니 어른
께서는 허락하여 주시기 비옵니다." 상공은 며느리의 말을 듣고 대뜸 놀라서 일렀다. "네 심
정이 짐작은 간다마는 여기에서 금강산까지는 오백 리에 달하고 길도 험한데 어찌하여 네가
떠나고자 하느냐? 나이 많은 남정네도 출입하기가 어려운 곳인데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 떠
날 수 있단 말이냐?" 박씨가 숨을 죽이고  가만 있자 덧붙여서 말하였다. "쓸데없는 생각은
아예 먹지 말도록 해라." 그러나 박씨는 상공의 말을 듣고 송구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물론
아버님의 말씀이 옳으신 줄 압니다만 꼭 다녀오고자 하는 심정이니 부디 허락하시고 어른들
께서는 너무 염려 마십시오." 상공은 박씨의 지혜로움을 알고  있어서 더 이상 말리지 못하
고 승낙하고 일렀다. "너의 효성이 아름답기로  꼭 한 번 다녀오도록 할 것이다.  내일 떠날
차비를 차려 줄 터이니 속히 다녀오도록  하여라." 다시 박씨가 여쭈었다. "저  혼자 사나흘
동안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차비는 필요치 않습니다." 사실 박씨의
재주가 월등함을 짐작은 하지만 그렇게 빨리 다녀올 수 있는 줄은 몰랐다. 박씨의 신통력이
그토록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상공은 더욱 신기하게  여겨져 흔쾌히 허락을 내렸다.
이튿날 시부모님께 절하고 방으로 돌아온 박씨는 계화를 불러 다짐을 주었다. "친정집에 잠
시 다녀올 테니까 너는 내가 떠난 모습을 어떤 사라에게도 소문내지 말도록 해라." 말을 끝
마치자 뜰에 내려와 서너 걸음 걷다가 몸을 구름 위로 날려 눈감짝할 사이에 금강산 비취정
에 이르러서 부모님께 절하고 문안을 드렸다. 딸의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박처사는 슬픔이
복받쳤으나 딸의 손을 잡고 탄식하듯 말했다. "어언 시집 보낸 지 삼년 동안에 너의 운명에
기박함을 서러워했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이어서 방도를 찾지 못했지만 이제부터
너의 불행이 끝이 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행복이 주어질 것이다.  이 달 십오 일에 서울
로 올라갈 터이니 너는 잠시 쉬고 가거라." 박씨는 말씀 그대로 몇 해 동안의 정을 풀며 부
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처사 내외가 재촉하며 말하였다.  "네 시아버님께서 기다릴테니 어서
돌아가서 안심시키도록 해라."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마지못해 이별을 고하고 날
이 새기를 기다려 구름을 타고 잠깐 사이에 제 방으로  돌아왔다. 계화가 아가씨를 맞아 잘
다녀오신 것을 기뻐했다. 박씨는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시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나서 상공께 여쭈었다. "천정에게 돌아올 적에 저의 아버님이 이 달 십오 일에 오신
다고 시아버지께 아뢰라고 하여 이렇게 말씀 올립니다."  상공은 알아들었다고 이르고 집안
사람들에게 지시하여 술과 안주를 듬뿍 장만해 놓고 처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십오 일이 되자 달빛이 밝게 비치고 맑은 바람이 휙 부는 듯하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처사가 구름을 타고서 내려왔다. 상공이 마당으로 내려가 처사를
맞이해서 방으로 모시고 절을 마친 다음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또한 시백은 옷을 가다듬어
입고 처사를 향해 절하며 여러 해 동안의  문안을 드리니 그 모양이 훤하고 의젓하게 보였
다. 처사가 대단히 기뻐하고 사위의 굵은 손목을 덥석 잡으며 상공께 치하하여  말했다. "훌
륭한 인품의 아드님이 장원 급제함을 진실로 축하드리며 높은 벼슬까지 올라가니 귀하신 집
안에 이런 경사가 또 다시 없음을 익히 알면서도 천성이 어리석어 상공께 변변히 치하 드리
지 못했더니 올해에 딸의 불행이 끝나고 지금 그 흉한 얼굴과 추한 탈을 벗을 시기가  되었
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과거에 급제한 사위를 높이  치하하고 더불어 딸아이를 보
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상공은 처사의 말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짐작하고 갑작스
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주객이 술을 마시며 서로의 정감 있는 말을 나누기에 밤이 깊어가
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마침 닭 우는소리를 듣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어 편히 쉬고 처사는
박씨의 박에 들어갔다. 박씨는 부친을 맞아 절하고 문안까지 드리니 처사가 딸의 손을 잡으
며 남쪽을 향해서 앉혔다. 처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박씨에게 일렀다. "비로소 오늘에야 너의
허물이 다 끝났다." 하며,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부르는 말을 줄줄 외며 소매를 들어 박씨의
얼굴을 가리키자 그다지도 흉하던 얼굴의 허물이 깨끗이 벗겨지며 옥같은 고운 얼굴의 뛰어
난 미인으로 바뀌었다. 처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박씨에게 말하였다. "너의 이 허물을  내가
가져가고 싶다만 의문을 풀 길이 없구나. 그러니 시아버님께 잘 말씀드려 궤짝 하나를 얻어
서 시아버님과 서방에게 보여 의심을 풀게 하여라. 이제 오늘부터  너와 내가 이별한 뒤 칠
십 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지나야 우리 부녀가 다시 만나 다하지 못한 정을 풀 수밖에 없겠
구나." 처사는 아쉬운 듯 딸의 모습을  쳐다보고 바깥채로 나가서 상공과 이별하며  말했다.
"다음에 혹시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시면 며느리에게 물어 보도록 하십시오." 처사가 마당으
로 내려서 두어 걸음 걷는 것 같더니 이내 모습이 없어졌다. 상공은 신기하게 여겨졌다.
 다음 날 계화가 상공께 나아가 알렸다. "처사께서 어제  다녀가신 뒤에 저의 아가씨의 허
물이 말끔히 벗겨져 이제는 매우 아름답고 고운 부인이  되었사옵니다. 이토록 신기한 술법
이 있기에 감히 상공께 아뢰옵니다." 말을 듣고, 상공은 기쁨에 넘쳐서 속히  후원으로 들어
가 보았다. 과연 며느리는 어여쁜 미인이  되어서 상공을 맞이했다. 입이 딱 벌어진  상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박씨는 공손히 여쭈었다. "저에게 전생
의 죄가 너무 커서 흉칙한 허물을 쓰고 이 세상에 태어난 수십 년 동안의 불행을 겪으며 사
니 저의 처지를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님께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도록 하라고 명하
여 이제 오셔서 제 얼굴을 되찾아 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저의 변한 모습에 과히 의심
하지 마십시오." 말을 듣고 난 상공은 어리둥절하여 며느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거짓말같
이, 구슬같이 하얀 얼굴과 앵두 같은 입술에 만 가지 아름다움이 활짝 피어 이보다 예쁜 미
인이 다시없어 보였다. 상공의 놀라움이 너무도 크니, 박씨가 시아버지께서 의심함을 눈치채
고 이미 벗은 허물을 내어 보이니 상공이 보고 틀림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크게 깨
달아 며느리를 향해 일렀다. "이제야 너의 본래의 모습이 돌아와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으니
너의 시어머니와 특히 네 서방이  기뻐할 것이다." 말을 마치고  안채로 나오려는데 박씨가
상공에게 여쭈었다. "궤짝을 하나 주시면  이 허물을 그 속에  넣었다가 시어머님과 남편의
의심을 풀고자 합니다. 선뜻 상공은 허락하고 바깥채로 나아가 궤짝을 얻어 들여보냈다.  박
씨는 자기의 허물을 소중히 궤짝 속에 넣어 두었다. 이때쯤 상공은 안방으로 들어가 부인과
아들에게 박씨의 얼굴이 말끔히 바뀌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부인이 믿지 아니하고 비웃으며
말하길, "어떻게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래서  마음에 켕기는 무
엇이 있어서 계집종을 시켜 박씨를 부르게 했다. 전갈을 받은 박씨는 옷차림을 가다듬고 계
화에게 허물을 넣은 궤짝을 들게 하고 안방에 이르러 부인께 절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인
이 한참동안 박씨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 허허롭게  말했다. "별스런 일도 다 있구
나? 이럴 수가..." 부인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다시 박씨에게 말하였다.  "대체 너의 흉
한 허물은 어디로 가고 그런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느냐?" 박씨는  엎드려 여쭈었다. "제가
흉한 얼굴로 주제넘게 귀하신 집안에 들어온 지 이미 팔 년 동안에 시어머니께 다시없게 불
효를 했사옵고, 홀로 팔자를 원망하였더니 전생의 죄악이 끝나서  아버님이 오시어 저의 본
래 얼굴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이르는 말씀이 벗은 허물을 궤짝 속에 넣었다가 어
머님과 아버님께 보여 드려 의심을 풀라고 하셨습니다." 박씨는 말을 마치자, 계화에게 궤짝
을 가져오라고 했다. 궤짝 속에서  허물을 내어 보이니 부인이 그것을  보고 의심을 말끔히
풀어 그제서야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며느리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하였다.
 이즈음 상감께서는 시백의 총명과 덕망을 사랑하시어 벼슬을 높여서 병조판서를 시키시니
시백은 성은에 감사드리고 크게 감격하여 집으로 돌아와 상공을  뵈었다. 대뜸 상공이 묻기
를, "지금 너의 아내가 어떠하냐?" 시백이 송구스러워 대답을  못하자 상공이 말했다. "사람
의 잘되고 못됨은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므로 너의 지난 어리석음을 뉘우치거
라. 이제 무슨 낯으로 아내를 쳐다볼 수 있겠는가? 그런 됨됨이로 나라의 중책을 어찌 감당
해 낼지 의문이로고." 시백은 면구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날이 저물자 박씨의 방
에 들어가니 박씨는 등불을 밝히고 얼굴빛을 엄숙히 하고 앉아 있었다. 시백은 무어라 말도
못하고 박씨가 말하기만을 기다리다가 밤이 깊어져서야 먼저  말하였다. "어리석은 몸이 부
인의 흉한 얼굴을 싫어하고 여러 해를 박대하였더니 하늘이 나의 처복을 도와 주셨구료. 이
제 당신의 본래 얼굴을 되찾아 세상에선 둘도 없는 미인이 되셨으니 내가 아무리 뉘우쳐도
당신을 마주볼 면목이 도저히 없소이다. 하지만 부인의 도리는 남편을 따름이 그 첫째 요인
이니 부디 부인의 이것을 생각하시어 나의 어리석었던 생각을 용서해 주시구려." 그러나 박
씨는 발끈 화를 내며 말하였다. "비록 인물이 추하다  하여 시집온 뒤로 시부모님을 효성껏
모시고 당신을 모시어 커다란 잘못이 없었는데 당신이 저를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고 구박까
지 심하셨습니다. 거기다가 한갓 아름다운 얼굴만을 취하시니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은 생각
마십시오. 귀한 집안의 아름다운 여자를 얻어 사시고 저의 생각은 조금도 마십시오."  한 마
디 한 마디가 전부 옳은 고로 시백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가 자기의 잘못이므로 아무쪼록 박씨의 마음을 달래기에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밤을 지새
며 무릎이 닳도록 사죄하니 어진 덕성을 갖춘 박씨는 시백의 끈덕진 지성에 감동하였다. 박
씨는 자기가 너무 박정히 대한 것 같아 공손히 말하였다. "군자의 체통이 귀하고 또한 재상
의 위신이 무거운데 어찌 철없는 젊은이와 같이 행동하십니까? 제가 본래의 얼굴을 감추고
추한 상을 보인 것은 당신의 마음을 반하게 하지 않고 한결같이 정신을 쓰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요, 여러 해 동안에 박색을 꺼려하여 말을 붙이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신의 말씀을 삼가
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만 당신의 심보를 괘씸히 여겨서 한평생을 풀지 않으려 했더니
당신이 이렇게 말하심을 보니 여자의 마음인지 제 마음이 봄눈 녹듯이 풀려 이제 지난 일을
전부 잊었으니 당신은 체통을 차리십시오." 부인의 말을 들으니 판서의 마음이 한없이 기뻐
서 박씨에게 사례하여 말했다 ."나는 세상에 어리석고 무능한  자로서 보는 눈이 좁지만 부
인은 선녀와도 비길 수 있으니 생각이 넓고 마음 또한 깊구려, 철없는 내가 어찌 부인과 사
랑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마는 부인이 내 죄를 용서하시고 여러 해 맺힌 마음을 풀어 버리고
내 이런 기쁨은 평생에게 처음인 듯 싶소이다." 박씨는 곱게 웃으며 자기의 말이 너무 지나
쳤음을 판서에게 말하고 밤이 깊도록 말하니 두 사람의 사랑은 부풀어 갔다. 어느새 계화가
들어와 이부자리를 펴니 판서가 부인과 함께 자리에 들고 서로 깊이 사랑을 나누었다. 이에
두 내외가 서로 화합한 지 몇 달이 못되어서 아기를 배니 상공의 부부가 손자의 재롱을  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달이 다 되어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상공이 산실로 들어가 뼈대
가 굵고 두 눈방울이 초롱초롱한 갓난 손자들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상공의 부부는 온갖
일을 잊고 손자들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에  손자의 이름을 희기와 희인이라고
지어 손 안의 보배처럼 몹시 사랑하였다.
 이때쯤 상감께서는 판서의 총명과 어진 덕망을  아름답게 보시어 평안감사에 임명하였다.
이에 감사가 황송하여 대궐에 나아가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벼슬
이 높아진 것을 알고 일가 친척과 집안 식구들이 이  판서의 승진을 축하해 주었다. 판서는
이제 길 떠날 차비를 하며  장이를 불러 쌍가마를 꾸미라고 하자  박씨가 이상해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쌍교를 꾸미십니까?"  판서가 미소하며 말했다.  "그것은 부인을 데려 가고자
함입니다." 박씨가 놀라며 말하였다. "장부의 몸이 나라에 맡겨지면 부모를 섬길 수 있는 날
도 적다고 하였는데 게다가 처자까지 돌보겠습니까? 제가 집에서 부모님을 성심껏 받들겠사
오니 저는 생각지 마시고 하루 속히 부임해서 나랏일을  잘 다스리십시오." 부인의 말이 지
당하므로 이에 머리를 숙이고 사례하며 일렀다. "당연한 말이오. 내가 어리석어 늙으신 부모
님의 외로우심을 생각지 못하고 망령된 말을 했으니 곁의  사람들이 웃을까 두렵소이다. 내
미숙함을 탓하지 마시고 두 분  어른을 봉양하십시오." 감사는 말을  마치자 부인에게 절을
하고 부인과도 섭섭한 이별을 한 후에 곧바로 대궐에 나가서 절하고 부임길에 올랐다. 여러
날 만에 평양에 도착한 감사는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의 근심을 보살피고, 각 고을 원님들의
잘잘못을 조사해서 백성을 사랑하고 공무에 많은 힘을 쓰는 자는 나라에 알려 큰사랑을 주
게 하였다. 또한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자는 파면시켜 명백하게 다스리니, 도둑은  양민으로
변하여 백성들은 편안히 살게 되어 태평가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도내의 백성들이 감사
의 정치에 고마움을 느끼고 거리마다 선정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축송하는 소리가 상
감께 알려지니 상감께서는 이 감사의 선한 정치를 아름답게 보시고 병조판서로  임명하시며
속히 상경하여 나랏일을 진행하라고 분부하셨다. 왕명을 받자 이  감사는 대궐을 향해서 네
번을 절하고 서울로 올라오니 여러 고을의  원님과 수많은 백성들이 거리에 가득히  모여서
감사와 이별하기를 아쉬워하였다.
 여러 날만에 서울에 이르러 상감께 절하고 임금님의 은혜에 또 다시 감사를 드리니 임금
께서는 감사에게 칭찬을 아기지 않으셨다.  "그대가 백성을 잘 다스리고  또 사랑하는 것은
이 모두가 백성의 복이요, 나의 충실한 신하다." 하시고 손수 술잔을 들어 권하시니, 판서가
은혜에 감사하고 절하며 물러났다. 본집에 이르러 우선 부모께  인사드리자 상공이 손을 꽉
잡으며 판서에게 말하였다. "내가 늘 너를 어리석게 여긴  것은 예전에 너의 부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그랬더니만 이제는 감사의 직분을 충실히 다해서 백성이 칭송하고  상감께서
는 네 충성을 아름답게 여기시어 높은 벼슬을 주셨으니, 이제서야 내가 바라던 아들이 되었
고 임금의 충실한 신하가 되었고 박씨의 마땅한 지아비가 되었구나." 크게 기뻐하는 상공의
말을 듣고 판서는 황송하여 절하고 그 동안 그리웠던 생각을 말씀 드리며 부모님과 이야기
하다가 밤이 깊음을 알고 주무시도록 여쭈고 일어나 박씨의  방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몸을
일으켜 맞아들이는데 판서가 손을 꼭 잡으시며 앉히고는  정답게 말하였다. "그간 부모님을
모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오?" 이에 박씨는 수줍게 잡힌 손을 빼며 대답했다. "어찌
그것을 고생이라 할 수 있습니까? 모두 자식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수년간
객지에서 고생한 판서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이럭저럭  이야기하다가 오랜만에 잠자리에 함
께 드니 그 정다움이란 이루 표현하기조차 힘든 것이었다.
 명나라의 남경은 이때쯤 소란스러워서 가달이란 오랑캐의  두목이 국경을 침범하였다. 이
소식이 나라 대궐에까지 들리자, 상감은 근심이 되어 이시백을 상사-명나라로 보내는 사신-
에 임명하시고 말씀하셨다. "그대와 화합이 잘되는 사람으로 군관을 삼고 날을 잡아 출발하
여라." 시백은 임경업으로 정하여 임금께 아뢰었다. 임경업은 원래 충주 사람으로 힘이 세고
슬기가 그지없었다. 어려서 무과에 으뜸으로 뽑히고 때마침 벼슬이 철마산 군영의 대장으로
있을 때였다. 시백은 임경업을 상사군사로 삼아 중국의 남경으로 갔다. 명나라의 황제는  조
선에서 온 사신의 이름을 듣고 황자명으로 접빈사-외국사신을  맞는 벼슬-를 삼아 맞게 했
다. 접빈사를 따라 임경업과 함께 황제 앞에 나아가 이시백이 네 번 절하고 글을 올리나 황
제가 글을 거두고 옆의 신하에게 저지하여 조선의 사신을 데리고 예부에 나아가 크게 잔치
를 베풀도록 했다. 그때 마침 북쪽 오랑캐 사신이 이르러 글을 올리어 황제가 보시었다.  그
대충 내용은, <가달이 일어나서 우리 나라의 땅을 침략하니 그들의 군사는 너무 강해서  거
의 망하게 되었으니 황제게 간곡히 아뢰오니 한시 바삐 지원군을 보내 주시어 저희 불쌍한
백성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황제는 몹시  걱정하여 그곳에 보낼 장사를 선정
하려고 하자 접빈사 황자명이 아뢰었다. "조선 나라에서 온 임경업 상사군관의 얼굴을 보아
하니, 다른 나라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지혜와 용기를 높이 갖추어  가달을 물리칠 만한
능력이 있으므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병의 최고 사령관에 정함이 옳지 않을까 생각되옵
니다." 이 말을 듣고 황제가 이시백을 불러 경업의 됨됨이를 물으니 시백이 여쭈었다. "경업
의 지혜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이런 큰 중책은 이끌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백의 겸손
함을 명나라 황제는 칭찬하고 임경업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큰 칼을 손수 주며  어기는
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베어 죽이라고 하면서 삼만 명의 대군을 내주었다. 임경업은 명을 받
고 물러 나와서 장병들에게 많은 연습을 시키고 대군을 이끌고 여러 날 만에 오랑캐 나라에
이르니 그곳 국왕이 경업의 용맹을 보고서 크게 기뻐하여 맞이하고 대접을 극진히 했다. 국
왕이 가달의 군대가 강함을 걱정하니 경업이 말하였다. "국왕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비록 제
가 지혜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무찌르겠습니다." 말을 끝마치고 대군을 이끌고 싸움터에 도
착했다. 무려 적군과 삼십여 번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더니 임원수가 큰 소리를 지르며
길다란 팔을 늘이어 가달을 사로잡아 본진에 돌아오자 호왕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임원수
를 맞아 웃자리에 앉히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즐기었다. 임원수는 지휘대에 높이 앉아 군
사에게 호령하여 가달을 잡아들이고 뜰 앞에 꿇어 앉히고는 무섭게 꾸짖어 말하였다. "비록
네가 무식한 오랑캐이지만 너의 병력이 강한 것만을 생각하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느냐?" 가
달은 땅에 엎드려 백배 사죄하며 말했다. "무지한 저희가  하늘의 섭리를 모르고 호국을 침
략하여 장군께 죽을 죄를 지었으니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다시는 악한 마음을 먹지 않고 호
국에 복종하여 충성하겠으니 장군께서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수는 옆 사람에게 지
시하여 묶은 것을 풀어 주고 자기 옆 자리에 오르게  해 술잔을 주며 위로하였다. "지금 그
대의 말을 듣고 보니 진실로 그대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므로 모든 죄를 용서해 주니 또
다시 이런 부질없는 마음은 먹지 말고 하늘의 뜻대로 살아 죽을 때가지 평안을 누리도록 하
라." 가달이 크게 절하고 말하였다. "저의  죽어 마땅한 죄를 이렇게 용서하시니  제가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달은 백 번 절하고 호왕과 작별하고 남은 군사를
지휘하여 제 나라로 돌아갔다. 임원수의 넓은 그릇됨을 크게 칭찬하고 호왕은 말하였다. "이
토록 훌륭한 장군이 조선에 있는 줄은 내 미처 몰랐구나!" 경업의 탁월함을 높이 사시어 왕
조의 사위로 삼고자 하여 궁궐 안에 들어가 왕비와 의논하고 공주를 불러 경업의 사내다움
을 말하여 일렀다. :"너의 남편감을 고르려는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 이 말에  공주는 얼굴
을 숙이며 천천히 대답했다, "정녕 아버님의 분부가 저의 전부이오나 여자의 평생을 가벼이
여길 수 없으니 소녀에게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직접 보고 말씀 드리는 것이 마땅한 줄 아
옵니다." 공주의 바른 말에 호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호왕은 다음 날 바깥채에 나가 임경업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내가 장군을 신임하여 부탁할
일이 있으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달라." 경업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대답했다."어떤 말씀
이신지요?" 호왕은 진지하게 말하였다. "내게 딸이 하나  있는데 장군을 내 사위로 삼고 싶
은 바 공주에게 말했더니 그 아이의 말이  제 눈으로 보아야 정할 수 있겠다기에 그러자고
했네만 자네의 생각은 어떤지 그게 알고 싶네." 임원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삼
가 말씀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이 말에  호왕이 매우 기뻐하여 안채로  들어가 말을 전하고
높은 다락채에 발을 내려치고 공주를 그곳에 올려 보내니 임원수는 벌써 공주의 관상 보는
법을 직감하고 신발 속을 세 치나 헝겊으로 높이고 기다렸다. 과연 들어오라고 하여 경업이
들어갔더니 한참 동안 위 아래를 쳐다보고 말하였다. "키는 세 치가 더 크니 앞으로 보자면
밤 하늘의 별과 같이 크게 될 인물이요, 뒤를 보자니 용봉의 모양이어서 영웅은 영웅이지만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 못내 애처롭소이다." 이 말을  듣고 난 호왕이 경업을 사위로 삼지
못하게 되자 마음 깊이 상해하며 원수에게 나가 있으라 하고 호왕이 바깥채로 나와 공주의
거절하는 뜻을 말하고 마침내 원수와 작별하게 되자 많은 보석을 상으로 주었다. 경업은 많
은 보석을 여러 장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감격하여 한결같이 대답했다.
"저희 중에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아서 원수의 은혜가 바다같이 깊사온데 이렇게 보물까지 나
누어주시니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원수의 사람됨에  모두들 감격하고 있을
때, 원수는 호왕과 작별하고 대군을 이끌고 여러 날 만에 남경에 도착하여 황제께 보고하자
황제가 크게 칭찬하여 말하였다. "남경에 가 이토록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 이제 경업의 이
름이 세 나라에 크게 떨치니  이제 내 사랑하고 신임하는 믿을  수 있는 신하가 되었구나."
게다가 벼슬까지 높여 주시니 경업은 머리를 숙여 감격하였다.
 한편 호왕은 이시백과 임경업을 보내고 나자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조선을 쳐서 항복
을 받게 하고 우리 나라의 위엄을 말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는데 의외로 가달로 인해서 임경
업을 보게 되니 그 힘이 상당히 강하여서 가볍게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겠구나." 호왕이 마
음이 편하지 못해함을 알고 공주가 곁에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아버님께서는 과히 근심 마
십시오. 제가 조선에 들어가서 동정을 살피고 있다가 이시백과 임경업을 죽이고오겠습니다."
공주의 말을 듣고 나서 호왕은 마음이 풀려서 말하였다.  "본시 너의 뛰어난 지혜는 용맹스
ㅏ런 사내들도 이겨낼 지혜가 없음을 잘 아는 터이니 어찌 어리석은 근심을 하겠느냐?"  잠
시 후 남장을 하고 나타난 공주에게 왕은 날카로운 칼을  주고 작별하였다. 집을 떠나기 전
에 공주는 왕비와도 작별을 고했다. 왕비는 다짐하여 말하였다. "이제 조선 땅에 들어가거든
우선 의주와 평양 등지에서 말소리를 배우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 습성을 익힌 뒤에 서울로
들어가 이시백의 집을 찾아 감쪽같이 시백을 죽이고 나서 곧 의주로 가 임경업마저 쥐도 새
도 모르게 없애 버리고 돌아와 나라에 큰 공을 세우도록 하라. 부디  몸조심하여라." 공주가
명을 받들고 곧장 길을 떠나서 조선으로 들어왔다. 먼저 평안도 의주에 이르러 이시백의 집
을 찾아 왔다.
 이즈음 하루는 박씨가 안채에서 저녁 인사를 마치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시백은 밤이 깊
어져서야 들어왔다. 박씨가 판서를 맞이하여 앉혀 드리자 아들의  무릎에 앉아 재롱을 피워
박씨와 함께 이야기 하다가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박씨는 엄숙하게 판서를 향
해 말했다. "내일 저녁때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고 하면서 설중매라는 기생이 당신 서재로
찾아갈 것입니다. 만약에 그 계집의 미모에 빠져 당신의 침실에 가까이 하시면 밤중에 돌이
킬 수 없는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 계집에게 적당히 얼버무리고 제 방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잘 처리 하겠사오니 제 말을 무심하게 여기지 마시고 큰 일을 그르치게 마십시오." 유
심히 듣고 있던 판서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허허, 그 말씀 흥미롭군요. 어찌 판서된 도리로
조그만 계집의 손에 몸을 다칠 수 있겠소." 박씨가  마음이 상하여 얼굴을 찌푸리며 강하게
말하였다. "저의 말을 당신이 믿지 않으신다면 그 계집을 후원으로 들여보내시고 상공이 그
뒤를 따라 후원에 들어오시어 그 계집아이 하는 말을 잘 생각해 보시면 제 말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이에 판서가 승낙하고 박씨와 밤을 지냈다.
 이튿날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관청에 들어가 나랏일을 처리하고 해가 진 후에 집으로 돌아
오니 손님들이 모여들어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날이 저물어  손님들은 각자 돌아갔다. 판서
가 저녁 상을 물리고 한가하게 앉았는데 밤이 점점 깊어지자 어느 여자가 문을 열며 살며시
들어와 절하거늘 판서가 눈을 들고 자세히 보니 대략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이었다. 판서가 당황해서 물었다. "대체 너는 어떤 계집이냐?" 그 여자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원주에서 살고 있는 설중매라 합니다 .상공의 훌륭하심이 시골 구석까지 파
다하기에 늘 상공의 모습을 그리워하다가 사랑을 맺고자 험준한 길도 마다않고  올라왔사옵
니다. 부디 상공께서는 어여삐 여겨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대뜸 판서가 대답했다. "네 말은
기특하지만 이곳에는 손님이 많이 드나드니 후원의 부인에게 가 있으면 밤이 깊은 후 손님
이 돌아가신 다음에 너를 부르도록  할 것이니라." 말을 마치자  계집종을 불러서 후원으로
인도하라 일렀다. 박씨의 방에 들어간 설중매는 박씨에게 엎드려 절하였다. 이에 박씨가  웃
으며 말하였다. "어서 올라오너라." 박씨의 말에 설중매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들어와 앉
았다. 계화에게 술과 안주를 가져오도록 하여 한 잔 가득  술을 부어 주니 설중매가 황망히
말하였다. "저는 본시 술을 못하옵나니다만 부인께서 손수 따라  주시니 어찌 사양할 수 있
겠사옵니까?" 이렇게 하여 너댓 잔을 계속 마시더니 정신이 흐려져 술 기운을 이기지  못하
고 방바닥에 쓰러져 잠들었다. 박씨가 살펴보자 여자의 얼굴에 살기가 스며 있어 독한 기운
이 드러나 보이므로 천천히 옷 속을  뒤져보았더니 날카로운 단도가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
다. 박씨가 그 칼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자 그 칼이  갑자기 박씨에게 달려들므로 깜작 놀라
서 재빨리 피하고 주문을 외워 칼을 막아내고 잠깨기를  기다렸다. 설중매는 날이 밝아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곧바로 박씨가 일렀다. "어서 빨리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 말에 설중매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말하였다. "본시 저는 강원도 원
주에 사는 계집으로서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의지할 곳 없어 춤과 노래를 배워서 기생이
되었는바 본국으로 돌아가라 하심은 대체 무슨 말씀이옵니까? 아가씨의 높으신 이름을 듣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박씨가 소리를 높여 꾸짖어 말하였다. "끝내  나를 업신여기고 속이
기까지 하니 괘씸한 일이로구나! 네가 바로 호왕의 공주  기룡대가 아니란 말이냐?" 기룡대
는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마가 닳도록 사죄하며 말하였다. "부인께서는 신명
하시어 저의 본색을 꿰뚫어 보시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부인의 말슴대로 저는 호왕의
공주로 아버님의 명을 받고 이 집에 숨어들어 왔으니 넓으신 은덕을 베푸시어 목숨만은 살
려 주시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평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박씨가 차분
히 일렀다. "과연 네가 사실을 말하여 용서해 주겠으니 이 길로 너의 나라에 돌아가 임금에
게 전하여라. 조선에 들어갔더니 이판서의 부인을 만나자마자 본색이 드러나 성공하지 못하
고 박씨가 이르길, 내가 잠시라도 조선에서 머뭇거린다면 큰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니 하시
도 지체함이 없이 돌아가서 화를  스스로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해서 돌아왔다고 하여라."
기룡대는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엎드려 죄를 모두 고백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원하옵건
대, 제 죄를 용서하시고 무사히 저의 나라에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
씨가 무섭게 말하였다. "너의 국왕이 분에 넘친 욕심을 내어서 조선을 침략하려 하니 이 모
든 것은 조선의 운수가 몹시 나빠서 그렇기는 하지만 너의 군사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조선
을 쉽사리 침략할 수 없을 것이니 너는 빨리 돌아가서 상세히 말하도록 하여라." 말을 끝마
치고 기룡대에게 몇 잔의 술을 다시 먹이고 나가기를  재촉하였다. 기룡대는 계속해서 머리
를 조아리고 사죄한 후에 하직하고 나와서 길을 찾았으나 제대로 찾지를 못하고 한참 헤매
다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해서 말했다. "호국의 공주 기룡대가 조선 이시백의 집에 들어가
서 죽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기룡대의 통탄하는  모습을 보고 박씨가 물었다. "내가 그
토록 말했는데 어찌 지금가지 돌아가지 않고 그러고 있느냐?" 기룡대가 땅에 엎드려 대답했
다. "제가 부인의 은덕을 입고 돌아가려고 했사오나 삼면이 급경사의 낭떠러지여서 갈 수가
없으니, 바라옵건대 부인께서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박씨는  타이르며 말하였다. "그대로
너를 보내게 된다면 필시 임 장군을 죽이고 갈 것 같아서 너에게 내 솜씨를 잠시 동안 보여
준 것뿐이다." 박씨는 손을 모으며 공중을 향해서 주문을 외웠다. 이러한 순간에  갑자기 천
둥소리와 벼락이 치며 비바람이 크게 일더니 기룡대의 몸이 저절로 날아서 눈깜짝할 사이에
호국의 궁성 뜰에 닿았다. 호왕이 크게 놀라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어찌하여  우리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느냐?" 한참 후에 기룡대는 의식을  차리고 여쭈었다. "하마터면 소녀는 아
버님을 다시는 못 뵐 뻔했사옵니다."  호왕이 급히 물었다. "그 말은  웬 말이냐?" 기룡대가
조선에 들어가서 겪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상세하게  아뢰었다. 왕은
놀래서 한숨을 크게 쉬고 일렀다.  "허, 놀라운 일도 다  있구나. 이시백의 지혜로움을 높이
칭찬하였더니 그 부인 또한, 그토록 희한한 재주를 지녔구나. 비록 조선의 땅은 작으나 재주
많은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잘 알겠구나."
 왕은 많은 신하들을 모아서 의논하며  말했다. "지금 내가 조선을  쳐서 항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누가 앞장서서 큰공을 세우겠는가?" 호왕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뜰 아래서 두  장수
가 똑같이 아뢰어 말하는 것이었다. "신들에게 기묘한 재주는 없사오나, 군사를 맡겨 주시면
속히 조선을 쳐서 항복을 받아와 나라에 충성을 하겠나이다." 왕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대장군 용골대와 그의 아우 용홀대였다. 왕은 몹시 기뻐하며  모든 신하들을 모아놓고 스스
로 황제 자리에 올라 연호를 준치 원년이라 고치고 용골대와 용홀대로 하여금 좌우 선봉장
을 삼고 군사 삼만 명을 주며 명하였다. "이제 동쪽으로 돌아가서 병자년-1636년-십이월 이
십 팔일에 한양성에 도착하여 나라에 커다란 공을 세워라." 호왕의 명령을 받들고 용골대의
형제가 군사들을 훈련시켜 험한 길을 떠났다. 한편 박부인은  상공을 모시고 걱정스레 여쭈
었다. "기룡대가 혼이 나서 돌아간 뒤, 호국의 힘이 더욱 강대해져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
략하여 임경업을 죽이고 위로는 임금님께 항복을 받고자 해서 용골대의 형제들을 좌우 선봉
장으로 삼아서 북쪽으로 이십 팔일에  동대문을 깨치고 물밀 듯이 쳐들어  올 것이니, 부디
그 날을 기억하였다가 임금님을 모시고 광주산성으로 피신하시어 급히 화를 면하십시오. 뒤
의 모든 일은 제가 이곳에서 막아낼 준비를 하겠습니다."  박씨의 침착한 말에 상공의 부자
는 알아 듣고 모든 준비를 다 마친 다음에 그 날을 초조히  기다렸다. 드디어 십이 월 이십
사 일이 되자 시백은 임금께 진중하게 아뢰었다 "신의 아내의 말이 이 달 이십 팔  일 밤에
호국의 군대가 북쪽으로 해서 동대문을 깨치고 쳐들어 올  것이니 임금님과 대비님, 그리고
세자님 사형제를 모시고 광주산성으로 피신하게 하시어  재난을 피하라 하였습니다. 진실로
신은 그의 신명함을 알기 때문에 감히 상감님께 아뢰옵니다." 상감은 크게 놀라며 산성으로
피난하려고 하시자 영의정 김자점과 좌의정 박운학이 아뢰었다. "도슨지 이시백은 평화롭게
편안한 이 때에 그런 사리에 맞지 않는 속절없는 말을 하여 임금님을 불안하게 하니 버릇없
는 이시백을 파면시킨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이에 상감께서 결정을 못짓고 머뭇머뭇 거리
는데 문득 하늘에서 선녀가 칼을 옆구리에 끼고 살며시 내려와 뜰 아래서 절을 하니 임금께
서 깜짝 놀라시며 물으셨다. "선녀는 무슨 일로  여기에 내려왔는가?" 그 선녀는 다시 절하
고 여쭈었다. "소인은 이시백의 부인 박씨의 계집종 계화이옵니다. 박씨 부인이 제게 이르기
를 지금 임금께서 간신 김자점의 허울 좋은 말을 들으시고 머뭇거리실 테니 네가 빨리 가서
광주산성으로 옮기시도록 하라고 지시하시어 이렇게 왔사옵니다." 말을 끝마치고 칼을 칼집
에 꽂고 앞에 있는 망두석-양편에 있는 돌기둥-을 들어 내려칠 듯이 하여 김자점과 박운학
에게 겁을 주며 꾸짖어 말하였다. "김자점과 박운학은 들어라. 너희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
은 벼슬에 올라 있으면서도 임금님의 성은을 갚을  생각은 꿈도 안 꾸고 나라에 옳은 말을
하는 충신들을 헐뜯고 도리어 해치려 하니 너희 같은 썩어빠진 신하를 어찌 용서할 것이냐
마는 너희 죽을 기한이 아직 되지 않아서 우리 부인의 말씀이 너희들의 죄만을 나무라셨다.
그리고 조선의 국운이 무궁하니 비뚤어진 마음을 다시 품지 말라고 하셨다." 계화의 꾸짖음
에 낯이 벌겋게 달아 오른 김자점이 슬며시 물러났다. 계화는  다시 임금을 향해 엎드려 여
쭈었다. "만약이 이 밤을 이대로 보내시면 큰 화를 분명히 만나실 것입니다. 부디 저와 부인
의 말슴을 어기지 마시옵소서."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 계화는 돌아갔다. 임금은  매우 기
이히 여기시고 이시백에게 이조판서 겸 광주유수를 함께 시키시고 왕족을 호위하게 하여 산
성으로 가려고 했다. 본래 망두석은 태조 대왕께서 임금으로 되실 때에 일등 석수들을 불러
만들어 세워놓은 것이다. 그 무게 천근도 넘어 세상에서 그것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연약한 여자가 가볍게 드는 것을 보고 조종의 높은 관리들이 전부 놀래서 짐작을 해
보았다. 그 짐작이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박씨의 계집종이 저렇게 힘세니 그 주인의 신기
한 재주와 지혜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간신의 무리는 모두 물러가고 그 나머지 신하들은 임금이 타신 수레를 옹호하여 산성으로
피난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과연 백성들의 소문을 들으니  호의 군사가 서울에 침입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대궐 안에 들어가 관리를 모두 목베어 죽이고 고관들과 부녀자들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서울의 많은 백성들은 피난가느라 길거리를 메웠다고 했다.  임금
은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매우 놀라서 정신없는데도 불구하고 박씨 부인의 신명함과
충성스러움을 아름답게 여기시어 시백을 불러 찬양하시었다.  이즈음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
고 한양성에 도착한 용골대는 국왕이 이미 광주로 피난했음을 알고 분해 했다. 과연 용골대
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 용홀대에게 서울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오천 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물밀 듯이 나아갔다; 송파를 건너서 넓은 벌판에  진을 치고 광주산성의 남대문에
에워싼 후 크게 외쳤다. "죽기가 두려우면 어서 문을 열고 항복하여라." 이  외침을 들은 수
문장이 바삐 뛰어 들어가서 아뢰었다.  "호장 용골대가 남문을 에워싸고  문을 열라 고함을
지르니 임금께서는 속히 군사들을 풀어 도적을 막으시옵소서."  상감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탄식하였다. "오오, 빛나는 삼백 년의 왕업이 내게 이르러 하루 사이에 몰락할 줄을 어찌 알
았겠는가. 하늘이 무심도 하구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임금님의 소매는 눈물로 젖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시백이 침착하게 아뢰었다. "상감께서는 과히 걱정 말으소서. 이  모든 것
은 하늘의 섭리이니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용골대가 제 아무리
강한 군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산성의 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으니 감히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도 상감을 에워싸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곧  총소리가 천지
에 진동했다. 오랑캐가 성의 주위를  빠짐없이 에워싸고 사다리를 놓아  한꺼번에 올라와서
성 안으로 총을 쏘니 성내에는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다. 온 성의백성들이 서로가 서로를 짓
밟고 짓밟히어 다쳐서 달아나며 슬피 우는 소리에 성내는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상감이 놀
래시어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께서는
과히 근심마시고 적군과 화친하소서. 필시  용골대가 삼형제의 세자님을 잡아갈  것이 매우
슬픈 일이오나, 나라의 위태로움을 먼저  구하소서. 나라의 운세가 불길하여 호국의  침입을
받은 것은 모두가 하늘의 섭리이니 어쩔 도리가 없나이다. 저는  다름 아닌 광주 유수 이시
백의 아내이옵니다. 제가 칼을 한 번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 삼만 명을 풀베듯이 죽겨
없애겠지만 하늘의 뜻을 어기지 못함이오니 저의 무능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모습을 상감
이 신기히 여기시어 뜰로 내려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칭찬하셨다.
 상감이 적군과 화친을 청하니 용골대가  세자와 왕대비를 데리고 광주를  떠났다. 이때쯤
박씨 부인은 모든 일가 친척과 충신들의  집에 통지하여 피화정으로 잠시 피신하도록  전했
다. 한편으론 용골대의 아우 용홀대가 박씨 집 후원으로 들어가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
해 다른 한 편을 바라다보니 담 밖에 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고 그 아래에서 수십 간이 넘는
초당이 깨끗하게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아름다운  미녀가 다홍치마에
색옷을 어여삐 입고 앉아 있었다. 그 여자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녀의 무릎
위에는 서너 살 된 아이가 재롱을 떨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
겠는가?" 용홀대는 급히 진지로 돌아가 수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다시 그곳에 와 보니 많은
나무들은 모두 기병으로 변하여 깃발과  창칼이 벌려 있는 것 같았다.  뜰 안으로 들어가니
진을 쳐놓은 곳에 한 미녀가 앞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바로 호국의 장수 용
골대의 아우 용홀대로구나. 너는 영락없는  오랑캐로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고  남의 나라를
감히 침략하며, 또한 버릇없이  양반집의 안방에까지 무례하게 들어오니  너는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서서히  다가서면서 침착하게 말하였다.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나는 다른 사람 아닌 광주 유수 이공의 부인 박씨의  계집종 계화이다. 네가 오랑캐의 선봉
이 된 그 죄로나의 손에  목없는 귀신이 될 것이니 그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구나." 계화는
날카로운 칼을 빼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용홀대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 미인은 머리에 태
화관을 쓰고 몸에는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금빛 갑사띠를 둘렀다. 거기다
가 손에는 큰 칼을 들고서 있으니 흡사 물찬 제비  같았다. 용홀대는 눈 앞이 아찔하였으나
분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쳐 계화에게 말하였다. "가냘픈 여자가 상스럽지 못하게 대장
부 앞에서 감히 칼을 빼어들고 서 있느냐? 내가 대장부로서 너 하나 잡지 못하고 세상에 나
설 수 있겠느냐?" 용홀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달려들었다. 용홀대와 계화의 칼이 사오십 번
을 부딪쳐도 승부가 속히 나지 않더니 한 번 계화의 칼이 번쩍 불을 뿜으니 용홀대의  커다
란 머리가 칼의 빛을 쫓아서 땅으로 떨어졌다. 계화는 용홀대를  칼 끝에 꿰어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들며 사방의 적을 위압하니  모든 장병이 넋을 잃고 한꺼번에  항복을 했다. 계화가
그 용홀대의 머리를 박씨에게 바치자 부인이 일렀다. "그  머리를 높은 나무의 가지에 매달
아 용골대가 제 아우의 머리를 보고 놀라게 하라." 박씨의 분부를 받들고 계화가 후원의 전
나무에 높이 달아 매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나서 용골대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위세도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동대
문을 들어오다가 제 아우가 박씨의 계집종 계화에게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탄
식하였다. 용골대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눈치더니 얼굴이 벌겋게 충혈되어 가지고 박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큰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대체 박씨란  여자가 어떠하기에 멋모르고
대장을 죽이고 게다가 그 머리를 저 전나무 위에 매달아 놓고 겁없는 짓을 하느냐? 이제 내
가 상대해 줄테니 어서 나와  내 머리도 잘라 놓아 보아라."  용골대의 우레와 같은 음성에
박씨가 분하여 불러서 일렀다. "네가 나가서 죽이지는 말고 용골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
어주고 오너라." 계화는 명을 받들고 해와  달, 국화의 무늬가 수놓여 있는 관을  쓰고 몸에
붉은 비단으로 치장하고 손에 석  자 정도의 칼을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얼굴은
썩은 대추빛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눈은 가늘게 찢어져서 쳐다보기에도 오싹할 정도로 흉칙
하게 생긴 용골대가 꼼짝 않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화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
분히 말하였다. "용골대, 네가 호의 대장으로 위임받고 조선에 들어와서 나약한 여자에게 망
신을 당하고 돌아갈 줄은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용골대는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계화에게 말했다. "너는 한낱 천한 조선의 계집으로서 대장부를 얕보고
상스러운 말을 즐겨하니 대체 어찌된 연고인가? 내가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너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잘라 죽여 아우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말을 듣고 난 계화는 용골대를 손가
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네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감히 나를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
다. 단지 우리 조선의 운세가 불길해서 너희 오랑캐에게 욕을 보이기는 하지만 너의 아우는
우리 부인의 신명한 비법으로 목이  베였다. 그로 인해 다시 나라를  빛내었으니 어떻게 그
머리를 돌려줄까 보냐. 용골대는 들어라. 옛날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머리로 오줌 그릇
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우리 부인도 네 아우의 머리로  그 그릇을 만들어 임금님께 바쳐
서 위엄을 빛내고자 함인지도 모르겠구나. 너는 다시는 망령된 말을 그만 두고 너의 나라로
한시 바삐 돌아가는 것이 너의 생존에도 이로울 것이다."  계화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계속
하였다. "나라의 운세가 좋지 않아서 네가 세자님을 모셔가는  것을 우리 부인의 재주로 막
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왕대비님은 모셔가지  못할 터이니 그리 알고 속
히 피화정으로 모시게 하여라." 계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일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너의 목숨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용골대는 분함을  못 이기어 삼백 근짜리 쇠뭉치
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에 계화는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화단을 헤치고 달아나니 용골대
가 몰아붙이며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달아난다고 해서 네가  이 쇠뭉치에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용골대가 계화의  바로 뒤까지 쫓아오게 되자, 별안간  사방이 분간할 수
없이 어두워졌다. 계화는 쥐었던 칼을 공중에게 휘저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으로 귀신 같은 군사들이 에워싸고 들어왔다. 또한 잠깐 사이에 눈
과 비가 상당히 내려 물이 한 길도 넘었다. 용골대가  아무리 맹장이라 해도 박부인의 무서
운 재주는 당할 수 없었다.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넋을 잃고 정신없이 말하였다.
"소인이 눈은 있어도 망울은 없어 높으신 어른을 빨리 알아 보지 못하고 침략하여  천만 번
죽을 죄를 졌사옵니다. 부디 목숨만은 건져 주신다면 이 길로 제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옵니
다." 계화가 큰 소리로 일렀다. "네 생각이 정녕 그렇다면 어서 왕대비님을 이곳으로 모셔와
라." 용골대는 바삐 군사들을 재정비시키고 몇몇 군사를  불러 왕대비님을 피화정으로 모시
도록 하였다. 용골대의 명령을 받들고 왕대비님을 피하정으로 모셔 오라고 전하니 왕대비님
은 세자를 붙드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하였다. "너희 세 사람은  부디 몸조심하여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삼형제의 세자님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국가의 불행한 운세를 아뢰
고 계화에게 명했다. "용골대를 풀어주어 제 나라로 돌아가게 하라." 계화가 부인의 명을 받
고 용골대에게 말하였다. "네가 돌아가는 길에 의주에 다다르면 부득이 임 장군에게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 글을 보여 드리면 어쩔 수 없니 너를 살려 보낼 것이다." 용골대가 크
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한 다음 군사들을 이끌고 의주에 도착했다. 의주부윤 임경업은 용
골대가 동쪽으로 들어와서 죄없는 백성들을 죽이고 세자님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 크게 성내
었다. 그리고 혼자서 창을 들고 말 탄 채 달려들며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오
랑캐의 대장은 목을 내밀고 나의 칼을 받아라!" 임 장군의 노여움에 불타는 얼굴을 보고 용
골대는 겁이 나서 정신없이 말에서 내려와서는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부디 장군은 노여움
을 그치시고 이 글을 받아 보섯. " 하면서 두 손으로 글을 바쳐 올렸다. 임경업이 분을 누그
러뜨리며 칼 끝으로 받아 보니 그 글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조판서 겸 광주 유수인
이시백의 처 박씨는 임 장군께 글월을 보냅니다 .지금 나라의 운세가 지극히 불길하여 이런
슬픈 변을 당하였으나 이는 하늘이 정한 어쩔 수 없는 운수이기 때문에 용골대가 세자님을
모셔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은 분한 마음을 진정시키시어 용골대를 무사히 돌아가게 하
여 삼 년 후에 세자님을 편안히 돌아오게 하심이 현재로서는 해야 할 급선무입니다. 장군께
서는 부디 박씨의 말을 곧이 들어주시기 바라옵니다." 임 장군은 글을 다 읽고 나서 분함을
어지간히 누그러뜨리고 말에서 내려 세자님을 뵈옵고 피눈물을 흘렸다. 임장군은 머릴를 조
아려 서글피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세자님들게서는 부디 슬픔을  이겨내시어 삼 년을 참으
시면 신이 죽기를 다하여 호국에 가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세자님들은 신의 말을 가벼
이 여기지 마시고 기억해 주시옵소서." 세자는 할 말이  없어 그대로 경업과 이별하고 떠났
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감께서 왕대비님과 세자님을 호국에 보내시고 마음이 원통하시어 침식
이 불안해하시며 며칠을 계속 보냈다. 그러나  어느 하루, 하늘에서 한 선녀가 머리에  해와
달, 국화 무늬가 수 놓여진 관을 쓰고 몸에는 비단 옷을 입고 사뿐이 내려와서 땅에 엎드리
므로 상감이 놀래서 급히 물으셨다. "선녀는 누구기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박씨가
다시 일어나 절하며 대답을 했다. "저는 이시백의 아내 박씨이옵니다."  상감이 놀라서 이르
기를, "그대의 슬기를 늘 칭찬하였는데 오늘에사 그대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구나." 상감께서는 이렇게 말을 끝맺고 이시백을 돌아다보며 일렀다. "그대의 충성이 지
극하므로 저런 부인까지 두었으니 어찌 갸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상감은 유수의  벼슬을
높여 세사자-세자 시 강원의 으뜸 벼슬로서 정일품-를 시키시고 박씨에게는 정경부인의 직
분을 내리셨다. 그리고 시백의 부친 득춘에게도 보국숭록대부 겸  봉조하-평생 연금을 받는
벼슬-를 시키시고, 그 부인에게는 정경부인을 내려주시니 시백은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였
다 "신에게는 조금의 공도 없사온데 분에  넘치는 벼슬을 주시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
다." 임금께서 이르셨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그대가 지탱하여 나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지
않았는가? 내가 여러번의 위험이 있을 때 그대의 부인이 나를 도와주었고 용골대의 용맹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왕대비님을 편히 모셨으니 이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은공인데
조그만한 벼슬로써야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어서 대궐로 돌아가시는데  가시는 거리마
다 백성들이 임금님의 행차를 마중하였다. 조용한 때를 기다려 왕대비님은 박씨의 은덕으로
피화정에서 대궐로 돌아오심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하시어 상감은 박시의 노고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충신문을 세웠다. 그리고 피화정 옆에 한 집을  세우고 이름을 일가정이라고 정하
였다. 그리고 이곳으로 임금께서 매년 한 차례씩 춘삼월이  되면 거동하시어 꽃놀이 구경을
하시었다. 그 이후 이시백의 공덕을 더욱 아름답게 여기시어  시백에게 의정부-내각에 해당
함-우의정-의정부의 정일품 벼슬-과  대광보국숭록대부의 벼슬을 주시고  부인 박씨에게는
충렬 정경 부인의 벼슬을 주셨다. 그리고는 시백과 박씨를 매우 칭찬하셨다.
 이럭저럭 세월이 지나서 세자가 호국에 간 지 삼 년이 되니 왕대비님과 상감이 그 소식을
몰라 늘 걱정하시었다. 그래서 한 신하가  상감께 나아가 아뢰었다. "신에게는 비록  재주가
없사옵니다마는 제가 호국에게 세 세자님을 모시고 오겠사옵니다."  말을 듣고 상감께서 자
세히 보니 그는 의주부윤 임경업이었다. 상감께서는  몹시 기뻐하시어 임경업에게 병조판서
겸 훈련 대장의 벼슬을 주시고 상사로 삼으셨다. 그리고 곧  떠나라 하시니 경업이 거듭 절
하고 감격해서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수행원들과 함께 여러 날 만에 호국에 도착하
여 황문시관-내시-에게 통했다. 왕실에 들어간 내시가 조선국 사신이 왔다고 알리니까 호왕
이 속히 들어오라고 해서 경업이  들어가 절하나 호왕이 기뻐하여  말하였다. "어떻게 수천
리 험한 길을 오게 되었느냐?" 경업이 대답하였다  ."제가 이렇게 오게된 것은 다름이 아니
오라 조선 왕이 예물을 갖추고 세자님 삼형제를 돌려 보내시기를 바라옵기에 온 것입니다."
말을 끝맺고 많은 금은 보석과 글을 올렸다. 호왕은 글을  보자 글시가 온공하고 예물이 욕
심에 흡족하여 기뻐하며 일렀다. "과연 조선 왕은 예절을  잘 아는 임금임에는 틀림이 없구
나." 호왕은 곧 이어 세자님 삼형제를 불러 일렀다. "너희 나라에게 너희들을 데리러 사신이
왔는데 무슨 원이 있으면 한 마디씩 말해 보아라." 먼저 첫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고 아버님이 기다리시니 오직 자식된 도리로서 하루 속히 돌아가기를 학수고
대합니다." 이어서 둘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의 원이 있다면 여러  해만에 본국으로 돌아가
는데 혼자서만 가는 것은 옳지 않으니 이미  수백 명의 본국 백성들이 와 있사오니 그들과
함께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에는 셋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는 아름다운  미인을 한사람
주시면 데리고 가서 아버님께 뵈오려 합니다." 호왕은 모두의 소망을 전부 들어주었다. 경업
은 즉시 하직인사를 드리고 세자님 삼형제를 모시고 여러 날 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도착
한 즉시 상감께 나아가 보고하니 먼 길에서 무사히 돌아옴을 크게 기뻐하시고 세자님 삼형
제를 불러 호국에게 여러 해 동안 고생한 일들을 물으셨다. 그리고 또 일렀다. "그대들이 떠
나올 때 호왕이 무슨 말을 묻더냐?" 첫재는  세자가 먼저 대답하였다 ."소원을 묻기에 저는
한시 바삐 본국에 돌아가 부왕을 뵙겠다고 했사옵니다." 이어서 둘째  세자가 대답했다. "저
의 원은 백성들을 오랑캐 땅에 두기가 분하여서  데려 가겠다고 청했사옵니다." 상감께서는
둘째 세자를 크게 칭찬하시고 일렀다. "그대는 한 나라의  생명을 거느릴 만한 능력이 있구
나." 그리고 셋째 세자를 꾸짖어 말씀 하셨다. "너는 미녀를 나에게 데리고  오면 무엇이 흡
족하느냐? 어리석은 자식이로구나!" 상감께서는 갑자기 벼루를 들어 셋째 세자를 치시니, 왼
쪽 다리를 맞아 다리가 부러져 항시 다리를 절며 다녔다.
 한편 그 전에 영의정이었던 김자점은 이시백과 임경업을 대단히 시기하여 해치고자  하고
있었다. 먼저 임경업을 해치려고 어명이라고 거짓으로 말하고 형벌을  중히 덮어 씌워 감옥
에 가두었다. 그리고 장차 죽이기로 꾀하였다. 이에 세자는 경업이 자점에게 해를 당하는 것
을 알고 불쌍히 여기시어 감옥으로 가자고 분부하셨다. 그래서  감옥 문앞의 흥선문을 고쳐
거동하기를 기다렸으나 온 조정이 말리기를, "조정에서는  신하를 보시려고 친히 감옥에 가
시는 법이 절대로 없사옵니다. 세자께서는 깊이 살피시기 바라옵나이다." 하여서  세자는 그
리 여기시고 중지하였다 .이 때  경업의 형벌은 더욱 가중해져서  기묘년-1639년-삼월 이십
육 일에 서른 두 살의 아까운 나이로 목숨이 끊겼다.
 어느 하루, 상감이 잠자리에서 주무시는데 꿈결에서 경업이 온  몸에 피를 흘리고 걸어오
며 아뢰었다. "생전에 신이 충성으로 임금님을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운세가 몹
시 나빠서 김자점의 말에 속아 온몸이 성한 곳이라고 한 군데도 없이 중상으로 죽었습니다.
이 어찌 통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원하건대 저의 몸을 불쌍히  여기시어 역적 김자점을
죽여 주셔서 저의 한을 풀어주시면 신은 죽어서 넋이라도 충성을 아낌없이 바칠 것입니다."
상감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아 곰곰이 생각하시되 덧없는 꿈이었다. 상감은 이 꿈을 이시
백을 불러 말하고 임경업의 일을  물어보셨다 .시백은 눈물을 흘리며  김자점의 음흉함으로
임경업을 매질하여 가두었기 때문에 맞은  독이 곪아서 원통히 죽음을  아뢰었다. 지체함이
없이 상감은 크게 성내시어 자점을 의금부에 가두고 엄중히 문초하시니 모든 죄상을 다 말
했다. 그 말에 상감은 더욱 노하시어  명령하셨다 ."곧 김자점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여러
고을에 돌려 침뱉게 하고 몸뚱이는 경업의 집안에 내어 주어 마음대로 복수하게 하여라. 또
한 김자점의 처자는 모두 목을 옭아매어서 죽이되 사대에  한하여, 모든 세간을 몰수하도록
하여라." 이처럼 통탄할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한 나라의 영의정 벼슬을 지내어 부귀가 영
화로움에도 불구하고 악독한 흉모를 꾸며 김자점 자기 자신이 몸을 망쳤으니 넋인들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때 이시백은 상감의 분부를 받들어서  김자점의 죄상을 낱낱이 드러내
고 그의 몸을 묶어 신전에 세워 놓고 먼저 목을 베고,  그 다음에는 몸을 찢으니 경업의 식
구들은 불같이 달려들어 김자점을 썰고 집씹으며 간을 내어다가 영 앞으로 제사하여 원통함
을 풀고 또 풀었다. 이 대 상감께서는 경업의 원통한  죽음을 가엾이 여기시고 예조에 명하
여 충신문을 세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벼슬까지 높여 주시어  대광보국과 의정부 영의정 겸
세자사를 내리셨다. 또한 시호를 충렬공이라 하고 왕족의 대우로  장사지내라 하시고 그 자
식에게 벼슬을 주어 어버이의 거상 중에도 나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제문을 손수 지으시어
예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십 년까지 영의정의  녹을 누리게 하시니 성은이 바다
와 같았다. 이때 임금의 건강이 편안하지 못하시어 구월  초순에 돌아가시니 왕위에 오르신
지 꼭 삼십 이년이 되었다. 온 조정이 장례를 치르고  세자가 즉위하시니 나이가 십구 세였
다.
 이제 태평한 날은 계속되어 길에 버려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는 도적도 없고 밤에 문을
걸지 않아도 걱정이 없으니 거리마다 태평가가 넘쳐 흘렀다.  이러한 태평 연월에 이시백은
한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나랏일을 잘 다스려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이끌고 백성을 의로운
길로 인도하였다. 이에 공의 이름이 온 나라에 떨치고 그의  아들 희인 형제도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하나는 평안도 감사가 되었고 하나는 송도유수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정치가 또
한 청렴 결백하고 자손이 여럿 되어 한결같이 똑똑하여, 그  재롱을 보며 세월을 보내고 살
았다. 어느 해 뜻바까에도 정승이 병을 얻어 끝내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
시백의 부부는 아버님을 잃고 주야를 뜬 눈으로 지새우며 깊이 슬퍼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도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인이 이어서 세상을 떠나시니 연세는 여든 셋이었다. 한꺼번
에 어버이의 상사를 당하고 나니 더욱 애통하여 정신까지 잃었다가 겨우 음식을 먹고 기운
을 차리자, 그 때가 장례일이 되었다. 서산에 장사를 지내고 예를 갖추었다. 이 소식을 상감
께서 들으시고 슬퍼하시어 예관을 보내어 제사 지내게 하시고 이시백을 궁궐로 부르시어 얼
굴이 수척함을 보시고 매우 근심하셨다.  이시백은 상감의 위로에 감격하여 엎드려  절하니,
상감이 공이 너무 애통해 하는 것을 보시고 넌지시  말하였다. "네가 그대의 무거운 직책을
갈아 봉조하를 시키니 아침 회의에는 참석치  말고 집에서 한가로이 쉬며 자손들의  효성을
받아 보아라." 상감께서는 말을 마치시고 희인의 벼슬을  높여 이조판서의 직책을 맡기시고
희기에는 도승지 겸 형조참판을 시키시며 일렀다. "며칠내로  상경하여서 내 기대함을 저버
리지 말도록 하라." 두 사람은 대궐로 나아가 성은에 감사하였다. 상감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일렀다. "그대들은 나라의 일에 충성으로 그 직분을 다하여라." 두 사람은 곧 물러
나서 집에 돌아와 공의 부부께 문안드리고 일가 친척을 청하여서 여러 해 동안 그리워하던
정을 풀었다. 이공의 부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자손들을 교훈하여 부귀를 누렸다.  이럭
저럭 공의 나이가 여든 살 넘었으니 아직까지도 기운이 넘쳐서 장성한 젊은이도 당할 만 하
였다. 가을의 구월 보름께에 이르자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공의 부인과 함께 완월대에 올라
서 좌우에 남녀 자손들을 앉히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즐기는데 공이 두 아들에게 손
수 잔에 술을 부어 주며 말하였다. "내 어린 시절이  이제 어제와 같이 느껴지더니 벌써 여
든 살이 지나게 되니 이젠  내게 한이라고는 없구나." 공은 술을  스스로 따라 마시며 다시
말하였다. "우리 부부가 세상 연분이 다하여서 장차 너희들과 영원히 작별하고자 하는 것이
다. 그러나 너희 두 사람은 조금도 슬퍼 말고 자손을  거느리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지어
다." 아버님의 슬픈 말씀을 듣자, 두 아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눈물이 눈 속에  가득 찼으나
어찌해야 옳을겐가?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속절하기도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공의 부
부가 정색하며 타일렀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ㅌ 번 죽은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네 아비는 여든이 넘어 노령이고 자손에게 부귀를 남겨 놓으므로 집안을 크게 빛내니
오늘 죽더라고 원통한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이제 너희들은 자손들을 잘 보살핌에 많은 생
각을 하여라." 말을 마친 공의  얼굴이 매우 불안하므로 안색을 바로  하고 다시 두 아들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많은 손자들을 일일이 불러본 다음에 상을 물리라 분부하고,  부
부가 가지런히 잠자리에 누워 세상을 떠났다. 이에 이판서 형제가 상을 당하여  슬퍼하였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또한 슬퍼하시어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였다. 또한 시호를 문충공이라 내
리시고 박씨 부인은 충렬 부인에 봉하시었다. 얼마 후에 계화도 세상을 떠나니 이판서 형제
가 정중히 장례식을 치르고 선산에 묻었다. 이판서 형제는 무덤가에 풀로 집을 짓고 삼년상
을 치루니 임금께서 그 충효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좌의정과  우의정에 각각 중수하였다. 이
렇게 벼슬이 정일품에 이르고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니 사람들이 충효의 집안이라 부르며 존
경했다.





   최척전 지은이: 조위한(1558~1649)
 이 작품은 광해군 13년 윤 2월에 조위한이란 문인이 지었다. 그 창작 동기를 보면 작자가
60세 되던 광해군 13년에 전라도  남원 주포에서 지내고 있을 때,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
되는 최적이 찾아와서, 자기의 기구하였던 운명을 얘기하며 없어지지  않기 위해 글로 기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대강을 서술했다는 것을 작품의 끝에다 밝혀 놓았다.
 우리는 이 작품과 같은 얘기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유몽인의 '어우야담' 에  '홍도전'이
란 이름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작품과 같은 실화가   임진왜란 때 있었다고 추
측할 수 있으며 또한 그와같은 실화를 소재로 하여 쓴 창작으로 인정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홍도전'과 '최척전'을 비교해보면  홍도전은 짤막한 설화인데 반하여  '최척전'
은 장편소설이기 때문이다.
 작자인 조위한은 명종 13년에 나서 인조 27년(1649) 91세로 죽은 문인응로서, 참판 나 언
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자를 지세라했고, 호는 현곡, 소옹이라 했다.
 그의 나이 43세 되는 선조  34년(1601)에, 늦게야 사마시를 거쳐 광해군  원년 (1609(51세
되는 해 중광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을 지내다가  광해군 5년 (1613)에 일어난 '계축옥
사'때 파직을 당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을로 사성이 되고, 인조 5년에 일어난 정묘호란 때에는 관군과 으 ㅣ병을
거느리고 싸웠다. 그후 직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작자는 당대의 명필까요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사를 풍자하는 '유민탄'이란  가사 작품도

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작자는 천성으로 타고난 효자요,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했다고 한다. 모부인의 명환이 위독
했을 때 약에 쓸 똥과 오줌의 맛을 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모부인의 입에 넣었다고
한다. 또 형제와 같이 잔치하기를 좋아하고, 잔치가 끝나고도 차마 떨어지기를 아쉬워했다고
한다. 벼슬은 공조 참판에 그치고 말았으나 항상 첞라를 널리 돌아보고자 했고,  세상ㅇ리에
는 뜻을 두지 않았으며 볏릉르 그만두고는 당대의 시인인 석주 권필과 친히 지냈다고 하니,
같은 소설 작가로서의 의기가 상통했으리라.
 최척전에 대하여
 이 작품은 임진왜란때 있었던 실화를 소설화하였는데, 실화의 서술이라 할수 잇는 홍도전
과 비교해 보면, 첫째, 남녀  주인공들의 성명이 다르다. 홍도전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성이
정생인데 대하여, 이 작품에서는 이름을 밝힌 최척으로되어있고, 여자 주인공은  홍도전으로
되어있는데 대하여, 이 작품에서는 이옥영으로 되어잇다.
 둘째, 플롯에 있어서는 홍도전은 이작품의 경계정도로 짤막하고, 이 작품에서는  홍도전
에 없는 많은 플롯으로 결구되어 있어서 작품의 우열로 보아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우리 고전 문학에서 남윤전과 함계 드물게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포로 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는 희귀한 소설이다.
 인진왜란을 당하여 아내 이씨는 포로로 되어 일본으로 끌려 갔으나, 남장을 한 이씨를 남
자로 안 왜인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같이 사랑하며 상선에다 태우고 장사하러 안남의
항구에 정박하게 된다.
 한편 피난중 가족을 잃은 남편 최척은 우리 나라에 출전했던 명군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
가 살며 친구의 상선을 타고 안남에 갔다가 왜선에 타고 있었던 아내와 누물겨운 상봉ㅇ르
한다.
 이렇게 하여 해후한 최척 부부는 중국으로 돌아와 살다가,  남편이 만주에서 일어난 청나
라를 치기 위하여 명군에 증발되어 만주로 출전하면서 아내와 다시 눈물의 작별을 한다.
 명군이 패배하고 포로가 된 최척은 수용소에서 뜻밖에도 명나라의 구원병으로 출ㅇ전했다
가 포로가 된, 고국에서 난 아들을 만나 부자간임을 확인하고, 감시병의 호의로 수용소를 탈
출하여 부자가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최척이 등창이 나서 죽게 되었을 때 그를 고쳐준 의원
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전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살고있는,  중국에서
낳은 아들의 며느리 부친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진다.
 한편 중국에 남아 살고있는 아내 이씨는  명군의 패배소식을 듣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로, 이와같은 실화는 동서 고금에도 없는 신기
한 얘기 가 아닐수 없다. 해후가 거듭되고, 기적이 되풀이 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가득하
다.
 전쟁으로 인하여 부부가 헤어졌다가 이역만리에서 해후하고,  아내가 위기에 빠져 자살하
려고 할 때마다 부처님이 나타나 죽지 말라고 격려하는데 이 모든 구원이 부처님의 가호에
의함이었다고 작자가 작품의ㅣ 끝에다 언급해 놓은 것으로  보아 그 창작 의도를 알 수 있
다.
 이와같은 부처님의 가호는 실화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는  홍도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여
자 주인공 이씨가 남원에 있는 만폭사에 가서 아들 낳기를 발원하여 아들을 낳았고,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상선을ㄹ 타고 다니면서 도 항상 염불을 하였던 것을 보면, 이작품은
불교의 영험사상을ㄹ 표현해 본 불교 소설의 주제를 띠고 있다고 하겠다.
 
 전라도 남원땅에 한 소녕이 있었으니 이름은 최촉이요, 자는 백승이라했다. 최척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서문 밖 만복사 동쪽에서 아버지와 외로이 살고 있었다.
 최척은 나이가 어렸지만 생각이 깊고 마음은 한없이 착했으며, 벗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이런 충고를 했다.
 "네가 공부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커서 무뢰한밖에 더 되겠느냐. 도대체 너는 어떤 인물을
본받고자 하느냐. 지금 한창 난리가 일어나 고을마다 장정을 널리 뽑고 있다는걸 너도 들어
알게다. 그런데 너는 오직 놀기에만 힘쓰니 어지 이 늙은 애비를 기쁘게 할수 있겠느냐.  이
책을 마련해 줄 터인즉 선비를 찾아가 배우도록 하려므나. 비록 과거 급제하여 명성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전쟁터에는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저 성남에 정상사란 선비가 있다.  그와
는 소시적부터 친구여서 잘아는 사이다. 그는 면학에 힘써  문장이 능하니 초학자를 가르침
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니 네가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도록 해라."
 최척은 당일로 정상사를 찾아갔다. 그는  간곡히 가르침을 청했다. 그래서 정상사는  끝내
거절을 못하고 문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미 학문은 크게 진전을 보았다. 동네  사람들
은 소년의 총명함을ㄹ 칭찬해 마지 않앗다.
 최척이 글을 배울때면ㄴㄴ 한 소녀가 숨어 들어 글읽는 소리를 몰래 엿듣곤 했다. 나이는
열일곱 여덟쯤 됐을까. 새카만 윤기어린 머리를 가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어느 날이엇다. 정상사가 식ㄱ사를 하느라고 글방을 비워 최척 혼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창틈으로 조그만 쪽지가 들어왓다. 최척은 이상히 여겨 그것을 주워서 펴 보았다. 그
쪽지에는 시경에 있는'표유매'의 마지막 장이 씌어 있었다.
 그는 이글을 읽자 마음이 마냥 들덨다.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다. 언제 밤이 오려나  몹시
기다려졌다. 그로다가 공부하는 사람이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The아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롤수록 마음이 달아 올랐다.
 최촉은 공부를 다하고 글방을 다섰다. 문밖에 지켜 서  있던 푸른옷을ㄹ 입은 계집아이가
뒤를 따라오며,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이사옵니다." 했다. 최촉은  계집아이를 보자 쪽지 생
각이 났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자세히 물으니, 계집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이 낭자의 시녀인 춘생이라 하옵니다. 낭자께서  저를 보내시며 낭군님에게 청하여
화답의 시를 받아 가지고 오라고 하시었사와요."
 최촉은 이 계집아이가 의심쩍어 물었다.
 "너는 정가의 사람이 아니냐? 어째서 이 낭자라고 하느냐?"
 "저의 낭자 꼐서는 ㅜ언래 서울 숭례문 밖 청파동에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 이신 이경신
어른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심씨 홀로 딸을 데리고 살고 있답니다. 이름은 옥영일라 하
옵는데, 오늘 낮 창너머로 시를  던져 준 사람이 바로 저의  낭자 이옵니다. 지난해, 난리를
피해 강화ㅏ에서 배를타고 나주로 피난 나왔습니다.. 올가을에 거기서 다시 여기 정씨  댁으
로 옮겨왔답니다. 그것은 한 과년한 딸을 두었기 때문이랍니다. 표형되시는 정상사에게 혼사
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사옵니다."
 최척은 아버지를 뵙고 청혼을 해보도록 간청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들은 화족이니까, 반드시 부자가 아니면 혼인하려 들지 않을곳이다. 우리집은 빈한해서
응하지 않을곳이 분명해."
 최척은 몸이 달아 재삼 아버지를 졸라댔다. 마침내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굳이 원한다면 내 한번 청혼을 해 보긴 하겠다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느니라."
 이튿날이엇다. 최공은 정상사를 찾아가 아들의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정상사는 이
렇게 말했다.
 "나에게 표매가 와 있긴 있다네. 그 딸은 재색과 행실이 아주 뛰어나 내가 신랑감을 널리
구하고 있는 중일세. 자네 아들의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준수하니 신랑감으로는 적합하다고
생각되나 짐안이 가난한 것이 한일세그려. 그러나 한번 누이와 상의해 가부간에 알려줌세."
 최공이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푀폭은 포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상사는 최공을 보낸다음 안으로  들어가 심씨와 상의했다. 그녀는 단호히  말했
다.
 "제가 집을 버리고 피난을 나와 외롭고 의태오롸도 의탁할곳이 없잖아요. 다만 딸 하나밖
에 어뵷으니 부잣집으로 출가시키기를 원해요. 가난한 집의 앋릉은  비록 그 마음이 아무리
어질다 하더라도 원치 않아요."
 그날 밤이엇다. 옥영은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최척의  말을 할까 망설이며 눈치를
살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려므나."했다. 옥영으리
이말을 듣고 얼굴은 붉혔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어머님이 사위감을 고르시는데 부잣집만  바라고 있으니,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그
뜻은 저인들 어찌 모르겠어요. 부잣집인 데다 사위감이 어질다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러나
생활은 부유하더라도 남편이 변변치  못하다면, 그 넉넉한 살림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집안이 무자라 하더라도 남편될사람이 어질지 못하다 하오면 그런 집으로
는 시집을 가지 않겠어요." "너, 그게 무슨 당돌한 소리냐?" "당돌한 말이 아니옵고 제 의견
을 말했을 뿐이어요. 제가 일기로는 최척이라는 사람이 아저씨 댁에 와 공부를 하고 있습니
다. 그는 인품이 충후하고 성실하여 단연코 경박한 탕자는 아닌가 합니다. 그런 분을 남편으
로 섬긴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더구나 가난한 것은  선비로서 떳ㄷ써한 길이 아니옵니
까? 저는 우너래부터 불의의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안니합니다. 부디 그 댁으
로 혼사를 정해주시어요. 이런 말은 처녀로서 드릴 말씀이 아닌줄 아 니다만, 혼자는  일생
에 있어 가장 중대한 일이옵기에 감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옵니다. 만일에 일생을
그르친다면 어찌할 것이옵니가. 이것은 깨진 병을 다시 원상대로 할수 없으며, 물들인  실을
다시 희게 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옵니다. 제 아무리  가슴아파 한들 또한 후회한들 아
무 소용이 없는 일이옵니다. 더구나 이  몸은 남의 집에 얹혀 있사오며, 거기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쟎았어요. 그리고 적병이 정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장모를 잘 받들어 모
시겠어요?"
 심씨는 딸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튿날, 심씨는 정상사와 마주앉아 말했
다.
 "제가 지난 밤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최랑은 비록  가난하지만 훌륭한 선비인 것 같
아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 인력으로는 어찌할수 어뵷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
는 사람엑세 출가시키기 보단, 차라리  잘아는 최랑으로 사위를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
요."
 "누이가 그렇게 원한다면 내 반드시  성사시켜 줌세. 최생은 가난하나  그 사람됨이 옥과
같네. 비록 서울 넓은 바닥에서 구한다 하더라도 그만한 사람은 드물걸세. 앞으로 뜻을 이루
어 학업이 대성한담녀 우물안의 개구리는 되지 않을것이니 안심하게."
 그날로 매파를 보냈다. 사주를 써 약혼했다.  내친 걸음에 9월 보름날로 혼인날까지  받아
두었다.. 부모 조다도 당사자들이 크게 기뻐했다. 혼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
음을 태우고 있었다.
 얼마 동안의 세월이 흘렀다. 남원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장은 참봉을 지냈던 변사정
이엇다. 이 의병들이 영남 으로 진격할때였다.
 최척은 활을ㄹ 잘 쏠 뿐만아니라 말타는 재주가 비상하다  하여 의병으로 뽑혔다. 최척은
짅중에서 고민하다 못해 병이 들었다. 결혼날은 하루하루 다가왓다. 그는 의병장ㅇ르 찾아가
휴가를 신청했다. 의병장은 말했다.
 "이 때가 어느 때라고 감히 결혼한다고 휴가를 달라는고. 상감께서도 몽진하셔서 풀밭, 진
흙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계셔, 신자된 도리로서 마땅히 총칼을  들어 적을 부찔러야
함이 옳은 일이 아닌고. 하물며 너는  아직도 장가 들 나이가 아니쟎느냐. 왜적을  격파하고
난후에 장가 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는 내색도 하지 말라."
 이렇듯 엄하게 책망하며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최척은  종군한 위로 혼인날이 박두해
도 돌아오지 않았다. 옥영은 혼인날을 헛되이 보냈다. 그녀는 하루하루 수심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옥영의 이웃에 양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 자는 옥영의  아름다운 미모며 착한
마음씨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혼자인 최척이 출정하여 돌아오지  않음을 틈타 구혼을 했
다. 몰래 보화를 정가로 들여 보냈고 매파를 충동질했다.
 "최생이라는 자는 빈곤하기 그지없나이다. 날이면 날마다 때  걱정ㅇ르 하니 부친 봉양하
기에도 어렵습니다. 항상 남한테서 쌀을 빌어 오는 처지라 합니다. 그런 처지에 아내를 얻는
담녀 그 어려움이란 이루 헤아릴수 없을것이요, 더구나 최생이란  자는 전장에 나가 동아오
지 않으니 그 생사를 알수 없지 않은가요. 그런데 비해  양씨는 원래부터 한다 하는 부자가
아닌가요. 그의 아들 또한 어질어 최생만  못쟎으니, 아주 금슬 좋은 부부가 될것이  뻔하지
요."
 매파는 성가시게 보챘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격으로 심씨는 마음이 소롯
이 기울어졌다. 그리하여 끝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결혼 날짜도 열흘 앞세워 정하기까지 하
였다.
 옥영은 이를 알앗다. 그날 밤, 옥영이는 어머니와 마주하자 단연코 반대하여 말했다.
 "최랑이 오지 못한 것은 그 몸이 의병장에게 매인  때문이어요. 고의로 약속을 저버린 것
이 아니온데, 최랑을 기다리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파혼하는 불의를 저는 원하지 않사옵니다.
만약 딸의 뜻을 꺾고자 한다면 저는 당장 죽어 버리겠어뇨.  어머니 마저 이 마음을 몰라주
는데, 어찌 하늘인들 알아 줄리 있겠어요?"
 "너는 어찌 제 고집만 부리느냐. 응당 남의 딸이 되었으면 부모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 것
이 아니냐. 감히 어느 앞이라고 시집가는 것까지 간섭을 하려 드느냐." 하고 심씨는 딸을 몹
시 책망했다.
 밤이 깊었다. 심씨는 잠결에 이상한 숨소리를 들었다. 놀라  깨어났다. 옆에 누워 자던 딸
이 없엇다. 당황하여 급히 찾아나섰다.
 옥영은 창 밑에 쓰러져 있었다. 수건으로  목을 졸라 맨 것이었다. 이미 소발은  싸늘하게
식었고, 가느다란 숨소리만 가쁘게 들렸다. 이것마저 점점 희미해 지더니 뚝 끊어지고  말았
다.
 심씨는 통곡했다. 부랴부랴 목을 맨 수건을 풀었다. 손길은  마냥 떨렸다. 이때 춘생이 깨
어나서 불을 밝혔다. 그녀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급히 서둘러 물 몇 모금을 입을 벌리고  흘
려 넣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가느다란 숨결이  되살아 났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 졌다. 너나 없이 달려와 구완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엿다. 심씨는  양가와의 혼사 문제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발없는
소문이 널리 퍼져 나갔다. 최공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 왓다. 그는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
렸다.
 그 무렵, 최척은 병으로 몸져 누워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서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병
세는 다급해졌다. 의병장도 이를 알고 최척을 불렀다. 곧 귀가 조치를 취해 주었다.
 최척이 집으로 돌아온지도 수일이 지났다. 그렇게 위독하던 병세도 씻은 듯이 나았다.
 마침내 그날, 섣달 초사흘이 다가왓다. 최척은 정상사의 집으로 가 옥영과 혼례를 치렀다.
두사람의 기쁨이란 이후 형언할수 없엇다.
 최척은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왓다. 집안에 들어서 기도 전이었다.  친척들이
몰려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송해 마지 않앗다. 이웃 사람들도  어진 아내를 데려왔다고 부
러워들했다.
 옥영은 시집온 지 3일도 채 안되서  시집일을 열심히 했다. 베틀에 올라  베를 자고 들로
나가 김을 맸다. 그녀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공경했고 남편을 정성스레 섬겼다. 웃  사람들
을 공손히 받들었고 아랫사람들에게는 극히 자상했다. 그녀는 인정과 사랑을 골고루 베풀었
다. 원근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양홍의 아내며 포선의 며느리도 이보다는 못했을거싱라
고들했다.
 최척은 옥영을 아내로 맞이한 후  부족함이 없엇따.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혼인을했으니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엇다. 살림도 나날이 넉넉해져 갔다. 이래서 아기자기한 세월은  흘러갔
다. 그러나 최척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를 이을 아들이 늘 걱정이 됐다. 생각다 못해 매달 초
하루가 dehllaus 부부 동반해서 만복사로 올라가 자식 하나 점지해달라고 빌었다.
 이듬해는 갑오년이엇다. 이해도 정초에 반복사로 올라가 불공ㅇ르 지성으로 드렸다.
 그날 밤이었다. 부인의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만복사의 무처로다. 내가 그대들의 지극한 정성에 크게 감동되었도다.  그래서 기남
자를 점지해 줄것인즉, 이후 부인의 몸에는 태기가 있을 것이로다."
 과연 그달로부터 태기가 있엇다. 만삭이 되어순산하니 아들이엇따. 등에는 손바닥만한  붉
은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몽석이라지었다.
 최척은 피리를 썩 잘불었다. 그는 달 밝은 밤이나 꽃피는 아침 나절에 피리를 불었다.  그
가 피리를 불 때면 저무는 봄날하며 아름다운 밤으로  미풍이 간드러지게 살랑거렷고, 밝은
달은 빛을더해 현란하게 비쳤다. 바람에 나느 꽃잎은 옷에 나앉았고, 그윽한 향이가 코 끝에
맴돌았다. 그러면 술독에서 빚어 놓은 술을  퍼, 잔 가득히 부어 마셨다.  취기가 한껏 돌면
책상에 기댄채 피리를 불엇다. 그 피리 소리는 간드러지게 울려 퍼져 멀리까지 번졌다. 옥영
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첩은 오래 전부터 아녀자들이 시를 읊는 것을 못마땅
해 했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정경에 이르러선 도저히 참을수가 없군요."
 최척이, "어디 부인이 한수 읊어 보오." 하니 옥영이 칠언 절귀 한수를 읊었다.
 최척은 이제까지 시를 지어 본적이 없엇다.  부인이 읊은 시를 듣고 크게 놀랐다.  너무나
감동해 시흥이 절로 솟앗다. 화답의 시를 읊었다.
 읊기를 마치자 옥영은 몹시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오래가지 봇할 것을 지레
짐작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세상살이에는 불의의 변고가 많사옵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마가 끼어들게 마련이옵고
헤어지고 만남이 무상한 것이오니, 어찌 마음이 슬퍼지지 않을수 있겠어요."
 최척은 부인의 눈물을 소매로 훔쳐주며 위로했다.
 "굴신과 영허 천도의 상리요, 길흉과 회린은 인사의 당연함이라 하지 않소, 설혹  타고 난
운명을 바꿀수야 없다손 치더라도, 얽매여 살 필요가 어디 있겠소.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 근
심하지 마오. 옛 사람이 말하되 '길한 말만 하고 흉한  말은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이 부
질없는 마음을 써 이 즐거운 마음을 상하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소."
 이로부터 부부의 사랑은 나날이 깊ㅊ어갔다. 이들  부부는 지음이라고 자처하면서 하루도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엇다.
 옥영은 왜놈에게 붙잡혀 왜국으로 끌려갔다. 왜병중에 늙은 병사가 있었다. 비록 글은  배
우지 못했지만 부처님을 믿어 그 마음 은 자비로왔다..  그는 장사를 생업으로 했다. 그리고
배타기를 익혔다. 그래서 왜장 소서 행장이 선주로 삼아 조선으로 나오게 되엇다.
 이 늙은 왜인은 옥영ㅇ르 아껴  주었다. 부인을 집으로 데려가 좋은  옷과 맛잇는 음식을
 어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도망치지 않으려니 여겼다. 옥영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는 직전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배를 내어 도망치려 했
으나 감시가 심해 들키곤했다.
 어느날 밤이었다. 옥영은 웅크리고 있다가 선잠이 들었다. 꿈결에 부처님이 나타나, "나는
만복사의 부처로다. 부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반드시 후일이 있을 것이다."하고 계시해
주었다. 옥영은 꺠어나 그 꿈을 곰곰히 생각했다. 부처님을 굳게 믿어 후일이 있을 것을  기
약하고는 자살하려던 뜻을 굽혔다.
 이왜인의 집에는 늙은 딸이 하나 있을뿐 아들이 없엇다. 늙은 왜인은 옥영ㅇ르 집에만 있
게 했고 바깥 출입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옥영은 말했다.
 "저는 몸이 작은데다 약골이라 병이 잦습니다. 본국에 있을때도 장정으로 안 뽑혀 출전도
봇했습니다. 단지 바느질과 밥짓는 것만 배워 다른일은 전혀 할수 없습니다."
 그러자 왜인은 더욱 가상히 여겼다. 아들같이 사랑했다. 이 왜인은 언제나 배를 타고 다니
며 장사를 했다. 장사를 나서면 옥영을 배 안에 두고 밥을 짓게 했다. 왜인은 중국 민절지간
을 왕래하며 장사했다.
 그때즘이었다. 최척은 요흥부에 여공과 함꼐 형제지의를 맺고 있었다. 여공은 매부를 삼으
려고 했다. 그러나 최척은 굳이 사양했다.
 "나는 집을 적화에 잃고 또한 노부며 약처하며 작식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구나 지금껏 발상이나 복상도 봇하고 있는 처지에 어찌 마음을 놓고 아내를 얻어 평안한 생
활을 도모할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뚝 잘라 거절했다. 이후 여공은 두 번 다시 권유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이었다. 여공은 마침내 병들어  죽고 말았다. 최척은 더  이상 의탁할수 없었다.
그래서 정처없이 방랑의 길로 들어섰다. 각지의 명승고적을 찾아다녔다. 소상강,  동정호, 악
양루, 고소대, 들을 돌아보며 시를 지어 읊었다. 그는  어느새 이렇게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한 세상을 보내겠다는 뜻을 굳혔다.
 그러다가 해섬도사 왕용이라는 사람이 청성산에 은거하며 황금연단을 복용하여, 백일만에
승처나흔ㄴ 도술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엇다. 그래서 장차  촉땅으로 들어가 그 도사를
찾아서 배우기를 청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 때였다. 다행이도 송우란 사람을 만났다. 그의 집은  향주 용금문 안에 있었고, 경사에
는 일가견을 가졌짐나 공병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저서로 생업을 삼았다. 또한  남을
도와 주기를 좋아하는 성미였다. 최척은 이 사람과 사귀어 지기가 되었다.
 송공은 최척이 촉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술을 마련해서  찾아왓다. 서로 주거니 받거
니 하며 얼근히 취한 후였다. 송공이 취척에게 말했다.
 "이 난세에 백일 승천하느 도술을 누구인들 원치 않으리요. 그러한 이치는 고금을 통하여
없을뿐만아니라, 여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그런  마음을 다 먹소. 복식하기 의하여  굶주림을
참고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할 필요까지야 뭐 있소. 그래  산귀와 더불어 벗하려고 그러는가?
최공은 그러지 말고 나를 따라 배를 타세. 오월로 다니면서  비단이나 팔고 차나 팔면서 남
은 여생을 보낸다면, 이 또한 달인의 업이 아니겠는가?"
 최척은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송공을 따라 항주로 갔다. 그해는 경자년 봄이엇
다. 최척은 송공과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을 왕래했다.
 이항구 에는 왜선 10여 척이 열흘 전부터 정박하고  있었다. 때는 4월이라 모드들 노곤하
여 곯아떨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개었다. 물빛은 비단같이 아름다웠고, 바람이 자 물결은  잔잔
했다. 물결소리조차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잠이 들어 코고는 소리
만 높은데, 이따금 물새우는 소리만이 들려왓다.
 그때 왜선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매우 구성지게 들려왓따. 최척은  홀로 선창에 기댄채 신
세 타령ㅇ르 했다.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품속에서 퉁소를 꺼내어  곔녀조 한곡을 불면서
가슴속에 맺힌 애원한 정을 풀고 있었다.
 이 피리 소리에 하늘마저 근심스런 빛을 딘 듯했고, 구름과 연기조차 침울하기 그지 없엇
다. 배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도 놀라 깨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픈 낯빛을 지었다. 피
리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때 왜선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염불소리 대신에 조
선어로 칠언 절귀를 한수 읊는 소리가 들렸다. 읊기를 다하자 한숨을 휴 내쉬는 것이엇다.
 최척은 이시 읊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뜻밖이어서 들었던  퉁소마저 떨어뜨렸다. 넋을 잃
은 듯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송공이 이상히 여겨 큰소리로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그런 모양ㅇ르 하고 있는가?"
 그러자 최척은 그만 기절해 버렷다. 얼마가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말했다.
 "저 시는 내 아내가 지은시오, 둘만이 알지 다른사람은 아무도 모르오, 더욱이 시 읊는 소
리가 아내와 흡사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아내가 저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도저히
그럴리 없지."
 그리고는 왜적의 습격을 당하여 가족들이  흩어진 내력을 들려 주었다.  사람들은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그속에 두 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젊고 용감 한 반면에 좀 덤벙대는  선비였다.
그는 최척의 말을 듣자 의기를 나타내 주먹으로 뱃전을 쳤다. "내가 당장 찬아 보겠소."
 그러나 송공이 만류하며,
 "깊은 밤에 일을 꾸몄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두려우이. 내일  아침에 정중히 찾아보는
것이 좋을것이오."하니, 모두들 찬성했다.
 그날 밤 최척은 잠 한숨 자지 못했다. 아침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날을 밝혔다. 이윽고 똥
쪽이 밝아왓다. 그는 조금도 지체할수 없어 배에서 내려왓다. 곧장 언덕으로 내려가  왜선으
로 다가갔다.
 "어젯밤 시를 읊은 사람은 틀림없이 조선인일거요. 나도 조선인이오. 이  머나먼 안남까지
와서 고국 사람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이 또한 기쁜일이 아니겠습니까?"
 옥영은 배안에서 퉁소소리를 들었었다. 그것은 곧 조선의 곡조요, 또한 엤날에 귀에  익었
던 소리였다. 그래서 남편이 그 매에 와 있지 않나해서 시를 시험 삼아 읊었던 것이엇다.
 이때 남편이 자기를 찾는 말을 듣자, 옥영을 황망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엎어지고  넘어지
면서 급히 난간을 내려갔다. 두 사람 은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치면서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
다. 너무나 감격해 가슴이 막혔다. 심정이 격하여 말도  제대로 안아왓다. 이윽고 정신을 차
렸다.
 이 극적인 광경ㅇ르 보느라고 양국의 뱃사람들이 담장처럼 늘어섰다. 그들은 처음에 친척
이나 친구인줄로만 알다가 급기야 부부지간이란 것을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큰 소리로, "이
상하고도 기이하도다. 이것은 하늘이 돕고 귀신이 도았도다. 일찍이 이런일은 보지 못했는데
정말 기쁜 일이로다."하며 경탄을 않은 사람이 없엇다.
 최촉은 집안 소식을 물었다.
 "그 때 저희들은 산중에서 도망하여 강가로 나왔어뇨.  시아버님과 어머님은 그때까지 무
사했어뇨. 날은 저물고 창황중에 배를 타느라고 그만 서로 헤어지고 말았어요."
 두 사람은 또 한번 통곡했다. 이 정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송공
이 왜인을 청하여 백금 세  덩이를 주며 옥영이를 사겠다고 나섰다.  왜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지  4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단정한  거동ㅇ르 사랑하여 친자식같이
사랑했고, 침식도 함께하며 잠시도 서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부인인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이제 이런 해후를 보고 하늘과 귀신마저 감동하거늘, 내 비록 완고하고 미
련하나 어찌 복석과 같으리요. 어찌 값을 받을수 가 잇겠소이까."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열냥의 은자를꺼내어 옥영에게 주며 말했다.
 "4년 동안이나 동거하다가 하루 아침에 이별하게 되닌  슬픈 심정을 참을수 없구려. 잃었
던 남편을 만리 바다 밖에서 다시 만난 것은 이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오. 내가 욕심을
낸다면 하늘이 벌할것이오. 부인은 남편에게 돌아가 부디 몸조심하고 행복하게사시오."
 "주인 영감님의 도움을 입어 다행이 죽지 않고 살아서  남편을 남났으니, 그 베푼 은혜가
이미 깊사옵니다. 더욱이 이렇게 많ㅇ느  돈까지 주시니 어떻게 보답할  길을 모르겠사옵니
다."
 옥영은 왜인의 손을 잡고 치사했다. 최척도 왜인에게 극구 사례했다.
 그는 옥영을 데리고 배로 돌아왓다. 이웃 배에서 모두들 찾아와 채단과 금은을 주며 축하
했다. 최척과 옥영은 그 사례를 말로  다할수 없었다. 송공은 최척의 부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왓다. 그는 집 한칸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 부부로 하여금 평안히 살게 했다.
 최척은 난 중에 잃었던 아내를  찾아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만리  타국이라 의탁할 곳이
없었으며, 사방을 돌아봐도 친척하나 없었다. 더욱이 즑은 아버지와 얼린 자식의 생사를  생
각하여 밤낮으로 상심했다. 근심 걱정이 귾어질 날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기원했다.
 항주에 있는 옥영은 판군이 호병에게 전멸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 남편은 전쟁터에
서 횡사헀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엇다.  죽기를 기양하고
물한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어루만지며,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지어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후에 잔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로다."
 하고 일깨워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옥영은 몽석을 붙잡고 말했다.
 "내가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물에  빠져 죽으려 하였는데 남원 만복사의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셨다. 그 후 4년 만에 네 아버지를  안남 바다 가운데서 만나지 않았느냐. 이제 내가
죽기로 마음 먹었는데, 또 그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일깨워 주는구나. 이러니 아무래도 네 아
버님은 적의 칼을 피했음이 분명하다. 만약 네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죽어도 오히려 산
것과 다르바 없으니, 무엇을 원망하리."
 몽석은 어머니를 위로하여 말했다.
 "요새 듣자니, 오랑캐들이 명군은 죽었으나 조선 사람들은 탈출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조
선 사람이니 틀림없이 도망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부처님ㅇ의  꿈이 참으로 여험합니다.. 그
러하오니 어머님은 부디 살아 계셔 아버님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소서."
 그러자 옥영은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오랑캐의 소굴이 조선과 인접해 있지  않느냐. 네 아버님이 도망쳤다면, 그  형세를 보아
조선따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어찌 만릿길을 건너와 처자를 찾을수 있겠느냐. 나는 이제  본
국으로 돌아가다 죽는 한이 엏어도  돌아가겠다. 창주로 가다가 국경이나 넘어서  죽는다면,
선영에 묻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면 이역 만리 헤매는 귀신은  면할수 있지 않겠느냐? 월
조는 남쪽에 집을짓고 호마는 북쪽을 향해 운다 하니, 이제  죽을 날을 앞두고 덩ㅇ구 고향
이 그리워지는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자의하소서."
 몽석은 이렇게 위로했다. 옥영이 말을 이었다.
 "외로운 시아버님, 어머님이며, 어린아들을 모두 잃고 그 생사조차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
가 이루 말할수 없구나. 요새 상인들의  말을 들으니, 왜적이 잡아간 조선 사람을  본국으로
내려 보낸다더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어찌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겠느냐. 네 조부
와 부친이 비록 이역땅에서 죽어  백골이 비 바람에 굴러 다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선을
누가 돌보겠느냐. 원근 친척들이 난리에 다  죽었다한들, 어찌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겠느
냐. 그러니 고국으로 돌아가자꾸나."
 "네? 고국으로 돌아가다니요?"
 "그렇다. 너는 배를 사서 준비해라. 여기서 조선까지는 수로로 수천리나 되지만 순풍에 돛
만 달면 한달이 봇되어 고국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이미 내마음은 결정됐다."
 이에 몽석은 울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어머님,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닿기만 한다면야 그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그렇
다고 만리 창파 험한 바다를 작은 배로 는 건널수  없어요. 풍파하며 교룡과 상어의 습격을
예측할수 없나이다. 더구나 해적들이 도처에서 뎨지어 출몰하니 어복에 장사 지내시 십상입
니다. 어찌하여 생사도 확실히 모르는 아버님만을 생각하셔서 이런 결정을 내리셨어요. 자식
이 비록 어리석으나 큰 일을 앞두고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홍도가 옆에서 남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너무 어머님을 탓하지 마셔요. 어머님의 마음은 이미 결정됐어요. 비록 수화나 해적을 만
난다 하더라도 능히 면할수 있을 거예요."하고 옥영은 며느리의 믈을 듣고 나서 말했다.
 "수로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내 일찍이 많은 경험을 얻었다. 일본에 잡혀 있을때다. 장사하
는 주인을 따라 봄이면 민경 지방에서, 가을에는유구로 다니며 배를탔다. 산 같은 파도 속에
서도 헤어났고 조수의 흐름도 알수 있다. 선박의 안위며 풍파, 험난도 내가 다 해낼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어찌 벗어날 방편이 없겠느냐."
 이어서 조선옷과 일본 옷을 만드렁ㅆ다.  며느리로 하여금 양국의 언어를 배우도록  했다.
그리고 몽석에게 주의하기를, "배는 오로지 돛대와 노에 달려있으니 견고하게  만들어라. 그
리고 지남철은 없어서 안되는 것이니 꼭  마련하도록 해라. 떠날 날은 정해졌으니, 내  뜻을
어기지 말아라."했다.
 몽석은 어머니 앞을 물러나오자 아내를 책망햇다.
 "어머님은 여생을 돌보지 않고 만번 죽을 곳으로만 가시려고 하시니... 돌아가신 아버님은
그만이거니와, 살아있는 어머님 마저 어느  땅에 묻고 싶어서 찬성하는  거요? 어찌 생각이
그리도 깊지 못하오."
 "어머님은 지성으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말로만 다툴수는 없는 것 아니어요.  이제 만류한
다 하더라도 돌이킬수 없는 후회가 될까  봐 찬성했어요. 순순히 따라 나서는 것이  좋아요.
제 근심스런 심정이야 오죽 하겠어요."
 수일 후였다. 옥영 일행은 배를 띄워 조선을ㄹㄹ 향해 떠났다. 며칠을 가다가 산같은 파도
를 만나 한 무인도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 무인도에 해적이 나타나 금은 보화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옥영이 나서서 중국말로, "우리는  명나라 사람인데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왔다가
풍파를 마나 이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보화를  가졌겠읍니까?"하면서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해적들도 사정을 살피다가 다만 배만 빼앗아 저희 배 뒤에 달고 사라졌다.
 해적들이 자라지자 옥영은 눈물을 거두면서 말했다.
 "필시 저놈들은 해랑적이 분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저놈들은 중국과 조선사이를 출몰하면
서 약탈만 할 뿐 죽이지를 않는다는구나.  내가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나왔다가,
하늘이 돕지 않아 끝내 이런 낭패를 당했구나. 배마저 잃었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머님 이러때 일수록 용기를 가지셔야 합니다."
 "저 넓은 바다를 날아갈수도 없고 뗏목으로 갈수도 없었으나, 아들과 며느리가 나 대문에
죽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이로다."
 옥영은 이렇게 말하면서 며느리를 붙잡고  통곡했다. 그 울음이 어찌나  처절햇던지 바위
언덕을 떨치고 굽이치는 물결에 닿으니, 바다도 슬퍼하고 귀신도 신음하는 것 같았다.  옥영
은 절벽으로 올라가 바다로 몸을  던지려 했다. 이때 아들과 며느리가  붙들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몽석에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죽지 못하게 하니 어느때를 기다리느냐? 양식도 사흘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단 말이냐. 그럴 바에야 일찌감치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양식이 떨어진 위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사는데까지 살아 봅시다. 그  새 어떤 도움이
생길지 알수 있나요?"
 몽석은 어머님을 부축하여 바위산을  내려왓다. 바위틈에서 웅크리고 잤다.  날이 밝았다.
옥영이 며느리에게 말했다.
 "내가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없어 잠시 조는 사이였다. 부처님이 또 나타나 전과 같이 일
ㄹ러 주시니 정말 이상하구나."
 세 사람은 함께 염불을 외며 기원했다.
 "부처님, 대자비하신 부처님! 저희를 돌보아 주시옵소서. 저희를 보살펴  주옵소서!"기원했
다.
 이틀이 지났다. 저 먼 수평선에서  한 돛단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몽석이 놀라며, 옥영이
보고 말했다.
 "저런 배는 아직 본적이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
 "어디? 우리는 이제 살았구나. 저 배는 조선재가 틀림없다."
 모두 한복으로 급히 갈아 입었다. 언덕으로 올라가 옷을 벗어 흔들었다. 배가 가까이 다가
와 닻을 내렸다. 뱃사람이 나서며, "당신들 어떤 사람들이오? 이 고도에 살고 있소?"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옥영이 조선말로 대답했다.
 "우리는 본래 한양의 사족이었어요. 나주로 내려가다가 졸지에  풍파를 만나 배가 전복되
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우리만 정신을 차려 부서진 판자조각을 타고 여기까지 표
류해 왔습니다."
 뱃사람은 듣고 불쌍히 여겼다. 밧줄을 내려 배에다 태워 주며,
 "이배는 통제사의 무역선이오. 갈길이 정해져 한양으로는 갈수없소."
 했다. 마침내 순천에 이르러 정박했다. 세 사람을 뭍으로 내리게 했다.
 때는 경신년 이엇다. 옥영은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지름길을  따라 대엿새 만에 남원에
이르렀다. 마을이 왜적에게 불타 없어졌으니 많이 변화했으리라 짐작이 들엇다. 옛집을 찾아
보려고 만복사를 찾아나섰다. 금교에 이르러 성곽을 바라보니 옛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옥영은 아들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집이 바로 너의 아버님의 옛집이란다. 지금은 주가 들어가 살고 있은지 모르나, 찾아가
하룻밤 신세지면서 자세히 물어보자꾸나."
 어느덧 옛집에 당도했다. 최척은 버드나무 밑에서 사람들과 담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옥영
이 그들 가까이 다다가 보니 바로 남편이엇다. ㅁ보자 며느리가 일시에 달려들며 울음이 터
졌다. 한바탕 울음 바다가 되엇다. 최척도 곧 알아보고 대성 통곡하며 말햇다.
 "몽석 어멈이 살아오다니.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몽석은 이 말을 듣자 달려나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님을 끌어안고 흐느겼다. 온 가족이 상
봉하는 그광경은 가히 짐작할수 있으리라.  서로 붙들고 늘어지며 방으로 들어갓다.  심씨는
감이 깊어 정신이 없다가 딸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기절했다. 옥영이 끌어안고 갖
은 정성ㅇ르 다하니 얼마후에 깨어났다.  최척은 진공을 불러, "오늘에야 온  가족이 상봉을
하는구려." 하면서 홍도를 불러  인사 시켰다.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상봉했으니, 고금
천하에 다시 이와 같이 신기하고 극적인 일이 있을수 없었다.
 이 소문은 일시에 사방으로 퍼졌다. 구경군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더구나 험난을 뚤고
나온 옥영과 홍도의 자초 지종을 듣고는 무릎을 치며 찬탄해  마지 않앗다. 다투어 가며 그
런 이야기를 이웃과 이웃으로 전하는 것이었다. 옥영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가족이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부처님의 음덕이옵니다. 이제 와서  보니, 만복
사가 황폐해지고 부처도 파괴되어 없어져서 의지하고 불공을 드릴곳 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 그냥 앉아만 있으리까."
 이래서 음식을 갖추어 폐사로 올라갔다. 주위를 깨끗이하고 지성껏 제를 올렸다.
 이후로 최척과 옥영은 위로는  부모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녀를  돌보면서, 남원부 동쪽에
있는 옛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장끼전
 장끼전에 대하여
 장끼전도 토끼전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의인소설이다.
 여기서는 장끼(수꿩)과 까투리(암꿩)가 등장하여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소설도 인간의 모순점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또한 충효를 강조한다. 특히 이작품에서는
마지막에 주인공인 장끼가 뭇꿩들을 위하여 살신 성인의 모범을 보이니, 이것은 다른소설에
서는 볼 수 없는 특색이다.
 또한 고대소설 대부분이 결말은 행복하게 끝나는데 여기서는 주인공 장끼가 죽자  아내인  
까투리도 따라 죽어 비극미를 풍긴 것이 색다른 구성이다.
 장끼전도 여느 작품처럼 작자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대소설의 저자는 왜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소설이 실학의 융성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브게 일어
난 것에 유의해야한다.
 실학이라는 것은 우리들 생활에 실제 나타나고  있는 현실성을 상대로 하는 학문인  만큼
소설과도 다깝고 또 이해할수 있는 학문이라 할수 있다.
 해서 그 전까지 미처 들어오지 못한 중국소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러므로 나라에
서는 한때 중국소설의 수입을 엄히 금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식자층에 널리 읽힌 소설은 자기 표현 욕구에 부심하고 있던 창작욕을 일깨
워줘 우 후 죽순처럼 소설이 쏟아져 나왔으리라.
 또한 이때 부녀자들에게도 소설이 대유행하였으니  서로 빌려 보곤했다는 기록이  도처에
보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아는 독자층이 소설에 대한  인식이 점점 깊어졌으나 수요가 공급보다  적어
자연히 소설을 지어보겠다는 욕망을 일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원고료에 대해서는 현재의 판권 소유의 원고료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겠고, 다만
자기가 창작한 소설을 필사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서울시내의 소위 세책
집이라는 것이 이렇게 하여 발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가난한 선비가 소설책을 만들어서 팔기도하고 또 즉 그서을 남에게 빌려줘 약간의 돈
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남의 작품도 필사하여 돈을 받고 빌려줘 살림을 꾸려 나갔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제도가 양반이 아니고서는 벼슬길에 오를수도 없고, 또 어디 취직을해
서 생활을 한다는 것도 극히 곤란한 중인계급중의 유식한 인물이나, 당쟁으로 인해 ㅈ2 치
계에서 밀려나 살림을 꾸려가기 어려운 가난한 선비가 아마 대부분이었으리라.
 그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고전소설의 그 작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이들 시민계급
인물들이 작품을 쓰고, 또 그것을 필사하다가 자기 나름대로 고쳤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입
장이 못되었으리는 것은 쉼게 생각할수 있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소설이 대부분 작자 미상으로 되어 있음을 어떤 면으로 환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소설이 쏟아져 나왓다는 것은 평민계급이  자각하고, 또 실학이 일
어나는데 따라 일반시민의 문학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조용하고 으슥한 산골짜기 봉묏골이다.
 뒤로는 기이한 바위들이 촘촘히 둘러싸  있고, 옆 좌우로는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는 진달래, 싸리, 머루덩굴 들이  옹기종기 솟아있고, 저 아래쪽으로
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어, 그앞을 맑은 시냇물이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고 있다.
 봄이 되면 온갖 새들이 예쁜 모습과 고운 목소리를 자랑하며 나무 사이를 뚫고 날아다닌
다.
 여름이면 우거진 나무와 풀들이 앞을 다투어 하늘로 치솟아 위세를 부린다.
 가을이면 날짐송과 들짐숭들이 이리저리 어울려 추수에 정신을 팔며, 겨울에는 온갖 식물
과 동물들이 일년 동안의 노고를 잊고 잠들어 이듬해의 봄을 조용히 기다린다.
 때는 어느 화창한 봄날.
 사방을 살펴보면 진달래와 개나리 등이 그득히 펼쳐져 저마다 활짝 핀 꽃을 자랑한다.
 "도련님, 고단하실텐데 이만 돌아가시지요."
 "지금 돌아가야 할 일이 없지 않느야? 고단하다 해도 한잠자고 나면 몸이 가쁜해져서  새
기운을 얻게 되는 법이다. 좀더 있다가 꽃낸새에 싫도록 취해 보자꾸나."
 나무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마리의 장끼가 주고 받는 대화였다.
 한 마리는 면두가 우뚝 치솟고 꼬리가 유난히  길며 두 눈이 샛 별처럼 빛나는 귀공자로
바로 봉묏골 골짜기에 대대로 살아 내려오는 태수의 맏아들 한뫼도령이었다.
 다른 한 마리는 면두가 조그맣고 후줄그레한 꼬리에 두눈이 곧 감겨질 듯이 게슴츠레해서
어디로 보나 남의 하인 노릇밖에 못할 어벙벙한 모습인데 바로 태수의 집에서 대대로 종노
릇을 해내려오는 하인 장끼의 아들 들머루 였다.
 진달래꽃이 산과 골짜기를 뒤덮고, 잠을 깨어 피어난 새싹은  어서 오라 손짓하는 계절이
라 한뫼도령과 들머루는 일찌감치 둥지에서 나와 고개를 넘고 들판을 건너 이곳 강벼랑에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해가 뜰 무렵에 집을 나왔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해서 들머루는 부지런
히 날아가야만 어둡기 전에 집에 닿으리라 생각하고 조바심을 하는 중이었다.
 들머루가 다시 재촉했다.
 "도련님, 어서 가십시다. 늦게 들어가면 아버님이 꾸중하실 것입니다."
 하뫼도령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수는 없지 않는냐? 꾸중 이야 참으며 견딜수가 있지
만 이아름다운 풍경은 한번 떠나면 다시 볼수가 없다."
 "하지만 꽃구경은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른곳에 얼마든지 있을뿐더러 이곳의  모양도 올해
가 지난다 해도 내년이 또있지 않습니까? 아버님의 꾸중은 도련님의 마음을 오랫동안 아프
게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자 한뫼도령이 마지 못해 몸을 일으켰다.
 "네 말에도 그럴듯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럼 슬슬 돌악 보도록하자. 어? 저기  저것은 무
엇이냐?"
 한뫼도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에 들머루는 덩달아 고개를 부쩍 치켜들고 두리번  거
렸다.
 "무엇 말입니까? 소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뎁쇼."
 "어허 심분이 미천한 놈은 눈마저  밝지 못하구나! 저기 저  잔디위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까투리 아가씨들이 놀고 있지 않느냐?"
 들머루가 쳐다보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 아가시들 말입니까? 소인은  벌써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보시고 야단 이십니
까?"
 "상놈은 욕심이 많아서 눈에 띠는 것도 많구나. 저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보고 왜 돌
아가자고 안달부달했느냐?"
 들머루가 히죽 웃고 대답했다.
 "소인이 바른 말을 드리리다. 사실은  도련님이 저 아가씨들을 보고  딴 생각을 일으킬까
봐 어서 돌아가자고 재촉한 것입니다."
 "허허... 네 녀석은 눈만 빠른줄 알았더니  눈치 또한 빠르구나. 과연 저  아가씨들을 보니
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구나.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 어서  이리로 데려 오도록 해
라."
 들머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도련님은 성미도 급하십니다. 저들이 어떤 아가씨들인 줄이나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
까?"
 "네놈은 정말 무식한 상놈이로다. 사내 대장부가 처녀를 보면 우선 만나볼 생각부터 해야
지, 그누가 신분을 알고자 한단 말이냐?"
 한뫼도령의 말에 들머루는 펄쩍 뛰었다.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큰일 나십니다. 저 아가씨는  우리 꿩들을 다스리고 있는 임금
님의 무남독녀 공주님이십니다. 오늘 어쩐 일로 저렇게 시녀 몇 명만 이끌고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탐을 내어도 안될것이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들은 척도 않고 오히려 들머루를 꾸짖었다.
 "듣거라, 이 무식한 녀석아, 제아무리 신분이 높다해도 까투리는 장끼를 남편으로 삼는 법
이다. 그리고 남편이 될 장끼들ㅇ  중에서 누가 먼저 공주의 마음을  사로 잡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저 아가씨들도 이쪽을 힐끔 힐끔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히 내게 마음을 둔것같다.
들머루야, 어서 가서 데려 오너라."
 하뫼도령이 호령호령하자 들머루는 어이가 없어 자꾸만 달랬다.
 "도련님, 저까투리는 한 나라의 공주님입니다. 그러니 이쪽을 바라본다 해도  정다운 눈은
아닐것이니 제발 딴생각은 마십시오."
 "이뽁을 바라보는 눈이 서릿발처럼 차갑다고 하더라도 내 가슴에서 치솟는 이  뜨거운 정
열은 걷잡을수가 없구나. 만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갈수는 도저히 없다."
 들머루는 안타까운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도련님과 짝이 될  까투리가 무수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슴을 졸이지 말고 어서 고개를 돌리십시오."
 "인석아, 자기의 마음도 어쩔수 없는 떄가 세상에 많은 법이다. 저분 공주님도  나를 만나
기만 함녀 내 마음을 곧헤아리고 나와 평생을 함께 지내려고 할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 공주님의 주변에는 수많은 군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잘못하
다가는 도련님이 꼼짝없이 잡혀가서 목숨을 잃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말씀은 거
두시고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무슨 배짱인지 고집  불통이었다. 지금 당장 붙들려가서  죽는다 해도
만나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겠다. 어서가 데려 오도록 해라.
 들머루는 안색이 변해 속으로 부르짖었다.
 '큰일 났구나! 이럴줄 알았으면 애당초 이쪽으로 오지 말 것을 그랬구나. 잘못하다가는 우
리 도련님 목숨만 잃게 될 것이다.'
 들머루는 어쩔줄을 모르다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안됩니다! 제발 소인의 말씀도 좀 들어 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한뫼도령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어떨게 해도  누를 수가 없었다. 해
서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
 "이런 발직한 놈, 갔다 오라고 하면 갔다 올것이지 말대꾸가 왜그리도 많으냐? 만일 거역
했다가는 집에 돌아가서 다른 하인 들을 시켜 네 깃털을  뽑고 면두를 뜯도록 하겠다. 그게
싫거든 어서 가서 냉큼 모셔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들머루는 집에가서 곤장을 맞을지언정  대궐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소인은 죽음녀 죽었지 못가겠습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날개가 빳빳하게 굳어져서 목
을 도무지 뭉직일수가 없구만요."
 들머루가 죽을 듯이 엄살을 부리자 한뫼도령은 참다 못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에이, 못난 녀석 같으니라구! 싫거든 그만둬라. 내가 몸소 가볼 테니까!"
 한뫼도령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하늘높이 몸을 솟구쳤다. 이를 본 들머루도 어겁결에 뒤쫓
아 푸르륵하고 날개를 쳤다.
 두 마리의 장끼는 허공을 가로질러 위세당당하게 까투리들이 놀고 있는 잔디밭 위에 풀써
내려 앉았다.
 "에그머니!"
 까투리들은 기겁을 하여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대는 늦었다.
 공주만은 한 마리의 시녀와 함께 잔디 옆 숲속에 겨우 몸을 숨길수 있었지만 다느 까투리
시녀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의 장끼 앞에 어쩔줄을 모르고 몰려 있었다.
 그러나 행여 공주에게 해나 끼치지 않을까 해서 눈을 팽팽하게 치뜨고 있었다.
 한뫼도령은 의젓하게 인사를 차렸다.
 "무례하게 군 것을 영서하십시오. 저는  저쪽 봉묏골에 살고있는 한뫼라는  자입니다.저기
숨어 계시는 저분 아가씨를 만나 뵈러 염치 불구하고 왔습니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한뫼도령의 태도에 겁에 질렸던 까투리들은 얼마간 마음이 놓엿다.
그중에서 가장 영특하고 용기있는 시녀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매섭게 꾸짖었다.
 "잘못은 이미 저질러 놓고 무슨 용서를 구한단 말이죠? 우리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대왕
님의 무남독녀 이신 공주님을 모시고  나온 궁녀들이예요. 그러니 이곳은  장끼가 얼씬할수
없으니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이 자리를 뜸녀 무사하겠지만 잠시라도 어물쩍 거렸다가는 신
변이 위태롭게 될 것이오."
 횐뫼도령이 어찌 순순히 물러가겠는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점잖게 입을 열
었다.
 "나는 그대들이 공주님을 모시는 시녀라는  것도 알고 있소, 또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온  곳이니 만나지 않고는 가지 못하겠
습니다." 시녀 까투리가 머럭 호통을 쳤다.
 "이렇게 무엄하고 경우를 모르는 장끼가 있나! 설사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미천한
몸으로 어떻게 귀하신 공주님을 만나 보겠다는 것이요? 할말이 있거든 시녀장인 내게 말하
도록 해요." 한뫼도령이 듣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비록 공주님의 심복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
다. 내가 직접 아뢸 테니 부디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시녀장은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입을 딱 벌리고 있다가 다시 꾸짖었다.
 "바위보다도 더 답답하고 굼뱅이 보다도  더 미련한 장끼가 있을줄이야!  다시 한번 그런
무엄한 소리를 하면 바로 저아래 있는 경비대장에게 알리겠소.  공녕히 개죽음을 당하지 말
고 어서 자리를 뜨오!" 그래도 한뫼도령은 막무가내였다.
 "이미 목숨을 각오하고 온 이상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소이다. 공주님을 해코자 하는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공주님을 뵙게 될 때가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소원을 들어 주
십시오" "고집은 똥고집이로다. 더 말해 보았자 내 입만 아프겠다. 얘들아!"
 시녀장은 한쪽에서 웅크리고 관망하4고 있는 조그만 까투리들을 돌아보고 외쳤다.
 "네이!" "어서 내려가서 경비대장에게 고하라. 공주님이 나들이 나오신  이곳 잔디밭에 난
데없는 장끼 두 녀석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주둥이가 세고 발톱이 날카로운 경비병
을 당장 올려 보내라고 일러라."
 "네이!" 명을 받자 시녀 까투리가 후르륵 낏을 치고 나무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바로 이때, "얘들아 어찌 그리 소란하냐?"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공주가 더 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어 마침내 몸을 나타냈다.
 주둥이가 유난히 곱고 날개에 윤기가 기름을 칠한 것처럼 자르르한 것이 과녕 귀한 몸답
게 품위가 있고 고귀해 보였다. 그러나 시녀장이 땅에 이마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공주마마, 죄송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정신나간 장끼 두놈이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야료를
부리고 있기에 경비대장에게 알리러 보내는 참이옵니다."
 공주가 근엄하게 물었다. "듣자하니 내게 할말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말이라고 하더냐?"
 "제가 대신 전해 올리겠다고 말했으나 직접 아뢴다고만 하고 물러가지를 않나이다."
 공주는 한쪽에 서있는 한뫼도령을 힐끗 보고는 다시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를 해치러 오진 않은듯하니 경비대장에게 알리기 전에 무슨 말인지 들어보
자꾸나. 알리러 가는 아이를 도로 불러라." "몸소 만나시겠다니 이 어인 말씀이옵니까? 저런
무엄한 놈은 털을 뽑고 눈을 빼내어 다시는 못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벌을 내려야 할  것이
옵니다." 시녀장은 아뢰고 나서 한뫼도령을 흘겨보앗다. 공주가 듣고 안색이  변하며 꾸짖었
다.
 "나라의 법이 그러할지라도 용기잇는 자에게는 양보가 있어야  한다. 목숨을 각오하고 이
런데를 찾아오는 용기가 아무에게나 있을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몸소 만날 테니까 너희들은
물러가라." 공주의 엄명인데 어찌 거역하겠는가. 시녀장은 저만큼 날아 내려가는  시녀를 도
로 불렀다. "얘야, 공주님의 명이시니 돌아오너라."
 하고는, 한뫼도령 앞으로 걸어와 퉁명스럽게 일렀다.
 "이번 한번만 공주님이 그대를 만나시겠다고 하오. 귀하신 몸이시니 말을 삼가서 하고 즉
시 물러나도록 하오." 한뫼도령은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만나뵙게 해주시는 것만도 황송한데  다른 말씀을 듣게 할  리가 있습니까? 염려 마십시
오." 하고는, 공주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공손히 절했다. 공주가 답례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궁녀들만 노는 곳에 어인 일로 공자는 찾아 오셨소?" "공주계서  죽음 대신 만나뵙게 해
주신 은혜 백골 난망이옵니다." 한뫼도령은 다시 한ㄴ번 예를 차리고 나서 양해를 구했다.
 "여쭙기 황공하오나 시녀들을 잠시 멀리 해주소서." "무슨 말이 그리 은밀하오?"
 공주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미 만나보기로 한 바에 굳이 여럿이 있는 앞에서 말하라고 하
기는 싫었다. 이 젊은 장끼가 수상하게 굴면 즉시 군졸들을 불러 물리칠수가 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은 잠시 물러가 있거라."
 공주가 명령하자 시녀들은 하는수없이 멀찌감치 물러갔다.
 그러자 한뫼도령이 모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가 여쭙고자 하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여기까지
놀러 나왔다가 공주님의 자태를 한번  뵙고는 젊은 가슴이 aksisd 설레이고  황홀한 나머지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에 어리석은 백성이 공주님의 높은 지체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저의 애틋한 말씀을 드리러 이렇게 감히 나섰나이다."
 "무...무슨 말을..." 뜻밖의 말에 공주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듯 정면
에서 사랑의 고백을 들은 적이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이나 해보았던
가! 공주의 작은 가슴은 달달 떨리기까지 했다. 한뫼도령의 말이 계속되었다.
 "저는 비록 보잘것없는 신분의 몸이오나 공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비길수 없
나이다. 공주님이 제 뜻을 받아주신 다고 하면 언제든지 공주님을 위해 이한 목숨 바치겠나
이다. 부디 저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듣고 어떯게 대답하라는 것이오? 백성의 홍인은  부모가 정해주는
것이며 공주의 혼인은 오직 대왕마마만이 결정하시는 것을 모르시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한뫼도령은 실망하지 않고 거듭 여쭈었다.
 "물론 혼인의 절차는 대왕마마의 처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마음만
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애타게 사모하는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겠노라고  한 말씀해
주십시오." 공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모기 소리만하게 대답했다.
 "그런 말인들 이 자리에서 어떻게 대답하라고 하시오? 공자의 심정을  알았으니 다음날을
기약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오."
 한뫼도령은 하느수없이 작별을 고할수 밖에 도리가  없엇다. "그럼 공주님의 회답을 기다
리겠나이다. 저는  봉묏골 태수의 아들 한뫼라는 자이옵니다. 언제쯤으로 알고 기다려야 할
지..." "내게 맡기고 어서 돌아가도록 하오."
 "높고 푸른 하늘을 믿듯이 공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겠나이다.  부디 다시 뵐 날을 알
려 주십시오."
 하뫼도령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일이 어떻게 될가 하고 목을 움츠리고 있는 들머루에게 소리쳤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두 마리의 장끼가 푸드득하며 하늘로 치솟아 저편 골짝기로  멀어져 갔다. 공주는 애틋한
눈길로 사라져가는 한뫼도령의 뒷모습을 바라조고 있었다.
 어느덧 저녁해가 서쪽 산너머로 숨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한뫼도령은 그 뒤 모든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인 들머루를 데리고 언제나처럼 집을 떠나 언덕으로 날아 올라가도 쾌할하고 즐겁게 뛰
놀생각은 않고 나뭇가지나 잔디밭에 앉은채 멍하니 있을때가 많았다.
 두 눈은 항상 공주가 사는 대궐이 있는 저편 고개 똑으로 향해있었으며, 구름조각 하나만
지나가도 무슨 소식이 오지나 앟을까 해서 고개를 쳐들어 보곤했다.
 그러다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뿜었다. 들머루는 보기가 안타까와 옆으로 와서 말했다.
 "도련님, 이렇게 기다리신다고해서 소식이 빨리 오고 기다리지 않는다고 올 소식이 안 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병이ㅣ라도  난다면 몸만 축날뿐이니 어서 꽃구경이나  하며
벌레도 잡아먹고 하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의 귀에는 소 귀에 경읽기 경이엇다.
 "얘야!" "네, 도련님." "저기에 솟아 있는 저 검은 점은  무엇이냐? 궁궐에서 공주님이  보
내는 심부름꾼이 아니냐?"
 들머루가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심부름꾼이 아니라 바위 틈에 솟아잇는 나뭇가지 인뎁쇼."
 "그러면 저기 먼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은 무엇이냐? 저것은 분명리 까투리가  아니면 장끼
렷다?" "에이, 도련님두... 먼하늘이 아니라  바로 저  고개위를  날고있는뎁쇼. 까투리가 아
니옵고 까불기 잘하는 종달새이옵니다."
 한뫼도령은 다시 한 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벌써 여러날이 지났는데 왜 아무런  기별이 없지? 분명히 소식이 있을  터인데, 왜 아무
새도 날아오르니 않느냐?"
 "아무렇게나 말한 아녀자의 말을 도련님은 너무 믿고  계십니다. 공주꼐서는 벌써 도련님
을 까맣게 잊고 지금쯤은 다른 신랑감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서 공주의 생각
을 마음에서 지워 버리도록 하십시오." 들머루가 아뢰는 말에 한뫼도령은 화를 벌컥 냈다.
 "시끄럽다! 상놈이란 할 수없구나. 너희 상놈은 아침에 한 말을 저녁이면 까맣게 잊어버린
다마는 공주는 결코 그런 일이 없는 법이다. 공주의 말 한마디는 마위처럼 굳고 나뭇잎처럼
싱싱한 것이다. 아, 저기 저 이리로 기어오는 것은 무엇이냐?"
 들머루가 보고 기급을했다. "저건 삵괭이놈입니다. 이렇게 있지 말고 어서 몸을 피합시다.
이러다가는  도련님 눈에서 저 무서운 늑대나 사냥개도 모두 공주가 보낸 사신으로 보이겠
습니다요." "괴로움과 기다림 속에서 이렇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늑대나 사냥개에게  잡아먹
히어 세상을 떠나는 편이 좋겠다."
 얼빠진 소리를 하는 한뫼도령을 서둘러 재촉하여 들머루는 간신히 삵괭이릐 공격을  피했
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뫼도령은 여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간신히 문안
을 드리고는 밤새도록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걱정이된 어머니가 한밤중에 한뫼도령이 잠자리를 몰래 찾아왔다. 그러자 아들은 별이 총
총한 하늘을 멀거니 본채 눈을 또랑 또랑 뜨고 있지 않은가.
 "한뫼야, 밤이 벌써 깊었는데 왜 자지  않는거냐?" 어머니가 근심스럽게 묻자 한뫼도령은
공손히 아뢰었다. "어머님,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무일도 이닙니다."
 "얘야, 이 어미가 보건ㄷ재  분명히 근심이 있는 것  같구나. 어디 무슨일인지 얘기해  보
렴."
 어머님, 누구에게나 잠 못이루는 밤이 있는 법입니다. 곧 잘테니 어머님은 아무 걱정 마시
고 가서 주무십시오."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엇다.
 "옛말에도 어미의 눈길은 불빛보다도  빠르고, 그마음은 천리  떨어진 곳에서도 닿는다고
했느니라. 보아하니 너는 며칠 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고 근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가슴속
에 있느니라. 어서 무슨일인지 이 어미엑게 들려다오."
 "별것이 아니니 너머님은 돌아가 주무십시오, 소자도 곧 자겠습니다."
 한뫼도령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씀드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으나 어머니마저  괴
로워할까 봐 임을 꼭 다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야원얼굴을 보고 가슴이 아파 탄식을 하고는 힘없이 덜아섰다.
 이튿날 아침, 한뫼도령은 일어나자 마자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면두에 흰빛이 갑돌 만큼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상한 어조로 물었다.
 "한뫼야, 요사이 네게 무슨 근심이 있는 것 같다고 네 어머니가 말씀하시니 사실이냐?"
 "약간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기는 하오나 그렇게 대단하지 는 않사옵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아뢰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건 그렇다 하고 오늘 너를 부른 것은 얘기할 일이 있어서니라."
 아버지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을 건너편  골짜기의 태수댁을 너도
알고 있겠지?" "네, 아버님."
 "그댁에 혼기가 찬 아리따운 낭자가 있느니라. 우리와 집안도 엇비슷하고 또 친하게 지내
기도 하던차에 너희들의 혼인얘기가 나와서 마로 어제 성사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느니라. 곧
혼레식을 올릴수 있게 준비를 서두르겠으니 너도 그리 알고 있거라."
 "혼인을 약속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한뫼도령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아들의 마음을 아지 못하는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댁과는 대대로 우의가 깊고, 그 집 낭자는 어렸을 때부터 너도 잘알고 있는 처자가 아
니냐? 용모뿐 아니라 재주도 뛰났느니라. 들리느 소문으로는  벌써부터 너를 으근히 사모해
왔다는 구나. 우리짐에 그런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다니 정말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 셈이
다." 한뫼도령이 노란 나머지 급히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왜그러느냐?" "그 혼인은 취소해 주십시오." "무엇이!"
 아버지는 놀란 나머지 압을 딱 벌렸다. 거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그쳤다.
 "취소하다니? 너도 전부터 그 낭자를 칭찬해오지 않았드냐? 그 낭자보다 더 나은  신부감
이 어디 있다고 이번 혼사를 취소하라는 것이냐?"
 "아버님, 그낭자가 못생겼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혼인을 할생각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애써 변명하자 아버지는 음성을 낮추어 달랬다.
 "너보다 어리고 못난 장기들도 버젓이 혼인을 하고 자손들을 낳으며 잘살고 잇다. 그런데
도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장끼마다 겉모습이 다르듯이 속마음도 다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
으니 부디 취소해 주십시오." "그낭자와 혼인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누구에게 마음을 준 상
대라도 있다는 말이냐?" "..."
 한뫼도령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앗다. 공주와 약속이라도 했다면 서슴치 않고 아버님께
아뢰겠지만 혼자 사모하고 있는 일을 여기서 밝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변명하랴.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추궁을  했다. "어서 말해 보아라. 어
디 다른데 약속했느냐?" "..." 아들이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아버지의 음성은 노기까지 띠
었다. "왜 말을 못하느냐? 너는 아비의 말을 이유도 없이 거역하겠다는것이냐?"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적어도 두 골짜기의 태수
가 만나서 여러모로 의논을 거듭한  결과 정한 혼사다. 분명한 이유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취소할 수가 없다. 공연히 말을 꺼냈다가는 우리 마을과 저쪽   마을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유도 없이 혼인을 취소한 우리가 사움에 지게 되고, 집안가지 망할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래도 이번 혼사를 취소하라고 말하겠느냐?"
 듣고보니 정말 큰일이엇다. 한뫼도령은 자기도 모르게 등에 식은 땀이 흘러 우선 이 자리
를 모면하려고 했다. "아버님, 죄송하기 이를데 없습니담나 얼마동안의 시간을 주십시오. 갑
자기 듣고 보니 소자는 얼떨떨 하기만 하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안색이 풀어졌다.
 "그렇게 하렴. 혼인을 하기로 한다면야 언제  하겠다는 대답은 조금 늦은들 괜찮다.  그만
나가 보아라." 아버지의 앞을 물러나온 한뫼도령은 이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만만한
하인 녀석을 붙들고 하소연 할수밖에 없었다.
 "들머루야, 일이 대단히 급하고 까다롭게 되었구나. 어떻게 하면 수습이 되겠느냐?"
 들머루는 눈을 껌뻑껌뻑하다가 대답했다. "지금이야  말로 마음을 돌릴 좋은  기회입니다.
공연히  공주님만 생각하다간 큰일날 것입니다."
 그러나 한뫼도령이 이 말을 들을리 만무했다. "공주님을 향한  내 마음을 없애느니  차라
리 세상을 하직하겠다. 너는  다시는 그런 소리 말아라."
 도련님, 제발 생각을 고치심시오. 이번 혼사를 취소하면 우리 마을분만 아니라 온  집안이
큰 욕을 당할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화를 끼치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까?"
 한뫼도령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자신없이 입을 열었다.
 "공주님과 혼인을 하게되면 그쪽과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공주민의 마음이 도련님에게 향하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
 한뫼도령은 대꾸할 말이 없어 바위 옆에 힘없이 웅크리고 앉아 공주가 있는 대궐쪽을 멍
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산색들이 소란스럽게 웃어댔다. 벌써 정오가 되었다는 신호다.
 "오늘도 소식이 없는가 보구나. 아, 이애타는 마음을 공주님이 알아 주셨으면..."
 한뫼도령이 기운없이 중얼거릴 때 듦루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댔다.
 "앗, 도련님! 저것이 무엇입니까?" "무얼 말이냐?"
 "저기 검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보인단 말이냐? 상놈의 눈에는 허깨비만
보이는 모양이구나." "분명히 장끼와  까투리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도련님, 저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한뫼도령도 이쪽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똑똑히 볼수 있었다.
 "정말 장끼와 까투리가 날아오는구나! 저 뚜렷이 빛나는 깃은 궁궐에서 보내는 사신과 시
녀의 표시이다. 분명히 공주님이 보내신 사신이로다." 한뫼도령이 뛸뜻이 기뻐할 때, 사신으
로 날아온 장끼와 까투리는 한뫼도령과 들머루가 주춤거리고 있는 상공을 한 바퀴 쓰윽 돌
더니 바위 옆으로 가볍게 내려 앉았다.
 그러더니 장끼가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 "공자가 이곳 태수의 아드님이십니까?"
 한뫼도령이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궁궐에서  나오신 사신들이시군
요. 먼길에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무슨이유로 저를 찾는지요?"
 "공주마마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공주마마께서 보내신 이글월을 받으십시오."
 까투리가 깃 속에 간직해온 가랑잎 편지를 내놓았다.
 "아, 공주님의 글월이라구요!" 한뫼도령은 공주가 직접 나타나기라도 한것처럼  떨리는 목
소리로 외치고 편지를 펼쳐 보았다.
 한뫼공자님 보옵소서. 공자님을 한 번 뵈옵고 소녀는 평생 공자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려고
생각했습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장벽이 있을 줄이야 그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마마마를
통해서 제심정을 아바마마께 아뢴즉, 아바마마께서는 벌써 부마(임금의 사위)될 장끼를 정해
놓으셨다고 하시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혀  놓은 공자님을 즉시
포박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한뫼공자님!
 우리들은 이세상에서 인연이 없는듯하니 험악한 나졸들에게 욕을 보시기 전에 멀리  떠나
서 다른 나라를 찾아가 복되게 지내 십시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쓸수가 없습니다.
 공주 올림.
   편지를 읽은 한뫼도령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절망감! 안타까움!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안돼! 공주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이상 나는 도망칠수가 없어!'  한뫼동령은 곰곰
히 생각하다가 이욱고 굳은 결심의 빛이 눈동자에 나타났다. "들머루야!"
 "예, 도련님." "나는 이길로 이분 사신을  따라 공주님이 계시는 궁궐로 들어가겠다. 그러
니 너 혼자 들어가서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공주님과의 사연과 이 편지 받아보았다는 것을ㄹ
내대신 낱낱이 여쭈어라. 이번에 궁궐로  들어가면 살아 나올 길이 없을  것ㅇ 같으니 부디
나를 찾으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라." 이 비장한 말에 들머루는 펄쩍 뛰었다.
 "도련니ㅁ,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발 사리를 냉정히 판단하십시오. 살아 돌아올 길이
없는줄 알면서 왜 대궐로 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까?" 한뫼도령의 태도는 오히려 차분했다.
 "공주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리. 일찍 죽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부모님께 불효자식 되
고 이웃마을 태슈의 따님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공주님이 계신 궁궐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내 소원이다. 내가 죽음을 당하게 되면 크게 소문이 날것이고 시체또한 들판에 버려질 것이
다. 들머루야, 네가 나를 주인으로 여기고 있거든 시체나마  찬아 고이 묻어다오. 그리고 나
대신 부모님을 잘 모셔다오." 들머루는 정신이 아득하여 급히 외쳤다.
 "도련님,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가신다고 해도 부모님계 인사나 드리고 가십시
오."
 "헤어지는 괴로움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길어지는 법이다. 나는 이대로 떠날테니 네가 대
신 인사를 드려다오."
 "도련님, 그렇다면 소인도 따라 가겠습니다. 공주님없는 세상 도련님이 살수  없듯이 도련
님안계신 곳에서 소인이 살아 무엇하겠습니까?"
 들머루는 몸부림치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어댔다.
 한뫼도령은 측은한 시선으로 하인 녀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사신 쪽으로 돌렸다.
 "편지에는 나더러 이곳을 또나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이길로 그대들을 따라서  궁궐로 들
어가겠습니다. 나졸들에게 잡히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공주님을 남나 뵙고 싶으니 그대들은
먼저 들어가서 말씀좀 전해 주쇼 시오. 전날 공주님을 뵈옵던 잔디밭에 앉아 기다리겠소이
다."
 사신으로 온 까투리가 공손히 대답했다.
 "우리들은 공주마마의 심부름꾼이니 공자의 말씀을 전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신은 즉시 작별을 고하고 날아 올라 사라졌다. 한뫼도령과 들모루도 하늘로 훌쩍 치
솟아 올라갔다.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건너 그들은 전날 공주가 노닐던 잔디밭위에 내려 앉았다.
 주위의 광경은 전날과 다를바가 없는데 한뫼도령의 마음은 견딜수 없을 정도로  허전하고
쓸쓸했다.
 공주를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오게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공주가 오기전
에 나졸들이 오면 꼼짝없이 묶여 가서 귀신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공주가 편지에서 말한 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하직을 고하고 다른 나라를 찾아가
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는 뉘우침이 간혹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이런 마음을 누르고 공주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이때, 궁궐쪽에서 한 날짐승이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삽시간에 한뫼도령
이 있는 곳까지 날아온 까투리는 뒹굴 듯이 땅 위로 내려앉았다.
 "앗, 공주님!"
 한뫼도령은 급히 공주의 앞으로 달려갔다.
 공주가 말하였다.
 "공자님 이렇게 또 다시 뵙게 되어서 저는 죽어도 한은 없사오나 어쩌자고 여기까지 오셨
습니까?"
 말을 마치자 공주의 섬세하고 커다란 두 눈에서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
러내렸다.
 한뫼도령은 이 모습에 감격하여 말하였다.
 "이미 저의 한 목숨은 공주님께 바쳤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언젠들 공주님을 잊을수가 있
으며 어디에선들 찾지 않을 떄가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저로 인해서 부왕마마의  노여움을
사셨다니 이토록 쿤 죄를 어지해야 합니까?"
 이에 공주가 말하였다.
 "전번에 여기에서 뵌 뒤에 밤낮으로 생각해 왔사옵니다. 그러나 전생에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서로 해로할수 없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사옵니다."
 공주는 잠시 한뫼도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다시 말하였다.
 "이렇게 뵙게 되어 몹시 기쁘오나 나졸들이 몰려오기 전에 속히 이 자리를 떠나셔요."
 종구의 염려에 한뫼도령은 차분히 말하였다.
 "수백의 나졸들이 온다해도 조는 조금도 무섭지 않으며 수천의 화살이 제개  날아와도 저
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님의 신변이 도리어 걱정되오니 이 자리를
뜨도록 하십시오."
 공주는 한뫼도령의 진지한 말에 대답하였다.
 "저도 공자님과 한께 여기에 있껬사옵니다. 여기에 제가  있으면 공자님ㅇ이 외롭지 안흥
실 거예요. 또 제가 이곳에 있으면 나졸들이 온다해도  공자님을 거칠게 대하지는 못할것이
니까요."
 한뫼도령은 공주를 책하려는 듯 말하였다.
 "여기서 계속계시는 것은 제게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만일에 부왕마마께서 더  큰 노여
움을 사게 된다면 드때는 공주님의 신변에  화가 미칠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공주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나직히 말하였다.
 "공자님께오서 저의 몸을 위해서 목숨가지 버리시려는데 어찌 전들 혼자 살아서  욕된 목
숨을 보존하려 하시겠습니까? 정녕코 저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사옵니다."
 한뫼도령과 공주님은 가장 긴받한 환경속에서  가장 기쁘고 만족스러운 마음에  도취하였
다. 그들은 서로 눈물을 쏟으면서 굳은 사랑을 몇번이고 맹세 하였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소란스러워지며 수많은 날짐승들이 궁궐쪽에서 치달아 올라오고 있엇
다.
 조금ㄴ 참세떼처럼 검고 작은 날짐승들이 쏜살같이 공주와 한뫼도령이 있는 잔다밭을  향
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올수록 날짐승들의 모습은 커가고 뚜렷해졌다. 그것은 궁구 jf을 지키는 나졸
의 무리였고 한뫼도령을 잡으러 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거기 그대로 있거라!"
 제일 앞서 날아오던 나졸 한놈이 땅에내려서기도 전에 한뫼도령을 향해 소리쳤다.
 "..."
 한뫼도령은 이미 모든일을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조금 전에 큰소리쳤던 나졸들이 한뫼도령에게 물었다.
 "네가 봉묏골에 사는 태수의 아들이 분명하렷다!"
 한뫼도령은 아무 동요도 없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친위부 대장은 얼굴이 일그러 지며 말하였다.
 "우리는 궁궐을 지키는 친위부대다. 대왕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너를 체포하러 왔다."
 말을 듣고 난 한뫼도령은 친위부대장에게 물엇다.
 "대체 대왕마마가 무슨 까달긍로 나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셨소? 나는 아무런  죄도 없소이
다."
 친위부 대장은 큰 소리로 말하길,
 "이 괘씸한 놈! 대왕마마께서 아무런  이유없이 너를 잡으라고 하셨겠느냐!  여봐라, 어서
이 죄인을 묶도록 하라!"
 우렁찬 친위부 대장의 호통이 떨어지자  나졸들은 우루루 달려가서 한뫼도령에게  밧줄을
들이대었다.
 "이 무엄한 놈들!"
 갑자기 공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네이!"
 하고, 나졸들은 한번더 호총쳤다.
 "이놈들, 네 놈들눈에는 감히 공주가 보이질 않느냐? 감히 공주의 앞에서 그런 무엄한 짓
을 하고도 목숨이 성할줄 아느냐?"
 친위부 대장은 공주의 태도에 황공한 듯 머리를 땅에 조아리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 얼굴
에는 공주를 비웃는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공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책하듯 말하였다.
 "이분으로 말하자면 자기 처소에서 노희들에게 들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곳까지 찾아오
신 분이다. 옛부터 찾아오신 손님네게는 성대한 대접을 베푸는 것이 예의이거늘, 정중리  모
시지는 못할지언정 이토록 무례하게 포박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행동들이냐?"
 이에 친위부 대장이 말하였다.
 "하오나 공주마마, 하늘에 두 해가  없듯이 이나라에 두분대왕마마가 없사옵니다.  어면을
받들고 죄인을 잡는데 포박을 하지 않는 일이 없사옵니다.  공주맘 말씀이 간절하기는 하나
어명을 어길수는 없는 아닙니까?"
 그러자 공주는 크게 노해 말하였다.
 "그렇게는 못한다. 이도련님을 묶어가는 놈응ㄴ 한 놈도 영서없이 큰 벌을 내리리라."
 말을 듣고 난 친위부대장은 은근히 위협하는 말투로 말하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공주마마! 부디 노여움을 진정하시옵소서. 어명을 거역할수 없는 일아닙니까?"
 말을 마치고 나졸들을 돌아보며 명려하였다.
 "무엇을 꾸물대느냐? 어서 죄수를 무꾸도록 하라!"
 이에 나졸들은 대답했다.
 "네이!"
 부대장의 날카로운 호령이 떨어지자 skag은 나졸들은  공주에게서 들은 꾸중의 분풀이도
할겸 아까보다도 더욱 우악스럽게 달려들엇다.
 그리고는 한뫼도령의 날개와 다리를 곰짝 ath하도록 옭아 놓았다.
 이에 한뫼도령은 크게 노하여 부르짖었다.
 "이놈들! 내기어코 네놈들으 단 한놈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릴 것이다. 두고 보아라. 이 괘
씸한 놈들 같으니."
 친위부 대장과 나졸들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엇다.
 공주는 이 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안된다. 네놈들이 이 공자님을 이토록 참혹하게 끌어가지는 못할 것이리라."
 공주의 말을 듣고 한뫼도령ㅇ느 타이르듯이 말하엿다.
 "공주님은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끌려가는 것이나 편안히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
를수 있겠습니까? 이제 인연이 제게 남아  있으면 살아 나와 공주님을 평생 모시ㅣ게  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부디 눔물을 거두시고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는 직접 앞장을 서서 한뫼도령은 걸어 나갔다. 이렇게  되자 공주는 위업도 기운도
다 잃고 친위부 대장에게 울면서 말하였다.
 "여봐라! 제발 모질게 모시고 가지는 말아다오!"
 부대장ㅇ의 태도는 공손하기는 했지만 공주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앟고 나졸들ㅇ게게  말
하였다.
 "어서 죄수를 끌고 내려가자. 대왕마마께서 봅시 기다리시겠구나."
 하고는, 모졸들을 이끌고 위세도 당당히 궁궐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뫼도령이 옥에 갇히게 되자, 그날부터 공주는 침식을 전폐하고 슬퍼하였다.
 이에 시녀들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올리고, 여러 가지로  위로를 하였으나 공주는
슬프고 괴로운 펴정으로 밤낮을 지냈다.
 그러므로 공주의 몸은 나날이 수척해 갔다.
 왕후가 공주의 괴로움을 보다 못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야. 너의 괴로움은 곧 대왕마마의 괴로움이고 나의 괴로움이란다. 이제  그 괴로움을
거두고 다시 예전처럼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라."
 공주는 완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아뢰었다.
 "어마마마, 죄스러움에 몸둘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오나 한번 마음먹은 저의  마음은
스스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석방되어 소녀의  배필이 될
대까지는 소녀의 마음과 몸은 회복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공주의 처절한 말을 듣고 왕후는 나직하게 말햇다.
 "공주야, 네 심정이야 어찌 내가 모르겠느냐? 게다가 아바마마께서도  짐작하고 계시단다.
허나 나라의 법에는 상감도 복종해야될 엄격한 것이 있으니 법앞에서는 너의 괴로움도 참는
수밖에 달리 구할 길이 없지 않겠느냐?"
 왕후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공주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계속해서 말하였다.
 "이제 그 도령은 잊고 아바마마가 정하신 대보 장군의 아드님과 혼인하게 되면 그동안 너
의 괴로운은 한낱 지나간 ERna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왕후의 말을 듣고 공주는 확고하게 말하였다.
 "만일 이 다음에 설사 태수의 아드님을 제손으로 내쫓을 만큼 싫어지는 한이 있다 하여도
지금은 그 도령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수 없나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말씀은 말아 주
십시오."
 왕후는 공주의 단호한 말을 듣고 답답하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왓다.
 아들이라고는 없이 귀하게 애지중이 키워온 딸마저 잃어버리게 되지난 않을까 심히  걱정
이 되엇다.
 그날 밤 침전에 든 대왕에게 왕후는 절실한 음성으로 조영히 말하였다.
 "문명히 공주가 큰 병이 들었사옵니다.  자칫 핮닫가느느 그애까지 잃게  될지 모르니 이
앙실의 대가 끊기게 될 염려가  없지 않사옵니다. 그 애를 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태수의
아들을 내놓으라 어명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대왕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공주의 병든 몸을 보기 민망해서 눈시울ㅇ이 더워지
는 것 같은 표정도 있었으나,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에 대한 더욱  커지는 증오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엄숙한 복소리로 왕은 말하였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더하오. 하나 태수의 아들을  부마로 삼을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그 첫째의 이유는 이미 내입으로 정해 놓은  호처를 두버 반복할 수는 없
는 일이요, 또 그뚤재 이유는  미천한 태수의 아들을 궁중으로 들여놓을  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요. 이제 공주늬 얘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하오."
 왕후는 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예정이시옵니까?"
 왕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을 옥에서  내어 공주를 농락한 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하오. 몸의 털을 하
나도 남기지 않고 뽑아야 하고 다리를 묶어 죽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소."
 왕후는 다급해져서 말하였다.
 "그 말씀은 지당하오나 그렇게 하시면 공주는 필시 자결을 하고 말것입니다. 바위에 머리
를 부딪히고 목숨을 가볍게 버린뒤에 태수의 아들의 영혼 곁으로 갈 것이 분명하옵니다. 대
왕마맘, 무디 공주엣게 그런 참혹한 상황이 닥치지 앟도록 너그러움을 베푸시옵소서.:"
 말을 끝내고 왕후는 엎드리어 체통도 잊고 흐느겨 울었다.
 대왕은 왕후의 동정을 한참이나 살펴보고 있었다. 왕은 마음이 복잡해져서 심란하였다. 그
것은 왕후의 말대로 태수의 아들을 죽이는 날이면 분명 공주가 자결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눈을 갑고 생각에 잠긴 끝에 왕은 희한한 묘안을 생각하고 왕후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왕후는 의외의 말에 선뜻 물어보았다.
 "무슨 좋은 방도가 있습니가?"
 왕은 나직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과 대보의 아들을 힘과 지혜겨루기를 하게  한단말이오. 이러한 싸움에서 어
쩔수 없ㅇ치 서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되는 관계로 태수의 아들은 대보의 아들에게 틀림
없이 죽을 것이오. 그럼 공주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오?"
 왕후 는 의아해 하며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다가 만ㅇ리 태수의 아들이 이기게 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왕은 왕후의 말에 미소하며 덤더히 말하였다.
 "대보의 아들을 이긴다고? 그런 일을 없을 거요. 대보의 아륻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
사요. 과히 염려 마시오/"
 그 말에 왕후는 마음이 크게 놓여 말하였다.
 "필시 묘한 방법ㅂ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언제쯤 그 일을 시행 하시게 됩니까?"
 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유유히 말하였다.
 "오래 끌수록 왕실의 체면은 사나와지고 민심 또한 불안할  뿐 이오. 그러니 당장 내일이
라도 즉시 겨루기를 연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좋을줄로 아오."
 과연 이튿날 궁중에서 대보의 아들 운무 장군과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힘과 지혜를 겨
루게 된다고 나라안에 포고가 내렸다.
 별로 자주 못보던 일이라 큰 구경거리가  났다고 백성들은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을  하였
다.
 한편 대보의 아들 운무장군은 그렇지 않아도 한뫼도령이 괘심하여 어떻게 하든지  가만히
두지 않으려고 벼르던 대였다. 운무 장군은 싸움이 붙게 되면 깃을 뽑는다거나 잔등을 쪼아
아픔을 준다거나 할것도 없이 단번에 승무를 내어 죽이든지 두 눈을 파내어 평생 고칠수 없
는 병신을 만들어 주리라 결심했다.
 각지에서 벌어진 수많은 무술 겨루기에서 단한번도 져 본일이 없는 운무 장군은 하잘것없
는 일개 태수늬 아들쯤은 상대하기 우스운 존재라고 막연히 짐작하였다.
 이때, 공주와 한뫼도령의 경우는 운무 장군의 형편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났다.
 힘센 운무 장군을 당해낼 힘이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싸움에 나가는 일이 한뫼도
령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노릇임을 공주는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마에야 그렇게 해서라도 영광스럽게 죽게 하느냐 편을 고를수밖에 없
는 형편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도 마찬가지 생각이엇다. 운무 장군이라 하면 이나라에 으뜸가는 장사요, 그의 힘
을 당할 자는 하나도 없음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 한뫼도령은 도저히 운무 장군
을 당할 힘이 없었다.
 다만 이길 길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어떤 꾀를 쓰거나 하늘이 내려주시는 기적이 일
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뫼도령은 싸울 날이 올대까지 운무 장군을 물리칠 꾀만을  생각했다. 허나 묘안은 떠오
르지 않아 단지 아까운 시간만을 공연히 소비하고 말았다.
 드디어 겨루기로 한 날이 왔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늦은 봄의 날씨에 바람조차 없었다.
 궁궐 뒤, 전날에 한뫼도령과 공주가 처음 만났던 잔디밭이 싸움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둘레에 둥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구경꾼들이 자리잡고 있엇다.
 잔디 한 구석에 대왕과 왕후 그옆에는 공주가 불안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대신, 대작, 원로들이 빙 둘러 서잇었으며 또 그옆으로는 직위의 차례대
로 수많은 고관들이 늘어서 있엇다.
 대왕의 앞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운무 장관과 한뫼도령이 나란히 자리잡고 앉아 있엇다.
 운무 장군은 발톱과 주둥이를 날카롭게 갈아 놓고 목덜미와 등어리에 대보 장군의 아들이
라는 표식이 늠름한 은행잎 관으로 얹혀 있었다.
 그러나 어제 저녁, 비로소 풀려난 한죄도령은 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여 얼굴은 창백하
고 핏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단지 등어리와 목에 공주가 밤새워 짠 청올치 갑옷이 두둠히 입혀져 있을 뿐 신분을 펴시
하는 관조차 얹혀져 있지 않앗다.
 운무 장군의 늠름한 체구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빈약한 한뫼도령의 모습이엇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행사를 맡은 전례대신이 육중한 걸음으로 걸어나와 왕과  관랍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오늘의 싸움 진행 규정ㅇ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우선 제일 먼저 신호가 나면 두 젊은이는 양편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저 산꼭
대기의 높이에 오를 때쯤 또 다시 신호가 보이게 되면  서로 힘을 겨루도록 하시오. 어떠한
방도로 어떻게 싸우든지 상관없습니다. 단 싸움은 중단되거나 쉬는  일이 없으며 승패가 날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힘에 겨워서 항복하게 되거나 해가 저물어서 싸움
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또는 대왕전하의 특별한 분부가 계실떄에 한해서는 싸움이 중지 되거
나 끝맺게 됩니다."
 전례대신은 군중에게 설명을 끝내고 나서 두 용사에게 말하였다.
 "지금 말한 것ㅇ느 신성하며 엄숙한 규칙이다. 두 용사는  이 규정ㅇ르 충분히 알도록 하
고 절대 복종을 해야한다."
 운뮤 장군이 대답했다."네이!"
 씩씩한 운무 장군의 대답에 이어 한뫼도령은 가볍게 대답하엿다.
 "알겟습니다."
 전례대신의 지시로 두 용사는 대왕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잔디 밭 양편으로 가서 자리잡고
있다가 깃대를 높이 올려서 신호를 하자 둘이 똑같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날개를 퍼덕이며 올라가 산꼭대기 높이쯤에 이르자 전례대신은 또다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어느 한쪽이고 죽어야 끝나게 죌 숨막힌 처절한 싸움이 시작될 순ㄷ간이다.
 드디어 두 용사는 잔디밭 한 가운데에서 서로 마주쳤다.
 서로 몇번 쪼고는 물러서고, 또 쪼인 뒤에 달려들고는 하다가 마침내 운무 장군ㅇ이 맹렬
한 기세로 한뫼도령ㅇ르 향해 달려 들었다.
 한뫼도령은 급히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워낙  빨리 달려드는 운무 장군의 주둥이를  피할
겨를이 없엇다.
 하마터면 목줄을 물릴 뻔 하였으나 겨우 몸을 피하고 나서 보니 목털이 수없이 뜯겨 잇엇
다.
 한뫼도령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맹렬히 달려들었으나 겨우 그의 날개를 한두 개를 뽑았을
뿐, 운무 장군도 조금도 끄덕하지 않앗다.
 운무 장군은 또자시 한뫼도령ㅇ을 심하게 공격하엿다.
 이번에는 한뫼도령의 머리가 억세게 물어뜯겨 대뜸 붉은 핏줄이 하늘로 치솟았다.
 기어이 횐뫼도령의 목숨은 불과 몇분을 더 견딜수 었을지 의문이엇다.
 하뫼도령의 머리에서 피까지 심하게 흐르는 것을 보자 공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외
쳤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왕은 공주닁 외치는 소리에 놀라서 말하였다.
 "무슨일이냐!"
 공주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결국은 말하고 말았다.
 "제발 싸움은 중지시켜 주십시오. 이제 무슨 말씀이든지 듣자올 터이니 어서 속히 영ㅇ르
내리시어 싸움을 중지시키시옵소서."
 대왕은 매정하게 말하였다.
 "보기가 아무리 딱하다 하더라도 이런 싸움은 경솔하게  중지시킬수 없다. 보기 괴롭거든
궁궐로 들어가 있거라."
 대왕의 냉혹한 거절에 공주는 울며 말하였다.
 "아바마마! 제발..."
 공주는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소리내어 울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도저히 더 이상
은 쳐다볼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두 용사가 마지막 힘을 쓰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서쪽으로 달아나던 한뫼도령이 별안간 방향을 마꾸어서 남쪽으로 몸을 급히 꺾었다.
 한뫼도령의 뒤를 바짝 쫓던 운무 장군은 몸을 남쪽으로 돌리게 되는 바람에 잠시 몸의 균
형을 잃엇다. 게다가 정면에서 강하게 비쳐오는 햇빛떄문에 눈이 부시어 앞 뒤 좌우를 분간
할 수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운무 장군의 입에서는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을 돌린 한뫼도령의 주둥이가 운무 장군의 눈앞을 집게처럼 바짝 파고 들어간 채 꿈쩍
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으윽! 아, 아!"
 운무 장군은 아픔에 연거푸 비명을 질렀으나 이미 파고 들어간 한뫼도령의 주둥이는 더욱
억세게 힘을 더해갈 뿐이었다.
 드디어 운무 장군의 두 눈은 뒤집히기 시작했고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어떻게 해도 도저
히 회복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거의 없게 되자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날개를 떨어뜨린 채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군이 가라앉는 대로 서서히 따라 내렸다.
 그러나 조금도 주둥이를 늦추지 않은채 매달려 따라 내렸다.
 "와아!"
 뜻밖의 광경에 관중들은 높은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땅에 내려오자 운무 장군은 한뫄도령에게 질질 끌려  다녔고 이미 기운도 다해서,
얼굴에는 사색이 완연히 깃들엇다.
 "용기를 내라! 힘을 얻어라 운무장관!"
 많은 나졸들이 운무 장관에게 응원하였다.
 그러나 몇 안되는 공주의 시녀들은 한뫼도령을 응원하였다.
 "한뫼도령, 끝까지 놓치지 마셔요."
 괴로움을 이길 길이 없는 운무  장군의 눈은 차차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처럼, 이세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처절한 눈길이었다.
 "이럴수가!"
 대왕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이나라에서 제일 신임하는 운무 장군을 그대로 죽일수  업ㄲ에
없엇다.
 갑자기 대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명하였다.
 "즉시 싸움을 중지하라!"
 대왕의 심상치 않은 명령에 신하와 관중들은 잠시 술렁댔으나 곧 잠잠해졌다.
 "싸움을 멈추어라!"
 왕의 명령에 전례대신은 크게 복창하였다.
 이에 정신없이 운무 장군의 눈알을 품고 늘어졌던 한뫼도령은 명을 받들고 급히 주둥이를
뽑았다.
 한뫼도령이 운무 장관의 눈에서 떨어지자 전례대신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마마의 특별명령으로 오늘릐 이 싸움은 여기에서 중지한다."
 전례대신의 말을 듣고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대왕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였다.
 절을 받고 대왕은 업숙하게 선포하였다.
 "힘을 겨룸에 있어 아가운 목숨을 굳이 앗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겨룸은 한뫼가 승
리했으므로 그 상에서 옥으로 나오도록 조처를 ㅍ취할 것이며 이로써 싸움이 아직 남아 있
는바, 한달 뒤에 서로의 몸이 완쾌된후에 겨루도록 할 것이니 그때 다시 이곳으로 모여라."
 모든 왕의 신하들은 왕이 운무 장군을 살려내려고 전례없는 조치를 취하는 줄 이미 알아
차렸지만 감히 누구하나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다.
 공주는 여러 사람들의 눈총도 개의치 않고  한뫼도령의 옆에 가사 기쁨에 넘친  울음으로
그를 격려하며 진정으로 말하였다.
 "잘 사우셨어요. 저는 공자민이 돌아가시는 줄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한뫼도령ㅇ느 공주의 정성에 크게 감동하며 말하였다.
 "이 모두가 저의 승리를 빌어주신 공주님의 은공으로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한뫼도령과 공주는 함께 울면서 오늘의 승리를 기뻐했다.
 이제 날은 을허 또다시 시합할 날이 되었다.
 한달 전의 모습과 간이 오늘도 똑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전례대신은 전번과 마찬가지로 나타나서 관중과 두 용사에게 설명하여 말하였다.
 "오늘의 시합은 힘의 대소가 아니라 지혜의 대소를 가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
거니와, 저 앞 큰 뫼 너머에 매들이 사는 매바윗골이 있슴니다. 그 골짜기의 속에는  대왕께
서 늘 구하시는 장수초가 있습니다.  오늘의 시합은 무서운 매들이  득실거리는 매바윗골을
감히 지나가서 그 장수초를 뜯어 오는 일입니다. 누가  먼저 뜯어다 대왕전하께 바치느냐를
겨루는 것입니다. 두 용사는 정정당당히 겨루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고 나서 전례대신은 다시 두 젊은이를 의미심장하게 마라보며 말하였다.
 "그럼 지금 출발한다. 저쪽 형편을  알수 없는 관계로 언제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은
세우지 않았으나 누구든지 먼저 장수초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 승리의 관을 싀워 주도록 할
것이다."
 하고, 깃대를 높이 치벼들고 신호를 보냈다.
 시합의 내용과 규정을 듣고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매들이 사는곳에 들어가서 장수초를 뜯어가지고 오라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든지, 애
초에 근처에도 가지말고 그대로 돌아오라는 뜻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뫼도령과 공주도 이 내막을 얼른 짐작했다.
 시합을 성공시키기 보다는 두 용사 다  실패로 돌아가게 해서 이번을 유야무야로  넘겼다
가, 이다음에 운무 장군을 다시 부마로 삼으려는 속셈임을 능히 알수가 있었다.
 사실 알수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훌쩍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전날의 결사전은 아주 잊
어버린 듯이 마치 친구처럼 나란히하여 매바윗골을 향해 달렸다.
 어느 한쪽도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매바윗골이 얼마남지 않은 고개에 이르자 한뫼도령은 매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이제부터 위험 지역이라는 중거였다.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매가 공격해 올지 알수 없는 일이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구을 바라
보았다.
 운무 장군은 위험한 기색을 전연 느끼지는 못했느느지 그대로 냅다 앞질러서 갔다.
 한뫼도령은 몸을 얕게 내려 날카롭게 언저리를 살피며 운무 장군의 뒤를 바짝 따랐다.
 저아래 골짜기에서 분명히 두려운 매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보니 브고
작은 매들이 이리저리 위세좋게 날고 있었다.
 배들의 출현에 운무 장군도 주춤하기는 했으나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숨기거나 하지 앟고
그대로 날아갔다.
 저 무서운 악마들의 소굴에 먼저 뚫고 들어가려는 심사임이 분명히 엿보였다.
 장기의 날아오는 모습을 매의 보초가 발견했다. 저아래로 신호를  하자 보기에도 크고 매
서운 매의 무리가 여섯 마리나 하늘로 치솟아 갑작스럽게 올라온다.
 "앗!"
 한뫼도령ㅇ리 놀라는 순간 운무장군은 그제야 일이  수습할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을  안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얼른 머리를 돌려 되돌아 날기 시작하였다.
 장끼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매떼들이 가만히 있지 ㅇ낳았다. 넓고 큰 날개ㅇ를 활짝 펼치
면서 장기에게로마구 덮쳐왔다.
 아무리 힘세고 가벼운 장ㄷ기라고 하더라도 매의 날개를 당할재간은 결코 없었다.
 채 고개를 넘지 못해서 매의 발톱에 어개죽지가 걸렸다. 매와 장끼는 마치 전날 한뫼도령
과 싸울대처럼 한동안 하늘 가운데서 어울려 뒹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의 힘과 기술은 매의 발톱과 주둥이에 견줄바가 아니다.
 다른 매들이 채 닿기도 전에 운무 장군은 먼저 덮쳐든 매에게 숩줄기가 막혀 길다란 비명
을 만겨 놓고 그대로 몸이 축 쳐졌다.
 매떼들이 땅에 뒤구는 운무 장군의 눈을 때고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숨어서 바라보는 한뫼도령은 소름이 끼쳤다.
 매바윗골에 들어서려고 한다면 저 운무장군의 신세를 스스로 부르는 행도에 지나지  않는
짓이다.
 죽을 결심이라면 몰라도 살 생각이라면 매떼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다시 되돌아가는  수
밖에 전혀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는 나를 공주가 반겨줄지는 모르짐나, 그런 부끄러운 태도로 공주를
만날 면목은 도저히 서지 않는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약초를 뜯어가는 수밖에 없다.
 한뫼도령은 백방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몇 시간이나 지나서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지루하기는 하지마는  밤 되기를 기자려 몰
래 약초가 있는 곳으로 매들 모르게 침입해 들어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뉘엿이 넘어가기 시작하던 햇빛이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누리기 어두워졌다.
 날짐승들은 무슨 종류고 날이 어둡기만 하면 전부 잠자리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뫼도령은 눈에 불을켜고 언저리를 살피며 살금살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날갯소리를 내
지 않고 이렇게 걸어갈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하였다.
 간간이 흙덩이가 무너져 내려오고 발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앚게 ㅇ했
으나, 이곳에 남의 눈을 피해 들어오는 장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매떼들은 부스
럭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몇 군데의 바위 기슭, 몇 군데의 바탈길, 또 몇 고비의 모퉁이를 돌아가니 매의 냄새도 짙
은 매바윗골의 한가운데였다.
 발소리를 한층 죽이며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매 둥지가 여기저기 유난히 꺼멓게 드러나 보였다.
 매들이 사는 마을의 궁궐 근처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좀더 기어 들어갔다.
 갑자기 푸드득하며 날개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구나?"
 하고, 찢어지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도망갈 길도 없이 죽엇구나 하는 생각이 한뫼돌여의 머리를 스쳐갔다.
 바위틈에 바짝 몸을 숨기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잠시 푸드득 거리던 매의 소리가 도로 조
용해졌다.
 산짐승이 지나가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그들은 나무 위에서 다시 마음을 놓고 잠들기 사작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지 와서 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한뫼도령ㅇ느 또 몸을 드러내 놓고 앞으로 소리없이 기어갔다.
 무득 이제가지 맡아본 일이 없는 그윽한 풀향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얘기로만 들어오던 장수초가 바로 눈앞에 솟아 있는 것을 알수 잇었다.
 어둠 속을 더듬으며 좀더 앞으로 기어가니  칠흑처럼 어두운 바위밑에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항 빛을 뿜고 있는 풀잎이 앞을 가로 막았다.
 분명 장수초임에 틀림없었다.
 한잎, 두잎, 입이 터질 만큼 그득히 따물고 한뫼도령은 얼른 몸을 빼쳐 나오기 시작했다.
 몸이 빗속을 날을 때처럼 젖어 있는 것은 이슬 때문이 아니라 땀이 흐른 탓임을 한뫼도령
은 알았다.
 이미 익혀둔 길이라 돌아올때는 어렵지가 않았다.
 여전히 흐트러지는 흙덩이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나뭇잎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앚게 하기
는 햇지만, 우선 숨을 방도는 있으니 그만큼 안심이었다.
 몇번이고 푸드득 거리는 매의 움직이는 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어느 한 마리도 한뫼돌여의
동정을 살펴내지는 못했다.
 아까 운무 장군이 죽음을 당한 마루턱에 이르러 한뫼도령은 이제는 자기의 목숨이 제대로
붙어 있게 된 것을 알앗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한뫼도령은 날개소리도 요란히 하늘로 치솟아 높이 올라갔다.
 어디서도 매의 날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설사 쫓아온다고  해도 여기가지 따라올
수없음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었다.
 처음 떠날올 때부터 몇 식경이나 지나서 한뫼도령은 아까 출발한 잔디밭 상공의로 날아들
었다.
 "저기 용사의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군중의 놀라움과 환호가 섞인 소리가 한뫼도령의 귀에 들려왔다.
 한낮에 떠난 용사들이 이토록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실에 모드들 큰 변이 난 것으로
알고 차차 기다리기를 단념하고 있던 참이엇다.
 잔디밭 상공에 이른 한뫼도령은 마지막 힘을  모아 한 바퀴 휘익 돌아보이고는  떨러지듯
힘없이 땅으로 내려 굴럿다.
 땅에 내려앉았을 때 한뫼도령은 대왕과 전레대신과 공주의 모습을 눈앞에 보앗을 뿐 그대
로 정신을 잃고 말앗다.
 지켜 보던 전의가 뛰쳐나와 소생초의 잎을 짜서 그 물을 코에 흘려 넣자 한뫼도령은 조용
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전례대신은 뜯어온 장수초를 신기한 듯이 받들고 섰고, 대왕을  비롯한 여러 신하와 군중
들이 금심스러운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공자님. 정신이 드셔요?"
 한 쪽에 웅크리고 안절부절 못하던 공주가 달려나와 얼굴을 비비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 공주 마마!"
 한뫼도령은 간신히 말하였다.
 "한뫼는 분명 장수초를 뜯어왔고, 또한 문명히 운무보다 앞서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늘의
시합에도 한뫼가 승리했음을 알립니다."
 이에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쳣다..
 "한뫼도령 만세!"
 전례대신은 한뫼도령의 곁으로 가만히 와서 이번에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운무 장군은 언제즘 돌아올 것 같은가?"
 한뫼도령은 심각해지며 말하였다.
 "운무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사옵니다."
 하고, 한뫼도령은 그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말하였다.
 군중들은 운무장군의 아까운 희생을 언짢아  하기는 했지만 한뫼도령의 참착성과  인내와
지혜에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장하다! 이번의 싸움에서 한뫼는 힘과 인내심ㄱ솨 지혜를 am게 보여주었다. 한뫼가 승리
했음을 우리 모두 축하하자!"
 할수 없이 대왕도 군중에게 말하였다.
 운무 장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한 한뫼는 옥에서도 풀려나고 그 뒤 거리낌없이 공주와
다정하게 만날수가 있게 되엇다.
 그들은 처음에 알게 된 잔디밭 위에서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을 나누엇다.
 한뫼도령이 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리라는 소문이 온나라 안에 널널 퍼졌다.
 한편, 한뫼도령과의 싸움에서 운무장군을 잃은 그 아버지 대보장군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잠이 오지를 않앗다.
 싸움의 경위를 보면 내 아들이 힘이 모자라서 진것이아니라 운수가 나빠서 진 것이요, 목
숨을 잃게 된것도 한뫼처럼 교활하고 기특하게 몰래 침입해서 장수초를 훔쳐오는 수단을 밟
지 않고 정정당당히 매들을 물리치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던 결과였다.
 힘을 제대로 겨루기로 하면 한뫼 같은 애숭이 상놈이 감히 당할 바가 아니엇다.
 그런 용감하고 귀중한 아들을 잃은 것은 한뫼라는 악귀 같은 녀석의 출현 대문이지, 자신
이나 운무에게 잘못이 있엇던 소치가 아니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아들의 원수는 갚아 주어야겠다고 대보 장군은 이를 달며 맹세
하였다.
 그는 대왕이 한뫼도령에게 승리의 관을 씌워주기는 했지마는 마지못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요, 그가 탐탐해서 한일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운무를 공주의 작으로 하자고 한 것은 다름아닌 대왕 자신의 뜻이엇었다.
 운무의 죽음을 대왕도 크게 언짢아 하고, 무슨 핑계든지 명분이 서면 한뫼를 내쫓을 것이
분명한 것을 대보 장군은 알고있었다.
 밤새 궁리를 한 끝에 배조 장군을 그럴법한 계락을 한가지 기막히게 생각해 냈다.
 이튿날 그는 자기하고 그중 가가운 병부대신을 만나 그의 심중을 이야기하였다.
 "미거한 자식놈이 싸움에 진 것을 가타부타 재론할 일은 아니지만, 애비된 심정에 너무도
억울하여 기가 막히오."
 이에 병무댄신이 말하였다.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 용맹한 자제분이  교활한 저 필부놈에게 욕을 당한  생각을
하면 우리 무사 전체가 낯이 뜨거운 일입니다. 지난얘기는 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 간사
스러운 젊은 놈을 없앨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병부대신의 말에 힘을 얻어 말하였다.
 "그얘기를 의논하려던 참입니다. 듣자하니 한뫼라는 애는 제아비의 뜻으로 다른곳에 정혼
을 해농ㅎ은 자라고 합니다. 다른곳에 정혼을 한 필부가 저 존귀한 공주님으 농락하다니 이
렇게 질서가 문란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에 병부대신이 신이나서 크게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그려. 그 사실을 구실로 다시한번 힘겨루기를 시키도록
대왕께 상주함이 어떻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목에 힘을 주어 말하였다.
 "내 생각이 바로 그생각입니다. 내게는 이미 아들이  없으니 병부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합시다. 이다음 어전회의 때 귀공은 한뫼가 다른곳에 정혼한데가 있다는 사실만 아뢰십시오.
그말이 떨어지면 대왕도 즉시 그와  다시 힘을 겨룰 젊은이를 지목하라  하실 것인즉, 그때
내가 귀공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뫼를 물리치고 귀공의 자제가 부마가 되도
록 할 기회가 아닙니까?"
 은밀히, 그리고 단단히 모의를 하고 그들은 다음날의 어전회의에 임석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병부대신이 업숙한 복소리로 대왕꼐 아뢰었다.
 "봉묏골 태수의 아들 한뫼는 엄연히 정혼한 규수가  잇다고 하옵니다. 그런자를 대왕전하
의 부마로 삼음이 어찌 왕실을 크게 욕되게 하는일이 아니옵니까?"
 대왕은 놀라며 물었다.
 "그런말은 처음듣소. 사실이 그러하오?"
 대왕은 여러 신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어느 신하가 말하였다.
 "그런일이 분명히 있는 줄로 압니다."
 이때 다른 신하가 정중히 말하였다.
 "얘기가 오고가기는 했으나 한뫼 당자는 분명히 거절한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일은 논
의를 것이 못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대왕 스스로가 한뫼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는 참이라, 한뫼를 닥닥할 수 있는 명분
있는 구실이 나온이상 그대로 묵살하고 싶은 마음은 조급도 없었다.
 "그런 일의 유무는 둘째로, 말이 오고간 것도 온당하다고 볼수가 없소. 다시  힘을 겨루도
록 해서 승패를 가리게 한 뒤에 이긴자로 하여금 공주의 짝을 지어주도록 하겠소. 힘세고 E
덕있는 이를 누구든 천거하도록하오."
 대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부대신의 아드님이 용기로 보나 지혜로 보나 인망으로 보
나 이나라 젊은이릐 으뜸이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어의로 살피어 주소서."
 임금은 여러 신하들을 두루 바라보며 말하였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 중의 한 신하가 대왕계 조용히 여쭈었다.
 "병부대신의 아드님이면 과연 모든 면에서 출중하옵니다."
 병부대신의 아들이 운무 장군에 지지않을 만큼 힘이 세고 동작이 날쌔다는 소리를 그 누
구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병부대신의 아들 큰내  장군과 한뫼도령을 마주
대전케 하는데 의견을 모앗다. "싸움하는 상대는 대신들의  뜻이 같으니 그리하도록 하려니
와, 어떤 방법으로 싸움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대왕이 물었다.
 "맨처음 운무장군의 경우와 같이 두 젊은이로 하여금 하늘에서 맞붙어 다투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한 신하가 의견을 제시하자, 내부대신이 점잖고 공손히 해명하며 말하기 사직했다.
 "우리 국법에는 한번 치룬 싸움은 그 당자에게 되풀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되어 있사옵
니다. 이번에는 다른 방도로 싸우게 함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누구도 반대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부대신의 말이 옳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슨 새
종목을 내세우는 것이 다시 또 싸움을 하게 하는 행상에 맞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신에게 한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크내 장군의 아버지 병부대신이 말하였다.
 이에 대왕이 물었다. "어서 좋은 방법을 말해 보도록 하시오."
 병부대신은 차분히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여쭈었다.
 "지금 우리 겨레는 산에 있는 힘센 짐승들에게 시달림을 받기도 하지만 속세에 사는 인간
에게도 또한 그에 못지 않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사옵니다. 우리들의 조상에, 그들을  위해서
이런넓고 아름다운 산속을 모리고 그들의 집안에 들어가 닭이라고 이름까지 고쳐서  주기는
커녕 한층 더 우리들을 해치려고만 하옵니다. 그러나 워낙 몸집이 ㅁ크고 꾀가 있으니, 우리
들이 그들을 마주 응징하거나 보복을 가할 길을  없사옵니다. 그런데다가 그들은 '활'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우리들이 그 근처에  있기만 하면 ㄹ화살로 쏘아 목숨을  앗아가고는
하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추석날, 인간들은  또 활을 메고 우리들을 사냥하러  출동하기로
되엇다고 하옵니다. 저들이 사냥을 올라올 때 큰내 장군과 환뫼를 내세워 두 젊은이의 힘과
꾀를 겨루어 모게 할겸, 사람들의 행패를 막는 길도 찾아보게 함이 어떨까 마음이 듭니다."
 말을 다듣고 난 대왕은 다시 물었다.
 "그런 방법만 있으면야 희한하지 않겠소? 무슨 방도로 그런 성과를 거두겠소?"
 "사람들이 사냥을 올라오는 길목에 두  젊은이를 미리 가있게 하옵니다.  다람쥐 한 마리
놓치지 않고 샅샅이 뒤지고 활을 쏘고 하며 올라오는 그들의 공격을 ㅇ어떻게 하든지 모녀
해 보라고 하는일이옵니다. 불행히도 둘이 다 죽게 되는 위험과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만일
에 살아남기만 하게 되면 공주 마마의 짝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요, 그 힘과 꾀를
우리 겨레가 전부 배우도록 한다면 우리 겨레 구언의 영웅으로 받들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
겨집니다." 대왕은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의견이오. 이번의 싸움을 계기로 우리  겨레가 인간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덜 당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당사자들의 무제뿐아니라 겨레를 위해서라도 죽음을  무릎쓰고
실천토록 해볼만한 일이오. 다른 대신들의 뜻은 어떠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어전회의에서 논의되고 정해진 얘기는 곧 널리 온나라 안에 퍼졌다.
 추석날, 인간의 두목과 그 무리가 활을 메고 사능로 올라오게되면, 두젊은이가 산중턱  가
까이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무슨 수를 쓰든지 그들이 통과한 뒤에 살아서 되돌아 오기로
하는일이 었다.
 포고가 내리자 백성들은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다시 또 싸우게 하는 처사에도 놀랏지마는 구름처럼 몰려올라 오는 사냥군들의 발길을 벗
어나 보라는 내용에 더욱 놀랐다.
 이대까지 그 얼마나 많은 꿩들이 인간의 포위를 벗어나 보려하다가 아깝게 죽어갔는지 수
를 헤아릴수 없는 일이다.
 백성들보다도 동구 놀란 것은 역시 공주와  한뫼도령 당사자들이었다. 잔디밭에서 오손도
손 장래를 설계하고 있다가, 그들은 니포고의 소식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까닭으로 또다시 힘겨루기를 하라는지 도므지 알수가 없었다.
 "되지도 않을 말이어요. 낭군과 저를 기어이 떼어 좋으려고 억지로 꾸며낸 모한이어요."
 공주는 안타까움과 조기를 이기지 못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함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진작 세상을 떠났어냐 옳았을  것을 또 살아나서
이런 욕된 걱정을 기쳐드립니다."
 한뫼도령도 절망과 분노섞인 말을 쏟아 놓았다.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공자님이 언제 어느 규수와 약혼을 한일이 있으며, 백번 그런일이
있었기로 제 남편되는 데에 부슨부족이 있다는 말이어요? 아바마마께 직접 아뢰겠어요."
 이에, 한뫼도령이 말하였다.
 "아무 말씀도 마십이오. 번연히 근거없는 일을 결정지으신 이상, 웬만한 말쓴을 귀담아 들
으실 법이나 합니까? 저를 공주님에게서 뗴어놓고야 말겠다는  뜻의 소치입니다. 어명을 순
순히 받들어 천운이 있어서 다시 살길이 솟기를 마라느니만 같지 못합니다."
 한뫼도령의 한탄을 듣고 공주의 마음은 무너지는듯했다.
 즉시 어마마마를 찾아 문후한 뒤에 이번의 처사의 부당함을 아뢰며 그 포고를 다시 거두
어 들이도록 간곡히 호소하였다. 딸의 간청을 듣고, 왕후는 다시 또 대왕을 만나 뜻을  전하
기는 했으나 왕비의 힘으로써 굽어질 대왕의 ㅅ미사도 아니었고,  일단 널리 선포한 포고를
지금 뒤집어 놓을수도 없는 딱한 일이었다. 추석날이 되자  요전번의 장소에 또다시 임원들
과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한낮에 인간세산의 두목과 그 무리들이 용마루 골짜기
의 어귀에 이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알고 있었다.
 그날 해가 지기 까지 사람들은 용마루 골짜기를 샅샅이 뒤져 꿩이고 산짐승이고 닥치는대
로 잡아가기로 한 것이다.
 한뫼도령과 큰내 장군은 세 마리의 엄정한 심판원과 함께 일찌감치 용마루 골짜기 꼬대기
에 이르렀다. 심판원의 지시에 따라 해가 돋을 무렵쯤해서 두  절믕ㄴ 장끼는 하늘 높이 몸
을 날려 골짜기의 중턱 사람들이 치닿는 바로 역로의 절반쯤의 지점에 몸을 내렸다.
 갑자기 아래 쪽에서 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요란스럽게 골짜기 위를 치달아 기어 올라오는 모습이  심판원들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각각 흩어져서 울타리 형태로 열을 지어 소리치며 올라오고,  우두머
리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들은 활에 살을 재이고 그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노루가 뛰어 달아나다가 별안간 날아드는 화살에 맞아 뒹구는 것이 몇번이고 숨어 ldT는
두장끼의 눈에 똑똑히 띄었다. 두 장끼다 몸을 담고 있는  풀숲과 바위 틈세에서 차차 사람
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가워졌다.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과 긴장이 두 젊은이뿐 아니라 심판
원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큰내 장군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 옆에 있는 풀포기 속으
로 뛰어들어갔다. 이만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을 만븜 안전하고  두터운 풀속이라고
큰내 장군은 생각하였다. 사람의 걸음으로 쉰 발쯤 앞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풀을 더듬고 나무를 툭툭치며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사람의 옷모양과 얼굴모습이 나무와 풀사이로 뚜렷이 어른거렸다.
 기골이 느티나무처럼 장대하고 감발감은 짚신 발이 바윗장처럼 육중하고 억세다. 저 발길
에 밟히든지 채이든지 또는 휘두르는 작대기에 얻어맞든지 하면 몸이 흙가루처럼  으스러져
버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살아남을 길이란 단한 가지밖에 없다고 큰내 장군은  생각했다.
저 발길이 내몸에 닿지 않느 곳으로 지나가 주는 일이엇다.
 제발 저쪽으로 비켜 가소서하고 큰내 장군은산싱령에게 빌엇다.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엇다. 두발중의 하나가 바로 코앞에 놓이더니 또 한 발이 버
쩍 들려 올라갔다. 올라간 신발이 아무래도 다른 자리에내려질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머리통을 으스러져라 하고 밟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였다.
 아얏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크게 큰내 장군의 머리를 스
치고 지나갔다. 더는 그대로 잇을수 없는 것을 큰내 장군은 그 순간 개달았다. 이대로  죽을
바에는 설사 또 다른 죽음의 기다린다 해도 달아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푸드
득..." 있는 힘을 다모아서 큰내 장군은 날개를 크게 뒤흔들었다.
 그곳을 빠져나온 몸이 화살처럼 가벼운 무게로 허공에 떠오는 것을 느꼈다. 저 무서운 발
자국을 빠져 나왓으니 이제는 살았다 하는 생각이 솟아 올랐다. 살앗다는 생각을 채 끝맺기
도 전에 큰내 장군은 난데 없이 솟는  화살의 휭하는 소리를 바로 귓전에서 듣는 순간이었
다. "앗!"
 별안간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남아잇는 한쪽 날개를 움직여  몸을 지탱하려고
해도 자꾸 허공에서 맴남 돌며 앞으로 는 조금도 나가지 못했다.
 큰내 장군은 이를 악물며 앞쪽을 향해 몸을 내밀었으나 몸은 꽂혀잇는 화살과 함께 자꾸
맴돌녀 가라앉을 뿐이었다.
 당에 떨어졌을 째는 한쪽 날개를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졌고 그보다도 와아 하고 들려오던
사람들의 환호성까지 자꾸 먼곳으로 멀어져 가기만 하였다.
 "아따, 그놈 크기도 해라."
 하는 절믕ㄴ 몰잇군의 목소리를 큰내 장군은 마지막으로 들었다.
 큰내 장군의 죽음을 멀지 않은곳에서 지켜보던 한뫼도령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도 저런 신
세가 될 것을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몰잇군들의 포위망을 살아서 벗어날 길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할수 없는 일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했다. 나는 기어이 공주와  인연이 없는 몸이니 몰잇
군들의 작대기에 맞거나 발에 밟혀죽는 것이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은 처음부터 떡갈나무 포기 속에 몸을 도사리고 안증ㄴ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
다. 이쪽으로는 자그마치 두 사람의 몰잇군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기어 올라오고 있었
다. "오늘은 노루와 산돼지는 꽤 튀어나오는데 꿩이 별로 보이지 않으니 웬일일까?"
 큰 소리로 외치며 한 사라미 작대기로 언저리의 풀숲을 툭 쳤다.
 "꿩들도 요새는 약아져서 사람이 어른거리는 줄 알면 진작 멀지감치 달아나  버리고 말거
든!" 또한사람이 대꾸를 하며 성큼 바윗돌 위로 기어올랐다.
 쉰걸음쯤 사이를 두고 두 몰잇꾼이 자꾸 한뫼도령이 있는 나무포기 가까이로 다가왔다.
 저아래 멀찌감치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이제는 뚜렷이 드러나 보였고,  옮겨 놓는 걸음새
한발, 한발이 파도처럼 억센힘으로 마구 밀려닥쳐왔다.
 가슴이 떨리며 온몸에서 땀이 마구 흐르는 것을 한뫼도령은 몸으로 느낄수 있엇다.
 눈 앞에 있는 몰잇군의 한발이 번쩍  머리위로 치솟아 올라가자 한뫼도령은 저도  모르게
날개에 힘을 주었다. 이 발자국에 밟혀서  죽느니, 한 날개라도 날아보다가 요행 죽지  않고
사는길으 찾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순간 한뫼도령은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꾸짖었다.
 몸을 뛰쳐나가다가 그대로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져 버린큰내 장군의 죽음을 바로 조금전
에 보지 않았느냐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몸이 이 나무포기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수백 명의 눈동자와 수백개의 화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올것이 분명하였다.
 귀신같은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일단 들키는 날이면 살아 남지 못할것이 뻔하다.
 몰잇군의 발자국은 지금 내머리위에 있지마는 운수가 좋아 내몸집 위에 내려지지만  않으
면 살수가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일단 지나간 걸음을 다시 되돌아서는 일은 없다.  한발자국ㅁ나 면하게 되면 살길
이 있는 것이다. 화살에 꿰뚫려 죽느니, 이 몰잇군의 발밑에 밟혀 죽으리라 하고 한뫼도령은
굳게 결심하였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으며 한뫼도령은 운명의 순간을 기다렸다.
 "앗!" 한뫼도령은 절망의 부르짖음 소리를 내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와 잔등은 밟히지 않
았으나 꼬리 끝으 밟혔기 때문이엇다. "푸우!"
 아찔하는 순간이 지나가자 한뫼도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몰잇군의 뒷모습이 저꼭대기 까마득한 산봉우리 옆을 휘돌때에야 한뫼도령은 몸을
움직였다. 몰잇군의 발에 밟혔던 꼬리가 뽑혀질 뽄했는지 깃밑둥이 몹시 괴롭게 아팠다.
 높직한 소나무 맨꼭대기 가지에 올라가 둘레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저 꼭대기에 심판원들만이 눈에 띄었다. 이쪽을 지켜보는 심판원들
의 눈에 놀라는 빛과 승리는 네 것이라는 선언이 넘쳐잇엇다.
 한뫼도령은 공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사람들은 이미 고개를 넘어간지 오래되었다.
 한뫼도령의 옆으로 온 심판원은 한뫼의 목에 그의 목을 휘감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뽑혀질 뻔한 꼬리털의 모양을 살피며 마지막까지 유지한 그 끈질긴 침착성에  새삼스럽게
탄복하였다.
 "우선 꼬리 깃부터 바로 잡도록 해라."
 그중의 하나가 후루룩 날아 올라가서 연하게 자라나는 약초잎ㅇ르 뜯어다가 꼬리가  빠지
려고 하는 자리에 문대었다. 상처가 시원해지며 아픈 기운이 가시었졌다.
 "어서 갑시다. 이 꿈 같은 승리를 알려드립시다."
 심판원들과 한뫼도령은 위세좋게 몸을 날리어 대왕과 관중들이 모두 기라리고 있는 그 잔
디밭으로 되돌아갔다. 군중들의 환성은 요전 장수초를 뜯어올때보다도 더 우렁찼다.
 아무도 두 용사가 제대로 살아서 돌아올 줄은 기대하지 않고 잇엇기 때문이었다.
 "아뢰옵니다. 두 용사 중에서 큰내 장군은 불행히도 인간들의 잔학한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고 모뚱이마저 끌려 갔사오며, 한뫼는 침착성과 지혜를 끝까지 발휘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감히 손발을 대지 못하게 하고 돌아왔나이다. 오늘의 싸움은 한뫼도령이 승리했음을 선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원중의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이에 대왕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감탄과 기쁨을 말하면서 대견해서 크게 말하였다.
 "기특하도다. 심판원의 결과 보고를 받고 이에 한뫼가 승리했음을 널리  선포한다. 기특한
일이로다." "황공하옵니다."
 전례대신이 씌워주는 승리의 관을 받아 쓰며 한뫼도령은 몇번 이고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
앗다. 공주는 기쁨과 감격을 누르지 못해서 주위의 눈총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울기만 했
다. "싸움의 과정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다. 우리의 용감한 한뫼가 어떻게  해서
저 포악하고 무지한 인간들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엇는가를 들어보기로 하자!"
 대왕이 말하자 한뫼도령은 정중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겨레들은 누구나 적이 가까이 올 때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하날 높이 나는 버릇
이 있습니다. 옛날 산짐승들이 못살게 굴어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날기 시작한 것이 그대
로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제는 덮어좋고 날아 올라가는 것이 도리어 위험하게 되었습니
다. 솔개나 보라매뿐 아니라 인간들은 활을쏘아 서 날고 잇는 우리들을 마구 죽이기 때문입
니다. 소신은 이 점을 생각하고 최후까지 마음을 가다듬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화전
 이화전에 대하여
 이작품은 작자 미상의 국문 소설로서, 전기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의 힘으로는 왜적을 격퇴할수 없어 명나라에  구원
을 요청해 왜적을 몰아 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전라도 여산땅에 괴변이 일어났으니 부임하는 부사마다 죽고, 백
성도 알수 없는 병으로 수 없이 죽어쓰며, 여산은 마침내 폐읍이 되다시피 변해 버렸다.
 이러할 때 이화라고 하는 장사가 있어  조정에 나아가 여산부사가 되어 가기를  자원하는
데, 물론 이화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허구의 인물이다.
 이부사가 부임하여, 먼저 관아  후원연못에 있는 수백년된 자라가  밤중ㅁ나 되면 나와서
처녀가 있는 민가를 찾아가 괴롭혀 죽게 하는 것을 퇴치한다.
 그런데 그 자라가 민가로 들어갈 때 대문 앞에서 "여백아! 문열어라"하니 그 대문이 스스
로 열리는 것을 보고 그 대문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가져오게 하여 앞에 놓고 여백을  부르
니 대답을 하므로 부사가 죽은 이유를 알고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백의 혼이 알고있다고 하면서 관아 후원에 있는 은행나무 속에 수백 년 묵은 암
수의 여우가 있어 조화가 무궁한데, 드 여우가 원님을 죽여 피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에 이 부사는 고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은행나무를 베게 하였더니, 나무 속
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나무 위에서는 백발노인이 살려 달라 외치고, 땅에 떨어져 죽은 요괴
는 소녀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 부사가 크게 놀라 여백을 불러 물어 보니, 원님은 3년후에 중국에 들어가 죽게 될것이
며, 자기에게도 큰 화가 닥쳐 왔으니 도망하겠다 하고 다시는 대답이 없다.
 그런데 대문 자물쇠에 붙어 있었던 귀신은 임진왜란때 청병장인 이여송의 아우로  부원수
로 형과 같이 출전했다가 전사하고는, 그 영혼이 의지할데가  없어 자물쇠에 붙어 있었다고
했으나, 이여백이 임진왜란에 출전한 것은 사실이나 전사하지는 않았으므로, 이것은  작가의
허구이다.
 이렇게 하여 이부사가 수백년 묵은 자라와 여우를 퇴치함으로써 여산 땅은 무사하게 되었
으나, 그때 죽지 앟고 살아 남은 암여우가 중국으로 들어가 황제의 총비를 죽여 없애고,  자
기가 총비의 탈을 쓰고 황제를 유혹하게 되니, 국사가 날로 어지러워진다.
 하루는 총비가 아파누워, "밤마다 꿈에 조선의 장사 이화가 와서 나를 죽이려  하며, 대국
을 치고 황제를 죽이겠다고 하니, 빨리이화를 잡아들여  죽이소서." 라고 말하자, 황제는 크
게 노하여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이화를 데려오게 한다.
 이화가 중국으로 들어가는데 홀연 이여백이 나타나 중국으로 들어가 살수 있는 계교를 일
러준다.
 이에 이화는 이여백이 시키는대로 보라매를 사가지고 가서 황제  앞에 내놓으니, 그 보라
매가 총비의 백호를 쫓자, 총비가 죽으면서 여우로 변하였다.
 황제는 이화로부터 전후의 얘기를 듣고는 요괴를 퇴치한 공을 사하고는 높은 벼슬을 제수
한다. 이화는 중국에서 벼슬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이여백의 화상을  그려 사당을 지어 보
시고 사시로 제사를 지내 주었다.
 이와 같은 '이화전'은 요괴퇴치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으로,  '김원전'이나 '김영전'과 같

유형의 전기소설로서, 우리의 겨레의 지혜를 중국에 과시한 점에 있어서 흥미롭다.
 
 선조의 말에 시운이 불행하여 임진년에 왜적이 크게 일어나서,  모든 장수며 군사가 정예
하여 물을 건너와 백성을 마난즉 살해하니, 상과 문무백관이  날마다 근심하여 군신이 상의
왈,
 "장수를 뽑아 삼군을 익르어 적군을 막으라."
 하시대, 장수 수명 발군하여 나아가 진치고 적을 기다리더니, 왜적이 날아들어 일합  충살
하여 조선군이 반이나 죽으매, 남은 군사 감히 저항하지 못하여 달아나거늘, 적병이 승승 장
구 하여 성에 들어가 여름농사 지으며 아국 사람과 혼인하여 사는지라.
 상이 근심하사 통곡 왈,
 "아국이 불행하여 왜적에 함놀 한바 되었으되  일인도 가히 막을자 없으니 이를 어이  하
며, 수토 백성이 반년에 유리할줄 어지 알리오."
 하시고 감창유체하시니, 백관이 오열고두청죄 왈,
 "이제는 달리 처치할 길이 없사오니 대국에 청병이나 하여 봄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상이 옳게 여기사 중원에 사신 보내어 청병하시니, 명천자 대경하여 즉시 장수를 뽑아 보
내실새, 장군 이여백 형제를 장수 삼아  일만 정병을 거느려 보내시니, 이여백 형제  하직코
사신과 한가지로 아국에 이르러 이여백은 좌선봉이 되고 이여송은 우선봉이 되어 가각 군사
를 거느려 나아가 왜적과 접전하매, 수합이 봇하여 적병이  대패하여 행렬을 앓고 어찌할줄
을 몰라 사방으로 분산하여 살기를 바라 돌아가니라.
 가석할사, 이여백은 만리 타국에 와 만군중에 죽으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리오.
 이때에 왜적은 멸하였으나 여송은 형을 죽이고 망극히 돌아가고, 상은 만조백관을 거느리
어 입경하사 연구히 태평을 누리시나,  전라도 여산 고을 간 원마다  죽고 고을이 황폐하여
인심이 궤란함을 들으시고 깊이  근심하사 유예불평하시더니, 시에 이화  란 장사있어 이찍
무과급제하여 오래 벼슬을 못하고 분울해 하더니, 차언을 듣고 상소하여 주왈,
 "신이 이제 과거하여 10여 녕에 벼슬을 못 하옵고 성하에 무익 하옴을 숙야에  한이 깊삽
더니, 이제 여산의 재변이 고 이하와 본국이 위태하오니,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한번  입
거하와 사변을 제어하오리이다."
 상이 서사를 보시고 대희하사 즉이 여산부사를 제수하시자, 이화 대희하여 사은하고 집에
돌아오자, 가중이 대경하고 부모왈,
 "이제 여산 가는 원마다 죽은자 30여인이라.  네 구태여 자원하여 죽으려 함은  어쩜이뇨.
달리 말고 가지 말라."
 생이 대왈,
 "소자 듣자오니 사불범정이라 하오니 존고는 과히 염려치 마소서."
 인하여 즉시 하직코 발행 4일에 여산에 이르러 도입하고 본부 왈,
 "아사를 수보하라."
 관인이 일시에 보왈,
 "수보하지 못하리로소이다."
 원이 대질왈,
 "내 조그마한 사용의 말을 들으리로. 빨리 수보하라."
 하리 고이히 여기고 두려우나 시러곰 마지 못하여 쓸고 고하니라.
 이에 원이 걸어 배회하더니, 앞에 부슨 나무 있거늘 물은대, 대왈,
 "고인이 이르되 천여 년이나 묵은 은행나무라 하더이다." 하더라.
 원이 밤에 잠이 없어 두루 배회하니, 월광은 은양에 배이고 만뢰 구적하매, 자연 두루  걸
어 후언에 이르니 큰 못이 있거늘, 나아가 못가에 앉아  속상을 굽어보려니 홀연 물 가운데
에서 소반 같은 검은 짐승이 나와 마로 마을 집으로 가는지라, 극히 고이히 여겨 마침내 보
고자 따라가니, 고을 과역한 집에 들어가벼 의연히 말하여,
 ""이여백아, 문열어라."
 하니 문 속에서 응대하고 문열리는 듯  하더니, 그 짐승이 들어가거늘, 더욱 고이히  여겨
가까이 가보니, 문득 배 앓는 소리 진동하더라.
 조영히 들으매 달이 서령에 떨어지고 원촌에 계성이 나니, 그 짐승이 또나와 여백을 불러,
 "문열라."
 하니 대답코 문을 여니, 다시 나와 그 못속으로 들어가는지라.
 원래 여백은 당장이라. 타지에서 원사하여 고혼이  유유탕탕 무의하다가 이집 자물쇠속에
접하였으니, 옥동사귀되어 뒷복의 묵은 자라의 청을 들어 문을  ㅇ응하여 사람을 앓게 하더
라.
원이 가장 의범하여 돌아와 자고 명일에 과인을 불러 그 집에 든 자를 물으니,
 "이고을 아전의 집이니이다."
 즉시 아전을 부르라 하여 문왈,
 "네 예서 산지 몇해나 되었느뇨."
 대왈,
 "오륙대를 아전으로 내려왔으니, 몇해이온줄 알리이까."
 원 왈,
 "네집 자녀소솔은 얼마나 되며, 일직이 우환이 없었느냐."
 대왈,
 "소인이 신수 기험하와 나이 늦도록 한 자식이 없어서 상하 설워하옵더니  노년에 일녀를
얻었사오며, 비록 무익하오나 재용 총혜하옴이 드므온지라, 깊이 사랑하오며 의롭사옵은  위
에 없삽더니, 7세부터 야야 복통을 얻사와 아제 7,8년에 점점 고황지질이 되오니 죽기에  가
까운지라. 일로 설워하나이다."
 말을 끝내고 구구 연낙하거늘, 원이 추연이 여겨 이르되,
 "네 원래 가히 불쌍하니 내 술로 병 고칠 바를 이르리라."
 아전이 전전 감은하니, 원이 작야사를 생각코 짐작을 이르되,
 "네집 문앞을 널리 파고 그 속에 탄화를 많이 피워, 그 위에 흙을 얇게 하여 허방을 놓으
면 반드시 신통함이 있으리라."
 아전이 배번 감사하며 짐에 돌아와 원의 가르친 대로 하였더니, 과연 차야부터 앓지 아니
하는지라. 아전 부처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원에게 은혜하여 하니, 다만 제 집 전답 문서 가
장을 가져다가 원의 앞에 이르러 백배칭은 고두사 왈,
 "천만 의외에 높은 은혜를 입사와 죽사올 한낱 자식을 실리시니, 황공 성은 이 백골 난망
이라. 소인의 전답 문서를 감히 드리나이다."
 원이 소왈,
 "내 불길한 문서를 받으리오. 다만 네게 달리 청할것이 있으니 들을소냐."
 아전이 감황 대왈,
 "소인의 모체를 헤치어도 당당히 사양치 못하오리니 이르시는 바를 봉행하리이다."
 원이 답왈,
 "네 집의 묵은 큰 자물쇠를 구하나니, 큰 문 잠갔던 것을 가져오라."
 언필에 아전이 전도히 가더니 드쇠를 가져다가 죽시 헌하는지라. 원이 기꺼이 받고 문왈,
 "네 집 허방 놓은 곳에 무슨 표 있더냐."
 아전이 대왈,
 "큰자라 그속에 빠져 죽었사오니 고이히 여기나이다."
 원왈,
 "그 짐승이 네 자식 앓게 하던 것이니라."
 한데, 아저과 듣는 자 신기히 여기고 아전은 감사 백배하여 가니라.
 이화 그 자물쇠 속에 이여백의  혼이 접하였음을 알고 읍중 재변을  알고자 하니, 치인의
신기묘략과 덕을 알리러라.
 자물쇠를 앞에 놓고 소리하여 이여백을 부르니, 그쇠속에서 쾌히 대답하니, 원이 고성왈,
 "내그대 성명을 들으니 대국 명장이라. 불행히 타국 난군  중 몸이 망하메 인간의 차탄하
는 마이어늘, 비록 혼백이나 녹록히 akf을  집 자물쇠 속에 들매, 짐승의 청을  들어 사람을
해하니, 그대의 용상함을 위하여 웃노라."
 여백이 감탄왈,
 "내 네 나라를 위하여 구하러 만리 타국에 왔다가 애매히 난군중에 죽음을 만나  이런 고
혼이 유유 탕탕하여 의자할 길이 없겉늘, 이 집 자물쇠  나이 많아 가히 주접하기 마땅한지
라. 머물러 온지 오래지 아닌지라. 무슨 사람을 해함이 있으리오."
 이화 이르되,
 "내 가히 보았는지라. 문을 열어 출입을 응하니 해한 작시 아니냐."
 여백왈.
 "이 뒷못에 만년이나 묵은자라 있어 신기 도술로 사람을  잃게 하며 괴로이 보채니, 이기
지 못하여 문을 열어 주나, 구태여 해함이 아니로다."
 이화 왈,
 "여언이 최선하니 지리히 이를 것이 아니나, 내 다만  긴도히 묻고자 하는일이 있으니 혼
은 사양치 말라."
 하고, 인하여 문왈,
 "내 들으니 이 고을 원이 전후에 오는 이마다 죽는  자 하나둘이 아니라. 반드시 무슨 요
사작나함이라. 어찌 알소냐."
 여백왈,
 "내 모름이 아니나, 이사귀 억만여 년 북은 은행나무 점유하여 신기묘산이 천만리를 제치
고, 능통요술이 이매망량을 다 멸하니, 이러므로 고을 원이 많이 죽었으나 감히 뉘우치지 못
라였으매, 제어하는 도리 극난하니 말과 의사 부질없도다."
 이화 차언을 들으매 사세 다난하되 종래 알아 제방할 뜻을 두고 다시 문왈,
 "내 비록 용렬하나 약간 간사로 없이할  것이어늘 말을 끝내고 묻지 않음을 나를  업수이
여김이라. 빨리 이르지 아니하면 내 찬 보검이 수중에 있으니, 네혼령을 버히리라."
 여백 왈,
 "처음이라. 더크게 말하면 크게 어려운 줄 달거든 다시 물어 두렵게 하내 어찌 이르리오."
 이화 성노하여 칼로 당당히 버히고자하니, 여백이 애걸하여 왈,
 "네 나를 버히고자 하니 무릇 두 번 죽는 일이  없으나, 너를 불행히 만나 괴로움을 당하
는지라, 내 이르나 에 처지를 잘못하면 나는 예있지 아니하고 너도 참사하리라."
 이화 운둔 문왈,
 "좋은꾀를 가르치면 ㅇ찌 성치 못하리오."
 여백왈,
 "저 은행나무 천여 년이나 묵은  여우 자웅이 있어 변화 무궁하여,  이 고을 원마다 죽여
그 피 빨아먹으니, 점점 요술이  더욱 신기한지라. 잡기를 착실히  할지니, 이고을 백성에게
영하여 만군으로 겹겹이 진쳐 인인이 다 활과  총과 ckdrjad을 장약하여 대하고, 대톱과 큰
도끼로 나무를 버히면 처음 혈이 낭자할것이니, 억만병으로 여우를 잡되 일시에 둘을 다 잡
으면 변이 없으리라."
 이화 차언을 듣고 기꺼워서 왈,
 "내 착실히 할 것이니 염려 말라."
 하고 가 면에 하령하니, 그물을  맺거 두루 치고 억만인으로 겹겹이  둘어 진치고 나무를
버히라 하니, 모든 관리와 백성이 일시에 말려 왈,
 "이나무 극히 영겁하와 나무 위에 백수 노옹, 노고 때때로 나오니 이는 신선이라. 신기 변
화 무궁하니 이 나무 버히신즉  백성이 다 죽기 쉼사오니  성주꼐서도 화 있사온가 하나이
다."
 원이 대소 왈,
 "너희 무삼 지각이 있노라 감히 내 명을 거스리느뇨. 순의치 아니하니 나무 속 묘사를 잡
지 못한면 반드시 너희들 이 창검으로 처벌하리라. 빨리 나무를 버혀 착실히 다 잡으라."
 하고 호령하니, 질성이 상이 무너지고 고을이 터지는 듯하니, 모든군사 문득 황겁용약하여
일시에 달려들어 버히니, 과연 나무 속에 유혈이 낭자하니, 다 실색 창황치 않을수 없어  일
시에 빌어왈,
 "이나무 변이 이 같사오니 덕분에 버히지 마사이다."
 원이 문득 고성으로 대질왈,
 "너희 관원의 지휘를 받아 몸이 비록 진하나 맞지 아니려든 나무 재변이 여차하며 버히는
바라. 너희 방자히 굴어 대사를 이렇듯 긄케 하니, 반드시 실리지 못하리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니, 제군이 마지 못하여 일시에 버히니라.
 연하여 나무 위에 백발노오, 노고 있어 '살리라' 벽력같이 소리지르니 문득 천지 합색하는
듯 일광이 혼무하고 음풍 대작하며 내외  진동하니, 성하 제군이 다 거구로지고, 이화  겨우
정신을 차려 고성 왈,
 "모든 군사는 창검을 발하여 저 요괴를 잡으라."
 연하여 재촉하니, 군민이 겨우 인사를 차려 일시에 고함하고 나무를 버히니, 요괴둘이  땅
에 떨어지매 길이 한발은 되고 금빛같은 여우라. 화살과 창검으로 그 짐승을 죽이니 그제야
정신을 차려 원에게 사례왈,
 "이런 요괴 읍중에 있어 종전 대변이 그러하옵더니, 성주 명공의 신기 이  같사오니, 이제
는 태평을 누릴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천신이 강림하여 여러 원님의 보원을 하시다."
 하더니, 문득 보니 죽은  여우 숫여우 뿐이라 하니,  이화 실성대경하고 돌아와  여백더러
왈,
 "지휘로 인하여 잡았으나 암 여우를  잃었으니 장차 어찌하리오."
 여백이 대경왈,
 "당초에 너더러 이르매 하나 잃으면 대한이  있으리라 하였더니, 암여우를 잡지 봇하였으
니 나도 아무곳으로나 피하려니와, 너는 삼년내 대국에 가서 죽으리라."
 하고 하직하고 없거느ㄹ, 아무리 부르나 대답지 않으니, 이화 기울지념을 정치 못하여  일
야 면식이 불안하여 여취여치하여 지내더라.
 화설, 암여우 여러 천여 년을 태평히 지내다가 이화의 화를 입어 분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국에 들어가니, 황제 이때 백관의 조회를 파하시고 춘화당에 어좌하여 외첩귀인을 청하사
화촉응ㄹ 완상하실새, 귀인의 반취한  양볼이 도화같고 춘풍을 이기지  못하여 세우 휘둘러
광풍ㅇ르 만난 듯 하여 아리따운 태도 인심을 녹일 듯 한지라. 황제 새로이 희소 왈,
 "귀인의 반취한 옥안이 금이 더욱 진실로 경구지색 이로다."
 하시더니, 언미필에 동남간으로서 금광이 조요하여 모란 포기로 들어가거늘, 황제  대경하
사 궁인으로 가보라 하시니, 종적이 없는지라, 황제 의혹 경민 하사 장사로 궁중 사면을  지
키라 하시나, 종래 무슨 자췬줄 모르고 궁인이 많이 불행하더라.
 차석타. 귀인이 그날 여우를 보고 기운이 혼침하여 즉시  침실로 들어와 ㅂ여세 위중하여
극중한지라. 황제 크게 근심하시고 궁중이 진경하더라.
 이대 그 여우 밤마다 삼사경 이면 궁주에 들어와 귀인 침소하더니 병이 드는지라. 일일은
일기 심히 음랭하여 사람의 기운을 혼침케하더니, 차야에 홀연 바람이 일어나 촉화어지럽고
한기 사람에게 사무치니, 궁중 제인이 다 거꾸러졌더니, 여우 들어와 귀비를 잡ㅂ아  골육을
다 먹고 그해골을 써 완연히 그  자리에 누었으니, 뉘능히 여우인줄 알리오. 동방이  밝으매
모든 궁의 방을 보니 완연히 전과 같거늘, 들어가 귀인을 보고 꿇어 문왈,
 "간야에 음풍이 일어나고 냉기 극심하니 가장 고이코 기운이 혼침하와 겨우 진정하였사오
니, 행여 귀체를 상하신가 하여이다."
 귀인이 탄왈,
 "너희 등이 나로하여 여러날 경야하여 구치하니 그렇도다. 나도 그런일 없고 병세 나으니
차후는 염려 말라."
 하더라.
 언필에 황제 병을 보고자 들어오시니, 귀인이 화계 복지 돈수 왈,
 "신첩이 폐하의 은총을 온전히 입사와 아제는 병세  나았아니다. 폐하의 망극하온 은념이
로소이다."
 상이 크게 기꺼워하여 그 손을 잡고 웃어 왈,
 "귀인의 병으로 근심이 깊더니 금일에 얼굴을 보니 가장  신기 한지라. 천상 정장 유액을
먹었도다."
 귀인이 고운 빛을 머금고 아리따운 교태를 하니, 교언 영색이 장부의 굳은 간장을 사르는
지라. 황제 더욱 과혹 하사 조야사를 귀인의 처치대로 하니, 나라가 점점 어지럽더라.
 일일은 귀인이 금금에 싸여 일어나지 아니코 앓으며 상께 고왈,
 "근래 야야에 꿈울 꾸오니 한 장사 보검을 비껴 들고 이르러 조선국 이화  여산원 장수라
하고 칼을 들어 첩의 머리를 치고 이르되, 타일 내 반드시 아군 전발하면 천자와 너의 머리
를 버혀 쾌히 하리라 하고 죽이려 하오매, 꿈을깨니 이리 앓아서 죽음이 가까오니 잔구하온
목숨을 아끼옴이 아니오라 폐하의 갖자온 은혜를 잊자오면 구천 타일에 원혼이 되올지라 깊
이 슬퍼하나이다."
 상이 탄왈,
 "숨이 고이코 또한 병이 저렇듯 하니 필연 조선 장사 있어 정녕하다."
 하시고 조선에 사람에 보내어 이화를 잡아오라 엄칙하시니, 사자 아국에 이르매, 선조  황
칙을 받자와 이화 불러 보시고 가기를 이르시니, 이화 전일 여백의 말을 아뢰고, 다시  돌아
오지 못함을 아뢰어 작별하니, 상이 또한 감탄하사 왈,
 "이 다 아국 재변이 대국에 참변한가 싶으니 양국의 불행이라. 어쩐 연곤 줄 아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함을 헤아리니 침식이 불평하도다."
 하시고 아무려나 빨리 감을  전교하시니, 이화 사표를 향할  의여취여치하여 집에 돌아와
부모 처자와 친척을 모아 생리 사별됨을 함구 탄왈,
 "전일 여산에서 이화를 나타내었으니 또한 원될 것이 없고,  장부 한번 죽기를 아낌이 아
니라, 노래 노부모를 이별하고 타국 원혼이 되매 어찌 참담한 심히를 억제하리오."
 인하여 누수 냉락하니, 부모 통곡 왈,
 "무단히 대국에서 부름이 고이하나 어찌 돌아오지 못함을 이르느뇨."
 이화 여백의 말을 고하자 부모 처자 우너근 족친이 아니 우는 이없더라.
 정일을 당하여 십리 정도에 주찬을 익르어 배별하고 천행으로 다시 돌아옴을 축원하더라.
 이화 궐하에 하직코 발행하여 3일이 되매 의주에 이르러 홀로 잠이 없으니, 문에 기대 비
회를 정치 못하여 탄식, 옹려에 하늘을 우러러 축수하더니, 홀연 공중에서 불러 평부를 물으
니, 이화 경혹 답왈,
 "혼야에 뉘 나를 운군히 불러 묻느뇨."
 답왈.
 "나는 이여백이니, 이제 네 저렇듯한 형색이 있을줄 먼저 헤아린 바라. 가히  참혹하여 보
지 못함이로다."
 이화 반갑고 기쁨을 띠어 답왈,
 "금야 찾음이 실로 여의라. 생사에 유신함을 알리로다. 과연 그대 영신의 이  같음에 밤곡
하나, 장차 어쩌리오."
 여백이 위로 왈,
 "내 찾음이 살길을 알리고자 함이라. 수회를 그치고 자세히 들으라."
 이화 감은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여백왈,
 "내일 발행하반 일이 못하여 비가 오거든 여차여차 한집에 들면 보라매 있을 것이니 값을
헤아리지 말고 사 가지고 대국에 이르러는 황제 반드시 옷을 벗고 들라 하나 죽기로 거역하
고 벗지 말고 그 매를 소매 속에 넣고 들어가 내어  놓으면 살 게교를 족히 될것이요, 공명
도 얻르까 하노라."
 이화 대회 감읍왈,
 "뜻하지 아니한 곳에 이르러 은근히 살기를 두 번 가르치시니 진실로 은혜 백골난망이라.
타계에서 갚기를 기약하고 상벌하노라."
 명일에 길 떠나 반일이 못하여 과연 죄우 대래하니, 이화 양천사 왈,
 "여백의 신기함이 이 같도다."
 하고 마을ㄹ을 찾으니, 과연 여백이 이르던 집이 있거늘, 이꺼이 들어가 주인에게 불을 구
하여 옷을 말려 입고 두루 보니 조금나 보라매 있거늘,  사기를 기약하고 크게 기거이 주인
을 청하여 문왈,
 "저매가 주인의 것이냐."
 담왈,
 "우리께 산대째 내려오나니 사냥을 잘 하여 일로 십여  수를 잡으니, 저매로 일생 생애를
하매 귀하게 여기나이다."
 이화 왈,
 "내 젊어서부터 매를 좋아하더니, 이매를  보니 일생 소원이라. 내 값을  정치 않을것이니
네 팔라."
 주인이 답왈,
 "이를 파오면 생애 그쳐질 것이니 팔지 못하겠소이다."
 화 은자 천냥을 주어 왈,
 "비록 어려우나 내 지극히 사고자 하니, 객중 소회를 위로하고 다시 팔라 한들 무엇이 어
려우리오."
 주인 그 간절함을 보고 감동하여 주니, 이화 대열하여 그  매를 가지고 중원에 이르러 황
제께 뵈옴을 아뢰니, 귀인이 시좌하였다가 고왈,
 "조선복색을 다 벗고 들어오라 하소서."
 상 또한 벗고 들어왈 하신데, 사관이 나아가 웃옷ㅇ르 벗고 들어오라는 황명을 이르자, 이
화 진복질 왈,
 "조선 예의국 지방 사람이라. 조그마한 조선에도 옷 벗고 뵈는 일이 없거늘,  하물며 황제
만승지전에 옷벗고 뵈는 도리 있으리오."
 하고 사자를 물리치고 점점나아오더니, 귀인이 겁하여 이르되,
 "이화 황명을 저렇듯 거역하니 전일 몽사를 생각사오면  어찌 흉악지 아니하리이까. 빨리
장사로 들어오는 문을 닫고 옷을 벗기려 하니, 이화 고성왈,
 "비록 황사의 명이 계시나 죽을지언정 옷을 벗지 못하리라."
 하고 손으로 모든 장사를 밀치고  정전에 들어가니, 황제 귀비와 한가지로  앉아계시거늘,
이화 황상께 팔배 고두 한후 문득 소매에서 매를 내어 놓으니, 바로 귀비의 어리에 날아 앉
아 백호와 두 눈을 쪼아 먹으니, 귀비 변하여 문득 황급 같은 여우되거늘, 황제 대경 실색하
사 좌우로 하여금 끌어 내라 하시고 겨우 정신을 정하사 이화를 나아오라 하사 손잡고 연고
를 물으시니, 이화 전후 수말을 세세히 주달하니 황제 차탄하시고, 상이 심히 참담하사 귀인
이 여우에게 죽은 줄을 척연하사 여우 주검을 일만 조각 내어 귀인의 신의를 위로하시고 제
문지어 제하시고, 좌우를 돌아보라 가라사대,
 "이화의 신기 도술이 아니었던들 거의 종사를보전치  못하고, 천하 갖산이 타인에게 돌아
감을 면치 못하였으리라."
 하시니, 군신이 일시에 만세를 불러 하례 왈,
 "이황의 신기 며산으로 대화를 진정하오니 이는 폐하의 홍복이로소이다."
 상이 전교 왈'
 "이화를 영릉 태수 무신후에  봉하라."
 하시고 금은 보화를 많이 주시니, 이화 황광복지 왈,
 "소신이 천위를 범하온 죄 중하옵거늘,  높은 봉작을 주시고 또 증상르  어찌 받으리이까.
복원 폐하는 신의 무례한 죄를 다스리소서."
 상이 위로 왈,
 "경은 진실로 사직지신이라. 조선에 지자 많음을 희열하나니 경은 사양치 말라."
 이화 백배 사은하고 물러난다.
 선시에 이화의 부모 처자 북을  바라 호곡하니 혈루 첨의하더라. 기처  한씨 재용 덕행이
빼어났더니, 차시를 당하여 유자를 어루만져 통곡왈,
 "첩이 죄악아 주앟여 골육이 성치 못하오니, 구고도 한낱  이 아해를 무휼하사 있 ㅣ종자
를 잇게 하옵소서. 첩이 당초에 부자의 ㄷ4ㅟ를  이어 죽으려 하되, 지아비 이르되 둘이  다
죽으면 봉사를 의탁하라 하였사오니,  첩이 차마 멸치 못하였더니  잘길러 봉사를 의탁하라
하였사오니, 첩이 차마 멸치 못하였더니, 이제 이아비 타국에 가서 헛되이 우너사 하되 소식
을 들을 길이 없삽고 해골을 거두리이꼬. 첩이 차마 안신치 못하오리니, 이제 나아가 백골묻
힌땅을 찾아가 혼잭을 따라 뒤를  좇고자 하나니 불효가 태심하오이다.  구고는 무념하시고
길이 무강하소서."
 하고 돌아 거연히 하직하니, 부모 대경하여 통곡 오열왈,
 "네 어찌 노인과 유아를 두고 이런 설계를 하느뇨. 이제 반년을 더 기다려 해아의 생사를
알아 결단하라."
 하니, 차마 떠나지 못하고 통곡하더라.
 이적에 이화 황제께 상표왈,
 "은덕을 입사와 벼슬이 이름나옵고 은총이 빛나오니  길이 종신토록 섬기고자 하오나, 칠
씹 쌍인이 다른 자식이 없는지라, 늙은 어버이를 보게 하시면  신의 일신 사생을 모르고 주
야 통곡하는 가운데 생환하는 생사를 보게 하옵소서."
 상이 간필에 추연 탄왈,
 "짐이 불행하여 궁궐에 요얼이 작란함을 몰랐더니, 경의신기 묘락ㅇ으로 요얼을 제방하고
궁중이 평안하니 실로 골이 큰지라. 장차 머물러 작상을 갚고자 하더니 표를 보매 위친지정
을 막음이 임박한지라. 인자지정을 막지 모샇여 돌려보내나, 심히 결연하여 침식이 불안하리
로다."
 이화 백배 고두사 왈,
 "신이 가기를 바라도 폐하 은헤를 다 갚삽지 못할까 하나이다."'
 인하여 하직하고 돌아올새, 각각 금은을 실어 전송하니, 재물리 불가 승수 더라.
 이화 돌아 향하여 오래지 아니하여 압록강을 건너 생황하는 소식을 급히 통하니, 일가 황
홀 희지하되 도리어 통곡하고, 한씨는 이 소식을 듣고  여몽여상하여 기절하니 합가 위로하
더라.
 오래지 아니하여 이화 이르러 상달하니, 상이 빨리 불러 인견하사 칭찬왈,
 "짐이 지각이 없어 영웅과 신기를  알지 못하였더니, 진실로 경은 고금에  없는 재략이라.
대국에 이르러 달기 없기 하고 조정을 평정하여 아국을 빛내니,  금옥 같은 절효 죽백에 드
리오나 믿지 못하리로다."
 여러 번 칭송하사 도총부총관에  명하시고 충렬공에 봉하시니, 이화  고두 사은하고 집에
돌아오니, 부모 반김이 극하니, 연이 집수하여 통곡 반향에 기쁨을 이르어 생환한 수말 전후
사를 일일이 고하되, 부모와 처자며 덕으로 두 번 살기를  얻고 양국에 대공을 얻었음을 칭
찬하고 은혜를 망극하여 부모 이르되,
 "진실로 여백의 은덕을 세세 생생에  갚지못하리라. 하물며 너와 네  자손은 대대로 잊지
못하리라. 당에 사당을 이루고 화상을 만들어 사시 향화를 그치지 아님이 옳으니라."
 이화 즉시 화상 만들어 사당에 걸고 사우를 잇게 대대로 자손이 향화를 그치지 아니하니
라.
 이화 중국에서 얻은 바를 충관과 빈궁한 일가 친척에세 나누어 주고 인근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혼상대서를 구제하니, 원근사람이 칭송하는 소리 진동하더라.
 이화 부귀 극하니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가 노부모를  효양하고, 자손이 버성하여
천년 안향하니, 후인이 아름다이 여겨 사적을 약강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나니라. 대강  이화
의 영웅호걸과 이여백의 여달한 정백을 후인이 알게 하니라.

   운영전
 처음으로 '조선소설사'를 쓴 김태준은 이작품의 작자를 작품안에  나오는 몽유자인  유영

로 보았으나, '유영전'이란 표제가 있고, 작가가 작품끝에서 몽유자인  유영이 꿈을 개고 나

명산을 두루 찾아 놀다가 그맞힌 바를 알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몽유자인 유영을 작자로
볼수 없으므로, 이작품은 작자 미상으로 돌릴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조조 임진왜란 이후의 황폐한 궁중의 묘사를 해  놓앗고, 몽유자인 유영이 선조
34년에 배경이 되어 있는 수성궁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선조 34년을 이 작품의 창작 연대로
보고자 한다.
 
 운영전에 대하여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수성궁 몽유록'이다.
'운영전'은 여주인공을 표제로 하였고, '유영전'은 몽유자를 표제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제목과 같이 꿈 속의 세계를 표현해  놓은 몽유소설의 유형에 속한다. 다
른 몽유 소설에서는 작자 자신이 몽유자가 되고 주인공이 되어 있으나. 이 작품은 몽유자를
따로 설정해 놓았다.
 이 작품의 몽유자인 유 영이 선조 34년에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았던 수성궁을 찾
아가 술을 마시고 잠이 듦으로써 꿈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 꿈 속에서 유 영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과 노녀의 애인인 김 진사를 만나 그들의  비
련을 듣는다는 것이 플롯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법은 '달천몽유록'이나 '강도몽유록'

같다.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중 구조에서는 플롯 중의플롯이 작품의 중심을 이
루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몽유자가 듣는 남녀 주인공들의 비련담이다. 안평대군의 궁녀인 운영은
궁녀의 몸으로 궁 밖에 나가도 엄형에 처하고, 궁 밖  사람이 궁녀와 내통해도궁 밖 사람을
엄벌에 처한다는 엄명을 거역하고 궁 밖에 살고 있는 김 진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하여 김 진사는 밤중에 수성군의 높은  담을 넘어가 운영과 운우의 즐거움을  나누는
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와 눈이 와서 발자국이 나게 되니 궁인들이 수상히 여겼다.  이
에 운영은 김 진사와 짜고 도망할 준비를 위해 가지고 있는 보물을 궁 밖으로 운반해 낸다.
 안평대군은 드디어 운영과 김 진사의 관계를 알고 운영과 같이 있는 궁녀들을 문초하거니
와, 작자는 궁녀들의 초사를 통하여 궁녀의 해방을 주장하였고, 궁녀들의 성 문제를  표현해
놓고 있다.
 궁녀들의 초사를 받아 본 안평대군은 운영을 옥에 가두니,  운영은 옥중에서 목매어 자살
하고 만다. 운영의 장사를 지내 준 김 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라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으로
하여, 운영과김 진사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이 작품은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고전 소설에 잇어서
유일한 비극 소설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남녀간의 사랑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생명보다
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해 놓았다.
 남녀가 일생을 살기 전에 이룩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에, 이  작품
의 남녀 주인공들은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왕궁에 한평생 갇혀 사는 궁녀의 해방을 제기해  놓았다. 작자는 밀폐되어 있는
궁중에서 자유로운 궁 밖의 생활이 그리워 몸부림치는 궁녀들의 정신 상태를 잘 묘사해 놓
았다. 안평대군의 문초를 받고 올린 초사에서는 특히 궁녀들이  성적인 해방을 절규하고 있
다. 이러한 처절한 절규는 그야말로 궁녀들의 인권 옹호라 하겠다.
 이와 같은 웃사람에 대한 반항은  '윤지경전'이나 '춘향전'에서도  볼 수 있으나.  인간의

성적인 성의 해방에대한 반항은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이 작
품은 우리 고전 소설에서 명작 중의 명작이라 하겠다.

   운영전
 수성궁은 안평대군의 옛날 집으로 장안성서쪽 인왕산 밑에 있었다. 산천이 수려하며,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험준했다. 사직이 남쪽에 있고 경복궁이 동
쪽에 있었다.
 인왕산의 산맥은 굽이쳐 내려오다가 수성궁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높은 봉우리를  이루
었다. 비록 험준하지는 아니하나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거리에 흩어져  있는 점포와 온 장안
의 저택이 바둑판과 같고 하늘의 별과 같아서 역력히 헤아릴  수 있었다. 모양은 완연히 베
틀의 실오라기가 갈라진 것과 같이 정연했다.
 동쪽을 바라보면 궁궐이 아득하며 복도가 공중에 비껴 있고 구름과 연기는 아침 저녁으로
푸름을 더하여 한층 운치를 보여 주고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한
때주도들은 몸소 가아와 적동을 동반하고 가서놀았으며, 소인과  묵객들은 3월달 꽃피는 시
절과 9월달 단풍이 익어 가는 시절에는 그 위에 올라서 놀지 아니하는 날이없었고, 음풍 영
월 하면서 즐기느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청파사인 유 영은 이 동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익히 듣고있었다. 한 번 가서 놀고 싶은 생
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의상이남루하고 얼굴빛이 파리하여 유객의 조소를 살 것을 알고가려
다가 주저한지가 오래 되었다.
 만력 신축 춘삼월 가망에야 탁주 한 병을 샀으나, 동복도 없고 또 한 친구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몸소 술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 보니, 구경 온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
가락질 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생은 하도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으나 바로 후
원으로 들어갔다. 높은 데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니, 새로 병화를 겪은 후라 장안의 궁궐과
성 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당연하였다. 무너진 담도 깨어진  기와도 묻혀진 우물도 흙덩어리
가 된 섬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풀과  나무만 이 우거져 있었으며, 오직 동문 두어  간만이
우뚝이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생은 천석이 있는, 그윽하고도 깊숙한 서원으로 들어갔다.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에 떨어져 있었고,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아
니하여 미풍이 일 적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유생은 바위 위에 앉아 소 동파가 지은  '아상조원춘반로 만지낙화무인소'라는 싯구를 읊

다.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서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개 삼아 누웠다.
 잠시 후 술이 깨어 얼굴을 들어 살펴보니 유객은 다  흩어지고 없었다.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쌌으며, 바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한 가
닥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유 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서 찾아가 보았
다. 한 소년이 절세미인과 마주앉아 있다가 유 영이 옴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하였다.
유 영은 그 소년을 보고 물었다.
 "수재는 어떠한 사람이관대, 낮을 택하지 않고 밤을 택해서 놀고 있느뇨."
 소년은 빙긋이 웃으며, "옛 사람이  말한 '경개여고'란 말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지
요."하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들 세 사람은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아이
를 부르니, 시녀 두 사람이 숲속에서 나왔다. 미인은 그 아이들을 보고 이렀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우연히 고우를 만났고 또한 기약하지 않았던 반가운 손니모 만났으니, 오늘
밤을 쓸쓸하게 헛되이 넘길 수가  없구나. 그러니 네가 가서 주찬을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도 가지고 오너라."
 두 시녀는 명령을 받고 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표연히  왕래하는데 마치 나는 새와 같
았다. 유리로 만든 술병과 술잔,  그리고 자하주와 진기한 안주 등,  모두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석 잔씩 마시고 나자, 미인이 또 새로운 노래를 불러술을 권했다.
 노래를 마치고 나서 한숨을 쉬면서  흐느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유 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절하고 물었다.
 "내 비록 양가의 집에 태어난 몸은 아니오나, 일찍부터  문묵에 종사하여 조금 문필의 고
을 알고 있거니와 이제 그 가사를 들으니, 격조가 맑고  뛰어났으나 시상이 슬프니 매우 괴
의하구려. 오늘 밤은 마침 월색이 낮과 같고 청풍이 솔솔 불어오니 이 좋은 밤을 즐길 만하
거늘, 서로 마주 대하여 슬피 욺은 어인 일이오. 술잔을 더함에 따라 정의가 깊어졌어도  성
명을 서로알지 못하고 회포도 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구료."
 유 영은 먼저 자기의 성명을 말하고 강요했다. 이에 소년은 대답했다.
 "성명을 말하지 아니함은 어떠한 뜻이 있어서  그러하온데, 당신이 구태여 알고자 할진대
가르쳐드리는 것은 무엇이 어려우리 까마는, 말을 하자면 장황합니다."
 그리고는 수심 띤 얼굴을 하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의 성은 김이라 합니다. 나이 10세에 시문을  잘하여학당에서 유명하였고 나이 13세에
진사 제이과에 오르니, 일시에 모든 사람들이 김 진사라고 부릅디다. 제가 나어린 호협한 기
상으로 마음이 호탕함을 능히 억누르지 못하고 또한 이 여인으로하여 부모의 유체를 받들고
서 마침내 불효의자식이 되고 말았으나. 천지 간에 한 죄인의 이름을 억지로 알아서 무엇하
리까. 이 여인의 이름은 운영이요, 저 두 여인의이름은  하나는 녹주요, 하나는 송옥이라 하
는데, 다옛날 안평대군의 궁인이었습니다."
 "말을 하였다가 다하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것만같지 못합니다. 안평대군의
성시의 일이며, 진사가 상심하는 까닭을 자상이 들을 수 없겠소?"
 "성상이 여러 번 바뀌고 일월이 오래 되었는데, 그 때의  일을 그대는 능히 기억할 수 있
겠소?"
 운영은, "심중에 쌓여 잇는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제가이야기 해 볼 것이오니, 낭
군님이 옆에 있다가 빠지는 것이 있거든 보충하여 주옵소서."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는 동문 밖에 사는 한 무녀가 영이함으로써 명성을 얻고 대군의 궁에 드나들면서 매
우 사랑과 신용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진사가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녀는 나이
가 아직 30도 못 되는, 얼굴이 예쁜 여자로서 일찍  과부가 되고는 음녀로 자처하고 있었는
데, 진사가 옴을 보고는 성대히 주찬을 갖추고서 대접하므로  진사는 잔을 잡았으나 마시지
는 아니하고 말하기를, "오늘은 바쁘고 급한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오겠소."했습니다. 다음
날 또 가니 또한 그렇게 하므로, 진사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또 말하기를, "내일 또 오겠
소."했답니다.
 무녀는 진사의 얼굴이 속된 티를 벗어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일 진사가 왔다가 말 한 번  하지 않으므로, 나 어린 선비로 반드시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내가 먼저 정으로써 돋움어 붙들어 놓고 밤을 새우면서 같이 자리라 마음먹었
습니다. 다음 날, 목욕하여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꾸밈을 하고 꽃 같은 담요와 옥  같은
자리를 깔아놓고, 작은 계집종으로 하여금 문 밖에 앉아서 망을 보게 하였답니다.  진사가또
와서 그 얼굴과 꾸밈의 화려함에 베풀어 놓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더니, 무녀가 "오늘 저녁은 어떠한 저녁이관대 이같이 훌륭한 분을 뵈옵게 되었을까"하
였으나, 진사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초연히 즐거워하지 않
고 잇으니 무녀가 또 말하더랍니다.
 "과부의 집에 젊은 남자가 어찌 왕래하기를 거리지 아니하는지요?"  진사가 "점이 신통하
다던데 어찌 내가 찾아오는 뜻을 알지못하시오."하니, 무녀는 즉시 영전에 나아가 앉아서 신
에게 절을 하고는, 방울을 흔들고 점대롱을 어루만지면서 온몸을 추운 듯이 떨며 한참 몸을
움직이다가 입을 열어 말하더랍니다.
 "당신은 정말로 가련합니다. 불안한 방법으로써 그 뜻을  이루기 어려운 계교를 성취시키
고자 하니, 다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3년이 못 가서 황천의 사람이 되겠습니
다."
 그래서 진사는 울면서 사례하고는, "당신이 비록 말하지 아니해도 나는 다 알고  있소. 하
오나 마음 속에 맺힌 한은 백 가지 약으로도 풀 수 없으니, 만일 당신으로 말미암아 다행히
편지를 전하게 된다면 죽어도 또한 영광이겠소."하자,  무녀가, "비천한 무녀로서 비록 신사
로 인해 때로 혹 드나들지만 부르시는 일이 없으면 감히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러하오나 진
사님을 위하여한 번 가 보겠습니다."하더랍니다. 진사는 품속에 서한 봉서를  내어주면서 말
씀했답니다.
 "조심하여, 잘못 전하고서 화의 기틀을 만드는 일이 없도록하여 주오."
 무녀가 편지를 가지고 궁문을 들어가니,  궁 안 사람들이 모두 그  옴을 괴이히 여기기에
그 무녀는 권사로써 대답하고는틈을 엿보아 들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저를 끌고 가서 편지
를 주더이다.
 저를 보기를 마치자, 소리가 끊기고 기가 막혀서 입으로는 능히말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
하자 피가 눈물을 이었습니다.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서 오직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했어요.
 이러한 후로부터 잠깐 사이도 잊을  수 없었으니, 시는 성정에서 나오는  거으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은 다 이의가 없었습니다. 저는 물러나와  서궁으로 돌아가서 흰 나삼에다
가슴속에 가득 찬 슬픔과 원한을 써서 품에 넣고는, 자란과 같이 일부러 뒤떨어져 마부보고,
"동문 밖에 있는 무녀가 가장 영험하다고 하니 내  그집에 가서 병을 묻고 오겠다."하고 이
르니, 동복이 그 말대로 하였습니다. 저는 그 집에 가서 좋은 말로 애걸하며 말했어요.
 "오늘 찾아온 것은 김 진사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것뿐이오니, 가급적 통지해 주신다면
몸이 다하도록 은혜를 갚겠어요."
 무녀가 그 말대로 사람을 보냈더니, 진사가 엎어지며 자빠지며쫓아왔습니다. 둘이 서로 만
나서 할 마로 하지 못하고 다만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요. 제가 편지를 주면서, "저녁을 타서
꼭 돌아 올 것이니 낭군님은 여기에서  기다려 주옵소서."하고는 바로 말을 타고  갔습니다.
진사는 편지를 뜯었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서궁 수헌에 앉아 계시다가 철쭉이 만발하였음을 보시고 시녀들에게  명하
여 오언 절구를 지어올리라 하시었습니다. 대군이 보시고 칭찬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의들의 글이 날로 접점 발전하므로  내 매우 가상이 여기거니와,  다만 운영의 시에는
뚜렷이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있구나. 전일 부연시에 있어서도  다소 그러한 뜻이 있었으나
이 제 또한 이와 같으니, 네가 좇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김생의 상량문에도 의심
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너는 김생을 생각하고 있지 아니하냐."
 이에 저는 즉시 뜰에 내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울면서 고했어요.
 "대군께 한 번 의심을 보이고는 바로 곧 스스로 죽고자 했으나, 나이가  아직 30미만이고,
또 부모님을 뵙지 아니하고 죽으면구천지하에 죽어서도 유감이 있는 까닭으로 살기를  도적
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가 또한 이제 의심을 나타냈사오니 한번 죽기를 어찌 애석히 여기리
이가. 천지 귀신은 밝게 살피소서.시녀 다섯 사람이 잠시라도 떠나지 아니하였사온데 더러운
이름이 홀로 저에게만 돌아왔사오니, 살아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제가 이제 죽을 바
를 얻었사옵니다."
 바로 곧 비단 수건으로 스스로 난간에다 목을 맺더니, 자란이말했습니다.
 "대군께서는 이와 같이 영명한 죄 없는  시녀로 하여금 스스로 죽을 땅에 나아가게  하시
니, 이로부터는 저희들은 맹세코 붓을 잡아 글을 짓지 아니하겠습니다."
 대군이 비록 크게 노하셨으나 마음 속으로 정말로 죽이고  싶지는 아니한 고로,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여서 죽지 못하게 하고는 대군이 흰 비단 다섯 필을 내어서 다섯 사람에게 나누
어 주면서"가장 잘 짓는 사람에겐 이로써 상을 주리라."하셨습니다. 이러한 후로부터 진사는
다시는 출입하지 아니하고 문을 닫고 병으로 누워 눈물은  베개와 이불을 적시었으니, 목숨
은 가는 실오리와 같았어요. 특히 와서 보고는 말했습니다.
 "대장부 죽으면 죽었지, 어찌 상사 원결을  참고서초조하게 아녀자와 같이 상심하여 스스
로 천금 같은 귀한 몸을 버리려고 하십니까. 이제는 마땅히 계교로써 취하기가 어렵지 아니
하옵니다. 깊은 밤 고요할 때에 담을 넘고 들어가서 솜으로 입을 막고 업고 뛰쳐나오면,  누
가 저를 감히 쫓으리이까."
 "그 계교도 또한 위험하니 정성을 다하여 물어보는 것만 같지못하다."
 진사가 그 날 밤 들어오셨으나 저는 병이 들어 능히 일어나지 못하고 자란으로 하여금 맞
이해 들여 술 석잔을 권하게 하고는 봉서를 주면서,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삼
생의 인연과 백 년의 가약이 오늘 밤으로 다한 것 같습니다. 혹 천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마땅히 구천지하에서 서로 찾게 되겠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진사는 편지를 받고는 우두커니  서서 맥맥히 마주보다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가더이다. 자란은 처량하여 차마 볼 수 없어 기둥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눈물을 뿌리면서
서 있었읍니다. 진사가 집에 돌아가서 봉서를 뜯어 보았습니다.
 진사는 능히 다 보지를 못하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지니 집사람들이 급히 구하여 다시 깨
어났습니다. 특이 바깥에서 들어와, "궁인이 무슨 말로 대답하였기에 이렇듯  죽으려고 하십
니까?"하고 물었으나, 진사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만 말했습니다.
 "재보는 네가 잘 지키고 있느냐. 내 장차 팔아  가지고 부처님에게 바쳐서 숙약을 실천하
리라."
 특이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생각하기를,
 "궁녀가 나오지 아니하니 그 재보는 하늘과 나의  것이겠지."하며 벽을 향하여 남몰래 웃
었으나, 사람들은 까닭을 알 수 없었어요.
 하루는 특이 스스로 옷을 찢고 코를 쳐서 피가 흐르게하여 온몸을 더럽히고 머리를 흐뜨
리고 맨발로 뛰어 들어와서는 뜰에 엎드려 울면서, "제가 강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하고는
다시는 말을 아니하고 기절한 사람과 같이 하니, 진사는 특이  죽으면 보화를 묻어 둔 곳을
알지 못할까 봐 근심이 되어 친히 약물을 달여여러 가지로 구하여 살려냈습니다. 술과 고리
고 공궤하니 10여 일 만에 일어나서 말하기를, "외로운 한 몸이 홀로 산중에서 지키고 있는
데 수많은 도적 떼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사세가 죽게 되었던 까닭으로 목숨을 걸고 도망해
와서 겨우 실오리 같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거니와 만일 그 보화가 아니었다면 제게 어찌
이와 같은 위험이 있으리이까. 그러하오나 명령을 어김이 이와 같으니 어찌 빨리 죽지 아니
하리이까."하고는 발로 땅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므로,  진사는 부모님
이 알까봐 두려워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여 보냈다 합니다.
 얼마 후, 진사는 특의 소행을 알고 노복 10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불의에 그 집을 둘러싸
고 수색을 하였으나 다만 금팔지 한쌍과 운남 보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장물
로 삼아 관가에 고소하여 찾아내고자 하나 일이 샐까 봐두렵고,  만일 그 보화를 얻지 못하
면 부처님에게 바칠 수가 없고, 특을 죽이고자 하나 힘으로 능히 누를 수 없어서 입을 다물
고 묵묵히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특이 스스로 그 죄를 알고는 궁장 밖에 있는
맹인한테 가서 물었습니다.
 "내 일전 새벽에 이 궁장 밖을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이 궁중에서 담을 넘어오기로  나는
도적인 줄로 알고 큰 소리를  치면서 뒤를 쫓앗습니다. 그놈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버리고
달아나기에 저는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감추어두고 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
리 주인이 방구석에서 무엇을 찾다가 내가 물건을 주어왔다는 말을 듣고 와서 찾기로 내가
다른 재화는 없고 다만 팔찌와 거울 두 날을 얻었다고  한즉, 주인이 몸소 들어와서 찾다가
과연 그 두 물건을 얻고도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아 바야흐로 나를 죽이고자 합니다. 제가 달
아나면 길하겠습니까?"
 맹인이 "길하겠소."하니,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듣고는  특을보고, "너의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노복을 학대하기가 그와 같은가?"하고  물었습니다. 특은, "우리 주인은  나이는
어리지만 조만간 당당히 급제할 것이오나, 탐욕하기가 그와 같으니, 다른날 조정에 설  때의
용심은 가히 알 수 잇지요."하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이 전파되어 궁중에  들어가고 궁인이 대군에게 고하니,  대군이 대로하시고는 남궁
사람으로 하여금 서궁을 찾아보게 한즉, 저의 의복과 보화가  모두 없어졌으므로 대군이 서
궁 시녀 5인을뜰 가운데 불러놓고 형장을 눈앞에다 엄하게 갖추어 놓고는 영을 내려 말씀하
시기를, "이 5인ㅇ르 죽여서 다른 사람을 경계하라."하시고는 또한  집장한 사람에게 분부하
셨습니다.
 "장수를 헤아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쳐라."
 이에 5인이 호소하기를, "원하건대 한 번 말이나  하고 죽게 하여 주소서."하니 대군이, "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고. 그 사정을다 말해  보아라."하셨습니다. 은섬이 먼저 글월을 올리
니 이러했읍니다.
 "남녀의 정욕은 음양의 이치에서 받은 것이므로, 귀천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
고 있습니다. 한 번 심궁에 갇히자 외로운 몸이 되어 꽃을 봐도 눈물이 가리며, 달을 대하여
도 넋을 잃어 매화나무에 앉은 꾀꼬리로 하여금  짝을 지어 날지 못하게 하며 발 사이에는
드나드는 제비로 하여금 양소를 얻지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스스로
정욕의 뜻을 이기지 못함이며, 또한 투기의 정을 이기지  못해서 그러할 뿐이오니어찌 슬프
지 않으리까. 한 번 궁장을 넘어가면 인간의 낙을 알  수 있겠사오나 저희들은 오래도록 심
궁에 갇히어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어찌 저희들의 힘으로 할 수 있으며 도
마음으로 참을 수 있으리이까. 오직 대군의 위엄이 두려워서 이  마음 을 굳게 지키고 있다
가 시들어 죽어질 뿐이업니다. 궁중이 일에 있어서 이제  범한 죄가 없사옵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땅에 두고자 하오시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이까. 저희들은 구천지하에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겠나이다."
 다음으로 비취가 올리니 이러했습니다.
 "대군께서 사랑해 주신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사온, 어찌 감동하옴이 없사오리
까. 저희들이 대군의 깊은 은혜에 감축하고는 홀로 심구에 거처하면서  달 밝은 가을 꽃 피
는 봄날 에도 이 뜻을 변치 않고 오직 문묵과 현가에 종사하고 있을 따름이온데, 이제 씻을
수 없는 누명이 서궁에 미치고 말았사오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이까. 살아도 죽는 것만 같
지 못하옵니다. 오직 엎드려 빌건대 빨리 죽을 땅으로 나아가게하여 주옵소서."
 세 번째로 자란이 올리니 이러했습니다.
 "오늘 일은 죄가 헤어릴 수 없는데 있사오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바를 어찌 차마 숨겨두
리이까. 저희들은 여항의 천녀로서 아버지가 대순이 아니고 어머니가 이비가 아닌즉, 남녀간
의 정욕이 어찌 홀로 저희들에게만 없겠습니까. 주나라 목왕도  천자로서 매양 요대의 낙을
생각하였고, 항우 같은 영웅도 해하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으며, 당현종 같은 영왕으로도  매
야 마외의 한을 생각하였거니와, 대군께서는 어찌하여 운영으로하여금 홀로 운우의 정이 없
다고 할 수 있사옵니까. 김생은 곧 당대의 단정한 선비이온데 내당으로 끌어들인 것도 대군
께서 하신 일이오며, 운영에게 명하여 벼루를 받들게 한 것도대군의 영이었습니다. 운영이는
오래도록 심궁에 갇히어 있으면서 달  밝은 가을 꽃 피는 봄날이면  매양 마음을 상하였고,
오동잎에 떨어지는 밤비에는 몇 번이나 애를 끊었습니다. 한 번  호협한 남 성을 보고 나서
는 넋을 잃고 실성하여 병이 골수에 사무쳐서, 비록 죽지  않는 약과 월나라 사람의 손으로
도 효력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하루 저녁에 아침의  이슬과 같이 죽어지면 대군께
서 비록 측은한 마음이 잇어 돌보고자 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
으로는 한 번 주실 것 같으면 대군의 적선이 막대할  것이옵니다. 전일 운영의 훼절은 죄가
저에게 있사옵고 운영에게는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이한 말씀은  위로는 대군을 속이지 아
니하고 아래로는 동료를 저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늘의 죽음은 죽어도  또한 영광이라
생각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군게서는 저의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시옵소
서."
 네 번째로 옥녀가 d로리니 이러하였습니다.
 "서궁의 영광을 저도 이미 같이하였사온데 서궁의 액운을  저만이 면할 수야 있겟습니까.
곤강도 같이 타고 옥석도 같이 타는 데 오늘의 죽음은 그 죽을 바를 얻었사오니 죽어도유감
이 없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말했습니다.
 "대군의 은혜는 산과 같고 바다와 같사온데 능히 정절을 굳게지키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
하나이며, 전후로 지은 시에서  대군께의심을 보이고도 끝내 바로  아뢰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 둘이옵고, 서궁의 죄 없는 사람들이 저로 인하여 같이 죄를 받게 되었사오니 그 죄 셋이
옵니다. 이와 같은 큰 죄를 셋이나 짓고서 산들 무슨 면목으로 살며, 만약 죽음을 면하여 주
시다 하더라도 저는 마땅히 자결하여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군은 보기를 마치시고 또 한 번 자란의  초사를 다시 펴고 보시는ㄷ 노염이 좀 풀리는
것 같으므로, 소옥이 꿇어앉아 울면서고하였습니다.
 "전날 빨래하러 갈 때 성  안으로 가지 말자고 한 것은  저의 의견이었으나, 자란이 밤에
남궁으로 와서 매우 간절히 청하기에 제가 그 뜻을 안타까이 여겨 군의를 물리치고 따랐사
옵니다. 운영의 훼절은 그 죄가 저의 몸에 있사옵고 운영에게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몸으로
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옵소서."
 이에 대군의 노여움이 좀 풀어져서 저를  별당에다 가두고 다른 궁녀들은 다  돌려보냈는
데, 그 날 밤 저는 비단수건으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진사는 붓을 잡아 기록하고 운영은 옛일을 당겨서 이야기하는 데 매우 자상하였다. 두 사
람은 마주 보고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다가 운영이 진사보고, "이로부터 이하는 낭군
님께서 이야기하옵소서,"하고 말했다.
 이에 진사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운영이 자결한 후, 모든 궁인들은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이 부모가 돌아가신 것같이 했
습니다. 곡성이 궁문 밖에까지 들려 저도 또한 듣고서 오래도록 기절하여 있었습니다.  집사
람들이 초혼 하고 발상할 준비를 하는 한편 살려 내기에  힘쓰니, 해질 무렵에서야 겨우 깨
어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공불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엇어 구천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자 그 금팔찌와 보경과 문
방기구를 다 팔아 가지고 쌀 40석을 사서 청녕사로 보내어 제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믿을만한 사람이 없기로 사환을 시켜 특을 불러 오게 하고는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너의 전날의 죄를 전부 용서해 줄 것이니 이제 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느냐."
 특은 엎드려 울면서, "제가 비록 어리석과 완악하나 또한 목석이 아니옵니다. 한  몸에 지
은 죄가 머리카락을 다 뽑으면서 헤아려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이제 용서해 주시니, 이것
은 고목에 잎이 나고 백골에 살이 붙는 것과 같사옵니다.  감히 진사님을 위하여 죽음을 다
하지 아니하겠읍니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 운영을 위하여 초례를 베풀어 놓고  불공을 드려 발원하고자 하나 신임
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네가 가지 않겠느냐."하니, 특은 "삼가 분부를 받들겠습니다."하고는
즉 시 절로 올라가서 3일을 궁둥이를 뚜드리면서 누워 놀다가 중을 불러 일렀습니다.
 "40석의 쌀을 어디에 쓰겠소. 다 부처님에게 바치겠는가. 오늘은 술과 고기를 많이 장만해
놓고 널리 속객을 불러 먹이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는 마을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강제로 끌고 들어와승당에서 같이 자기를 수십
일을 지내고도 재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더랍니다. 중들이 통분히 여기다가 그 초렛날에 미
쳐서 특을 보고 말했답니다.
 "불공하는 일은 시주가 중하온데, 시주가  이와 같이 불결하여 일이 극히  미안하오니, 저
맑은 시내에 가서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예를 행함이 좋겠소."
 특은 마지못하여 나가  잠시 물로  씻고 들어와서는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서 빌었지요.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내일 다시 살아나 특의 짝이되게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3일을 밤낮으로 발원하는 말이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특은 돌아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운영 아씨는 반드시 살길을 얻을  것입니다. 재를 올리던 그 날 밤에  저의 꿈에
나타나서 지성으로 발원해 주니 감사한 마음 다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하고 울었으며 중들
의 꿈도 그러하였다 합니다."하므로, 저는 그 말을 믿었지요.
 마침 계수나무가 누렇게 익는 계절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과거에 나아갈 뜻은  없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독서하고 있다가 청녕사에 올라가서 수일을 묵었습니다.  그 동안 특의 한
일을 중들로부터 자세히 듣고는 그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특이 없으니어찌 할 수 없
었지요.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갔지요. 절하고 머리를 땅에 대고 향을
사르면서 합장하고 빌었답니다.
 "운영이 죽을 때의 약속이 하도 처량하여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노복 특으로  하여금 지성
으로 제를 올려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축언을  들으매 그 패악함이 이루 말
할 수 없고, 운영의 유언을 헛곳으로 돌아가게 하였사오니, 소자가 감히 무슨 면목으로 축언
하리이까. 엎드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운영으로 하여금 다시 살아나게 하시와 이 김생으
로하여 짝을 짓게 하시고 운영과 이 김생으로 하여금 후세에 가서 이 원통함을 면하게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정말로 이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운영은  비구니가 되어 십지를 불살
라 가지고 십이층금탑을 지을 것이며, 이 김생은 비구승이 되어  오계를 닦아 세 거찰을 지
어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사옵니다."
 빌기를 마치고 일어나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수없이  절을 하고나왔습니다. 그랬더니 7일만
에 특이 우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런 후부터 저는 세상 일에 뜻이 없어  목욕하여 몸을 정결히 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
고요한 곳에 누워 나흘을 먹지 않았지요. 마침내 한 번  깊이 탄식하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
할 몸이 되고 말았답니다.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피 울면서 능히 스스로들 그칠 줄을 몰
랐다. 유 영은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으니 소원이 없겠소. 원수인 종도 이미 없어졌고 통분함도 사라졌을
것인데, 어찌 슬퍼하여 마지 않는가,다시 인간에 나오기를 얻지 못하여 한함인가."
 김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례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다같이 원한을 품고 죽었기로 염라대왕이 그죄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에 태어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하의 낙이 인간보다 못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상의 낙은어떠하겠습니까? 이러므로써 인간에 나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만오늘 저녁 슬퍼
한 것은 대군이 한 번  돌아가시자 고궁에주인이 없고, 까마귀와 새들이  슬피 울고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아니하기로 그랬을 뿐입니다. 게다가 새로 병화를 겪은  후로 빛나던 집이 재
가 되고 옥 같은 섬돌, 분같은 담이 모두 무너지고, 오직 섬도 위에 피어 있는  꽃만이 향기
롭고 뜰에는 풀만이 깔리어 봄빛을 자랑할 뿐이니, 그  옛날의 모습이 바꾸어지지 아니하였
다고는 하지만 인사의 변화가 쉬움이 이와 같거늘, 다시 와옛일을 생각하니 어찌 슬프지 아
니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대들은 천상의 사람인가?"
 "우리 두 사람은 본래 천상의 선인으로서  오래도록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었더니, 하루는
상제께서 태청궁에 앉아 저에게 옥동산의 과실을 따오라 하기로 제가 반도를 많이 따가지고
와서 운영이와 같이 먹다가 발각되어 진세에 적하되어 인간의  괴로움을 골고루 겪다가, 이
제 옥황 상제께서 전의 허물을 용서하사 사멍궁으로 올라가서 다시 옥황상제의 향안 앞에서
상제를 모시게 하였삽기로 돌아가는 이때를 타서 바람의 수레를 타고 다시 진세의 옛날 놀
던 곳을 찾아와 모았을 뿐입니다."
 김생은 말을 마치고는 눈물을 뿌리면서 운영의 손을 잡고 또 말했다.
 "바다가 마르고 돌이 불에 타 버린들 우리들의 정은  사라지지않을 것이요. 또 땅이 늙고
하늘이 거칠어진들, 우리들의 원한은지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존군과 서로 만나
이와 같이 따뜻한 정을 나누었으니, 속세의 인연이 없으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존군께서는 이 원고를 거두어  가지고 돌아가시와 영원히 전해 주시옵고,  경솔한
사람들의 입에 전하여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면 매우 다행으로생각하겠습니다.
 이 때 유 영도 또한 취하여 잠깐 누워 있다가 산새 소리에 깨어났다. 구름과 연기는 땅에
가득하고 새벽 빛은 창망한데, 사방을 살펴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김생이 기록한
책자만이 있었다. 유 영은 쓸쓸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신책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 속
에 감추어 두고 때때로 내어보고는 망연자실하여 침식을 전폐했다.  후에 명산을 두루 찾아
다니더니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임진록
 임진록에 대하여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일종의 전쟁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것과는 달
리 민족적 설화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보통 말하는 역사소설과는 색다를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본래 역사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상의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말한
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상의 기록을 소재로 삼되, 이를 작자 자신의 주관에 의하
여 해석하고 창조하여 다시 재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어야 할 필요는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역사소설은 진실, 곧 가능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소설에서 그 작자의 인생관이나 회고, 그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임진록'은 우리가 민요에서 작자를 찾아볼 수 엇는 것  처럼 작자도 없는 설화문

적 성격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전쟁을 소재로  삼기는 했으나 한 작가에 의한창
작 이상의 것으로서 외적의 침입에  대한 전 민족의 몸부림이며 염원의  표출, 그리고 민족
자체의 삶을 구현한 민족 설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대전란 이후 민족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지
작시키고, 왜적에 대한 민족적 적개심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이  작품은 부득이 허구적 사실
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있어서는  내용이 사실과 어긋난다든가 인명,  지명 등이 틀린다든가
하는 문제는 크게 탓할 바가 못된다고 본다.
 더구나 작중 인물들에게 거의 모두 초인적ㅇ니 도술을 갖게 하였고, 또한 광해군 때에 중
국에 출전한 일이 있었던 김응서,강홍립 두 장군을 등장시킨 것 등도 의식적인 허구였을 것
이다.
 비록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현실적으로 패배한 민족이 정신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꾸며
놓은 문학을 편의상  '정의적 승리의문학'이라고 부른다면  바로 이 작품이  가장 전형적인  

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예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데, 바로 저 유명한 '삼국지연의'이다.
 이러한 문학이 민중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믿어지는 것은 대개문화는 고도로  발달하였으
나 무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주변의 야만적인 민족에게 늘 위협을 받는 이른바 문약한
민족에게 고통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약소 민족의 문학이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패배한 유비를  비롯한 뭇장수들이 활약하는  '삼국지연의'가  일찍부

우리 나라에 수입되어 널리 애독되어 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 도
처에서 이'임진록'의 내용과 비슷한 설화나 전설이 많이 나돌아 다녔는데  그것은 대개  신

적, 자존적, 반항적인 것들이다.
 그럼 여기서 <임진록>에 나타난 특징을 몇 가지 간추려 보기로 하자.
 첫재로 지적할 점은 임금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즉, 처음 장면에서 임금이 꾼 꿈을 올바르게 해몽한 여의정을 오히려 귀양보내는 데서 작
자는 임금이 대외 정세관에 어두웠다는 것을 은근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 이
여송이 왕의 재목이 초라하다하여 군사를 돌리겠다고 하는 말할 수 없는수모를 당하는 대목
도 작자가 임금을 바라보는 시선의 한 면을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둘째로 민간 영웅의 구국 의거를 민족적 시야에서 바로 보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들 중에서 허구적인 인물이나 또는 사실과 달리  설정된 인물도 있지만, 어쨋
든 그들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다. 또 이들의 대부분이  민중 속에 파묻혀있던 영웅과 의
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셋째로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잘 나타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한 예로 실제 인물이 아닌 듯한 김수업이 군량미를 조달하라는 임금의 청을 받았을 때
두말하지 않고 쾌히 희사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굶주려 죽은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나중에는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라고 하는 당시
의 정황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만큼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난세를 극복하려는 집념이 민중 속에 도도히 넘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적에 대한 보복심의 정도는 등장인물인 김응서와 강홍립의 행적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사실에 없는 왜국 정벌에 두 장수가 출전했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적개심의 발로로 볼 수
있겠다.
 실제 사료를 보면 김응서와 강홍립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김응서가 평
양서 왜적을 방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20년에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두 사람이 원군으로 함께 출전한 일이 있
다. 강홍립이 원수, 김응서가 부원수로 출전해서 처음에는 공을 세웠으나 부거에 서 패한 뒤
강홍립이 전군을 이글고 후금에 항복하여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때 김응서가 적의 정세를
몰래 기록하여 본국에 보내려고 했으나 강홍립의 고발로 죽음을 당했다.
 이같이 임진왜란 후 중국과 결부된 역사적 사실을 이삼십 년전의 대외적 투쟁에 결부시키
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대외적적개심의  정도가 높았던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고 있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신이적,
주술적인 힘의 존재와 그 징후다.
 우선 임금이 왜적의 침입을 예시하는 꿈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절한 국난 속에 휘말려
들었다.
 그리고 신립은 원귀의 간계에 빠져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죽
고 만다.
 또한 김응서  일행이 왜국 정벌을 떠나려고 할  때 왜덕강이라는 신이 나타나 사흘 후에
떠나라고 간곡히 권했으나 강홍립이 이를 일축하고 자기 고집대로 했기 때문에 결국 참패하
여 대군을 잃는다.
 이상은 모두가 신이적 존재의 조언을 무시하거나 빠져 들었기때문에 당한 패배의 예라 볼
수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이던 관운장이 실제로 나타나거나 꿈에 나타
남으로써 전란에 깊이 개입하고 우리를 돕는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비운의 장군인 관운장이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에 작자
가 민족신앙에서 따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비현실적, 신이적인  수법에 의한 사건 처리방식은  작품 전편의 밑바닥에
흐르는 하나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임진록'과 아울러 연구되어야 할 작품은 병자호란을 소재로한 '박씨전'을 들 수 있

데, 그 까닭은 이 두 작품에서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록'은 사본으로만 전해져온 관계로 이본이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

것이 있다.
 1. 국립도서관본 '임진록'
 2. 이명선본 '흑룡록'
 3. 백순재본 '흑룡일기'
 4. 박로춘본 '임진록'
 5. 권영철본 '임진록'
 6. 숭전대도서관본 '임진록'
 7. 고려도서관본 '임진록' (한문본)
 이상 여러 작품들은 등장인물, 사건의 내용, 허구적인 심도, 사건을 파악하는 방식과 시각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작품은 일제 관헌의 금기의 책이 었으므로 많은 박해를 받았음을 밝혀 둔다.
 
   임진록(작자미상)
 조선 선조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외척의 침입이 엇어  나라는 평온하고 백성들은 힘서
일해 풍년을 노래하니 그야말로 태평 성대였다.
 임진년 정월 어느날.
 대왕께서 책을 읽으시다가 잠깐 졸으셨다. 이때 한 여자가 기장을 잔뜩 넣은 자루를 머리
에 이고 들어와 대왕 앞에 내려놓았다.
 "그게 무엇인고?"
 그러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물러가 버렸다. 대왕이  놀라 벌떡 일어나니 한바탕
의 꿈이었다.
 대왕께서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어 뭇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꿈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신
하들을 돌아보고 물으셨다.
 "경들은 이 꿈을 행몽해 보라."
 그러자 영의정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해몽해 보겠나이다."
 "어서 말해 보오."
 "신이 해득하오니 가장 불길하옵니다."
 대왕께서는 듣고 놀라시어 급히 물으셨다.
 "왜 불길한지 어서 까닭을 얘기해 보오."
 최일령이 엎드린 채 자세히 여쭈었다.
 "신이 해득한 바로는 인변에 벼  화하고, 그 아래 계집 여자가  붙었으니 이 글자는 왜자
이옵니다. 아마도 왜놈이 곧 쳐들어올 거인가 하옵니다."
 대왕께서 듣고 크게 노하시어 꾸짖으셨다.
 "그 무슨 요망한 소리인가? 시절이 이렇게 태평하거늘 어찌 요사스러운  말을하여 인심을
소란케 하고 짐의 마음을 불안케 하느뇨?"
 이어 금부도사를 불러 명하였다.
 "일령을 멀리 귀양 보내도록 하라."
 최일령은 궐하에 엎드려 사죄했다.
 "신이 아는 것이 없사와 요망한 말을 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죽어도 갚지  못할 것이옵니
다. 하오나 엎드려 비오니 폐하의 너그러우신 용서만 바라겠나이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도리어 역정을 내렸다.
 "무슨 잔말이 이렇게 많은가? 어서 빨리 적소로 가라."
 이에 최일령은 불평하지 않고 오직 대왕의 안위만 생각하며 보냈다.
 세월은 흘러 임진년 춘삼월이 되었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고, 풀들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
들리니 최일령은 자기도 모르게 고향이 생각나 마음이 어리러웠다.
 이에 근처에 있는 한 정자에 올라가 산천을 구경하며 시름을 잊으려고 하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멀리 보이는 수평선상에 커다란돞을 단 배가 백여 척 나타
났다.
 최일령은 크게 놀라 큽히 정자에서 내려와 그 고을을 다스리는 동래부사를 불러 말했다.
 "적의 배가 쳐들어오니 그대는 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막으라."
 비록 귀양은 와 있지만 최일령은 임금 다음의 지위까지 올랐던 대신이니 동래부사는 즉시
명을 받아들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동래부사는 황급히 군사를 모으고 한편으로는 임금께 올리는 글월을 써서 보냈다.
 이때 적의 배는 벌써 강변에 닿았다. 배에서 새까만 갑옷을 입은 왜병들이 개미떼처럼 몰
려나왔다.
 왜놈의 장수 소서가 칼을 들고 강변으로 뛰어 나오며 벽력같이 외쳤다.
 "조선 동래부사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동래부사 이순경이 크게 노하여 장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뿔싸!
 소서의 칼이 번뜩 하더니 이순경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를본 왜군 대장 청정이 크게
기뻐하여 북을 울리고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그 군사가 거의 칠십만 명이고 용맹스런 장수가 수만 명에 달하니 동래를 지키던 조선 군
사들은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쳤다.
 동래를 점령한 청정은 장대에 높이 앉아 휘하 장병들에게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먼저 소서행장을 불러 이르기를,
 "그대는 강원도 원주를 친 후 평안도로 올라가라."하고, 이어 동경청을 불러 명령했다.
 "그랟는 전라도를 친 다음 김해에 있는 군량을  우리 군사에게 수송토록 하라."하고 군사
일만 명과 장수 천 명을 주었다.
 또 문경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에게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줄  것이니 충청도영동을 치고, 함경도 이십
육 주를 치도록 하라."
 문경이 명을 받고 나가자 이번에는 부경이 들어왔다.
 "그대는 강원도 십팔 주를 치고 군량을 각처로 운반토록 하라."하고는,  군사 이십만 명과
용장 삼천 명을 내주었다.
 다만 마룡을 불러 정병 일만 명과 용장 천 명을 주며 명했다.
 "그대는 전라도를 친 다음 황해도로 가라."
 흉악하게 생긴 평수길이 앞에 대령했다.
 "그대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거느리고 경상도를 석권하라"
 마지막으로 뭇장수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나, 청정은 남은 장수와 군졸들을 거느리고 경상우도로 짓쳐 들어갈 것이다. 거기를 평정
한 다음에는 충청좌도 로 쳐들어 가겠다. 소서는 충청우도를 친 다음, 다음 목적지인 경기도
로 가라. 조선왕을 항복시킨 후에 나,  청정은 조선왕이 되어 그대들에게 일품 벼슬을  주리
라.
 그러자 뭇군졸들과 여러 장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만약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청정이 즉시 출발하라고 명령하니 왜군은 조선 파도로 짓쳐  들어갔다. 깃발과 창검이 햇
빛에 번쩍이고 고각과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키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조선 팔도의 백성들
은 여지껏 평화스럽게 살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난을 당했다.
 <왜놈이 쳐들어왔다!>
 <어서 피난하자!>
 백성들은 남녀노소 구별없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며 피난길을나섰지만 어찌 무사하겠는가.
 처절한 울음소리가 산천 여기 저기서 울려나니 그 가련한 광경은 눈뜨고 차마 볼 수가 없
었다.
 이때 왜장 소서는 군사를 풍우같이 몰아 강원도로 향했다.  왜놈들이란 원래 성질이 포악
한데다 장수되는 소서가 용맹을 한껏 떨치니 조선 군사가 그 앞에서 낙엽처럼 흩어져 달아
났다.
 흡사 무인 지경러럼 소서가 강원도를 휩쓸어 들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전령이 와서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장군, 본국에서 편지가 왔나이다."
 "오, 편지라고? 누구한테서냐?"
 "장군의 매씨되는 분이옵니다."
 "누이 동생이? 어디 보자."
 소서는 전령이 바치는 누이동생의 편지를 보았다.
 번거로운 인사말 줄이옵고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소나무 송자 있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송자 있는 곳을 가면 크게 패할 것입니다. 부디 잊지 마십시오.누이 동생 올
림 편지를 읽은 소서는 크게 놀랐다. 그의 누이 동생은  앞날에 일어날 일을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는지라 평소에도 늘 이런 충고를 아기지 않았던 거이다.
 "송자 있는 곳을 가지 말라. 대체 어느 곳일까?"
 소서는 중얼거리다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내 누이 동생이 주의를 주었다.  송자 있는 마을에는 가지 말라고  하니 대체 어느 곳인
가?"
 그러자 조선 지리에 밝은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송자가 있는 곳이라면 분명히 청송과 송도, 지금의 개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청송과 송도라고? 그렇다면 우리 군사를 그곳으로 보내지 말라."
 이에 소서는 청송과 송도를 일부러 피해 군사를 몰았다.
 한참 진격하는데 앞길에 제법 많은 조선 군사들이 진을 치고기다렸다. 바로 강원감사,  지
금의 강원도 도지사, 이래의 군사였다.
 그러나 그동안 태평 성세를 즐기느라 훈련을 쌓지 않은 조선 군산들이 어찌 조총으로 무
장한 왜군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딘 한 번의 싸움으로 조선 군사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주해 버렸고, 강원감사 이래
는 장렬하게 전사했다.
 삽시간에 강원도를 짓밟은 소서는 쉬지 않고 평안도로 북상했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평안감사 이공태는크게 놀라 각 고을의 군사를 모아 대
비했다.
 하지만 모여든 병사 역시 오랫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낸 탓으로 몸이 둔하고 창칼 역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니 기세 등등한 소서의 군사를 어찌 막으랴.
 이공태가 필사적으로 군사들을 독려하여 맞아 싸웠으나 역부족 이었다.
 "적장은 나의 칼을 받으라!"
 이공태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단신으로 소서에게 달려들었다.
 "흥, 가소롭구나!"
 소서는 껄걸 웃더니 장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칼날이  번뜩 하더니 이공태가 피
를 뽑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대장이 죽으니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의기 양양해진 소서는 군사들을 이끌
고 평양성에 입성했다. 미처 피난가지못한  수많은 백성들은 악귀처럼 날뛰는  왜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다.
 소서가 평양감영 높은 자리에 앉아 한창 군사들을 호령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잡혀 들
어왔다.
 여인을 바라본 소선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버들 같은 눈섭, 앵도 같은 입, 오똑한
콧날, 하느적 하느적거리는 버들허리는 그야말로 양귀비가 무색할 지경인 절세 가인이었다.
 소서는 갑자기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목소리 또한 한껏 부드러웠다.
 "웬 여인이냐?"
 서소가 묻자 군졸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예, 이곳 평양 기생 월천이라 하옵니다."
 "월천이라고? 과연 천하 일색이로다. 오늘부터 내게 수청을 들라."
 왜장의 명령이니 그 누가 거역할 수 있으랴,
 이에 그날부터 소서는 월천을 첩으로 삼아 평양에서 경치가 제일 아름다운 연광정에서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한편 다른 왜장들도  조선 팔도에 흩어져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무을 빼앗으니 곡성이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왜군 총대장 청정은 경상도를 삽시간에 짓밟고 조령에닿았다.
 조령에는 병자, 정삼품의 무관 벼슬, 이 군사를 이끌고청정의 군사들을 막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조령은 산이 높고 험악하여 지키기에는 쉽고 깨뜨리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곳은  서
울로 통하는 관문이라 매우 중요한 요새였다.
 그러나 조총을 탕탕 쏘며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왜군 앞에 별장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
고 청정의 칼날 아래 이슬이 되었다.
 이렇게 되니 왜군의 진격을 막을 장수가 그 누가 있겠는가.
 이때 재상 벼슬에서 이미 은퇴한 이순신은 미리 왜군이 쳐들어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
다.
 그것은 새로 발명한 거북선이었다. 이순신은  왜군이 바다로 밀려 들어오자  거북선 수천
척을 몰로 싸우러 나갔다.
 거북선 안에는 맹렬히 훈련을 쌓은 용맹한 군사 수만 명이  숨어 있었다. 또한 거북선 좌
우에는 구멍이 무수히 있어 안에서 밥을 지을 때 나는 연기가 배 입으로 통해 나가도록  되
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가 보아도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 물에 떠다니며흰 안개를 뿜어내는 모습이
었다.
 왜군들은 거북선을 보자 그만 대경 실색해 버렸다.
 "괴상하게 생긴 배다!"
 "괴물이 나타났다!"
 군졸들이 무서워 도망치려고 하자 왜장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총과 화살을 쏴라!"
 그러자 왜군들이 총과 활을 무수히 쏘아댔다. 하지만 거북선  등은 철판으로 깔려 있는지
라 총알과 화살이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수천 척의 거북선이 검푸른 바다 위를  떠다니며 일제히 포를쏘니 흡사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에 비오듯이 화살이 날고 대포알이 적선을 깨뜨렸다. 왜군들은  피하지
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죽어갔다. 청정이 이를 보자 크게 놀라 부하들을 재촉했다.
 "어서 저 거북선을 막으라!"
 대장의 명령이라 왜군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총과 화살을 쏘는 데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거북선은 끄떡도 하지 않고 도리어 입으로 안개를 토하고 등의 구멍에서는 화살이
마구 쏟아지니 왜군의 시체는 바다로 새까맣게 떨어졌다.
 "안되겠다, 어서 후퇴하라!"
 청정은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후퇴 명령을 내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왜적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어서 추격하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짚고 우레같이 호통쳤다.
 용기 백배한 조선 군사들은 적을 뒤쫓아가 창칼을 휘둘러 치니적의 시체가 삽시간에 산을
이루고 흐르는 피는 내를 이루었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가는 곳마다 왜적을 무찔러 남해에서는 적의 배는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순신은 적을 뒤쫓아 어느덧 한산도에 닿았다. 여기서 군사들을  잠시 쉬게 하고 정탐군
을 보내 왜적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이윽고 밤이 되어 둥근 달이 두둥실 떴다. 이순신은 밤의 경치를 살피다가 나라의 운명이
근심되어 시조 한 수를 읊었다.
 '한산선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이튿날 새벽.
 왜적의 동정을 살피러 나갔던 정탐군이 돌아와 아뢰었다.
 "아뢰옵나이다. 적의 배 수백 척이 이리로 오고 있나이다."
 이순신은 보고를 듣자 즉시 장졸들을 모아 놓고 명을 내렸다.
 "왜적이 다시 쳐들어 온다고 한다. 한 척도 남김없이 물 속에 장사지내라."
 명령을 내리고 이순신은 사당으로 홀로 들어가 하늘에 간절히기도를 드렸다.
 '하늘이시어, 제 한 목숨을 바치겠사오니 왜적을 남김없이 섬멸케 해주옵소서.'
 이어 전포를 입고 은빛 투구에 삼 척 장검을 찼다.
 거북선에 올라 진군의 북을 치니 수천 척의 거북선이 위풍 당당하게 나아갔다.
 한 시간쯤 바다로 나가자 왜적의 배가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장병들은 들어라! 왜놈들은 하나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빼어 들고 벽력같이 외쳤다.
 드디어 양쪽 배가 맞붙어 화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총쏘는 소리가 콩볶듯이 일었다.
 그러나 왜적들이 어찌 거북선을 당할 수 있으리오. 처음에는  숫자를 믿고 제법 용맹스럽
게 달려들었으나 화포에 맞아 머리가 으깨지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속속 물
고기밥이 되었다.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친히 북채를 잡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왜장 청정은 이를 보자 부하들에게 은밀히 일렀다.
 "이순신을 쏘아 죽여라.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에 왜군 중에서 총을 제일 잘 쏘는 자가 배를 가까이 몰아 이순신 을 노리고 조총을 쏘
았다.
 "타앙."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가 났다. 이 순간 왜병이 탄배는 거북선 에서 쏜 화포를 맞고 산산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무슨 하늘의 시기심이란 말인가.
 이순신은 적의 총알이 날아와 가슴을 정통으로 맞히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장군님!"
 옆에 있던 휘하 장병들이 놀라서 달려와 부축했다.
 이순신은 손을 내저으며 영을 내렸다.
 "어서 방패로 나를 가려라.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군사들에게 알리지 말라.  계속 북
을 울려 군사들을 독려하라..."
 말을 마친 이순신은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이에 휘하 장졸들은 치밀어오는 통곡을 억지로 죽여 참고 이순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가 더욱 힘차게 북을 치니 대장의 죽음을 아직 모르는 군사들은 용
맹을  떨쳐 닥치는 대로 적을 베고 찔렀다.
 바다에는 온통 왜적이 시체들로 가득찼다. 푸른 바닷물조차도 왜적의  붉은 피로 붉게 물
들었으니 실로 귀신이 보고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왜장 청정은 자기편 배가 불과 수척밖에 남지 않자 혈로를 뚫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
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왜적을 모두 쳐부셨다. 만세!"
 군사들은 환호성을 치르며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순신이 적의 탄환을 맞고 세
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군이 가시다니... 이 무슨 청천 벽력이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구나!"
 왜적을 쳐부셨다는 기쁨은 삽시간에 통곡으로 변하였다.
 군사들이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올 때 통곡하는 소리가 멀리 왜국에까지 들렸
다.
 왜장 청정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숨이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청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외쳤다.
 "이제는 조선에 명장이 없으니 이 나라를 빼앗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리라."
 하고는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바로 서울로 향했다. 하늘이  보낸 장수 이순신이 죽었으니
그 누가 왜적을 막을 수 있으랴.
 진주병사 양익태와 경상감사 이짐이 필사적으로 왜군을 막으려고 했으나 도리어 많은  군
사만 죽이고 항복했다.
 기세 등등한 청정은 다음으로 상주를 쳤다.
 상주목사 남덕천인들 어떻게 막겠는가. 청정의 칼날아래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군사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쳤다.
 삽시간에 경상도를 짓밟은 청정은 휘하 장병들에게 영을 내렸다.
 "칠십 일 주에 있는 군량을 급히 수송하라."
 이어 조령을 넘어 충청도를 쳤다.
 이때 조선 명장 신 립장군은 충청도 군사들을 이끌고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신 립 장군은 군사적 요충지인 조령산성에다 진을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 여인이 홀연
히 나타나 신립 장군에게 엎드려 아뢰었다.
 "장군께 아뢰나이다. 이곳에다 진을 치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고개 아래 장변에 있는 탄
금대에다 진을 치옵소서. 그러면 반드시 승전할 것이옵니다."
 장군이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신 립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지시한 것이다.)
 하고,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탄금대에다 진을 치라고 명령했다.
 휘하 장졸들은 대장의 이와 같은 명령에  불평이 대단했지만 군령이 엄한 터라  명령대로
탄금대에다 배수진을 쳤다.
 장졸들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자 신 립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물을  등지고 이렇게 배수진을 치면  뒤로 물러날 수가
없으므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한신(중국 한나라의 명장)이 조군을 대
파한 것이 바로 이 배수진이니 염려 말라."
 이때 청정이 조령을 넘어 신 립의 진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조선에 장수가 없음을 가히 알겠도다.  신 립이 조령에서 우리를  막지 아니하고 강변에
배수진을 치다니 정말 우습도다. 신 립이 그 옛날 한나라의  한신을 본받아 배수진을 친 것
같은데 어찌 나를 당하리오."
 청정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단숨에 저 배수진을 깨뜨려라!"
 그러자 왜졸들은 언덕에서 조총을 콩볶듯이 쏘아대며 개미떼처럼 몰려 내려갔다.
 슬프다!
 칼창과 활밖에 없는 조선 군사 십만 대병은 신병기인 조총 앞에 가을철의 나뭇잎처럼 쓰
러졌다.
 비명소리, 총소리, 물에 빠지는 소리...
 뒤는 시퍼런 강물이니 어디로 몸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십만 대병은 손 한 번 제대로 눌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으니 시체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늘이여, 이 무슨 변이란 말씀입니까!"
 신립은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자기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으니 여지껏  쌓아올린
무명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졌다.
 청정이 승전고를 높이 울리고 단숨에 강을 건너니 백성들이 놀라 통곡하며 어지럽게 도망
쳤다.
 청정은 쉬지 않고 군사를 몰아 충주목사 지군을 베고,  병사 문명마저도 한칼에 무찌르고
경기도로 들어갔다.
 기세 등등한 왜군이 진격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가 임진년 사월이었다.
 충청감사가 임금께 장계를 올리거늘 펼쳐보니 이러했다.
 '왜적이 세력이 너무 강하여 칠십만 대병이  물밀 듯이 쳐들어왔나이다. 동래부사가 죽음

로 맞아 싸웠으나 소용이 없었나이다. 대적은 지금 각 도로  짓쳐 들어가니 조선 팔도가 위
험하나이다. 왜적의 대장 청정과 소서는  그 용맹이 너무 뛰어나  삼국시대의 조자룡이라도
해내지 못할 듯하옵니다. 폐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이어 경기감사의 장계가 당도했다.
 '왜적은 경기도 칠십 일 주를 항복받고 바로  충청도로 쳐들어왔나이다. 신 립의 십만 대

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장졸만 모조리 죽고 대장 신 립도 물에 빠져 자결했나이다. 승승 장
구한 왜적은 충청도로 들어가 충주목사와 병사를 죽이고 일로 서울로 향하오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군사를 내어 왜적을 막으소서.'
 장계를 보신 임금께서는 크게 놀라시었다.
 "최일령이 꿈을 해득한 것이 꼭 들어맞는구나. 그런데도 짐은 그것을 모르고 오히려 충신
을 귀양보냈으니 어찌할꼬..."
 임금께서는 즉시 좌우 대신을 둘러보고 하문하였다.
 "누가 나가서 능히 왜적을 대적하겠는가?"
 신하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제
일의 명장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 립이  단 한번의 싸움에서 허무하게도 패해  죽었다고
하니 그 누구라도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임금께서 보시고 용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왜란을 당했는데 안으로 용장이 없고, 밖으로 왜적의 세력이  크게 강성하니 그 누가 나
가서 왜적을 맞겠는가? 종묘 사직(역대 왕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한 왕조의 기초)과 곤경
에 빠진 백성을 구하여 짐의 근심을 덜게 할 인재는 없는고?"
 그러자 포도대장(죄인을 다루는 관청의 우두머리)정출남이 앞으로 나와 엎드려 절하며 아
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왜적을 무찔러 전하의 근심을 덜게 하겠나이다."
 "오오, 장한지고."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오십명을 주시며 분부하였다.
 "경은 군사를 이끌고 어서 나가 왜적을 무찌르고 짐의 근시을 없게 하라."
 이에 정출남이 어명을 받고 남대문을 나와 여러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
 칼을 잘 쓰는 김여춘으로 선봉장을 삼고, 창을 잘 쓰는 백여철로 중장군을, 남익신으로 우
익장을 삼았다.
 또한 좌선봉에는 기운이 장사인 양희발, 후군장에는 지략이 뛰어난 김치운이 군사를 거느
렸다.
 그리고 남은 장졸들에게도 각기 소임을 정한 후에 정출남은 푸른 털빛을 가진 말에 높이
올라타고 진군을 했다.
 손에는 거의 칠십 근이 나가는 장창을 비껴들고 군사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강토를 침범한 왜적을 무찔러 이 나라를 지킬 것이다. 만일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
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정출남이 군사를 이끌고 충주로 내려오니 왜적이 이미 포진하고 있었다. 적진을 바로보니
군세가 매우 웅장했다.
 창칼이 햇빛에 번쩍이고 어깨에 둘러맨 조총이  위합감을 주니 조선 군사들은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청정은 운천동으로 좌익장을 삼고 그 밖의  장수들에게도 각기 소임을 맡긴 후에  대포를
한 방 크게 쏘게 했다.
 그러자 왜군이 분부히 흩어져 한 개의 진을 치니 팔만금사진이었다.
 정출남이 이를 보자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하하하... 왜놈들도 제법 진법을 펼칠 줄 아누나."
 이어 깃발을 흔들어 오행진을 치고 중군장 백여철로 하여금 진세를 지키게 했다.
 정출남은 진세가 갖추어지자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 크게 외쳤다.
 "적장은 들으라. 네 아무리 도리를 모른다 한들 하늘의  의로움을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
게 동방예의지국을 침범하였으니 그 죄를 논하면 백번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할 것이다. 불행
한 백성들만 죽이지 말고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우리 전하께서 나로 하여금 너의 왜적
을 모조리 죽이라 명하옵기에 어명을 이행하려고 왔으니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그러자 적진에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내달으며 마주 호통쳤다.
 "조선 장수 정출남은 들으라. 강보에 싸인 아이가 어른을 능멸하고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
운 줄 모르는 격이로구나. 나는 왜국의 선봉장 청룡이로다. 보잘 것 없는 내가 당돌하게  나
서서 우리 대군을 희롱하니 네 목을 베어 분함을 풀린다."
 "이런 발칙한 놈!"
 정출남은 크게 성이 나 말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이에 청룡도 달려들어 맞붙어 싸우기 시
작했다.
 정출남의 장창이 적의 목을 노리고 찔러가고, 청룡왕과 범이  정출남의 머리를 노리고 번
뜩이는데 과연 용과 범이 싸우는 듯 무시무시했다.
 양편의 군사들은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질러 자기 편 장수를 응원하는데 그 소리가 천지
를 진동시켰다.
 두 장수는 이십 합을 겨루어도 승부를 재지 못했다. 무예 실력이 엇비슷한지라 두 마리의
범이 노루고기를 놓고 다투는 것같고, 청룡과 왕용이 여의주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듯했
다.
 그러나 삼십 합이 막 넘는 순간,
 "받아랏!"
 정출남이 소리를 크게 외치며  오른손의 장창으로 적의 허리를  찌르고, 왼손으로 장검을
신속하게 뽑아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청룡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피를 뽑으며 그대로 말 아래로 떨어졌다.
 정출남은 청룡의 머리를 칼 끝에 꿰어 들고 크게 외쳤다.
 "청정도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청정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죽은 청룡은 바로 그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청룡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호통소리와 함께 말을 몰아 달려나
왔다.
 "네 이놈, 꼼짝하지 말라!"
 정출남이 눈을 들어보니, 왜장 청정은 신장이 구 척이요,  몸에 푸른 갑옷을 입고, 왼손에  
백여 근이 나가는 무거운 철주를  들었다. 또한 오른손에는 날이 시퍼런  장검을 들고 붉은
털이 온몸을 감싼 말을 타고 살같이 달려오는 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정출남은 청정의 모습을 한번 보자 정신이 아찔하여 자기도 모르게 말머리를 돌리어 본진
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청정이 벽력같이 호통치며 뒤를 쫓았다.
 "정출남은 도망치지 말고 내칼을 받아라. 네가 내 아우를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왜장 청정이 탄 말은 그 옛날 삼국시대의 관운장이 탔던 적토마와 같이 천하에 보기드문
명마였다.
 해서 정출남은 미처 본진에 닿기도 전에  바싹 뒤따라 추격해온 청정이 휘두르는  칼날에
대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목없는 귀신이 되어버렸다.
 한칼에 조선 장수의 목을 날린 청정은 손을 들어 일제 공격의 신호를 내렸다.
 순간, 왜적들은 짐승같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니 대장이 죽어
기가 팍 죽은 조선 군사들이 어찌 대항하겠는가.
 삽시간에 삼만 대병은 왜적이 휘두르는 칼날 앞에 낙엽처럼 떨어지니 시체가 산같이 쌓이
고 흐르는 피가 강을 이룰 정도였다.
 특히 지옥의 악귀같이 날뛰는 청정의 칼에 맞아 죽은 조선 군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청정이 크게 승리하여 승전고를 높이 올리며 본진으로 돌아오니 수하 장수들이 치하를 아
끼지 않았다.
 "장군의 용맹은 그 옛날 초패왕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은 사람이 아니오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이 분명합니다."
 청정이 듣고 크게 웃으며 스스로 뽐내었다.
 "사내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한 용맹이 없으면 어찌 만리 타국에 와서 나라를 빼
앗으려 마음먹겠는가? 내 기필코 조선을 정복하여 왕위에 오를 것이니 그대들은 힘써 싸우
라."
 제장들은 청정의 용맹에 새삼스럽게 감복하여 충성을 다시금 맹세했다.
 "소장들은 장군과 생사를 같이 하겠나이다."
 청정이 즉시 군사들을 독촉하여 서울로 향하니 그 형세를 당할 군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임금께서 정출남을 전장에 보내시고 십여 일 동안 소식을 몰라 크게 근심하였다.
 그러던 차에 양주목사가 보낸 장계가 이르렀거늘 급히 펼쳐 보시었다.
 '포도대장 정출남은 충주에서  외적과 만나 싸운  끝에 왜장  청룡을 한칼에 베었나이다.  

러나 정출남 역시 왜군 총대장 청정의 칼에 죽었고, 거느린 십만 대병도 모조리 몰살당했나
이다. 지금 왜적은 이긴 기세를 틈타 서울로 쳐들어  올라가오니 엎드려 비옵건데 전하께서
는 급히 왜적을 막으소서.'
 임금께서 장계를 보시고 크게 놀라시어 신하들을 보고 깊이 탄식하였다.
 "왜적의 형세가 이토록 위급하니 무슨 수로 종묘 사직을 보존하리오."
 신하들도 믿고 믿었던 정출남 역시 허무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한편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임금과 신하들이 이렇게 정신이 없을 때  대궐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들어와 급히  아뢰었
다.
 "왜적이 벌써 한강을 넘었나이다."
 "무엇이!"
 임금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용안이 변하시었다.
 그러나 탄식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어영대장 최달령과 금위대장 백수문을 불러 영
을 내리시었다.
 "그대들은 성 중의 백성들이 놀라지 않게 단속하고 동서남북 사대문을 굳게  지키도록 하
라."
 그러나 군사가 얼마 없고 장수 또한 믿을 자가 없으니 어떻게 서울을 지킬 수 있단  말인
가.
 신하들이 엎드려 저마다 아뢰었다.
 "전화께옵서는 어서 피난하옵소서."
 "백성들을 두고 어찌 떠날 수 있단 말이오?"
 "전하, 지금 왜적이 세력이 강세하니 잠시 몸을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함이 좋을 듯하옵니
다."
 신하들이 극력으로 주장하는 바람에 임금께서도 하는 수 없이 피난길을 떠나기로  정하였
다.
 하지만 남대문으로 나와 보니 갈 곳이 막막했다. 임금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하자 한
신하가 나와 엎드려 아뢰었다.
 "평안도는 아직 왜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오니 전하께옵서는 바라옵건대  그리로 가시
옵소서."
 "그렇게 하라."
 이에 뭇신하들은 임금을 모시고 평안도로 떠났다.
 한편.
 왜군 청대장 청정은 조선 임금이 피난간 줄은 모르고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서울을 철통
같이 포위했다.
 "조선 왕은 무엇하는가? 어서 나와 항복하라."
 그 소리가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듯하여 성벽이 다 들썩였다.
 그러니 성 중에 남아 있는 불쌍한 백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젠 다 죽었구나!"
 "잔인 무도한 왜적이 들어왔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백성들은 서로 붙들고 통곡을 하니 흡사 물이 끓는 듯했다.
 "서울을 짓밟고 조선왕을 사로잡아라!"
 청정이 군사들을 독촉하여 서울을 들이치려고 할 때 문득 남대문에서 오색 구름이 뭉게뭉
게 일어나며 한 장수가 무수한 군사들을 이끌고 왜군 앞을 딱 가로막으며 우레 같은 음성으
로 꾸짖는 것이 아닌가.
 "조선 나라 종묘 사직이 오백 연도 넉넉하거늘 너,  청정은 하늘의 운수를 모르고 불쌍한
백성만 죽여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느뇨? 어서 썩 물러가라. 나는 촉한의 관운장이니라."
 청정이 크게 놀라 눈을 들어 바라보니 한 대장이 적토마를 타고 세 가락의 수염을 가슴까
지 내리우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데  손에는 청룡과 월도가 햇빛에 번쩍이는  것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했다.
 "틀림없는 관운장이구나!"
 청정은 여지껏 오만하던 기세가 자기도 모르게 수그러들고 오금이 저려 말머리를  돌리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이에 서울에 남은 백성들은 왜적의 손에 의해 하나도 해를 입지 않으니 모두가 관운장의
덕택이었다.
 이때 평안도 평강땅에 한 이인이 있었으니 이름을 김덕령이라 했다.
 나이는 불과 열 다섯 살이나 힘은 능히 천 근의 바위를 들고 앉아서 한 주발의 밥을 먹는
천하 장사였다. 또한 일찍이 둔갑술을 배웠던 바 그 재주가 삼국시대의 제갈량을 능가할 정
도였다.
 그러나 시절이 태평하여 재주를 감추고 집에서 농사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늙으신 부
친이 세상을 떠나 모친과 함께 정성껏 삼년상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만 뜻밖에도 왜적이 강토를 침략하여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노략질한
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모친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소자가 듣자오니 왜적이 나라를 침범했다 하나이다."
 "그 소문은 이 어미도 이미 듣고 있다."
 "바라옵건대, 어머니께서는 소자의 소망을 허락하옵소서. 부친상을 당한  때이지만 상복을
벗어 불사르고 출전하여 왜적을 무찔러 나라의 근심을 덜게  허락해 주옵소서. 왜적을 쳐없
애 시절이 다시 태평해지면 소자의 이름이 청사에 올라 부모님께 영화를 드리옵고 또한 벼
슬길에도 오를 듯하오니 부디 소자의 희망을 들어주소서."
 그러자 모친이 크게 놀라며 매섭게 꾸짖었다.
 "우리집의 사내란 너 하나뿐이다. 조상의 무덤에 향을 피워 받들어야 마땅하거늘 어찌 이
런 말을 하느냐? 그 옛날  명나라 호왕이 둔갑술에 정통하여  소대성(군담소설의 주인공)을
유인해 장운동에다 불을 질렀으나 소대성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
리고 기운이 태산이라도 뽑을 듯한 초패왕도 오강(초패왕 항우가 유방에게 쫓겨 자살한 곳)
을 못건너서 죽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재주로 수십만 왜적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속절없
이 전장터의 백골이 될 것이니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 말고 농사일에나 힘을 쓰도록 하라."
 덕령이 모친의 엄한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물러나 탄식만 했다.
 그러나 왜적이 이미 가까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해서 한밤중에 모친 모르게 상복을 벗어 상문에 걸고 불효를 사죄했다.
 "어머님, 소자는 어머님의 영을 어기고  왜적을 막으러 가겠나이다. 부디 이  불효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절하고 나서 즉시 둔갑술을 써서 왜진 속으로 들어갔다.
 청정이 수하 장수들과 평안도를 칠 의논을 하다가 문득 앞에 나타난 덕령을 보고 소스라
치게 놀랐다.
 청정은 급히 수문장을 불러 호령했다.
 "우리 진문이 얼마나 허술하길래 조선 사람을 함부로 들어오게 하는가?"
 수문장은 벌벌 떨며 아뢰었다.
 "소.... 소장은 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청정이 크게 분노하여 군사들에게 호령했다.
 "활과 총으로 쏘아 잡으라!"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활과 총을  비오듯이 쏘아댔다. 그러나 김덕령의
몸은 홀연히 사라져 헛되이 허공에 대고 쏘아대는 판이었다.
 총과 화살이 그친 후 김덕령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 청정을 향해 크게 꾸짖었다.
 "나는 평안도 평강땅에 사는 조선  백성 김덕령이다. 내가 천운을  모르고 외람된 생각을
품어 평화스런 조선땅에 쳐들어왔으니 그  죄가 크도다. 너는 조선에 사람이  없는 줄 아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 재주를 보라. 내일 오시(오전 열 한 시부터 열 두 시까지)에 너희 군
사 머리에 백지 한 장씩을 붙일 것이니 그리 알고 기다려라."
 말이 끝나자마자 김덕령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청정이 크게  놀라 뭇장수들을 불러 놓
고 엄히 분부했다.
 "내일 총과 활을 많이 준비하였다가 오시가 되거든 일시에 쏘아라. 보이는 것이면 모조리
죽여라."
 청정이 명령을 내렸지만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을 밝혔다. 이튿날 오시
가 되자 왜군의 진중에 오색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오색 구름이 점점 짙어져 이윽고 눈 앞에 다섯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왜군이 크게 놀라 눈을 뜨지 못하고 우왕 좌왕할 때 구름 속에서 김더령이 홀연히 나타났
다.
 그리곤 청정을 가리키며 크게 꾸짖었다.
 "왜적은 나의 재주를 보라."
 호통과 함께 미리 준비한 백지를 허공에 휙 던졌다.
 그러자 보라!
 던져진 백지가 수십만 명 왜적의 이마에 똑같이 붙으니 그 모습은 꼭 목화송이가 활짝 핀
것 같았다.
 청정이 보고 크게 놀라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나도 일찍이 도술을 팔 년 동안이나 공부하였으나 저런  재주는 처음 보았도다. 저런 사
람이 조선 군사의 선봉장이 되면 우리 군사는 크게 패하리라."
 그러자 김덕령이 왜군 이마에 붙은 백지를 일시에 걷어 치우고 청정으로 보고 말했다.
 "나는 지금 부친상을 당해 살해를 할 수 없어 재주만 보여주는 것이니 너는  빨리 돌아가
거라. 만일거역할 시는너희들을 한 칼로 무찌를 것이니 어서  목숨을 보존하여 급히 돌아가
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덕령의 모습은 간 데가 없었다.  청정은 간담이 서늘하여 부대를
이끌고 급히 그곳을 떠났다.
 이때 선조대왕께서 영의정 정현덕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서울을 떠나  평안도로
피난을 떠나셨다.
 그러나 평양 성충이 이미 왜장 소서에 의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하는 수 없이 한적한
토곡고을에 유하였다.
 "그 누가 나서서 왜적을 무찌른단 말인가?"
 선조대왕께서는 자나 깨나 근심이 되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임금께서 뜰을 거느리고 계시는데 산에서 한 아이가 나무를  해내려오는데
그 지게가 거의 집채 만했다.
 "이 시골에 저런 장사가 있을 줄은 몰랐도다."
 임금께서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시며 그 아이에게 다가가 보았다. 아이응 열 여섯 살 정도
인데 기골이 장대하고 눈에 정기가 내비치는 것이 과연 인물다왔다.
 임금께서 아이를 보고 은근히 말씀하셨다.
 "네 기상을 보니 재주가 미간에 나타나 있도다.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토벌하여 큰 공
을 세우는 것이 네 마음에 어떠한가?"
 아이가 듣고 속으로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양반은 누군데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매우 점잖은 어른이라 공손히 아뢰었다.
 "제가 재주는 없사오나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나가  싸우려고
했나이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물으셨다.
 "장하도다. 네 성명이 무엇인고?"
 "저는 성은 김이요, 이름은 고원이라 하나이다."
 임금께서는 김고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주시며 이르셨다.
 "너는 이 편지를 갖고 관아에 들어가 부윤(오늘날의 시장)한성록에게 주라."
 김고원은 편지를 받고 즉시 관아로 달려가 편지를 바쳤다.
 무심코 편지를 받아든 부윤 한성록은 그만 대경 실색해 버렸다.
 천만 뜻밖에도 임금께서 보내신 편지가 아닌가.
 해서 김고원을 재촉하여 한들음에 토곡성 중으로 들어가 임금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소신이 전하의 납시옴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죄 죽어 마땅한 줄 아뢰오."
 김고원은 그제서야 임금의 정체를 알고 놀라 같이 엎드려 죄를 빌었다. 임금께서는 두 사
람더러 일어나라 하시며 처연한 안색으로 탄식하셨다.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왜적이  쳐들어와서 마구 날뛰니  종묘사직을 어찌 보존하리오.
평양이 이미 왜장 소서에게 떨어졌다고 하니 짐은 이곳에서 유하는도다."
 한성록이 통곡하며 아뢰었다.
 "소신은 나라의 변란을 듣고도 나아가 왜적을  무찌르지 못하였으니 그 죄 백 번  죽어도
마땅하나이다. 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서 소신에게 나아가 싸우도록 하옵소서. 죽기로써  왜
적을 무찌르겠나이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어 영을 내렸다.
 "그대는 흩어진 군사를 모아 왜적을 막으라. 그리고 김고원은 선봉장애 서라."
 이에 한성록은 각처에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왜적을 치러 나아갔다.
 이때 조선의 삼백 육십 주는 거의 왜놈에게  함락되 남은 것은 겨우 육십 주밖에 안되었
다.그 중에서 함경도 천북군사가 온전하게 남았으나 길이 막혀 올 수가 없었고, 황해도 군사
는 뿔뿔히 흩어져, 있으나 마나였다.  그리고 경기도 군사는 도성을 지키느라고  급급한지라
쓸 만한 군사는 평안도 군사 겨우 일만명이었다. 그러나 군사가 있다한들 용맹한 장수가 없
으니 어이하랴. 임금께서는 땅이 꺼지도록 탄식만 하셨다.
 "군사도 부족하거니와 장수도 없으니  어찌 왜적을 막으리오.  현명한 재상 최일령이라도
짐의 곁에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임금께서는 한 때의 잘못으로 최일령을 귀양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한편 귀양갔던 최일령은 왜적의 세력이 강대한  것을 보자 적소인 동래에서 깊이  생각했
다.
 "이제 왜적이 강토를 유린하도 있으니 어찌 적소에서 허송  세월하랴. 전하께 나악 이 늙
은 목숨을 나라에 바치자."
 해서 즉시 길을 나서서 서울로 떠났다. 가는 도중에 왜적에게 잡힐까 염려되어 낮이면 산
에 숨고, 밤이면 길을 재촉했다.
 길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서울에 도착해 보니  임금께서는 이미 피난을 떠나신 뒤였다.
서울 장안은 늙은이와 아녀자만 남은 것이 이미 죽어있는 서울이었다.
 최일령은 임금께옵서 평안도로 피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길을 떠났다.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최일령은 드디어 토곡에 닿아 임금을 뵈옵고 땅에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다.
 "전하, 이 어인 변고이나이까? 신 최일령은 감히 왕명을 거역하고 적소를 떠나 전하를 뵈
오니 그 죄 죽어 마땅하나이다."
 임금께서 어진 재상을 다시 만나자 손을 잡고 일으키며 말씀하셨다.
 "짐이 경의 말을 진작 들었으면 이런 변고를 당하지 않을 것인데 짐이 밝지  못하여 오히
려 경을 귀양보냈도다. 경은 옛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렇듯  짐을 찾아오니 진정 충신이로
다."
 "소신은 용안을 한번 뵈옵고 죽을 작정이었나이다."
 "자, 우리 옛일을 생각지 말고 어서 나라를 위해 왜적을 막을 계책을 생각하기로 하오. 지
금 군사가 약간 있으되 장수가 없으니 경이 한 사람 천거하라."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평안도에 김응서라는 사람이 있는데 힘은 삼천 근을 들고 재주와 용맹은  삼국시대의 조
쟈룡을 능가한다고 하나이다. 전하께옵서는 급히 사람을  보내시어 김응서를 불러와 왜적을
막게 하소서."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즉시 사신을 보냈다.
 이때 김응서는 왜적이 평안도를 휩쓰는 것을 보고도 왕명이 없어서 탄식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사신이 와서 왕명을 전했다.
 (김응서는 사신을 따라 즉시 짐을 위해 오라.)
 김응서는 엎드려 왕명을 받고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천리마를 달려 토곡으로 달려갔다.
 임금께서는 엎드려 절하는 김응서를 보니 눈은  봉의 눈이요, 신장은 팔 척, 그리고  황금
투구에 순금 갑옷을 입은 것이 보기에도 위맹스러웠다. 또한  왼손에는 구십 근짜리 장창을
들고 오른손에는 팔십 근짜리 철구를 들었으니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임금께서 한번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어 최일령에게 하문하셨다.
 "과연 천하 명장이로다. 그러나 좋은 장수가 있으되 군사가 부족하니 어찌하리오?"
 "왜적이 세력이 너무 강하여 우리 조선 군사로는 당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김응서가 제아
무리 용맹하고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왜적을 당하기는 어렵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중국
의 군대를 청하소서."
 "경의 말이 옳도다."
 임금께서는 최일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중국에 구원병을 청하러갈 사신을 찾으셨다.
 "누가 중국에 가서 구원병을 청해 올까?"
 그러자 병조판서 유성룡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청병 사신으로 가겠나이다."
 임금께서 유성룡이 나서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시며 즉시 사신으로 임명해 중국 명나라
로 보냈다.
 어전 회의가 끝나자 최일령이 은밀히 김응서를 불러서 말했다.
 "왜장 소서가 평양 기생 월천을 첩으로 삼고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낸다고 하오. 만약에
월천과 약속을 하면 소서를 죽이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쉬울 것이오. 그러나 연광
정 사방에는 방울이 있어 침입자가 있으면 저절로 소리가 난다 하니 좀체로 접근하기가 어
려울 것이오."
 응서가 엄숙히 대답했다.
 "방울 소리는 둔갑술로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우선  기생 월천과 약속할 묘책을 가르쳐
주소서."
 최일령이 즉시 묘책을 가르쳐 주었다.
 "그대는 당태 한 근과 독한 술 백여 병을 가지고 성벽을 넘어 가라. 당태로 능히 방울 소
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니 연광정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가 있으리라. 시간이 자시쯤 되
면 월천이 밖으로 나올 것이니 그대는 이때를 틈타 약속을  단단히 하라. 소서에게 술을 먹
인 후에 장군이 조심하여 소서를 죽이라.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소서를 베는 즉시 연광정 아
래에 엎드리라. 그러면 소서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소장이 힘써 왜적을 죽이고 오겠습니다."
 응서는 쾌히 대답하고 즉시 당태 한 근과 독한 술 백여 병을 가지고 평양으로 말을  달렸
다.
 응서가 탄 말은 천리마라 평양까지의 거리 팔십 리를 진시  초에 떠나 유시 때 당도했다.
이에 말을 성 밖에 매어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까 이윽고 초경이 되었다.
 (이때다!)
 응서는 속으로 외치고 높은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런 다음 주문을 외워 신장을 불
러 당태를 주며 분부했다.
 "그대는 이것으로 방울 소리를 막으라."
 그러자 신장이 공손히 절하며 당태를 받아들고 방울을 모두 막았다.
 이에 응서는 마음놓고 연광정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때 왜장 소서는 등촉을 환히 밝히고 월천을 데리고 노래하며 노는데 가히 안하 무인격
이었다.
 응서는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뛰어들어 한칼에 목을 베고 싶었지만 소서의 무서운 검술을
익히 소문들었는지라 꾹 참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과연 자시쯤 되어서 월천이 소피를 보러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응서는 즉시 그녀를 가로막았다.
 "아... 뉘시온지..."
 월천이 크게 놀라자 응서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쉬잇! 너를 해치러 온 사람은 아니니 나와 함께 저리로 가서 얘기 좀 하자. 나는  전하의
명령을 받고 온 김응서이니라."
 김응서의 용맹은 일찍부터 평안도에 알려졌으니 월천이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월천이 묵묵히 으슥한 곳까지 따라오자 응서는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월천아, 너는 비록 기생이기는 하나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서 조선의 국토를 먹고 살아왔
다. 그런데도 왜놈을 섬겨 부부의 예를 취할 수 있느냐? 나는 왕명을 받잡고 소서를 죽이러
왔다. 네 뜻은 어떤가?"
 월천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천한 계집은 비록 소서의 첩이 되었으나 마음만은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있었나이다. 이
제 장군 같은 영웅을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천한 계집은 장군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사오니 왜장을 죽일 계책을 가르쳐 주옵소서."
 "장하도다."
 응서는 크게 기뻐하여 가지고 온 독한 술병을 내어 주고는 월천의 귀에 입을 대고 계교를
일러주었다.
 이어 소서의 거동이 어떠한가를 물었다. 그러자 월천이 낱낱이 아뢰었다.
 "소서는 잠이 반쯤 들면 한 눈만 뜨옵고, 깊은 잠에 떨어지면 두 눈을 다 뜨나이다."
 "알았도다. 그럼 너는 어서 들어가 내가 시키는 대로 거행하라."
 이에 월천이 굳게 맹세하고 연광정으로 들어갔다. 소서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물었다.
 "어찌 이렇게 늦으냐?"
 월천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소녀의 오래비가 있사온데 지금 장군님을 뵈러 왔나이다. 부디 만나보소서."
 애첩의 청이니 소서가 어찌 거절하겠는가.
 "너의 오래비라면 나하고는 처남 매부가 된다. 지금 어디 있느냐?"
 "문 밖에 있나이다."
 "어서 들라 하라."
 소서가 독촉하자 월천은 즉시 문을 열고 응서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응서가 들어와서 절
을 하고 있으니 소서가 응서의 용맹한 기상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실로 영웅의 기상을 지니고 있도다. 그대가 만약  나를 도와 조선 군사들을 모두
항복 받으면 나는 우리 총대장  청정의 일등공신이 되고 그대 또한  영화를 누릴 것이로다.
청정의 조선왕이 되고 우리 두사람이 크게 공을 세우면 후세에 이름을 빛낼 것이로다. 그대
가 나를 도우는 것이 어떠한가?"
 응서가 거짓으로 항송한 듯이 대답했다.
 "장군이 저를 수하로 써 주신다면 목숨을 각오하고 힘써 돕겠나이다."

 월천이 옆에 있다가 계획대로 아양을 떨었다.
 "소녀의 오래비가 장군님을 위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해 왔으니 잡수십시오."
 소서가 크게 기뻐하여 칭찬했다.
 "너의 오래비가 이 매부를 위해 술을 가지고 왔다니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어서  술상을
보아 오너라."
 월천이 즉시 술상을 준비하여 소서에게 술을 권하는데 갖은 아양을 떨며 쉴 새 없이 잔을
채웠다.
 그 독한 술을 거의 열 병이나 마시자 제아무리 소서가 술을 즐긴다 해도 취한 나머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응서가 월천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속삭였다.
 "왜적이 혹시 눈치채지 못했느냐?"
 월천이 귀를 기울려 살피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나이다. 어서 처치하옵소서."
 이에 응서가 삼 척 장검을 뽑아들고 살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들은 바대로 소서는 두눈을 부릅뜨고 자고 있는데 코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같았다.
 응서가 칼을 겨누고 가까이 가자 소서의 명검 명천검이 벽에 걸려 있다가 웅웅 울어댔다.
 그러나 칼 임자가 깊이 잠들어 있으니 그 누가 알랴.
 이때 방문 밖에서 월천이 급히 소리쳤다.
 "입으로 침을 세 번 밷고 달려들어 치소서."
 응서가 듣고 침을 세 번 뱉고 달려들어 소서의 목을 치니 검광이 번뜩이는 가운데 구레나
룻 투성이인 목이 떨어졌다.
 응서는 미리 주의 받은 대로 즉시 칼을 내던지고 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그러자 문득 머
리가 없는 소서가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걸린 명천검을 집어 번개같이 휘두르는 것이었다.
 순간, 연광정의 대들보가 칼에 맞아 뚝 부러지더니 소서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에 응서가 겨우 안심하고 소서의 목을 칼 끝에 꿰었다. 그리곤 월천을 옆구리에 끼고
나는 듯이 성벽을 넘어 말을 매어 놓은 곳으로 갔다.
 "왜장의 목을 벤 것은 오로지 너의 공로로다. 전하께서 이를 아시면 후히 상을 내릴 것이
니 너는 나하고 같이 가자."
 응서가 말하자 월천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땅에 무릎을 꿇고 애걸히 소리쳤다.
 "장군님, 천한 계집은 시운이 불행하여 왜적의 첩이 되었나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원
수와 부부의 관계를 가졌으니 천한계집이 무슨 낯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이제 원수도
죽고 없으니 저의 원한도 사라졌나이다. 장군님은 부디 저의 목도 함께 베어 주소서."
 "그게 무슨 말이냐? 안될 말이로다."
 응서가 듣고 크게 놀라 거듭 만류했지만 월천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장군님, 왜적이 저희 대장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급히 추격해올 것입니다. 장군님의 말이
비록 천하에 보기 드문 명마라 할지라도 천한 계집까지 함께 타면 걸음이 더뎌 붙잡힐 것입
니다."
 응서가 다시 좋은 말로 회유하려고 하자 월천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응서의 칼을 뽑아 자
신의 가슴을 찔렀다.
 "앗! 월천아, 이 무슨 짓이냐?"
 응서가 놀라 부축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월천의 가슴에서는 피가 샘솟듯이 흐르며 안색
또한 창백하게 변했다.
 응서가 가슴이 아파 눈물을 뚝뚝 떨구자 월천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미천한 계집은 이제 여한이 없으니 구천에 가서라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나이다. 장
군께서는 부디 공을 세워 나라를 평온케 하소서."
 말을 마치자 월천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월천아, 네가 비록 미천한 출신의 여자이기는 하나 대장부보다 몇배 더 의기롭도다."
 응서는 싸늘하게 식은 월천의 몸을 안고 대성통곡하다가 마지못해 머리를 베어 가지고 말
을 달려 토곡으로 달려갔다.
 응서가 임금 앞에 엎드려 소서의 머리를 드린 후에 또 월천의 머리를 올리며 전후의 사정
을 상세히 아뢰니 임금께서 한편으로 기뻐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게 여기셨다.
 "아... 월천이 비록 미천한 여인이기는 하나 오직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왜적 소서를 죽이
고 또 저도 죽었으니 만고에 빛날 열녀로다."
 이에 소서의 목을 개돼지의 먹이로 내던지게 하고, 월천의 목은  무덤을 잘 써 후히 장사
지내 주었다.
 한편.
 유성룡은 중국으로 원병을 얻으러 사신의 자격으로 떠났다. 거의 한달 만에 명나라 황제
를 뵈옵고 예를 차렸다.
 그러자 명나라 황제는 의아스런 어조로 물었다.
 "조선에 무슨 일이 있기로 짐의 나라에 들어왔느뇨?"
 유성룡이 엎드려 아뢰었다.
 "황제 폐하께 아뢰나이다. 소신의 나라 조선국에 갑자기 섬나라 왜적이 쳐들어와 종묘 사
직이 풍전 등화같이 위태하나이다. 지금  서울까지 왜적이 침범하여 소신의  국왕은 평안도
토곡성 안으로 파난하였나이다. 왜적의 형세가 갈수록  강하기에 소신의 국왕이 황제폐하께
여쭈라고 해소 소신이 대국으로 들어왔나이다."
 하고는, 조선 임금이 보내는 글월을 올렸다.
 명나라 황제가 글월을 보고 크게 놀라 신하들을 불러 하문했다.
 "지금 조선 국왕이 왜적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태롭다고 구원병을 청하였도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말해보라."
 그러자 좌승상 유필이 엎드려 아뢰었다.
 "조선이 위급하다 하니 구원병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나 지금 때가  한창 농사철이
라 군사를 보내는 것은 시기가 아닌 줄로 아뢰나이다."
 이에 명나라 황제는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성룡이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 임금께 아뢰니 모두들 크게 놀랐다. 임금께서는 크
게 실망하시어 최일령을 불러 물으셨다.
 "명나라 황제가 구원병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 이제 우리 조선은 망하
였도다."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저하는 너무 염려하지 마옵소서. 구원병은 반드시 올 것이옵니다."
 "오, 경은 그렇게 생각하오?"
 "네, 전하. 그들이 스스로 구원병을 보낼 것이옵니다."
 임금께서는 최일령이 천문 지리에 밝아 능히 앞날을 미리 내다보는 걸 알고 있는 터라 오
직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때 왜장 평수길은 삼만 군졸을 거느리고 경상우도로 짓쳐 들어가 진주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진주 기생 모란이라는 여인이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한 꾀를 생각해 내었
다.
 (내 목숨을 걸고 왜적이 괴수를 잡으리라.)
 이에 모란은 촉석루에다 술상을 마련하고 평수길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평수길이 부하
들을 이끌고 앞을 지나가는데 거문고를 타는 소리가 은은하고 붉은색 치마 물빛을 비쳤는데
향기가 십 리 안팎에 진동하는 것이었다.
 "선녀가 인간 세계에 하강했단 말이냐? 웬 미인인고?"
 평수길이 정신이 황홀하여 멍하니 바라보자 모란이 교소를 지으며 좌석을 같이하기를  청
했다.
 "장군께서 오시기를 소녀는 눈이 빠지게 기다렸나이다. 오셔서 술 한잔 하소서."
 평수길은 입이 헤 벌어져 즉시 부하 장수들과 함께 술을 즐기니 얼마 가지 않아 크게  취
했다.
 이에 모란이 지키는 군사가 없을 때를 취하여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니, 그 목소리와 뛰어
난 자태는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좋도다!"
 평수길이 흥을 이기지 못하고 모란을 껴안고 함께 춤을 즐겼다.
 이때를 기다려 모란은 평수길을 꽉안고 촉석루 난간에서 뚝 떨어져 깊은 강물 속으로 떨
어지니 어이하리오.
 모란의 열 손가락에는 굵은 반지를 빠짐없이  끼어 있어 평수길이 벗어나려고 용을  써도
모란이 꽉 낀 팔을 풀지 못하고 원통한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앗, 대장님이!"
 보고 있던 왜군들이 크게 놀라 즉시 평수길의 시체를 찾아 건져내으니 이미 싸늘히 식은
시체였다. 그리고 모란이가 죽으면서도 어찌나 세게 껴안았던지 아무리 풀려고 해도 손가락
이 펴지지 않았다.
 왜군들은 하는 수 없이 평수길과 모란의 시체를 함께 가지고 총대장 청정의 진으로 후퇴
해 버렸다.
 한편.
 중국에서 구원병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임금께 하루는 진주목사가 보내는 장계가
올라왔다. 임금께 장계를 펼쳐 보시니.
 (이미 은퇴한 재상 이순신이 왜적을 맞이하여 싸웠던 바 거북선을  이용하여 가는 곳마다
적의 배를 깨트렸나이다. 그러다가 한산도에서  적의 수병을 크게 깨뜨리고  자신은 적탄에
맞아 죽었나이다. 그리고 진주에 모란이라 하는 기생이 있사온데  오직 나라를 위하는 충성
스런 마음으로 왜장 평수길을 데리고  죽었나이다. 세상에 이런 충절이 없을  듯 하여 감히
엎드려 아뢰나이다. 전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하였거늘, 임금께서 다 읽으시고 용안에 눈물을 지으시며 분부하셨다.
 "세상에 이런 충성과 열녀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제 시절이 태평하거든  이순신을 충무공
에 봉하여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그리고 모란은 촉석루  앞에 비를 세워 그 충렬
을 기리도록 하라."
 이때 명나라 황제는 조선에서 군사를 청하로 온 사신을 그저 보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늘 근심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한 장수가 홀연히 나타나 엎드려 절하며 아뢰는 것이었다.
 "형님은 어찌하여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지 아니하나이까?"
 황제는 듣고 크게 놀라 물었다.
 "그대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어찌하여 짐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는가?"
 장수가 처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소자는 삼국시대의 관운장이옵나이다. 형님은 유헌덕이 도로이 세상에 태어나 황제가 되
옵고 막내 동생 장비 또한 다시 태어나  조선 나라 왕이 되었나이다. 소장은 미부인(유헌덕
의 아내)을 모시고 조조에게 가 있다가 형님을 만나러 떠날 때 죄없는 사람을 죽이었으므로
미처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였나이다. 해서 조선을 지키었더니  지금 왜적이 조선을 침
략하여 땅을 거의 다 빼앗고 종묘 사직까지 유린하는데 잘못하면 조선의 사직이 오늘 내일
로 끊어질까 염려되나이다. 그런데도 형님께서는 구원병을 아니보내시니 어인 일이오니까?"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울적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 장수를 자세히 살피더니 신
장이 구척이요, 손에 청룡 은월도를 비껴들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세 가닥으로 늘어진 수염
을 꼿꼿이 세우고 있으니 분명히 관운장이 분명했다.
 황제가 크게 당황하여 용상에서 일어나 절하며 물었다.
 "장군은 누구를 보내라 하시나이까?"
 관운장이 다시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구원병은 팔십만 명을 보내시되 대장은 이여송을 보내시면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을 덧붙였다.
 "형님께서 이 아우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옵니다."
 그런 말과 함께 문득 간곳이 없거늘 황제가 크게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이에 이튿날 조회 때 신하들이 모두 모이자 하문하셨다.
 "짐이 간밤에 한 꿈을 꾸었더니 조선나라 경계선을 지키는 관운장이 와서  구원병을 보내
라 하니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좌승상이 엎드려 아뢰었다.
 "관운장은 본시 충절로 유명한 장수이니 지시대로 하옵소서."
 황제가 옳게 여겨 즉시 팔십만 명의 대병을 일으키게 하고 익주자사로 있는 이여송을 불
러다가 명하였다.
 "짐이 경의 용맹이 재주를 잘 알고 있도다. 이제 조선에 나가 왜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워
이름을 빛내고 돌아오면 이름이 청사에 올라 나라의 일등 공신이 되리라."
 이여송이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동방예의지국으로 나아가 왜적을 토벌하고 오겠나이다."
 황제가 크게 기꺼워하시며 즉시 대원수의 칭호를 내리고 대장기를 주었다.
 이윽고 이여송이 황제에게 작별을 고하고 군사를 이끌고 나아갈 때 만조 백관이 사십리
밖까지 나와 전송하며 이구 동성으로 말했다.
 "장군이 만 리 밖의 동국에 나아가 크게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그 공을 잊지 않으리라."
 이여송이 가슴을 펴고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그마한 왜놈을 어찌 근심하리오."
 이여송이 팔십만 명의 대병을 지휘하여 행진할 때 장수들에게 일일이 소임을 맡기는데 아
우인 이여백으로 선봉장을 삼고, 이여월로 그후 군장을 삼았다.
 그리곤 전군에 엄히 명령을 내렸다.
 "만약 군령을 태만하게 이헹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것이로다."
 이여송이 천리준총마에 높이 올라 앉아 가는데  머리에는 용의 무늬가 새겨진 투구를  써
고, 몸에는 황색 전포를 걸치고, 오른손에 팔각도을 들고 왼손에는 대장기를 높이  들었는데
황금 글씨도 '대마사(지금의 국방부 장관)대원수 명나라 이여송'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팔십만 명의 대병이 조선으로 향하니 기치 창검은 햇빛을  가렸고 북소리, 호각소리는 천
지를 뒤엎는 듯했다.
 얼마후에 굽이쳐 콸콸흐르는 압록강을 건너니 미리 소식을 듣고 조선에게 임금이  제신을
거느리고 몸소 백리 밖에까지 나와 맞이했다.
 인사가 끝난후 자리에 앉아 임금께서 원수에게 말씀하셨다.
 "원수께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자와 먼길에 수고를 하시니 과인의 마음이  매우 불안하오
이다."
 이여송이 두 번 절하고 아뢰었다.
 "대왕께서 뜻밖의 왜란을 당하셨으니 오죽이나 근심하시리까?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고 소
장이 왔으나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지가 않으니 그냥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임금꼐서 뜻밖의 이 말을 들으시고 크게 근심이 되어 최일령을 불러 물으셨다.
 "이원수가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니 이 무슨 변고인고?"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전하게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이원수 막사 뒤에 칠성단을  세우고 축문을 읽으시며 통
곡하시오면 원수가 듣고 마음을 돌릴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즉시 영을 내리셨다.
 "즉시 칠성단을 세우라"
 그리고 칠성단에 올라 슬피 통곡하시니 이여송이 듣고 물었다.
 "저 우는 소리는 어니서 들리는 것인고?"
 수하 장수가 살피고 나와 보고했다.
 "조선왕이 원수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을 듣고 우시나이다."
 그러자 이여송이 문득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기이하도다. 내가 조선왕의 관상을 보니, 왕후의 상이 아니어서 실망했더니 이제 울음 소
리를 들으매 용의 울음 소리가 분명하도다. 오백년 사직이 분명하도다."
 이에 회군하기를 단념하고 장수를 불러 소임을 맡기는데 조선장수가 구름 모이듯 했다.
 평안도 평강 땅 태생인 김응서, 전라도 전주 출신  강홍엽, 황해도에서 온 김승태, 함경도
태생인 유홍주, 강원도의 백철남, 경기도에서 온 문둔황 등 모두가 범 같은 장수들이었다.
 각기 갑옷 투구를 갖추고 이여송에게 인사를 올리니 원수가 보고 크게 칭찬했다.
 "조선 같은 조그만 나라에 이렇듯 영웅 호걸이 구름같이 많으니 기이한 일이로다."
 이어 그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고 높은 깃대 끝에 황금 만 냥을 달고 말했다.
 "그대를 중에 저기 달린 황금을 떼어 오는 자가 있으면 선봉을 삼으리라."
 그러자 한 장수가 즉시 몸을 날려 철추로 치니 황금이 여지없이 떨어졌다.
 박수 갈채 속에 다시 한 장수가 내달아 남은 황금을 가지고 비호같이 동라왔다.
 이여송이 보고 물었다.
 "저들이 누구인고?"
 수하 장수가 공손이 아뢰었다.
 "먼저 장수는 김응서라 하옵고, 두 번재 장수는 강홍엽이라 하오이다."
 이에 이여송은 김응서로 선봉을 삼고 강홍엽으로 후선봉을 삼았다. 그리고 유홍수로 좌익
장을 삼고 백철남으로 우익장, 김일관으로 군량장, 그리고 남은 장수를 모두 후군장으로  삼
고 군사를 몰아 강원도에 있는 왜군 총대장 청정의 진으로 향했다.
 임금께서는 유성룡을 불러 특별히 명하였다.
 "경은 우리 조선 군사와 명나라 군사의 군량ㅇ르 급히 수송하라."
 이때 이여송은 조선 장수들의 재주를 다시 시험해 볼생각으로 엉뚱한 명령을 내렸다.
 "좋은 술 천 독만 내일 아침에 대령하라."
 "알겠나이다."
 김응서가 즉시 대답하고 나와 군졸들에게 명해 땅을 깊이파고 술 천독을 묻게 했다. 그리
곤 그 위에다가 백탄 숯을 피워 밤새 돌고 술을 익히게 하니 이튿날 아침 어김없이 술 천독
을 대령했다.
 이여송이 보고 크게 칭찬했다.
 "과연 조선에도 재주가 뛰어난 인재가 있도다."
 그리곤 또 영을 내렸다.
 "내일 아침에 용탕을 대령하라."
 김응서가 대답하고 나와 하늘을 우럴러 슬피우니  하늘에서 갑자기 용이 한 마리  떨어져
시냇가에 죽었거늘 즉시 용탕을 지어 올렸다.
 이여송이 칭찬하고 다시 영을 내렸다.
 "내일 아침까지 소상강에서 나는 젓갈을 올리렸다."
 이에는 김응서라한들 어쩔 도리가 없어 깊이  근심하고 있는 터에 임금께서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전에 어떤 신하가 이 다음에 써먹을 일이 있다 혀며 소상강에서 나는 젓갈을  가져와 보
관해 둔 것이 이?ㅆ느니라. 그러니 급히 가져가 원수께 올려라."
 응서가 크게 기뻐하여 즉시 젓갈을 갖다 바치니 이여송이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대는 과연 천재로다. 그대같이 재주 있는 장수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여송은 아직도 장난이 하고 싶은지 또 분부를 내렸다.
 "내일 아침에 백마 백필을 대령하라."
 응서가 기거이 대답하고 나와서 군졸들에게 명령하였다.
 "흰가루를 칠하여 백마 백필을 대령하라."
 이여송이 듣고 크게 웃으며 칭찬했다.
 "임기응변이 저렇듯 빠르니 누가 당하리오. 내가 졌도다."
 이에 청정은 강원도 원주성에 있다가 군사가 와서 보고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군대를 이끌고 오나이다."
 청정은 급히 각도에 흩어진 장졸을 모두 부르니 장수가 팔백여명이오, 군사가 이십여명만
명이었다.
 이여송이 원주에 도착하여 적진을 살펴보니  제법 진식이 갖추어져 있었다.  원수가 북을
울려 사움을 돋우니 적진에서 한 장수가 내달으며 크게 소리쳤다.
 "면장 이여송은 들으라. 우리 대장께서 조선을 거의 다 얻었거을 너는 무슨재주가 있다고
다 망한 조선을 구하려는냐? 빨리 나와 내칼을 받으라."
 그러자 선봉장 김응서가 말을 몰고 달려 나오며 호통쳤다.
 "우리 진중에 영우 호걸이 구름같이 모였거늘 너는 어지하여 죽기를 재촉하느냐?"
 이에 양편 장수가 내달아 사워 삼십여 함에 이르러 김응서의 칼이 번뜩이더니 왜장 마원
태의 머리가 땅에 굴렀다.
 김응서가 적장의 머리를 칼 끝에 꿰고 돌아오려고 하자 왜진에서 다섯 장수가 뛰어나오며
외쳤다.
 "조선장수 김응서는 도망하지 말라."
 김응서가 크게 분노하여 말머리를 돌리고 왜장 다섯을 상대로 싸우는데 조금도 지친 기색
이 없었다.
 청정이 이를 보자 크게 분노하여 벽력같이 호통치며 말을 내달아 명천검으로 김응서의 머
리를 노리고 치니 응서가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그이 말이  적의 칼에 캊아 땅에 엎어졌
다. 이에 김응서의 목숨이 풍전 등화처럼 위험했다.
 이여송이 보고 크게 놀라 급히  새 장수를 보내어 김응서를 구해  오게 하였다. 금응서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본진으로 동라와 사례했다.
 "원수의 구함이 없었다면 소장은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이때 양편 장수가 내달아 한데 어울려 싸우니 명나라  장수는 아홉이오, 왜장은 다섯이었
다.
 양쪽 진에게 내지를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칼빛은 하늘의 햇빛을 가리는 듯한데 마치
산중 맹호가 먹이를 다투는 것ㅇ 같고 용이 여의주를 갖고 싸우는 듯했다.
 십여 합에 이르렀을 때 왜장의 칼이 번뜩하더니 맹장  이여우러의 머리가 떨어졌다. 거의
같은 시각에 강홍엽의 칼이 왜장 한일천의 머리를 잘랐다.
 또한 김일관이 한소리 크게 호통치면서 왲아 한업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청정은 다섯장수가 허무하게 죽음을 당하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말을 몰아  나는
듯이 달려나오며 우레 같이 호통쳤다.
 "내 너희들을 모조리 죽이리라."
 이여송이 바라보니 청정은 신장이 구 척이오, 일백근짜리 황금투구를 쓰고 몸에는 구리갑
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백근 무게의 철수를 들고 왼손에는  천하명검 며천검을 들었는데 불
과 삼합도 못되어 명장 태경을 한칼에 베웠다.
 이여송이 부하의 죽음을 보자 즉시 말을 몰아 나오며 호통쳤다.
 "직장, 청정은 어찌하여 나의 아장을 죽이는가? 너듣거라. 너희 왜놈이 그  옛날 진시황을
속이고 섬으로 들어가 나오지 아니하고 자칭  왕이라 칭하고 미친개가 짖듯이 감히  조선국
같은 예의지국을 침범하니 어지 하늘의 벌이 없겠는가? 어서 썩 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천정이 듣고 크게 노하여 호통쳤다.
 "내가 조선을 거의 다 얻었거늘 네가 왜 나서서 가로막느냐?"
 호통과 함께 명천검을 휘둘러 이여송과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양쪽의 총대장이 이렇게 접전을 벌이니 북소리와 호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여 하늘이  무
너지고 당이 꺼지는 듯하는데 십여합이 지나도록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청정은 기운이 달려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어딜 도망치느냐?"
 이를 본 이여송과 명장 일곱이 우르르 뒤좇으며 호통쳤다. 청정이 죽을 둥 살둥 도망치는
데 문득 앞에서 한 대장이 나타나 크게 호령했다.
 "네가 감히 헛된 욕망을 품었으니 어찌 하늘인들 무심하겠느냐?" 너는  도망치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청정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바로 전에 본적이 있는 관운장이 아닌가.
 청정이 크게 놀라 옆으로 도망치려고 하니  명장 일곱이 달려들어 전후 좌우에에  협공했
다.
 이렇게 되니 청정이 제아무리 용뱅한들 그물에 든 고기요,  함정에 빠진 호랑이와 마찬가
지 였다.
 "목을 바쳐라!"
 이여송이 우레 같이 호통치며 달려들어 칼을 번개같이 내리쳤다.  이에 청정의 목이 칼빛
을 쫓아 떨어졌다.
 김응서가 즉시 달려들어 청정의 목을 칼 끝에 꿰어 들고 이여송에게 치하했다.
 "원수의 용맹은 천추에 승전고를 높이 울리며 축하연을 크게 베풀었다. 이때 전라로 쳐들
어갔던 왜장 동철, 충청도로 갔던 마웅태, 함경도로 갔던 봉철등은 청정과 합세하고자  급히
오다가 총대장이 죽었다고 소리를 득고 크게 졸라 급히 달려와 부르짖었다.
 "명장 이여송과 조선 장수 김응서, 감홍엽은 어찌하여 우리 대장을 죽였는가. 우리가 네놈
을 죽여 대장의 원수를 갚으리라.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이여송이 듣고 크게 분노하여 칼을 들고 곧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김응서와 강홍엽이
만류했다.
 "원수게서는 참으소서.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가? 소장들이 나가 왜장을 메
어 원수의 노함을 풀리라."
 이어 두장수가 일시에 내달으며 꾸짖었다.
 "너희들은 조선에 김응서와 강홍엽이 있다는 말으 들었는가?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양편 장수들이 한데 어울려 싸우기를 이십여 합 긑에 김응서의 칼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
며 왜장 마웅태를 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문경이 이를 보자 크게 노하여 부르짖었다.
 "내 맹세코 너를 죽여 우리 장수의 원수를 갚으리라."
 응서와 홍엽은 십여 합을 겨루다가 거짓  패한척 본진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문경이  기세
등등하게 뒤를 추격했다.
 "도망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김응서와 강홍엽이 나느듯이 본진ㄴ으로 돌아 오자 포소리가 한번 크게 울리더니  진세가
갑자기 변하여 오행진이 되니 나는 제비라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왜장 문경이 크게 당황하여 이리저리 살길을 찾는데 김응서가 벽력같이 달려들어  허리를
감아쥐고 땅에 재던졌다. 문경을 사로 잡아 장대 밑에 굻어 앉히고 김응서가 크게 호령했다.
 "네가 감히 예의지국을 침범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저... 제발 목숨남은 살려 주십시오. 저는 다만 청정의 명에의래 조선으로  나왔을 뿐입니
다."
 문경이 애걸하자 이여송이 매섭게 꾸짖었다.
 "네 놈이 천륜을 모르고 함부로  조선 같은 예의지국을 법하였도다.  조선에 영웅 호걸이
구름같이 많아 너의 대장 청정과, 소서, 평수길도 모두  칼날 아래 목없는 귀신이 되었도다.
내 너를 한칼에 메어 방자하게 군 죄를 물으려고 했으나 이미 항복하였기로 이대로 놓아 보
낼것이니 빨리 돌아가 다시는 외람된 생각을 벅지 말라."
 이에 문경은 머리를 감싸쥐고 왜국을  향해 도망쳤다. 이여송이 그제서야  군대를 거두니
남은 것은 산같이 쌓인 왜인이 시체뿐이었다.
 이때 임금께서는 싸움의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시다가 승전 소리를 접하시고 크게  기뻐하
셨다.
 그러나 승전의 기쁜도 잠시였고, 또하나의 걱정이 생겼다.
 "군량이 거의 바닥 났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고."
 임금께서 탄식하자 최일려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듣자하니 평안도 식주다에 사는 김수업이라는 부자가 있는데 곡식이 기십 ㄴ 석이
잇다 하나이다. 그에게 명하여 군량을 대게 하소서."
 김수업이 왕명을 받고 급히 달려나왔다.
 "왜적의 침략에 전하게옵서는 얼마나 근심하셧나이까?"
 임금께서는 같이 탄식하시고 용건을 말씀하셧다.
 "지금 군량이 바닥나 야단이니 우선 그대의 곡식을 취하여 쓰고 이 다음에 시절이 태평하
거든 갚고자 하노라. 그대 생각은 어떠한고?"
 김수업이 엎드려 아뢰었다.
 "소신이 곡식은 바로 전하의 고식이오니 좋을대로 쓰시옵소서."
 임금게서 크게 기뻐하시어 김수업으로 하여금 군량장을 산아 곳식을 나르게 했다.
 이때 이여송이 왜적을 쳐부수고 돌아오니 임금께서는 백리 밖에까지 나아가 맞이해  노고
를 치하했다.
 "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 조선국은 왜적의 송에 떨어질 뻔  했다. 원수의 이 은혜는 자손
만대에 걸쳐 잊지 않으리."
 "모든 것이 전하의 복이옵니다."
 이에 이여송은 철비를 세워 승전을 천주에 길이 남도록 하고 비단 백필을 들여 승전기를
만들어 높게 세웠다.
 그런 다음 크게 잔치를 베풀어 군사들에게 마음껏 즐기도록  했다. 이윽고 잔치가 긑난후
이여송은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중국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이여송은 가는 도중에 이름난 산이나 강물의 혈맥을 일일이 자르게 했다.
 "혈맥을 자르지 앟으면 조선에 영웅 호걸이 자꾸만 태어날 것이로다. 이것을 방비하지 않
으면 우리 중국도 장차 위험해질 것이다."
 왜적이 물러간 다음 임금께서는 서울로 환궁하신 후 제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왜장을 모두 죽였지만 왜장의 항서를 받지 안흥면 후환이 될것이니 군사를  일으켜 왜국
으로 쳐들어가 항서를 받는 것이 어떠한고?"
 이에 제신이 모두 찬성하여 왜국을 정복하기로 햇다 임금게서는 줏기 금응서와  강홍엽을
불러 영을 내리시니 두 장수가 서로 선종이 되겠다고 다투었다.  해서 제비를 뽑게 하니 강
홍엽이 선봉이 되고 김응서는 후군을 맡았다.
 두 장수가 군사 이십만명을 이끌고 왜국으로 떠나니 때는 무술년 시월달이었다.
 군대가 경상도 동래에 도착하여 배를 탈 때 문득 뒤에서 김응서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장군님 잠간 군사를 머물게 하고 내말을 들으소서."
 기응서가 놀라서 돌아보니 머리를 산발한 사람이 와서 절을 하거는 급히 물엇다.
 "그대는 주구인데 진중에 들어왔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저는 조선에 사는 귀신으로 왜덕강이라 하옵니다."
 "할말이 무엇인고?"
 "장군님이 군사를 급히 행군하옵기로 만류하러 왔나이다. 군사를  사흘만 머물게 하면 반
드시 공을 이룰 것이나 급히 행군하면 크게 패할것이옵니다."
 하고는 문득 간곳이 없엇다. 이에 김응서가 급히 강홍엽을  만나 사흘동안 군사를 머물러
있게 하자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한낱 귀신의 말을 믿고 군대를 쉬게 한다이 될말이오?"
 하며 강홍엽은 들은 척도 하지  앟았다. 김응서는 몇번이고 간청하다가  강홍엽이 끝끝내
고집을 부리자 탄식하며 말했다.
 "장군이 이대로 갔다가 패하더라도 나를 원망치는 말라."
 이에 조석ㄴ 군사는 배를 타고 여러날 만에 왜국에 당도하여 동설령으로 향했다.
 한편 왜국에서는 조선을 치러 나간 군사가 대패하여 돌아옴을 분히 여겨 군병을 밤낮으로
조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군사가 왜국에 상륙했다는 말을 듣자 동설령 좌우에다 군사를 매복시켜  기
다렸다.
 김응서는 천기와 진리를 살피고 강홍ㅇ벼에게 간곡히 말했다.
 "동설령은 지세가 험하니 들어가면 반드시 위험할것이오."
 그러나 강홍엽은 듣지 앟고 군사를 곧장 동설령 아느로  진격시켰다. 그러자 좌우 골자기
에서 대포소리가 크게 울리며 미리 매복해  있던 왜병들이 몰려나와 들이치니 조선  군사는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이십만 명의 대병이 삽시간에 남김없이 죽어 버렸다.
 시체가 산같이 쌓이고 피가 강물의 되어 흐르니 김응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만리 타국에 들어와 대병을 모두 북였으니 무슨 낯으로 고국에 돌아가 전하를 죄오리오.
여기서 죽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리라."
 이어 강홍엽을 돌아보고 크게 꾸짖었다.
 "이것은 모두 장군 탓이로다!"
 강홍엽이 부그러워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구를 하지 못했다.
 이때 왜장 홍대성등이 임진년의 원수를  갚으려고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김응서가
그렇지 않아도 분노를 누를 길 없어 벽력같이 호통치며 달려 들어 불과 십합도 안되어 두명
의 적장 목을 베었다.
 이에 왜왕은 크게 놀라 사우지 말고 서로 화친하자고  사신을 보냈다. 군사없는 김응서와
강홍엽ㅇ느 하는수 없이 왜왕 앞으로 나아가니 왜왕이 크게 기뻐하며 좋은 말로 위로했다.
 두 장수는 군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해서 왜국에서 세우러을 보내니  어언
삼년이 지났다. 그러자 왜장은 금은 보화와 미녀로서 두  장수를 유혹하는데 김응서는 눈하
나 까딱하니 않았지만 강홍엽은 그만 왜완의 괴임에 넘어가 부귀와 영화를 탐냈다.
 김응서는 이에 분함을 참을 길이 없어 하루는 강홍엽에게 가서 꾸짖듯이 말했다.
 "옛글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느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고 햇으나, 장
군의 뜻은 이미 바뀐듯하오. 나는  이제 왜왕의 목을 베어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 전하를
베옵고 죄를 청하려 하니 그리아시오."
 그러나 강홍엽은 고국으로 돌아갈 뜻이 없어 도리어 김응서가 한 말을 왜왕에게 고해 바
쳤다.
 왜왕이 크게 성이 나 수만 명의 군사를 풀어 김응서를 잡으려 고 했다. 김응서는 일이 틀
려졌음을 깨닫자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했다.
 "내, 왜왕의 머리를 베어 분함을  덜가 했으나 강홍엽이 배반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슬프도다, 만리 타국에 와서 죽으니 하늘이 나를 돕지 아니하는구나. 일이 틀린 이산 소인배
홍엽을 죽여 전하께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짓게 하리라."
 김응서는 즉시 장검을 빼어들고 나는 듯이 달려가 강홍엽을 내려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
다. 그리곤 자기도 그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으니  하늘도 슬퍼하는지 갑자기 천지가
컴컴해지며 뇌성벽력이 울리었다.
 이때 임금께서는 두 장수와 이십만 명의 대병을 왜국에 보내놓고 소식이 없어 무척 근심
하였다.
 삼년째 되는 어느날 임금께서 용상에 기대어  잠깐 졸고 있는데 갑자기 김응서가  생시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아뢰었다.
 "소신이 힘을 다해 왜왕의 머리를 베어 전하의 은혜를 만분지 날이라도 갚을까 했으나 불
길히도 강홍엽이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이십만 명의 대병을 모두 죽이업고 구차한 삶을 살
았나이다. 그러다가 몰래 왜왕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더니 강홍ㅇ
병이 끝내 배반하는 바람에 소신은 홍엽을 베고 자결했나이다. 신은 비록 황천에 가 잇으나
귀신이라도 전하를 도와 이나라를 편안케 하오리다."
 임금게서 감작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임금이 크게 상심하고 있르때 왜국에서 보내온 김응서의 목이 대궐에 닿았다.
 이에 임금게서는 애통해 하시며 후에 장사지내어 충신의 넋을 위로했다.
 세월은 흘러 경자년 삼월이 되었다. 이때 묘향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서산대사가 문득
천기를 살피더니 안색이 병해 상ㅇ르 내려와 곧바로 밍금게 나아가 뵙기를 청했다.
 임금께서는 서산대사의 높은 덕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황망히 맞이해 하문하셨다.
 "대사 게서 어인 연고로 갑자기 짐을 보고자 하오?"
 서산대사가 함장하여 아뢰었다.
 "빈승이 천지를 보오니 왜적이 임진년의 원한을 갚으려고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기에 이를
여쭈려고 왔나이다. 지금 김응서 같은 장수가 죽고 없나니 누가 왜적을 당해내겠나이까?"
 임금게서 듣고 크게 놀라시었다.
 "그렇다면 어지해야 좋을고?"
 "빈승에게 왜적이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할 묘책이 있나이다."
 "어디 말씀해 보오."
 "빈승의 제자 사명당이 육도 삼략에 통달하옵고 퍌만 대장경과 둔갑술에 능통하오니 왜국
에 사신으로 보내옵소서."
 임금게서는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사명당을 불러 간곡히 분부 하였다.
 "서산대사의 말을 들으니 그대가 높은 재주를 지녔다고 하니 왜국으로 들어가  항복을 받
아 후환을 없게 하라."
 "소승이 어찌 수고를 아끼겠나이까?"
 사명당은 공손히 절하고 봉명사전의 직함으  받고 즉시 왜국으로 출발했다.  여러날 만에
왜국에 당도하자 사명당은 왜왕에게 글월을 보냈다.
 "조선국 생불인 사명당이 당도했으니 왜왕은 공손히 접대하라."
 왜왕이 글월을 보고 크게 놀라 대책을 강구했다.
 "조선에서 생불이 왔다 하니 어찌 하겠는가?"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소신에게 묘책이 하나 있나이다. 삼백  육십간짜리 병풍을 만들어 일만  일천 귀의 글을
지어 병풍에 써서 길에 펼쳐 놓으소서. 그런 다음 사신을  향해 천리마를 급히 몰아 사처에
오거든 병풍에 씌인 글귈르 외워 보라고 하소서. 만약 못외우면 죽이사이다."
 대와이 듣고 그럴듯하게 여겨 그대로  시행하게 햇다. 왜국성들은 조선서  생불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백리에 걸쳐 새가맣게 몰려 나와 구경하는데 사명당이 말을 풍우같이 몰아 지
나갔다.
 이어 왜왕 앞에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누어 왜왕이 물었다.
 "사신이 생불이라 청하니 들어오는 길에 병풍의 글을 보았습니까?"
 "보았노라."
 왜왕이 청하자 사명당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지 그만한 글을 외우지 못하리오."
 하고는, 삼경에 시작하여 이튿날 오시가지 외우니 모두 일만  구백구십 귀를 물 흐르듯이
역어 내려갔다.
 그러자 왜왕이 고개를 댜웃거리며 물었다.
 "어지하여 열귀는 외우지 않는지요?"
 사명당이 눈을 부릅뜨고 호령했다.
 "없는 글도 외우라 하느뇨?"
 왜왕이 안색이 변해 신하를 불러 일렀다.
 "가서 보고 오너라."
 신하가 갔다 오더니 아뢰었다.
 "과연 병풍 두간이 닫혀있어 글 열귀가 보이지 않나이다."
 왜왕이 그제서야 크게 놀라 머리를 조아려 사과햇다. 첫 번재 계교가 실패로 돌아가자 왜
왕은 다시 신하를 불러놓고 의논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계책을 아뢰었다.
 "일백 오십자 되는 구리방석을 만들어 물에 띄우라  하고 낮게하소서. 제아무리 생불이라
하더라도 이번만은 죽을 것이옵니다."
 왜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구리 방석을 만들어 놓고 사명당에게 타보라고 했다.
 이에 사명당이 구리방석에 올아앉아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가고, 서
풍이 불면 도쪽으로 가니 완연히 돛이달린 배였다.
 왜왕이 보고 크게 놀라 탄식했다.
 "조선 사신이 저토록 재주가 뛰어나니 어떻게 하리오?"
 그러자 또한신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엇다.
 "내일은 잔치를 열어 채단 방석을 내놓고 앉으라 하여  그대로 앉으며 필시 요물이요, 백
목을 취하면 부처일 것이니 요물이오면 죽이소서."
 왜왕이 그대로 시핸하자 사명당은 백팔염주를 손에 들고 백목에 앉으니 왜왕이  의아하여
물었다.
 "대사는 어찌하여 비단을 취하지 아니하고 백목에 앉으시는지요."
 사명당이 엄숙하게 대꾸했다.
 "부처가 백목을 취하지 어지 비단을 취하리오, 백목은 목화에서 핀 꽃이요, 비단은 벌레에
서 나온것이니 취하지 않노라."
 잔치가 끝난후 왜왕은 다시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숨만 내쉬었다.
 "조선 사신은 생불이 분명하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내일은 구리로 된 집을 지어 조선 사신을 안에 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사면에서 숯불
을 피우면 제아무리 생불이라 할지라도 구리집안에서 죽을 것이옵니다."
 왜왕은 이번만은 자신있다 생각되어 구리집 속에다 사명당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앉으라
한후 문을 잠궜다. 그리곤 사면에서 숯을 쌓고 태우니 불꽃이 일어나며 구리가 녹아 흘러싿.
그러나 사명당은 왜왕의 간계를 미리 알아 서면 벽에 서리 상자를 써붙이고 방석 밑에는 얼
음 빙자를 써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방안이 흡사 얼음창고 같았다.
 이것도 모르고 왜왕은 크게 기뻐하며 소리쳤다.
 "저렇게 뜨거우니 생불이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는, 신하들을 시켜 문을 열어 보니 사명당이 꼿꼿이 앉아 있느 눈썹에는 서리가 기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있지 않은가.
 사명이크게 꾸짖었다.
 "왜국은 남방이라 덮다 하더니 왜이렇게 추우냐?"
 왜왕이 듣고 크게 놀랐으나 다시 꾀를 내어  무쇠로 만든 말을 시뻘겋게 달군후 타라 했
다.
 이에 사명당이 조선을 바라보며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난데없이 구름이 모여들어 소나기가
끊어지지 않고 쏫아져 삽시간에 성 중에 물이 가득차 백성들이 무수히 빠져 죽었다.
 사명당이 왜왕을 보고 호령했다.
 "간사한 왜왕은 듣거라. 네가 개닫지 못하고 생불인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괘씸하도다. 복
숨을 보존하려면 급히 항서를 써서  올리되 그렇지 않으면 너의  왜국은 동해 바다가 되리
라."
 왜왕이 그제서야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 두 손을 비비며 애걸했다.
 "비나이다. 생불이신 조선사신 사명당께 비나이다. 소왕이 무지 하여 부처님을 휘롱항ㅆ으
니 그죄 죽어 마당하오나 한번만 용서하소서."
 "어서 항서를 써서 올려라."
 사명당이 거듭 호령하니 왜왕은 즉시 항서를 써서 바쳤다.
 이에 사명당은 왜왕을 준절히 꾸짖은 다음 비를 그치게 했다.
 임무를 무사히 마친 사명당이 마침내 고국으로 떠나게 되니 왜왕이 부두까지 나와 전송하
였다.
 사명당은 왜왕이 다시는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못박았다.
 "왜왕은 들으라. 너는 욕심을 내어 청정과 소서를  보내어 우리 동방예의지국을 침범하였
으니 그 죄를 다지면 왜국을 없애 바다로 만들어도 부족하리라. 하지만 인명이 불쌍하여 이
번 한번만은 용서해 주는 것이니 다시는 헛된 욕심을 먹지 말라. 다시한번 야욕을 품었다가
는 용서하지 않겠도다. 그리고 차우에는 매년마다 인피 삼백장씩 바치되 십 오륙 세된 처녀
의 가죽으로 바치고, 불알 서 말씨을 바치되 십오륙 세된 남자 아이것으로 하라. 만ㅇ일  하
나라도 모자르면 내가 또 건너와 너의 왜국을 불바다로 만들것이니 그리알라."
 "분부대로 꼭 거행하겠나이다."
 왜왕은 벌벌 떨며 명령대로 하겠다고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이에 사명당이 왜왕의 항서를 갖고 고국으로  돌아오니 그 위풍과 이름이 멀리  중구까지
떨쳐졌다.
 임금게서 사명당을 맞이하여 극구 칭창하였다.
 "대사가 왜국에 들어가 항복을 받았으나 그 공로는 천주에 빛날 것이로다."
 하시고는, 서산대사와 사명당에게 벼슬을 내리려고 했으나  두 분대사가 한사코 사양하고
는 산 속으로 홀연히 떠나갔다. 임금께서는 브게 섭섭하시어  백관을 데리고 멀리가지 전송
했다.
 그후 왜왕은 인피 삼백장과 불알 서 말식을 매년 바치고,  동래당레 왜관을 짓고 구리 삼
백 육십근, 주석 삼만 육천근, 쇠통 삼ㄴ만 육천근,  시우쇠 삼만 육천근 으로 매년 조공(작
은나라가 큰나라에 바치는 물건)을 바치고  다시는 외람된 생각을 먹지  못했다. 이에 조선
임급꼐서는 왜왕에게 금자광록대부의 벼슬을 내려 위로했다.
 
   만복사저포기   지은이 :김시습(1435~1493)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작품인 '금오신화'의 김시습은 강릉의 구족으로써, 세종17년(1435) 서
울 반궁 북쪽에서 충순위 일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생후 8개월만에 한자를 보고  그 듯을 알앗다고 하며,  5세가 될대까지는 '소학', '대
학', '중용', '논어'등 사서를 배웠고, 한시를 지어 신동의 칭호를 얻었다고 했으니, 그가 얼마
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던가를 잘알수잇다.
 깁시습이 신동이란 소문을 들으신 세종대왕께서 지사사 박이창을 시켜 승정원에 김시습을
불러 들여 그 허실을 시험해 모라고 하였다고 하며, 친히  김시습을 불러 보시고 삼각 산시
를 짓게 하시고, 칭찬 끝에 명주 50필을 하사하시면서 직접  가지고 나가라 하여 그 의량을
보고자 하셨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시습이 '상유양양서'에다 언급해 놓았고, 그가 평생토록 세종대왕을
추모해마지 낳았다는 것을 볼 때 사실이었다고 보아야하겠다.
 김시습은 13세 되는 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당대의 석학인 김반, 윤상등에게 사사하다가
어머니의 상사를 당하여 본향인 강릉으로 내려가 삼년상을 마치고 17세 되는 해에 상경하여
경저를 지키고 있다가, 단종와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증광시 란 과거에 응시했으
나, 문명을 천하에 덜쳤던 그 로서도 낙방했다고 하니, 과거운은 없었던거 같다.
 그리하여 더 수학하기 위하여 삼각산 중흥사에 올라가 독서하고  있던중, 21세가 되는 해
에 수양 대군이 단종왕을 폐위시키고 위를  찬탈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는 대성  통곡하
여, 읽고 있던 유서를 불사르고,  입고 있던 유복을 찢어버리고,  광인으로 자처하고 승복을
입고 방랑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김시습의 일생이 방랑으로 끝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처신한 동기는
어떠한 이유버다도 세조의 왕위 찬탈에 있었다고 하지 않을수없다.
 20세부터 세속의 부귀와 영화를 포기하고 59세로 일생을 마칠대가지 삼천리 강산을  두루
다니면서 독서, 저술, 독경, 참선, 작시, 음주, 금기, 제매등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상과 같은 생애를 보내다가 30년대에 경주에 있는 금오산에 들어가 은거 하면서 중국인
소설인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금오신화'를 썼으나 세상에  공포하지 않고, 석실에다 감추고
놓고서는 ,"후세에 반드시 설잠을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 것을
보면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지엇음을 짐작할수 있다.
 옛사람으로서 '금오신화'를 본사람이 김안로와 이황밖에 없었고, 임진란 이후에는 전혀 본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임진란 때 왜병이 가지고 가서 우리나라 효종째 일본에서 간행하였
고, 1927년 이르러 육당 최남선이 '계명'지 제19호에다  일본판을 전재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하는 '금오신화'는 5편으로 되어  있는 단편 소설집으로서 한문으로  씌어져 있다. 첫
번째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를 비롯하여,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
부연록'등이 그것이다.
 
 만복사저포기에 대하여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을 전라도 으로 설정하였음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가 경주 금오산
으로 들어가지 이전에, 이미 호남의 유람에서 남원을 찾아 광한루도 올랐고, 또 만복사도 찾
아보았던 인사을 이 작품의 배경으로 했을 것이다.
 주인공으로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늦게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공있는 양생이란  노총각을
등장시켰다. 양씨 성은 남원의 대성이다.
 이와같이 작자는 현실적인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고, 플롯으로서  양생이 2년 전의 왜구에
죽은 최처자의 환신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다는 인괴교환 셜화를 결구해 놓았다.
 양생이 만복사의 부처님 앞에가서 아름다운 짝을 점지해 달라고 발원하는 것은  불교적인
발상이다. 불보살에 대한 영원을 믿고 있는 작자로는 당연한 발원이라 하겠다.
 그런데 양생이 저포놀이를 부처님과 하여 그  승부에 따라 가우를 얻고자 한  저포놀이는
작자가 좋아햇던 놀이의 하나이다.
 여주인공 최씨가 난리를 만나 왜구에게 몸을 더럼히지 않기 위하여 자살했다고 하는 왜구
는,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까지 남쪽지방을 수 없이 약탈했던 일본의 해적들로서, 신라
의 문무왕은 죽어도 동해 용이 되어 신라르 왜구로부터 보호하겠다고 하였을 정도로 우리나
라를 괴롭혔다.
 여주인공 최씨가 왜구를 만나 수절하려고 자살햇다고 한 것도, 플롯에다 현실성을 부여하
려는 작가의 용의 주도한 구상이다.
 이 작품의 결미는 최씨가 양생과 3일간의 사랑을 속상이고는, 미로소 자기 신분을 밝혀 2
년전 왜구로 해서 수절하려고 자살했음을 고백하며, 이별연을 베풀어 주고는 사라졌다가 이
튿날 보련사에서 양생을 다시 만나 부모들이 차려주는 침식을 같이하고는 저승으로  돌아갔
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와같은 결미는 다른 인괴교환 설화와도 같으나, 양생이 절에가서  명복을 비는 재를 올
린 지 셋째 날 밤에 그 여인이 꿈에 나타나 "당신도 정성으로 타국에가서  남자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유명을 달리했으나 감사하지 않울수 없으며, 당신도 다시 정업을 닦아 윤회를  벗
어나소서."하며 일러주는 말을 보면, 이작품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가지고 긑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라서 이 작품은 불교적인 영험사상을 발단으로 하고, 또 불교적인 윤회사상으로 결미해
놓은 불교적인 종교 소설의 주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 설정은 작자가 지니고 있었던
불교 사상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전라도 남원부에 양시 성을 가진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는 아직 장
가를 들지 못하고 만복사 동쪽 방에서  홀로 살고 있엇다. 그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로가
서 있었는데, 그때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여 꽃이 활짝  피어서 마치 백옥나무에 은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서생은 언제나 달밤이면 그 나무 밑을 거닐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곤했다.
 읊기를 마치니 별안간 공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좋은 배필을 얻고자 할진댄 그 무엇 근심할것이 있으리."
 서생은 그소리를 듣고서 속으로 기뻐했다.
 이튿날이 바로 3월 24일 이었다.
 이 고을에는 이날이 되면 만복사에 가서 등불을 켜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엇는데, 청춘남
녀들이 많이 몰려가서 각기 소원을 비는것이엇다. 해가 저물어  저녁 불공이 끝나자 사람들
이 드문 틈을 타서 서생은  소매속에 저포를 품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는 저포를 던지기
전에 소원을 말씀드렸다.
 "제가오늘 부처님을 보시고 저포놀이를 할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불공ㅇ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시거든 아름다운배필을 구하셔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나서 저포를 던지니 뜻대로 서생이 이겼다. 그는  곧 부처님 앞에 꿇어 앉
아서 말씀을 드렸다.
 "인연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속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불좌 밑에 숨어서 약속한 배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에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나이는 열 대여섯 가량이 되어 보였다.  머리
를 두 가닥으로 갈라서 쪽지고 개끗한 차림을 했는데, 얼굴과 태도가 흡사 하늘나라의 선녀
와 같았으니 바라볼수록 엄전했다.
 그녀는 고운 손으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불을 켜고, 향로에 향은  곷은후 세 번절하고는
꿇어앉아 한숨을 짓고 탄식하며 말했다.
 "인생인 박명한들 어찌 나 같을수 있을까?"
 아가씨는 품 속에서 축원문을 꺼내더니 불탁위에 얹어 놓았다.  그글에는 다음과 같은 사
연이 적혀있엇다.
 "OO고을 OO마을에사는소녀 OO는 삼가 부처님께 사룁니다.  지난번 변방의 방비가 부너
져 왜구가 침범해와, 싸움은 눈앞에서 치열했고 봉화는 한해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왜적이 집
을 불사르고 백성을 사로잡아 갔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도망해 가니 친척과 노복
들은 사방을 흩어졌습니다. 저는 가냘픈 몸으로 멀리는 피난가지  못해 깊숙한 골방으로 숨
어들어 끝내 굳건히 정절을 지키고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했습니
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여자로서의 수절함을 그르치지 않았다고 하여 한적한 곳으로 옮겨
잠시 초야에서 살게 해주셨는데 그것도 어느덧3년이나 외었슴니다.  저는 달 밝은 가을밤과
꽃피는 봄철을 상심으로 헛되이 지내고 뜬구름과 흐르는 물을 더불어 쓸쓸히 날을 보냈습니
다. 그윽한 골짜기에 외로이 살면서 한평생의 박명을 한탄했고  꽃다운 밤을 혼자 보내면서
제홀로 살아감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바뀌니  이제 혼잭마저 사라져 없어
졌고,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반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마저  끓어질 듯 함니다. 자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제발 소녀를 불쌍히 여기시어 각별히 돌봐 주십시오, 사람의 한평생은 태어나
기 전부터 마련되어 있으며 선악의 응보는 피할수 없사오므로,  타고난 생명에 인연이 있을
것이오나 일찍이 배필을 정해 주시어  즐거움을 얻게 해 주심을  간절히 빌어 마지 않습니
다."
 여인은 축원을 마치고 나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때 서생은 불좌 밑에서 여인의 보습을 보고는 바음을 걷잡을수 없엇으므로  뛰쳐나가서
말을 건넸다.
 "조금전에 부처님께 글월을 올리셨지뇨.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그는 여인이 올린 글월의 사연을 읽어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헐렀다.
 "아가씨는 어떤 분이십니까? 어째서 여기에 홀로 오셨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저도 사람입니다. 무슨 의심나는 일이 있으십니까? 당신께서는 다만 아름다운 배필만 얻
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꼭 서명을  물으셔야 합니까? 그렇게 당황해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때 만복사는 이미  허물어져서 승려들은 한편 구석
징 방에 살고 있엇으며, 법당앞에는  다만 행랑만이 쓸쓸히 남아 있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좁다란 판자방 하나가 있었다.
 서생이 슬그머니 여인을 유인해서 그것으로 들어가니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따랐다. 그
들은 서로 즐거움을 나무었는데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윽고 밤은 깊어서 달이 동산에 떠올라 달 그림자가 창살에 비치었다. 문득 발자국 소리
가 들려왔다. 여인은 입을 열어 물었다.
 "누구냐? 시녀가 온 것이냐 아니냐?"
 "예, 접니다. 요즘 아가씨께서는 출타하시더라도 중문 밖을 더나가지 않으셨고  보행을 하
시더라도 서너 걸음 이상 하시지 않으셨는데,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시더니 어찌 이곳
가지 오셔서 이런 일이 있게 하셨습니까?"
 여인은 말했다.
 "오늘일은 아마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한 분의
고운 님을 만나 백년 해로를 하기로 했다. 부처님꼐 알리지  않은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하
겠으나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기이한 이연이라 하겠다.  너는 집에가서 앉을
자리와 주과물을 가져오너라."
 시녀는 분부에 따라 돌아갔다. 미구에 뜰에 술자리가 베풀어졌는데, 밤은 이미 사경이  되
려고 했다.
 시녀는 안석과 술상을 품위있게 펼쳐놓는데, 기구들이  모두 말쑥하며 무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술에서 나는 내가 강렬하게 풍겼다. 정녕 인간 세상의 것은 아니었다.
 서생은 비록 의심이 나고 괴이하게 여겼으나, 여인의 말씨와 웃음 소리가 맑고 고우며 얼
굴과 몸가짐이 얌전했으므로 틀림없이 귀한 집 처녀가 담을 넘어온 거싱려니 생각하고는 더
의심하지 않았다.
 여인은 술잔을 건네면서 시녀에게 노래를 불러 술을 권하게 하고는 서생을 바라보며 말했
다.
 "예는 옛 가곡을 그대로만 부릅니다. 제가 새로운 가사를  하나 지어서 술은 권해도 괜찮
겠습니까?"
 서생은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에 여인은 만강홍 곡조로 맞추어 가사를 지어 시녀에세 부르게 했다.
 노래가 끝나자 여인은 수심에 잠겨 안색이 달라지면서 말했다.
 "일찍이 봉래산에서는 약속을 어겼습니다마는, 오늘 이곳에서  옛 낭군을 다시 뵙게 되었
으니 어찌 하늘이 준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멀리하여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끝내 낭군의 시중을 들까 하오며, 만일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 멀리 떠
나겠습니다."
 서생은 이말을 들으니 한편 반가왔으나 또한 놀라면서 말했다.
 "어찌 당신의 분부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대도 여인의 태도는 심상하지 않았으므로 서생은 그녀의 행동르 자새히 살펴보았다. 이
때 달은 이미 서쪽 봉우리에 걸려 있었고 먼 마을에는 닭 울음 소리가 들여 왔으며 절 종소
리가 처음으로 울려 오자 날이 바야흐로 새려 하였다.
 여인은 시녀에게 말했다.
 "너는 자리를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시녀는 대답하자 곧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수 없었다.
 여인은 서생에 말했다.
 "인연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함께 저희 집으로 가셨으면 합니다."
 서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니 개들이 울타리 밑에서 짖고 있고 사람들은 길
을 나다녔다. 그러나 길가는 사람들은 서생이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렇게 물었다.
 "서생은 어디서 이렇게 일찍 돌아오시오."
 서생은 대답했다.
 "마침 만복사에게 술에 취해 누워있다가 친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날이 새자 여인은 서생을 인도하여 깊은 숲을 해치고 가는데 이슬이 흠뻑 내려서 길을 찾
을수 없었다.
 서생은 여인에게 물었다.
 "어찌 거처하는 곳이 이렇습니까?"
 여인은 대답하였다.
 "홀로 사는 여인의 거처는 본디 이렇습니다."
 여인은 다시 시경의 옛 시 한수를 외면서 농담을 걸었다.
 두사람은 읊고 한바탕 웃고 나서 마침내 함께 개녕동으로 갔다. 다북쑥이 들을 덮고 가시
나무가 공중에 늘어선 속에 집한채가 있는데 자그마한 것이  매우 화려했다. 여인의 인도에
따라 들어가 이부자리와 휘장이 잘정돈되어 있는데 벌여놓은 품이 어젯밤과 같았다.
 서생은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다. 즐거움은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시녀는  아름
다우면서도 교활한 태도가 없었고, 좌우에 진열된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서생에겐 그것들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리란  생각도 들었으나 여인의 은근히 정에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니 않았다. 사흘후 여인은 서생에게 말했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의 세상의 3년과 같습니다. 도련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옛날의
살림살이를 돌보셔야 합니다."
 드디어 이별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서생은 탄식하면서 말했다.
 "어쩌면 이별이 이렇게 빠릅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작별하더라도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다 풀수 있을 것입니다. 도련님이 누추한 이곳가
지 오시게 된 것은 반드시 북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이웃 친척들을 한번 만나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생은 말했다.
 "예, 좋겠습니다."
 여인은 곧 시녀를 시키어 이웃 친척들에게 알렸다.
 이날 모이 사람은 정, 오씨, 김씨, 류시등 여인인데, 모두 번영한 귀족집 따님으로서, 이여
인과 한 마을에 사는 친척들로서  성숙한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며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고 또한 자질이 총명하며 문장에 능했다.
 그들은 칠언 절구 네 수씩을 지어 서생을 전별해 주었다.
 장씨는 태도와 인품이 갖추어진 여인인데, 곱게 쪽찐 머리채가  귀밑을 살짝 가리고 있었
다. 그녀는 숨을 내쉬어 즉흥시를 읊었다.
 오씨는 쪽찐 머리에 요염하고도 엄전한 태도로 붓에 먹을 찍더니 앞에 읊은 시가 너무 음
탕하다고 책망하면서 말했다.
 "오늘의 모임에는 여러 말 할 것없이 다만 이 자리의 광경만 읊어야 할텐데, 어째서 마음
의 회포를 털어놓아 우리말의 절조를 잃어야 할 것이며, 우리들의 소식을 인간 세상에 전해
야 하겠습니까?"
 하고, 그녀는 낭량한 복소리로 시를 지어 읊었다.
 류시는 엷게 한 화장과 하얀옷이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법도가 있어 침묵을 지키
고 말을 하지 않더니 방그레 웃으면서 시를 종이에 적었다.
 여인은 류씨가 읊은 마지막 싯구의 사연에 감동되어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나도 또한 자획은 대강 분별할줄 아는데 나만 홀로 소감이 없겠습니까?"
 그녀는 곧 시를 읊었다.
 서생도 또한 글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그들의 시법이 깨끗하고 운치가 높으며 음운이 맑음
을 보고 감탄하여 칭찬함을 마지 않았다. 그는 즉석에서 재빨리 시 한 장을 적어 회답했다.
 잔치가 끝나자 다들 작별하게 되었다. 여인은 주발 하나를 내어 서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일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모련사에서  읍식을 대접받게 되어  있습니다. 낭군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저와 함께 절로 가셔서  조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서생은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튿날 서생은 여인이 시킨대로 주발을 쥐고 서서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
다. 이윽고 과연 어떤 귀족 집안에서 딸의 대상을 치르기 위해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 세우
고서 보련사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대 길가에  한 서생이 주발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자,
종자가 주인게 말했다.
 "우리집 아가씨 장례 때 무덤속에 묻었던 물건을 벌써 어떤 사람이 훔쳐서 가지고 있습니
다."
 주인은 말했다.
 "뭣?"
 "저서생이 가지고 있는 주발이 그것입니다."
 주인은 마침내 말을 서새 에게로 다가 세워 물어 보았다. 서생은 그 전날 여인과 약속한
일을 그대로 일러주었다. 여인의 부모는 놀라고 의아해 생각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슬하에 딸 하나가 있었네. 그런데 그 달이 왜구들의 난리때 싸움판에서  죽었어. 미처
정식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해서 미루어 오다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네. 오늘이 벌써 대상날
이라 절에서 재를 베풀어 명복이나 빌어 줄까 해서 가는 길일세. 자네가 약속을 지키려거든
내 딸을 기다라고 있다가 같이오게. 그리고 조금도 놀라지 말게."
 말을 마치자 귀인은 먼저 보련사로 떠나갔다. 서생이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약속한 시각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시비를 데리고 갸우뚱하면서 오는데 바로  그여인이엇
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부처님게 예배를 드리더니 휜 휘장안으로 들어가는데  친척들과
승려들은 모두 근며를 보지 못했다. 다만 서생의 눈에 보일 뿐이었다. 여인이 서생에게 말했
다.
 "진지나 드심시오."
 서생은 여인이 한 말을 그녀의 부며님께 아뢰었다. 부모는 그말을 시험해 보기 위해 밥을
감이 벅게 했더니 다만 수저 놀리는 소리만이 들린뿐이었으나, 인간이 벅는 것과 조금도 다
름이 없었다. 여인의 부모는 이에  경탄을 마지 낳더니 서생에게 권하여  휘장 옆에서 함께
자게 했다. 그들의 얘기 소리가 밤중에 분명히 들려왔으나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갑자기 중지되곤 했다. 여인은 말했다.
 "제 행동이 법도를 넘은 것은 저도 알고있슴니다. 저도 어릴대 시경와 서경을 읽었으므로
예의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시경의 건상장, 상서장에서 이른내용이 다  부끄러운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다북쑥 우거진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 들판에
버림받은 몸이 되고 보니 사랑의 정서가 한번 일어나자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절
로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앞에서 향불을 피우면서 한평생의 박명을 스스로 탄식했더니 뜻밖
에도 3세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검소하고 부지런한 아낙으로 도련님을 받들어 평생을
모시고자 했습니다만 애닯게도 업보는 비낄수 없어  저승으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즐거운을
채 다하지도 못했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밤이 지나고 날
이 새면, 구름과 비는 양대에서 떠나야 하고 저희들의 복을  빌러 온 이들과도 다 이곳에서
헤어져야 합니다. 이제 한번 가면 훗날을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도련님 정말 슬프고 화급하
여 무어라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이윽고 영혼은 떠났다. 여인은 전송을 받을 때는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더니 문밖에 이
르러서는 다만 은근히 소리만 들여왔다.
 남은 소리는 점점사라지면서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가 없게 되자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으며, 서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임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기
어 여인의 부모와 함게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인의 부모는 서생에게 말햇다.
 "은주발은 그대의 소용에 맡기겠네. 그리고 내 여식에게는 토지  몇백 이랑에 노비 몇 사
람이 있으니 자네는 그것을 신표로 가지고 내 달을 잊지 말아주게."
 이튿날 서생은 고기와 술을 가지고 개녕동 옛 자취를 찾아갔다. 과연 시체를 임시로 안치
한 무덤이 잇었다. 서생은 제물을 차려 놓고 슬피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을 불사르고는 정
식 장레를 지내었다. 그리고 제문을 지어 조상했다.
 "오오 님이시여! 당신은 어릴때에 천품이 온순했고 커서는 얼굴이 깨끗했소. 모습은 서시
와 같았고 시부는 숙진을 능가하였소. 스스로 규문밖에 나가지  않았고 언제나 가정의 교훈
을 고이 받아왔었소. 난리를 당하고도 오히려 정조를 지켰으나 끝내 왜구의 손에 목숨을 잃
었소. 황량한 다북쑥에 몸을 의탁한채 홀로 살면서 피는꽃 밝은 달에 마음만 슬퍼했소. 봄날
에 애끓는 두견새의 울음을 슬퍼했고 서리  내리는 가을엔 비단 부채의 무용함을  탄식했었
소. 지난 하룻밤 당신과 만나 정을 바꾸었더니 유명은 비록  서로 달랐으나 물 만난 고기처
럼 즐거워하였소. 장차 백년을 같이 해로하려 했는데 어찌  하룻저녁에 이별이 있을줄 알았
겠소. 님이시여! 당신은 응당 달나라에서 난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를 내리는 낭
자가 되리니, 당은 어둠침침해서 돌아볼수가 없을 것이요, 하늘은 아득해서 바라보기가 어렵
겠소. 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냈고,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데 없는 몸이  되었
소. 영혼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술을 따를 때엔 마음이 더욱 슬
퍼지오. 요조한 그 모습은 눈에  삼삼하고 명랑한 음성은 들리는  듯하오. 슬프외다. 총명한
당신의 성품, 정밀한 당신의 기상. 몸은 미록 흩어졌을지라도 영혼만은 남아 있을 것이니 응
당 내려와서 뜰에 오르시고 어쩌면  눈앞연이라 프笭駕양음을몸윱營탔?성헥?말퓸濂駭냈고,,밖는 겁니 藥뭏 손에서생은 탄?
헤?또내려와서 뜰?응
바라볶>?훗
자기약??분히 遍?보련사로 가틉歷더니 은 늣?貧痔?뉨뗌該을 뮌括?릴실좆碧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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